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0)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0화(40/405)
“재언이,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아….”
귀찮다는 듯 느슨한 눈으로 복싱장 관장을 본 재언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입고 온 아노락 재킷을 시원시원하게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언제 봐도 넓은 등, 두꺼운 팔. 까만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몸이었다.
“야, 이 글러브가 너 없어서 울었어 임마. 자주자주 와서 껴야지.”
“땀 냄새 나서 싫어요….”
“형이 프로 때 쓰던 거라니까! 너 준다니까!”
관장은 재언의 목덜미를 잡아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장난을 쳤다. 언제 봐도 탐나는 선수의 몸이었다. 복싱을 하러 오지 않는 동안 근 손실은 없었는지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재언의 배를 만져보다 복근을 확인하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새끼. 근 손실이… 안 왔구나? 이거 얼른 껴. 가볍게 스파링 한번 뛰어 줘.”
“혼자 칠래요.”
자신이 가져온 스포츠 백에서 글러브를 꺼내 끼자마자 관장이 들러붙었다. 샌드백을 꼭 껴안은 재언은 고개를 도리질하며 스파링을 거부했다.
오늘 윤슬과 놀고 싶었는데. 며칠 전 윤슬은 시험 끝나고서도 바쁠 것 같다며 미안하다 거절해서 시무룩해진 재언이었다.
“재언! 게임 고.”
“우리 집에 님텐도 위 새로 나온 거 있어. 고.”
재언에게 매달리는 친구들을 다 떼놓고 재언은 오랜만에 시험이 끝난 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후우….”
가볍게 잽을 하며 샌드백을 오랜만에 친다는 생각을 했다. 주먹 끝에 무겁게 닿는 샌드백의 감촉이 익숙했다. 운동을 하는 순간에는 머리에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게 참 좋았다.
‘윤슬이는 수학 시험을 잘 봤을까….’
영어 시험이 끝났던 첫날에는 당당하게 시험지를 찍어서 카톡했던 윤슬이 수학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절반만 맞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재언의 샌드백 위로 윤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언은 고개를 흔들어 저은 후 샌드백을 쳤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안 난다, 안 난다….
‘애쓴다.’
그런 재언을 바라보는 복싱장의 형들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언이, 물 마셔.”
“네….”
커다란 손으로 건네주는 물을 한 번에 마시고 있는 재언에게 험악한 복싱장 형들은 캐묻기 시작했다.
“태언이가 그러던데, 너 요즘….”
“연애한다며.”
“큽.”
재언은 마시던 물을 뿜었다. 적당히 땀이 나 젖었던 상의가 물로 인해 축축해져 버렸다. 기침하던 재언의 등을 솥뚜껑 같은 손으로 두드리던 형들이 신이 나 캐묻기 시작했다.
“누구야?”
“얼마나 됐어. 오늘은 싸웠냐?”
그렇게 안 생겨 가지고 로맨스를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합치면 전과 24범 정도 될 것 같은 얼굴로 눈을 반짝이는 걸 본 재언은 가만히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뭐야?”
“너 그러고 있는 거 꽤 됐다고 들었는데.”
‘…태언이. 요즘 형이 안 달래준 지 오래됐지. 간만에 많이 예뻐해 주고 달래줘야지.’
남들이 보면 재언을 둘러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뺨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올라왔다.
로맨스를 잊지 않는 사나이들. 줄여서 로잊사. 서로 로맨스 소설을 읽고 추천해주는 게 취미인 복싱장 형들은 실제 로맨스에 목말라 있었다.
“몰라요.”
“뭘 몰라! 걔가 너 별로래?”
“무섭게 생긴 남자는 아니래?”
‘여기에서 내가 제일 순하게 생긴 것 같은데….’
도토리 키 재기를 하던 재언은 살짝 짜증을 섞어 말했다.
“…아무 데서나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입을 벌리고 경악한 복싱장 형들은 이내 우리가 아무냐! 우리가 남이냐고! 를 외쳤다.
* * *
“어, 형 왔어?”
복싱장에 간 것 치고는 금방 왔다 생각한 태언은 이윽고 본인의 머리를 꼭 안아주는 작은 형 때문에 잠깐 조상님을 뵙고 올 뻔했다.
“우리 막내….”
“어억, 왜 이래, 형!!!”
“…예뻐해 준 지 오래 됐지….”
뒷머리를 잡아 품에 가둔 것뿐인데도 재언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이 보면 작은형이 다정하게 안아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놔봐, 잠깐만! 아!”
“한 번만 더 그러면… 알지.”
“어. 알겠어. 억! 그만. 그만해.”
간신히 재언의 팔에서 벗어 난 태언은 머리를 굴렸다.
‘내가 어제 형 저지 입고 학교 간 거 알았나? 아니 작은형은 그런 거 신경도 안 썼는데. 복싱장 다녀와… 서….’
마주한 형의 눈빛에 짜증이 섞여 있는 걸 알아챈 태언은 조용히 꼬리 내렸다.
“아, 자꾸 캐물어서 그랬어. 자세한 얘기는 하지도 않았네요.“
아려오는 뒤통수를 쓸어 넘기며 태언은 작은형을 바라봤다.
“아무튼…. 혼난다.”
작은형은 작게 이놈, 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 * *
재언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여우 같은 놈 말이 재수 없기는 해도 틀린 건 없었으니까, 정말 죽은 듯이 해야 윤슬의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눈 아픈 프로그래밍 언어를 컴퓨터 화면 안에 가득 채운 재언은, 또 잠깐 골몰하는 사이 윤슬을 생각했다.
