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9화(39/405)
시험 마지막 날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책상에 앉아 있는 윤슬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분명 박키스 포션 먹었는데…. 안 되겠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먹어야지.’
가뜩이나 요즘 사진도, 보정도 연습을 하지 않아 쌓인 포인트가 간당간당했다. 마지막 박키스였다. 키키 게스트의 글들은 시험 기간 전에 미리 만들어 둔 세이브 원고로 올리고 있었다.
‘남은 포인트. 진짜 거지 됐네.’
포인트를 쌓지는 않고 하루 종일 쓰고만 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SNS를 해야 포인트가 들어올 텐데 잠잘 시간도 부족한 지금 SNS를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제 윤슬은 공부해야 할 시간에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혼자 카드 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위해 다녀왔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 것에 시간을 빼앗긴 게 짜증 나 또다시 한 번 머리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짝-
윤슬은 시험 전 가볍게 뺨을 쳤다. 이런 나약한 기분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신 차리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자, 문제지 뒤로 돌려라-”
이번에도 아는 문제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윤슬은 빠르게 샤프를 움직였다. 조금 숨이 막히는 것도 같았다.
* * *
“윤슬아, 우리 오늘 놀래? 나 소희랑 영화 보러 갈 건데.”
어제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안 좋아진 윤슬을 보며 가영은 걱정했다.
‘얘 왜 이래?’
‘나도 몰라….’
소희와 함께 허공에서 눈짓을 주고받은 둘은 조심스레 윤슬의 팔짱을 꼈다.
“미안. 나 어제 밤새서…. 집에 가려고.”
“그래? 그럼 같이 내려가자.”
티 나지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 서은도 합세했다. 윤슬은 정말 이제 소원석 약빨이 다 떨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너네 먼저 가. 나, 엄마가 데리러 오시기로 해서….”
“응. 그럼 내일 봐 슬아!”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곧이어 아무도 없는 교실에 남겨진 윤슬은 책상 위로 머리를 숙였다. 감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게 뭐든지.
기껏 신경 써 넣어 놓은 CCTV는 무용지물이었고, 지갑까지 잃어버렸다. 시험을 보기 위해 옆 반으로 이동했을 때 일어난 일이니 어디에도 증거는 없다.
‘쉬는 시간에 우리 반 오지 말걸….’
시험시간은 모두가 정신이 없다. 그것도 우리 반과 낯선 옆 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날은 더욱더.
그건 윤슬에게 그냥 지갑이 아니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사준, 당당한 아빠의 기념품 같은 거였다.
[Youstagram]같이 맞춘 커플 지갑♥( ˘⊖˘) 윤슬이 아빠카드 마그네틱 닳겠다고 한날ㅋㅋㅋ
@seo_yoonseul
나연이와 맞췄던 커플 지갑이었다. 집이 망해가기 전, 명품관 VIP 였을 때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그건 윤슬이 지금 버틸 수 있는 상징이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
키키 게스트 일과 페이지 관리, 학업을 병행하면서 힘들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윤슬은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내가 집안을 일으킬 거였으니까.
그런 마음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다시 뜰 수 있었다.
“후….”
별거 아니다. 정말 별거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윤슬에게는 이 일이 너무나 별일이었다. 때맞춘 피로와 분노와 서러움이 한데 섞여 녹아내리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창밖으로는 예기치 않은 소나기가 내렸다. 윤슬은 다시 책상 위로 고개를 묻었다.
이제 소원석의 시간이 모두 끝났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아 진짜, 씨….”
감정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엄마는 부르기 미안하니까. 택시… 그냥 버스 타야지.’
이번 달은 시험 기간이라 SNS 관리를 좀 소홀히 했다. 다음 달은 에이스북 페이지 광고 노출이 저조할 것 같았다.
어차피 정문까지 가는 동안 비 맞는데 돈 낭비하지 말자.
아무리 기다려도 그치지 않는 비를 보던 윤슬은 한숨을 쉬고 비를 맞을 각오를 한 후 밖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어디 가.”
“……?”
그때였다. 옆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왜 비를 맞아.”
“…어 백휘야…? 너 왜 여기….”
“오늘도 우산 없을까 봐서.”
자연스럽게 우산을 씌워주는 백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윤슬은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비는 점점 거세져 우산을 때리는 빗물의 소리가 커져만 갔다.
‘울면 안 되는데, 그쳐야 하는데.’
