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7)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7화(37/405)
윤슬은 수업을 모두 마친 후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나 사물함 정리 안 할 거야. 가영아.”
“미쳤어? 가진 거 쫄딱 다 털린다. 거지가 꿈이야?”
“그래 윤슬아…. 우리 이제 시험 기간이라 주말에도 학교 열잖아.”
소희는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렸고, 가영은 어이없다는 듯 윤슬의 어깨를 잡고 탈탈탈 털었다.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며.
“학습실 오픈될 때 훔쳐 가면 어떻게 해!!!”
“맞아 맞아.”
바보같이 착한 윤슬이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탄 둘이었다.
“얘는 진짜 어쩌려고 이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윤슬을 바라보는 둘의 눈동자와 마주친 윤슬은 헛웃음이 샜다.
‘착한 건 너네 같은데….’
잠깐 멈췄던 가영은 잘 생각하라며 또 빠르게 윤슬의 어깨를 탈탈 털었다. 종이 인형처럼 흔들리던 윤슬은 꿋꿋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사물함 비워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긴 하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윤슬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부탁 하나만 들어 줘.”
친구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호감도를 믿었다.
얘들아, 잘해 보자…!
* * *
“흠, 화질 나쁘지 않아….”
인터넷에서 저렴한 가격을 주고 산 CCTV의 영상을 확인한 윤슬은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초소형 카메라도 있지만 그런 걸 사기에는 차마 마음이 찜찜했다.
학교 복도 끝에만 있는 CCTV는 도난사건이 일어났을 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교실 내부에 달면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있고.
‘그럼 내 사물함에 내가 넣어두면 되지.’
사물함 문을 열고 가져갈 물건을 고르는 순간, 책 사이에 넣어 둔 CCTV의 작은 렌즈가 도둑의 얼굴을 녹화할 것이었다.
“소희야, 다 됐어?”
“잠깐만~”
기계조작에 능숙한 소희가 설명서를 읽고는 가볍게 버튼을 눌러 작동을 확인했다.
“빨간 불 들어와?”
“어, 들어와!”
그럼 이제 화면을 보자. 윤슬은 준비해왔던 노트북을 꺼내 현재 CCTV를 확인했다. 모서리가 노트에 가려지긴 했지만 사물함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됐다.”
그때였다. 가영이 있는 복도에서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아!”
* * *
“쌤, 안녕하세요~”
“학교 끝났는데…. 안 가고 뭐 하냐잉~”
“저 화장실 가려고요.”
다행이다. 가영은 눈앞의 선생님을 보고 안도했다. 다행히 무섭고 깐깐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가영은 미리 준비해 둔 작고 네모난 파우치를 흔들었다.
여고생이라면 다들 하나씩 가방에 있는 것. 핑계를 댈 요량으로 챙겨서 망을 보고 있었다.
“큼, 그래…. 얼른 가고.”
“네에~”
빠르게 대답하고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가영은 뒤를 돌아봤다. 선생님은 어느새 교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윤슬과 소희가 CCTV를 설치하고 있을 그 교실에.
‘들렸겠지…?’
드륵-
“느이~. 왜 여기 있니~”
“아, 쌤.”
소희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을 뿐 감정과 비밀을 숨기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소희는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졸지 않은 우등생이었다. 실제 성적도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좋았고.
「[스킬: 내가 곧 판사다 (A+)]
상황에 맞게 판단 후 빠른 답을 내놓습니다.
(스킬 특이점: 미동 없음!)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와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로 상대방에게 신뢰도 3~40%(↑) 상승되어 적용됩니다.
※ 해당 스킬은 너무 큰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발동되지 않습니다.
※ 주의: 거짓말의 상황은 스킬 발동자에게 판단권이 있습니다.」
소희의 머리 위 스킬이 빛났다.
“저희 인강 아이디랑 비밀번호 공유해요.”
소희가 무표정으로 뱉었고.
