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02)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02화(402/405)
“헉헉헉. 하경이 너… 헉…. 였어? 카페IN마이너갤러리 완장이?”
“…네. 비밀로 해서 죄송해요.”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주현 언니였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윤슬 언니와 많이 친해 보이지 않아 조금 고민했지만-.
“나야. 고닉 ‘물만두윤슬’.”
“…언니가?”
하경이 움짤을 담당했다면 고정닉네임 ‘물만두윤슬’은 캡처를 담당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동지애가 드러났다. IP223.62 라는 숫자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이나연한테 매번 그만 나대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좀 그러고 싶어서…. 서윤슬 사진 초창기 때부터 찍어준 건 나였거든.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하경아, 이건 죽을 때까지 우리만의 비밀이다.”
“네! 언니…!”
역시 덕현여고 방송부는 명문이었다.
“윤슬이 과거 사진은 나한테 다 있지!!! 우리 그런 거 할까? 그 어린시절 앨범 편지 있잖아!”
뒤이어 나연이 왔고.
“잘 찾아왔어. 이쪽 전문가를 알아.”
비장해 보이는 예원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곧 다른 선배들을 불러왔다.
“박소희 이 분야 찐이었지.”
“이거 때문에 재수한 애야. 걔가.”
“X발…. 사랑했는데….”
침울한 표정의 소희가 물었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레터링 케이크? 꽃다발? 도시락?”
하경은 이미 정해둔 것이 있었다.
“지하철 광고요…! 최대한 많이요! 특히 한강 근처에!”
* * *
그렇지만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예약이 이미 꽉 차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연말이었다. 모든 광고 일정이 들어차 있다는 안내를 받고 시무룩해진 때였다. 서은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야, 너네 그 돈 많은 언니는 번호 없어? 연락해보자. 서윤슬 일이면 모르잖아. 나서 줄지.”
“누구요? 돈 많은 언니?”
“라모레 임원.”
그렇게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아! 왜 내가 이렇게 동네 공용 지갑이 된 거지!!!”
“…윤슬 언니가 그랬는데요. 원래 언니는 동생 챙겨주고, 동생은 또 나중에 언니 되면…. 챙겨주는 거랬어요.”
언니라는 말에 다이아수저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지갑이 자동으로 열렸다. 자본주의 세상 앞에서 잡아 놓은 스케줄은 쉽게도 무산되었다.
“스케일이 생각보다 좀 작은데….”
“하하. 그러게. 좀 더 키워보죠.”
“하경아~ 삥을 뜯으려면 좀 더 크게 뜯자. 어? 우리 자기가 안 가르쳐줬어? 오빠가 삥 뜯기 전문인데 와서 상담이라도 한번 했어야지.”
그리고 다이아수저의 연락에 세 사람이 더해졌다. 몇백 명에게 모금한 돈보다 더 큰 금액이 추가되었다. 이제 지하철 광고를 넘어 옥외 광고까지 하나둘 늘어났다.
“권재언 뭐하냐? 지금 시안을 고르는 이 중요한 때에. 단톡방 뭐야 안 꺼? 하경아 가서 저 오빠 한 대 때려.”
“…연락할 데가 좀 있어서.”
“음, 거기 중요하지.”
[그룹채팅] (참여자 5)장매란,서윤슬이네아빠서충남,이정혜,권재언,최백휘 님
입력: (사진) (사진) (사진)
입력: 이중에 뭐가 가장 마음에 드세요?
입력: (고민하는 바보멈 이모티콘)
[서윤슬이네아빠서충남:보이스톡해요] [장매란:저ㄴ.화] [이정혜:어머머머 이게뭐니~^^ 우리도 끼워줘~~~]서서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슬을 향한 사랑이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 * *
“내가 너 사진 고르고 고른 거야! 이거 기억나? 우리 방송부 때.”
“이거 봄까지 계속 있을 거야, 슬아! 우리 와서 사진 찍자~”
“윤슬 씨….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그때 윤슬 씨 아니었으면.”
옥수역에는 나연이와 주현이, 편집자 언니가.
“우리 잊은 거 아니지!!!”
“프리~~~뉴!!!”
“이제 같은 사무실 이웃 아니라 아쉽지만! 우리도 곧 한강뷰 갑니다!!!”