고개 숙인 윤슬의 시야에 운동화가 흐릿해졌다 선명해졌다를 반복했다. 눈물로 흐릿해지는 본인의 발을 보며 윤슬은 괜히 시간이 다 된 소원석을 원망했다. 그러지 않으면 눈에 맺힌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백휘는 우산을 기울여 윤슬이 비를 맞지 못하게 했다. 초봄의 쌀쌀한 바람을 모두 등으로 막아 주고 있었다.
“음, 데리러 와서 되게 감동했나 봐. 그래도 울면 안 되는데.”
“…야 나 안 울어.”
“혹시 지난번에도 울었어? 아, 내가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미안.”
“죽을래 진짜….”
“그래. 앞으로도 자주 데리러 올 테니까 너무 울지 말고.”
윤슬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댄 백휘는 자신의 가슴팍에 윤슬을 살짝 기대게 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윤슬의 머리가 아주 살짝 맞대어졌다.
참으려고 애를 쓰는 윤슬의 눈물이 그치길 바라며 작게 웃은 백휘는 두 손을 꼭 쥐고 우는 윤슬에게 뭔가를 쥐여 줬다. 다람쥐가 그려진 작은 핫초코 캔 하나.
오래 쥐고 있었는지 윤슬의 손에 닿은 백휘의 손이 뜨거웠다.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로 우산 위 떨어지는 빗소리들, 그리고 말없이 몇 분이나 흘렀을까.
윤슬이 무음으로 해 둬 눈치채지 못할 호감도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호감도: 450(30↑)/999」
* * *
“백휘야. 답안지 받으러 교무실로 내려와라.”
“네.”
이번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로 최백휘는 반장이 됐다.
‘아, 귀찮아….’
백휘는 답안지를 받으러 교무실에 가 종이 한 장을 손에 들었다.
지잉-
‘윤슬인가?’
반갑게 확인한 핸드폰 화면에는, 예상외의 인물에게 걸려 온 전화가 있었다.
[차유겸누나☎]“네, 누나. 오랜만이에요.”
-어 백휘야. 지난번에 내 시험지 준 애. 걔 어떻게 생겼어? 까만색 긴 머리야? 좀 마르고. 눈 크고.
“네. 맞는데요.”
-나 아까 걔 봤거든. 시험 망쳤나 봐.
수화기 너머로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해진다.
차재겸의 누나, 차유겸은 갑자기 동생이 덕현여고 1학년 시험지를 좀 달라고 했을 때 ‘미친놈 니가 왜 그게 필요하냐’라며 등짝을 몇 대 때렸었다.
“야, 니 성적이 그 모양인데 연애하냐!”
“아, 누나 잠깐만.”
“니 시험지나 생각을 해보라고!!!”
“그만 패…. 동생 죽어.”
차유겸의 손을 간신히 막은 재겸은.
“최백휘가 달래. 걔 요즘 서윤슬인…. 아, 아무튼 뭐 있어. 누나 뽑아놓은 것들 아직 있을 거 아니야.”
하며 예상 문제지와 지난번 시험 출제지 같은 걸 바리바리 싸갔었다.
‘최백휘가?’
어렸을 때부터 재겸과 함께 자란 백휘를 유겸은 친동생처럼 여겼다. 왠지 그 여자애가 시험을 꼭 잘 봤으면 싶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잠깐만, 나 동생한테 뭐 줘야 돼.”
“1학년?”
유겸은 오랜만에 방송반 부장, 친구인 소영과 돌쇠네 떡볶이에 갈 생각이었다. 소영은 잠시 동생에게 줄 것이 있어 오랜만에 1학년 교실이 있는 층으로 갔는데.
“언니… 쉿. 윤슬이 지금 아는 척하지 마.”
“…왜? 무슨 일 있어?”
“몰라…. 애 울 것 같은 표정이라. 그냥 나왔어.”
소영의 동생 소희가 반을 나서며 소근거렸다. 윤슬에게 아는 척을 하려던 소영은 ‘그래? 시험 망쳤나 보네…. 너가 내일 잘 달래줘.’하고 작게 말했다.
‘윤슬? 서윤슬?’
동생 입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이름이었다. 유겸은 잠깐 눈이 마주친 윤슬을 떠올리며 백휘와의 통화를 이어나갔다.
-울 것 같던데…. 걔 친구들도 다 걱정하더라고.
