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7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71화(371/405)
“윤슬님…. 맞죠? 헉 어떡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는데도 나를 알아본 몇몇이 사진을 요청했다.
“저 정말 고등학생 때부터 팬이었거든요….”
“우와~. 진짜요? 감사합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손으로 브이 모양을 만들었다. 핸드폰 화면에 비치는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찰칵-!
몇 번의 셔터음과 함께 팬들이 가고, 나는 손에 쥔 비행기 티켓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좌석 등급이 써진 티켓이 눈에 아프게 박혔다.
‘비즈니스….’
그러자 상태창이 내게 내민 선택지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비즈니스를 탈 수나 있었을까? 아니, 그 전에 LA에 올 수나 있었을까? 나를 이렇게 알아봐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
띠링!
상태창은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또다시 나와 깜박거렸다.
「▶System
※ 새 미션을 수락한다면, 상태창의 충돌이 사라져 아이템 숍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였다.
“야, 미쳤다. 하제인 봤어?”
공항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옆 사람과 떠드는 것이 귓가에 들려왔다. 하제인의 라이브를 보는 것 같았다.
“하제인, 얘는 딱 배우해도 될 얼굴이야. 그치? 와 서양인 옆에 있는데도 이긴다.”
“지금 라이브하는데, 얘 곧 틴톡도 이백만 찍을 듯.”
“어? 저기도 하제인 나온다!”
하제인이라는 이름을 듣자 다시금 머리가 어지러웠다.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분주한 공항에서 나는 가만히 전광판을 바라봤다. 공항 내부의 작은 스크린에서도 하제인이 나오고 있었다.
―sejanmue.
‘…세잔뮤가 이제 미국 진출도 하는구나.’
“천만….”
백룡 어워드로 하제인을 이기는 것 보다는. 천만 팔로워를 얻는 게 좀 더 가능성이 있지 않나.
점점 그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 승리도 온전하지는 않은 걸지도.’
아이템과 상태창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하제인을 이길 생각도 못 했을지 모른다.
타야 할 비행기 탑승 수속 안내가 들려올 때까지 나는 가만히 화면의 하제인을 바라봤다.
‘아이템 없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띠링-! 띠링-! 띠링-!
「!Debuffs! 자신감 부족」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다시 한번 시끄럽게 상태창이 울렸다. 지난밤 호텔에서처럼 거대한 상태창이 나를 둘러쌌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디버프로 인해 [스킬: (안) 죄송합니다 (B)] 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네 생각이 맞다는 듯이.
「→디버프로 인해 [스킬: 직장인의 마음가짐 (A)] 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너는 내가 없이는.
「→디버프로 인해 [스킬: 당신은 나의 보석(C+)] 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디버프로 인해 [스킬: 토끼네 찰떡방앗간(A)]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갖고 있던 스킬까지 모두 잠겨 버렸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 * *
재언은 손목에 있는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중간에 윤슬이 탄 비행기가 연착되어 예상 도착시간보다 조금 늦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상해.’
평소의 윤슬이 아니었다. 시차 적응이라는 건 핑계 같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간 옆에서 지켜봐 온 윤슬과는 달랐다.
“…무슨 일 있는데. 분명.”
거기까지 갔는데 새로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 윤슬은 답지 않았다. 원래대로였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또 무언가를 생각해 냈을 게 틀림없었다.
이전에는 상태창이 쓰러지게 만들었어도 꿋꿋하던 윤슬이었다.
[슬이: 지금 비행기 탔음!!ㅋㅋ걱정마~] [슬이: (바보멈이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걱정 말라며 보낸 바보멈 이모티콘이 가짜 같았다. 재언은 하릴없이 공항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또 보고 또 봤다.
마침 스크린에 윤슬의 노픽션 광고가 떴다. 공항에서는 몇몇 사람이 길을 가다 말고 그런 화면을 찍었다.
찰칵-!
카메라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너 저거 써봤어?”