합정역에는 프리뉴가.
“어딜 나간다고 그러세요! 인생필름 나간 것도 뼈아픈 손실이거든요? 윤슬 씨, 제발 다시 돌아와 주세요. 사무실 대여비 안 받을게요!”
당산역에는 유신사 담당자 마린이.
“야, 서윤슬! 나도 너만큼 열심히 할 거야. 스튜어디스 한 번에 합격해준다!”
“재수해놓고 할 말은 아닌데. 고등학교 때 너랑 같이 시험 공부하는 게 제일 좋았어.”
“난 나중에 둘이 있을 때 말할게.”
“이예원 친분과시 뭐야~!”
공항철도역에는 덕현여고 친구들이.
“슬이~ 잘 보이나?”
“언니…!!! 사랑해요!!!”
“그, 문구는 사람들이 투표로 골랐어요. 잘은 모르지만 카페인 갤러리? 래요. 근데 언니 사진도 엄청 많고요. 좋은 데니까 나중에 꼭 들어가 보세요.”
마곡나루역에는 방송부 후배들이.
“허허허. 이거 실물보다 못해서는 원.”
“저도 동의합니다. 실물 크기 입간판도 함께하자고 했지만 도난의 우려가 있어….”
“슬아! 언니 한국 들어왔어~. 들어오자마자 여기 온 거야!”
“미리 하는 대상 파티 같고. 나쁘지 않네요.”
뚝섬유원지역에는 카페인 식구들이.
“윤슬씨오랜만입니다아까부터제가가장먼저입을열고싶었는데요. 저희의오랜우정에대해이야기하고.”
“좀 조용히 하세요!!!”
“윤슬 씨! 엘더아머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용산역에는 엘더아머.
“안녕하세요, 윤슬 씨. 전 짧게 말할게요. 이번 트로피는 초콜릿이 아니고 진짜겠네요. 미리 축하해요.”
강변역에는 하진이.
“야!!! 너 기억나? 생방송에 진짜 바보 같은 플랜카드 들고 왔던 날!!! 나 그때 사실 되게 떨리고 긴장했었는데 너네 보고 그런 거 다 잊었잖아! 그때 나도 꼭 한번은 이런 거 해주고 싶었어!”
잠실나루역에는 유리가.
“대장!!! 아!!! 그동안 진짜 말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이거 기억나? 한국대 홍보대사 사진 찍을 때 우리가 찍은 거! 이제 과탑 아니고 한국대 탑이다!”
“하지만 이번 기말 바빴으니 모르는 일이지. 이번에야말로 내가 과탑이….”
“형범이 입 막아!!!”
동작역에는 동기들이.
“…슬아, 큼. 내 새끼.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그리고 압구정에는….
“내가…. 너를 여기 다시 데려오고 싶었어. 근데 우리딸…래미가, 아빠보다 나아서. 아빠를 여기에. 큽. 아빠가 더 열심히 할 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는 항상…. 크흠. 사랑…. 보고싶….”
“여보, 지금 왜 울어? 누가 보면 애 어디 멀리 가는 줄 알아! 주책이야. 어머? 어머니도 우세요?”
“어린 것이 내내 밤새던 때가 떠올라서. 그만….”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나도 점점 눈이 뜨거워졌다.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이쪽이지? 해외 팀 나오세요! 진짜 역시 나야!!! 주변 반응 보여요?”
라모레가 진출한 일본의 오모테산도에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전광판에 모두 내가 나오고 있었다.
거리의 새하얀 일루미네이션과 함께 어우러져 한눈에 보기에도 근사했다.
“그, 안녕하세요. 윤슬 씨. 저희가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빠질 수가 없어서요. 윤슬 씨 아니었으면 해외 진출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고.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새 노픽션과 사이다 샵은 LA를 비롯해 23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홍콩에 가 있는 노픽션 대표는 외관에 걸린 내 얼굴을 보여주며 노픽션 한국 매장에도 내 얼굴이 걸려 있을 거라 설명했다.
“안녕! 인사해요. 이쪽은 내 비서 수잔!”
“다음에는 꼭 만나 뵙고 싶어요. 제 딸도 Yoonseul Ribbon을 매일 한답니다.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인플루언서가 되겠다고 매일 마법 주문처럼 외운다니까요. 언제 한 번 LA에 온다면 시간 좀 내줄래요?”