순간적으로 답안지를 쥔 백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애가 울 것 같다고?
윤슬의 학교는 여기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드륵-
“백휘~”
“답 불러줘!”
교실에서 소리치는 반 친구들의 말을 그대로 무시한 후 백휘는 재겸에게 답안지를 던지듯 건넸다.
“야, 답 불러. 나 아파서 갔다고 해.”
“어? 어디 가.”
“알 거 없고. 나 간다.”
야! 어디 아파서 간다고 하는데! 당황한 재겸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백휘는 달렸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최초의 순간이었다.
‘울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갔는데 울고 있으면…. 그럼 어떡하지. 아니 울면서 혼자 집에 가고 있으면 어떻게 찾지. 수학을 많이 망쳤나. 권재언 탓이다.’
백휘는 온갖 생각을 하며 계단을 몇 칸씩 뛰어내렸다.
“백휘! 종례 안 했는데 어데 가노!”
강대엽 선생은 교무실을 나서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백휘를 보고 쩌렁쩌렁. 로비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하나도 안 죄송한 목소리로 답한 후 비가 쏟아지는 밖을 향해 내달렸다.
“덕현여고 정문이요.”
다급하게 말하는 백휘의 손에는 작은 핫초코 캔이 들려져 있었다. 콜택시가 오기 전, 초조한 기분에 바로 앞 편의점에 들려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았다. 우울해하는 윤슬에게 줄 수 있는 건 작은 다람쥐가 그려진, 따끈따끈한 캔에 들은 핫초코였다.
핫초코 캔을 만지작거리며 백휘는 고민했다. 왜 왔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캔에 그려진 다람쥐를 아무리 바라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다 들렸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창문에 토독. 자그마한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창문에 부딪히는 물방울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쏴아아아아-
“아이고, 비 오네. 학생 택시 잘 불렀어! 우산 있나?”
“…네. 우산 있어요.”
아침 뉴스의 일기예보까지 보는 습관이 이렇게 도움 될 줄이야. 윤슬은 오늘도 일기예보 따위 보지 않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손에 들린 핫초코의 다람쥐가 웃는 것 같았다.
‘우산 없을 것 같아서 데리러 왔다고 해야지.’
* * *
백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있던 윤슬은 정신이 슬슬 돌아오자 서러움보다는 쪽팔림이 크게 다가왔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애한테 이게 무슨….’
자존심이 있지, 기대서 울다니.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빨개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부은 눈을 마주치기 창피하고, 얘한테 뭐라고 둘러대지 고민하던 윤슬은 쉽게 고개를 뗄 수 없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울었어?”
“야 나 안 울었어. 진짜로.”
“그래. 윤슬이 너 진짜 안 울었어. 근데 비가 많이 오네…. 니트 다 젖었다.”
“어? 우산 내 쪽으로 너무 기울인 거 아냐?”
윤슬은 깜짝 놀라 어깨에서 고개를 떼고 위를 올려봤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쳐 씨익 웃는 백휘는 능글거리며 장난스럽게 시선을 자신의 오른쪽 어깨로 내렸다.
‘아 씨 입 벌리고 울지 말걸.’
울다 나중엔 코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숨을 쉬었더니 마치 유적이라도 된 것마냥 백휘의 까만색 교복 니트에 선명하게 윤슬의 이목구비가 새겨져 있었다.
눈 콧구멍 입 전부….
“윤슬이가 울지는 않았는데 콧물은 좀 많이 흘린 것 같다….”
“야…그만해라.”
“불쌍한 내 니트… 이런 최후를 맞이할 줄은 몰랐겠지.”
윤슬은 장난치는 백휘를 가볍게 주먹으로 쳤다. 탄탄한 몸은 타격감이 좋았다. 일부러 흑흑 우는 척하는 백휘는 윤슬의 얼굴이 빨개진 걸 확인하고 크게 웃었다.
“울게 만든… 아니 코 흘리게 만든 사람도 이렇게 패 주지 그랬어.”
“안 그래도 그럴 거야.”
“그 사람 참… 아니야. 내가 누구 걱정을 해. 당장 난 내일부터 초라하게 셔츠만 입고 등교할 텐데.”
“진짜 죽어 너.”
커다란 빗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이제 가자며 윤슬의 기분을 자연스럽게 달랜 백휘의 오른쪽 어깨가 젖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