“아니. 나 주문했는데 지금 배송 기다려야 돼…. 미쳤어. 3주 정도 걸린다더라.”
“아씨. 니꺼 오면 나도 한번 테스트해보려고 했었는데.”
틴톡 어워드에서 윤슬이 상을 받았다는 건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파급력 있는 소식이었다. 케이블 뉴스에서는 ‘K-콘텐츠의 승리’라고 보도하며 자료화면으로 윤슬의 수상 영상이 나왔었다.
―현재 한국에서 틴톡 가입자는 약 465만 명으로, 전 해에 비해 75% 급증한 추세입니다. 숏폼이 대세가 되는 때, K-콘텐츠의 힘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데요. 카페인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인플루언서 서윤슬 씨의 수상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윤슬은 환하게 웃었다.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맑은 미소였다. 지금처럼 어색한 웃음이 아니고.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윤슬의 머리 위에 새빨간 글자가 보였다.
「!Debuffs! 자신감 부족」
“나 레드카펫 끝나고 나서는 너무 피곤한 거 있지. 긴장을 많이 했나 봐. 비행시간도 너~무 길고. 그래서 따로 선물은 못 사 왔는데…. 괜찮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윤슬은 웃으면서 쿡쿡 재언을 찔렀다.
“나 시차 적응 똑바로 못해서 계속 잠만 잤다? 이러면 또 한국에서 시차 적응하는 데 며칠 걸리겠네~. 이번 주는 핸드폰 못 봐도 그러려니 해. 알았지!?”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은 거짓말이 어설펐다. 옆에서 애써 조잘거리는 윤슬의 머리 위로는 여전히 새빨간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재언은 말없이 차를 타 목적지를 집에서 사무실로 바꿔버렸다.
* * *
노픽션 대표는 공지를 띄웠다.
[주문 폭주로 인해 지금 구매하시는 고객님들께서는 9월 1일부터 순차 배송 진행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윤슬을 뮤즈로 공개한 뒤부터 매일같이 밀려드는 주문량은 감당 불가였다.
[Intube] [요즘 핫하다던 찐금수저 브랜드 ‘노픽션’ 전 제품 내돈내산!] 18:30조회수 231,228회
―진짜 딱 뜯는데, 향이 와 아주 그냥 미!쳤!어!요! 제가 웬만해서는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향이 굉장히 오래가는데 머리 아픈 향이 아니라 너무너무너-무 추천드리고 싶더라구요.
-ㅠㅠㅠㅠ이거 진짜 좋은데 오프라인 매장 많이 없어서 답답해요… 요즘 어딜가나 향좋다고 뭐쓰는지 알려달라하는데 좀 짱남;;ㅋㅋ
-머리 아픈 향 아닌데 잔향 오래가는거 진짜에욬ㅋㅋㅋ 폭닥한데 상큼하고 달달한데 시원함( *ฅ́˘ฅ̀*)
그 서윤슬 효과는 매출뿐만이 아니었다. 인플루언서들이 알아서 광고를 해 주고 있었으니 노픽션의 브랜드 가치는 매일같이 높아졌다. 광고비를 들이지 않아도 모두가 노픽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저희 정말…. 하나요? 투자금의 10%나 예산 빼는 거 진짜. 진짜 좀. 위험….”
이건 도박이었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지금이에요.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두 번 다시 노픽션이 이 정도 성공할 기회는 오지 않아요.”
“그, 그래도.”
대표는 지난번 다이아수저와의 미팅을 떠올렸다.
“이 기획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텐데. 그간 라모레의 말도 안 되는 성장 뒤에는 전부 서윤슬 씨가 있었어요. 이게 뭘 뜻하는지는…. 대충 알죠? 물론 내가 개같이 구른 것도 있지만. 아~! 역시 나야~! 이 정도 지위와 재산, 명예를 가지고 바닥부터 구르는 이 자세…. 대표님도 저를 좀 보고 배워보세요.”