“이거 인증번호 입력해야 두 컴퓨터에서 사용이 돼서요. 잠깐만요~”
윤슬이 제대로 받아쳤다.
“윤슬아. 인증번호 35722, 입력했어?”
“어어. 된다.”
“하이고~ 소희가 고생이 많다…. 윤슬이, 요즘 공부 잘… 하고 있냐.”
선생님이 무뚝뚝하게 말을 건네고 윤슬은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쌤, 성적표 보고 놀랄 준비 딱 하세요.”
노트북을 닫았다. 쥐덫 설치가 끝났다.
* * *
“야!”
“와 대박. 스릴 장난 아니야.”
“하….”
소희는 옆에서 심장이 얼마큼 뛰는지 손을 심장 위에서 떼지 않았다. 가영은 신이 난 듯 방방 뛰다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근데 이 설치가 그냥 뭐… 쓸 일 없었으면 좋겠다.”
“…….”
“그렇잖아. 뭘 훔쳐 갈 줄 알고.”
그냥 몇 개 훔쳤으면 이제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한 가영은 양쪽에 팔짱을 꼈다.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추가로 볶음밥.”
“오징어 튀김!”
메뉴를 말한 셋은 복도가 울리도록 웃으며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갔다.
‘서윤슬아… 성적표 보고 정말 놀랄 것 같다 선생님이….’
휘 한 바퀴 같은 층 교실을 돌다 온 선생님은 모두가 나간 걸 확인하고 학교가 떠나가라 울리는 윤슬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저놈아들 인강 아이디 공유하면 뭐하냐….”
띠링-
-우리..삼형제..단톡방 @>—
[막내~^^: 미쳐따 미쳐써 우리 반 그놈아가 미쳐 돌아간다] [형님~^^: 호들갑 그만 떨어라..] [막내~^^: 벚꽃 보면서 혼자 막 실실 웃는데 어떻게 진정하노.] [막내~^^: 글고 뻑하면 대가리를 책상에 쾅 박아뿐다.]입력: 졸린갑지… 기특하네.
[막내~^^: 내는 눈을 보면 안다. 그런 눈이 아이다.] [형님~^^: 봄 타는갑다..] [형님~^^: 우리 학교 일학년 전교 일등도.. 미친것 같다.] [형님~^^: 무습게 생겨가꼬… 성격은 참 순했는데…] [형님~^^: 혼자 뭔 생각을 하는지… 담을 넘더니 제정신 못 차린다.] [형님~^^: 뻑하면 지 손바닥으로 뺨을 쫙쫙 쌔리더라….]입력: 요즘 학생들… 큰일 났네… 우리 아들이 최고네^^…
덕현여고의 방송부 담당 선생님. 강소엽은 쉴 새 없이 울리는 형제들의 단톡방을 천천히 읽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그래도 개안네…. 시험 삼 일 남았는데~ 공부는 안 하고 떡볶이나 무러 가고… 최고네….”
운동장에 벚꽃이 쏟아지듯 내렸다. 강소엽이 창문 너머로 내다 본 길에는 세 명의 소녀가 팔짱을 끼고 벚나무 사이로 떡볶이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윤슬이…. 슨새임좀 놀라게 해 도….’
강소엽이 가르치는 수학 시간에 상모를 돌리며 조는 서윤슬이, 막내의 전교권 금마한테 받은 예상 문제지로 첫째 형님의 미친 전교 일등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건 몰랐다.
* * *
덕현여고 후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돌쇠네 떡볶이]이름이 촌스럽다 생각하겠지만 여기 있는 사장님은 진짜 돌쇠에 가까웠다. 커다란 덩치. 험상궂은 얼굴.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하나 나 있었다. 왕년에 횟집에서 일하다가 난 상처라고 했는데 믿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사시미를 쥔 손으로 과연… 회만 썬 걸까…?’
가게가 처음 생겼을 때, 덕현여고 학생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맛있던데 거기?”