LA에 있는 사이다 샵 대표는 카메라를 들어 한 바퀴 돌았다. 틴톡 어워드 때 정신이 나가 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LA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전광판에서 웃고 있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잘 해왔다고.
그동안 정말 잘 해왔다고.
“어? 뭐야!!! 연출 미쳤다. 자기야 하늘 봐봐!!!”
그리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었다.
* * *
기분 좋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12월의 어느 밤. 열두 시가 지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환하게 빛나는 윤슬의 전광판은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두기에 충분했다.
“어? 서윤슬이다.”
찰칵-!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 둘 윤슬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백룡 어워드 서윤슬 대상 안 주잖아? 어떻게 될 것 같냐.”
“뭘 어떻게 돼. 불 지르지…. 지금 백룡이 미쳤다고 서윤슬 안 주겠음?”
“백퍼 뒤에서 뭐 있었다고 사람들 난리날걸.”
한강이 보이는 역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슬의 광고판은 여기저기 이미 점령을 마친 후였다. 홍대역, 시청역, 강남역, 잠실역, 삼성역, 교대역….
수없이 많은 인증 사진들이 올라왔다.
“내 친구 지금 명동인데 거기 중국인들이 서윤슬 전광판 앞에서 사진 찍어간다는데?”
“야, 지금 강남역 있잖아. 라모레 퍼스널 컬러 매장. 거기 서윤슬 입간판도 생겼대.”
“스케일 돌았다…. 앵간한 연예인보다 서윤슬이 더 많네.”
저마다 윤슬에 대해 한 마디씩 떠들어대며 잠들지 않는 밤의 거리는 신나는 캐럴과 따뜻한 불빛, 그리고 윤슬로 물들었다.
* * *
―세잔뮤의 대표이자 재연재단을 운영하는 하철인의 딸, 하제인 씨의 자택에는….
택시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조절하다 갑작스런 손님의 요구에 당황했다.
“…잠깐만요. 세워 주세요.”
“네? 그, 공항까지는 한참 남았고… 여기는 강 한복판인데요?”
“상관없어요. 여기까지만요.”
머뭇거리던 택시는 갓길에 손님을 내리고 다시 떠났다. 어두운 길에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졌다.
“서윤슬….”
제인은 조용히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보았다. 지난 몇 년간 자신이 가장 많이 말했던 이름이었다. 윤슬은 어두운 강 건너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매섭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지만 제인은 그 자리에 한참 서서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가 오히려 좋았다. 정신이 깨는 것 같았다.
“…….”
카메라에 담긴 윤슬은 좋아 보였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초라하고 볼품없어야 할 건 자신이 아닌 윤슬인데도. 윤슬은 항상 저렇게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은.
“모르겠다.”
어떻게 웃었지? 카메라에 잘 나오게?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일 수 있게? 팔로워가 늘 수 있게? 몸값이 오를 수 있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진짜 웃을 수 있는 건지.
제인은 떨리는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하하.”
그리고는 진심으로 웃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갖은 범죄 다 저지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사랑받아. 너라고 못할 거 있니?”
자신도 저랬을까. 저렇게 뻔뻔하고 절박하고 추했나. 엄마를 떠올리던 제인은 이제 다 끝내고 싶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도 저렇게. 윤슬처럼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나의 좋아요에, 하나의 팔로워에, 하나의 댓글에 늘 윤슬을 누르고 싶어 아등바등하던 그 마음을 버리면.
“이제 됐다.”
덮고 도망가고 또다시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초조해하며 가끔 싸구려 승리감에 취하는 일에는 이제 질렸다.
“할 만큼 했어.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정말로 받고 싶어 했던 종류의 사랑은 어쩌면 끝까지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걸.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 딸. 잘해! 니 위치에 맞게 일등석이야.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알았지!”
엄마의 말대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을 안 해. 끝까지.”
제인은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저기서 커다랗게 빛나는 윤슬을 등지고. 다리 끝까지 걸어가는 걸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제인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새하얀 마스크가 바람에 실려 저리로 날아갔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세잔뮤의 대표이자 재연재단 하철인의 장녀 하제인 양이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와 증거품으로 핸드폰을 제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