중간중간 자신의 자랑을 끼워 넣는 꼴이 무척이나.
‘꼴 보기 싫어….’
노픽션 대표는 옆에서 계속 말리고 있는 직원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미친 짓에 가까웠다. 자리를 제대로 잡지도 못한 브랜드가 굿즈부터 낸다는 건 모두가 말릴 일이었다.
[No- fiction goods]-에코 백 (7color)
-쇼핑 백 (+Ribbon)
-헤어 슈슈 (7color)
…
심지어 간소화한 손거울이나 파우치 같은 것도 아니었다. 다이아수저가 가져왔던 기획안은 몇 번이나 다시 봐서 끝자락이 너덜너덜했다.
“후.”
고개를 저은 노픽션 대표는 윤슬을 떠올렸다.
“우리는 온전히…. 뮤즈를 믿고 갑시다.”
설령 미국 진출을 하지 못한대도 좋았다. 이 기세라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픽션은 굿즈 제작에 돌입했다.
* * *
“어? 집 아니네?”
창밖을 보는 척했지만 지금 내 눈에 뭐가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늦여름의 저녁은 아직도 노을이 한창이었다.
“…마셔.”
재언이는 사무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이온 음료를 하나 꺼내 따줬다. 숨기는 게 있어서 그런가. 재언이는 평소와 다름이 없는데 자꾸만 심장이 쿡쿡 찔렸다.
‘괜찮아.’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어떻게 말할지 전부 계획했다.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준비했다고.
지금을 일단 피곤하다고 하고, 괜찮다고 하고, 나중에 천만으로 바뀐 상태창을 보여주면서…. 에러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면…. 이해해 주지 않을까?
‘얘네까지 함께 엮인 건 미안하지만….’
지금 이 성장세라면 늦어도 2년 안에는 천만이 가능할 거다. 어떻게 팔로워를 끌어 올지도 열심히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직 상태창이 필요해. 아이템도 필요하고.
이거 없이는. 도저히 나는.
“…같이 탈선했던 날 기억나? 옛날에. 이때쯤이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깨뜨린 건 재언이의 낮은 목소리였다. 재언이는 나를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저 너머에서 반짝거리는 한강 물이 빛났다. 나도 가만히 한강을 바라봤다.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기분이었다.
“…재언아. 자전거 탔던 날이라고 정정해야지.”
“그거 시속 180이었다니까….”
“특별히 200으로 했었다고 그랬는데 뻥이었네.”
“잘 기억하네.”
우리는 실 없는 얘기를 하며 잠시 웃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더라. 고등학교 1학년 때였네. 그러고 보니 상태창이 나타난 지 벌써 4년째다.
“꼭 다시 돌아온다고 했었잖아. 여기로.”
“응…. 그랬지.”
그래. 내가 어떻게 다시 여기를 돌아왔는데.
이걸 전부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천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말없이 한강을 바라보고 있던 재언이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잠시 눈을 마주했다.
“슬아.”
괜찮아. 뭘 물어도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 지금 상황….
“…힘들어?”
하지만 재언이의 질문은 준비한 예상 질문지에 없던 거였다. 힘드냐고?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빨리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돌아온 의미가 있다. 그런 생각만으로 달려온 4년이었다. 힘든가? 나 지금 힘든 건가?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괜찮다고 해야 되는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아서.
“이게, 보여서.”
재언이는 가볍게 머리 위를 가리켰다.
“…아.”
그제야 나는 내 거짓말이 얼마나 어설펐는지 눈치챘다. 머리 위에 디버프 글자를 둥둥 띄우고 아무리 괜찮은 척해 봐야 다 알았겠지.
재언이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괜찮아, 슬아. 이제 거의 다 왔어.”
재언이는 그때처럼 고개를 떨군 내 옆에 조용히 있어 주었다. 저 너머 노을이 지고 달이 떠오를 때까지.
눈앞에 닿은 한강이 오늘따라 서럽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