“장난 아니야.”
덕현여고 3학년 방송부 부장. 소희의 언니가 친구와 한번 방문한 뒤로 동네방네 맛집이라고 소문을 낸 그곳.
그 뒤로 덕현여고 학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고, 소영의 동생인 소희를 돌쇠 아저씨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아저씨, 여기 떡볶이 세 개랑요~”
“두 개만 해 윤슬아.”
“장난…하나요? 가영아 얘 봐. 자세가 안 되어있다. 평소에 애 교육 어떻게 시킨 거야?”
“죄송합니다, 윤슬 형님. 이 녀석 밥 볶을 때 김가루 주지 말죠.”
“아니 진짜 시켜봐야 알아. 두 개만 해야 돼.”
* * *
“어어…. 이거 뭐야….”
가영과 윤슬은 나온 떡볶이에 양에 당황했다, 이윽고 미친 듯 웃었다.
“아하학, 야, 이래서 세 개 시키지 말라고 했구나 소희야!”
“여기 양 많이 줘.”
“미쳤나 봐. 감자튀김 산만큼 있어!”
윤슬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고민 없이 웃고 떠들었다.
“야, 떡볶이 진짜 많다.”
“잠깐만 윤슬아. 너 팔에 묻었어.”
“어! 뭐야 이거!”
떡볶이 국물은 항상 앞치마를 피해 요리조리 잘도 묻었다. 소맷자락에 떡볶이를 묻힌 윤슬을 비웃던 가영을 소희가 비웃었다.
“가영이 넌…. 입에 묻었어.”
두 사람에게 번갈아 티슈를 건네준 소희 혼자 말끔했다.
세 사람은 떡볶이 가게 근처에 있는 버블티까지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쫄깃쫄깃한 방과 후 시간이었다.
“월요일에 봐!”
“파이팅!!! 공부하다 졸지 말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윤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제 집에 가서 백휘가 준 예상 문제지 보고. 수학 풀다 재언이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 보내고. 음 그리고….’
머릿속이 바빴다. 왠지 다 잘 될 것 같았다.
* * *
학교에서 서은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주말 동안 학습실에 가는 서은이 메모리 카드를 바꿔 끼워주며 사물함의 물건들을 체크해주기로 했다.
“진짜 미안! 메모리 카드가 갑자기 안 되네….”
-미안하긴. 나 어차피 가는 김에 하는 건데.
“고마워….”
-고맙긴. 난 솔직히 너 같은 반 애들한테 다 잘해주는 것도 신경 쓰여.
새침하게 서은은 윤슬을 걱정했다.
서은이 가진 스킬은 차갑지만 꽤 다정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꼼꼼하게 급을 따지지만 그만큼 사람을 잘 본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서은이 S급으로 좋아하는 윤슬은 모두에게 착한 것 같아 내심 호구가 될까 걱정되고는 했는데, 그 마음에 조은주가 불을 질렀다.
윤슬의 물건이 도둑질당했다는 걸 전해 들은 순간부터 서은은 은주의 파우치를 유심히 살폈다.
아무 일 없는 주말이 지난 월요일, 서은의 촉은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워졌다.
‘저거 립에 바른 거…. 색을 보면… 윤슬이 꺼 맞긴 한데.’
1분단 교실 뒤편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서 은주가 화장을 고치고 있으면, 서은은 갑자기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잠깐만.”
어깨로 은주를 부드럽게 밀어낸 다음, 양쪽으로 얼굴을 한 번씩 돌리며 상태를 확인하는 척하고 파우치 안을 확인했다.
“…….”
옆에서 조용히 작은 쿠션 팩트의 거울로 확인하는 은주를 보며, 서은은 덧바르지 않아도 됐던 틴트를 덧발랐다. 작게 벌어진 파우치 안에 윤슬의 화장품이 없었다.
‘이상하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서은이 눈치를 못 채는 건 당연했다. 훔쳐 간 물건이 그대로 있을 리가 없다는 걸.