습관이 된 것처럼 윤슬의 연락이 오지 않은 핸드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윤슬의 톡방을 열었다.
[응응 너도 시험 화이팅!!] [안 그래도 잘 보겠지만 ㅋㅋㅋㅋ]입력: 보고싶│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제정신이 돌아온 재언은 급하게 삭제했다. 다만….
“아!!!”
커다란 손은 작은 핸드폰 자판을 섬세하게 컨트롤 할 수 없었다. [보고] 두 글자가 적힌 톡이 이미 가버린 상황이었다.
“안 돼….”
절망적으로 중얼거린 재언은 왜 이 쓰레기 같은 기업이 톡을 보낸 후 취소하기 기능을 만들지 않았는지 카카오의 개발자들을 속으로 저주했다.
‘너네가… 그러고도 개발자야?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들. 새로운 기술 개발은 안 하고. 맨날 그 곰인지 사자인지 모를 캐릭터 상품이나 내고…. 1월 1일이면 서버 다운이나 시키고.’
재언은 마음속으로 온갖 트집을 다 잡기 시작했다. 심지어 평소엔 귀엽다며 잘만 쓰던 이모티콘 캐릭터마저 원망스러워 보였다. 윤슬과의 대화 중간에 껴있는 카카오의 이모티콘까지. ‘잘하고 와’ 글자가 있는 대표 캐릭터가 엄지를 치켜올린 이모티콘은 재언이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귀여운 엄지 척 캐릭터 아래에는 방금 재언이 보낸 톡이 있었다.
[보고]후에 카카오에서 보낸 톡을 삭제하기 기능이 떴다는 기사가 올라간 날. 재언은 이때를 생각했다. 단 두 글자로 머리를 잡고 전전긍긍하던 자신을.
옆에 1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니 윤슬이 아직 읽지 않았다. 삭제되지 않는 화면을 보며 재언은 눈물을 삼켰다.
* * *
삑-
‘38.6℃.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네.’
무심하게 백휘는 체온계를 껐다. 어제 비를 좀 오래 맞아서 그런가. 열이 나고 있었다.
근처 여고와의 시험 기간과 겹치지 않기 위해 백휘가 다니는 경하고는 덕현여고의 시험 기간과 맞물리듯 비껴 있었다.
어제 윤슬을 데리러 갔던 날, 그날은 백휘의 시험 첫날이었다.
“얼굴이 왜 그러냐.”
백휘가 평소와 다르게 새벽 운동을 하지 않자 의아하게 여긴 백휘의 조부는 소파에서 말을 걸었다. 읽던 신문에서는 눈을 떼지 않고.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대….’
백휘는 교복 넥타이를 다시 한번 가다듬은 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별일 아니에요.”
“오냐, 시험 점수 유지하고.”
아침부터 괜히 정치인과 신경전을 벌이니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똑같이 비 오는 날인데 어제보다 오늘 하늘이 더 어두워 보였다.
학교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재겸이 말을 걸었다.
“야, 배키 너 어제…. 뭐야, 얼굴 빨개. 어디 아파?”
‘아, 맞다. 어제 아프다고 한 다음에 도망갔지.’
백휘는 그래도 완전히 마이너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걸로 귀찮은 면담은 피할 수 있게 됐으니 나쁘지만은 않다고. 백휘는 자리에서 가만히 웃었다.
“미친놈. 이마 끓는 거 봐.”
“아프다고 했잖아. 선생님한테는 잘 좀 말해줘. 나 연약한 거 하루 이틀 아니라고 해.”
실없이 웃으며 백휘는 다시 창문을 바라봤다.
운동장에 핀 벚나무가 제법 져 있었다. 어제 내린 소나기 때문이었다.
“자, 시험지 뒤로 돌려라.”
손에 익은 시험지의 거친 질감을 느끼며 백휘는 또다시 윤슬을 생각했다.
‘혹시라도 감기 걸린 건 아니겠지. 어제 날이 추운데 그렇게 오래 밖에서 울어놓고….’
38.6 ℃. 백휘는 온몸이 끓고 있었다. 그런데도 멍한 머리로 계속 걱정했다. 윤슬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 * *
백휘 앞에서 한바탕 울어 버린 윤슬은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며 차분히 생각했다.
위이이잉-
축축이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밖의 빗물 소리는 어느새 드라이기 소리에 섞여 들리지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지.’
아까는 그냥 좀 힘들어서 그랬다며 부은 눈을 매만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넘어가 준 백휘가 고마웠다.
‘이제 다시 정신 차리자. 이딴 걸로 서윤슬 안 죽는다.’
후. 윤슬은 기합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상태창을 켰다.
‘남은 아이템 포인트….’
「현재 포인트: 10P」
포인트를 모으는 것 없이 쓰기만 해서 바닥이 났다.
「▼상세 설명▼
거기 동작 그만! (사용 시간 1시간)
: 상대방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포션. 어떤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밝혀내는 것은 당신의 몫. 대부분의 거짓은 진실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법.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는 까만색 X표가 생겨난다.」
아까 샤워를 하면서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마이크 테스트 아이템이 박키스 10배 가까이 되는 포인트였으니 비슷할 것이었다. 지금 가진 포인트로는 어림도 없을 거였다.
‘아이템을 쓰지 않고, 어떻게 잡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윤슬은 기껏 준비한 덫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화가 났다.
곰곰이 뭔가에 몰두하던 윤슬은 작게 인상을 썼다.
지잉-
[보고]“…어?”
재언이었다. 윤슬은 미리보기로 글자를 읽고 잠깐 생각했다.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