“미안~. 이제 은주 써~”
한껏 깔린 목소리로 다정한 척 말꼬리를 늘리며 서은은 자리로 돌아갔다. 가영과 눈이 마주치며 눈썹을 잠깐 위로 까딱.
-있어?
-없어.
둘만이 아는 신호였다.
* * *
‘와, 씨… 깜짝 놀랐네…. 왜 갑자기 껴들고 X랄이야.’
은주는 서은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난 걸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하던 화장을 마무리했다. 까만색의 립스틱 케이스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딸깍-
그 안에는, 잘라서 넣은 윤슬의 립스틱이 들어 있었다. 케이스만 바꾼. 립스틱을 최대한 빼낸 다음 칼로 잘라 사이즈가 대충 비슷한 다른 케이스에 넣었었다.
윤슬이 찰떡지수로 알아보기엔 이미 은주가 얻어낸 물건들이 많아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윤슬아 이거 한정판이었던 건데…. 내가 돈 주고 살게!”
“어어? 아니야. 그냥 너 가져.”
“어떻게 그래~. 이거 이만 원인데…. 만 원만 줘도 돼? 같은 반 애들 한 번씩 써본 거잖아…. 응?”
“응. 맘대로….”
이런 식으로. 파우치 구경을 할 때 참을 수 없이 탐이 나던 아이템은 은주가 아껴 낸 용돈을 주고 사버렸다. 윤슬이 가져오는 물건은 너무 많았고 또 너무 잦았으므로 갖고 싶다는 충동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29,800원짜리 제품은 은주의 입에서 이만 원이 됐고, 그걸 만 원에 산다고 했다. 윤슬은 그럴 때마다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은주는.
“흐흠~”
평소 틴트를 고집하던 은주는 윤슬을 따라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괜히 좋아 보였다. 그래서 자꾸 더 닮아 가고만 싶었다.
은주의 피부 위로 톤에 맞지 않는 차가운 색감의 체리 립스틱이 얹어졌다. 윤슬이 자주 바르다가 질렸는지 손길이 뜸한 새를 타 사물함에서 훔친 것이었다.
수정화장을 모두 끝낸 은주의 파우치 안에는 몇 개의 화장품이 급하게 들어갔다. 아까 서은을 피해 본 작은 거울이 달린 팩트도 함께.
[HENRA 쿠션 팩트]새로 나온 신제품 촉촉 글로우 쿠션
▷21 바닐라
쿠션에 맞는 케이스만 바꿔 끼운 HENRA 제품이었다. 윤슬이 미션 후 보상으로 받았던 그 제품.
톤에 맞지 않는 피부 화장, 톤에 맞지 않은 립스틱, 어딘가 묘하게 둥둥 떠 있는 은주였다.
“우리 이번 주말에 어디 갈래?”
“시험공부 하기로 했잖아.”
“아, 그냥 기말고사에 모든 걸 걸까.”
“미쳤어! 너 공부한다고 머리도 안 감고 온 거 아님?”
원래 짝은 다른 친구와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은주는 눈치를 보며 비켜달란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일부러 거울 근처를 서성였다. 그때 자신에게 보란 듯 윤슬이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뭐야. 머리 안 감고 왔어? 야 근데 티가 안 난다. 나도 내일은 그냥 감지 말까 봐.”
“오키 윤슬이 안 감고 오면 나도.”
“약속해야 돼 민경아. 너만 감고 오면 나 혼자 외로이 앞머리 기름진 애 되는 거야…. 믿는다.”
은주는 자신과는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짝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윤슬을 바라봤다. 자신의 말은 저렇게 다정하게 받아준 적이 없던 민경이, 윤슬이가 하는 말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입을 벌려 가며 웃었다.
“…….”
은주는 체리 컬러 립스틱이 발린 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 화장처럼 친구들 사이에서도 묘하게 둥둥 떠 겉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