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1화(41/405)
재언의 톡을 보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
요즘 조은주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이틀 동안 정신이 더 없었다. 핑계 같지만 예상 시험 몇 점인지 애들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 아예 답을 안 맞춰 봤으니까….
“보고를 해라 이건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을까. 그래도 좀 괜찮게 보긴 한 것 같은데.
영어는 몰라도 수학이라면 또 자신이 사라지는 윤슬이었다. 두 개 틀린 영어에 비해 꽤 틀린 수학 시험지는 굳이 찍어서 보내지 않았다.
“재언아. 좀 봐줘. 누나 힘들다….”
윤슬은 핸드폰을 쥐고 잠깐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읽음 표시가 뜨도록 확인했다.
입력: 재언아..│
* * *
[재언아 시험은 잘 봤니 내 공부를 봐주다가 혹시라도 전교일등인 너의 성적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나도 너네가 신경을 써준 만큼 자랑스러운 점수를 보고 하고싶… 더보기 ] [이모티콘]머리를 쥐어뜯다가 다시 집중하고 노트북으로 프로그램을 손보고 있던 재언은 진동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
다행이었다. 본인의 마음을 윤슬은 두 글자로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웬 구구절절한 반성문이 쓰여 있었다.
평소보다는 잘 본 것 같다. 점수는 나오면 말해 주겠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모티콘]아까는 원망스러워 보였던 사자 이모티콘도. 윤슬이 보내온 사자 이모티콘은 똑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윤슬이는 긴장하면 큰아버지 같은 문체를 쓰는구나. 이름 안 보고 확인했다가 우리 큰아버지가 연락 온 줄 알았네….’
[재언아 요즘 잘 지내니 늘 큰아버지가 너를. 위해 응원하고있다] [이모티콘](화사한 진달래꽃에 궁서체로 ‘우리가족 화이팅..^^’ 이라고 쓰여 있다)
큭큭. 재언은 낮게 그르렁대듯 웃었다. 다시 열심히 해야지.
자판을 만지는 재언의 손끝이 조금 수줍어진 것도 같았다. 자판을 누를 때마다 분홍색 감정이 묻어나는 것 같은 저녁이었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 * *
“안녕~”
평소보다 더 찰떡지수가 높은 것들로 신경 쓴 윤슬은 오늘따라 좋아 보였다. 남은 포인트로는 예쁜 게 죄야 포션을 하나 썼다.
「▼상세 설명▼
예쁜 게 죄야 (사용 시간 24시간)
: 최대한으로 컨디션을 올려주는 포션. 부기를 빼주고 피부 상태 최대치가 된다. 미묘하게 예뻐진 느낌으로 매력 스탯이 단기간에 +10~25% (확률 랜덤)으로 늘어난다.」
“어제 잘 들어갔어…?”
시험이 끝나 원래대로 돌아온 반의 대형이 익숙했다. 털썩 자리에 앉자 옆자리에서 소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어. 하루 자고 나니까 쌩쌩한데?”
환하게 웃는 윤슬의 얼굴이 오늘따라 하얗고 맑았다. 소희는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윤슬이 그렇다기에 더 캐묻지 않았다.
“윤슬잉~~~”
가영도 쪼르르 달려왔다. 오늘 뭐야? 왜 이렇게 예뻐? 조잘대며 칭찬하는 가영은 오늘도 윤슬이의 어깨를 쥐고 탈탈 털었다. 쳐져 있던 윤슬을 웃게 하려는 가영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맞아 오늘 윤슬이 어디 가?”
“예쁘다~. 니트 새로 산 거야?”
시험이 끝나 반의 분위기는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윤슬과 친분을 다져 놓은 아이들은 이제 아무 용건 없이도 먼저 말을 걸었다.
“응, 오늘 놀러 가려고.”
피부 톤에 맞는 연보라색 니트를 셔츠와 함께 입은 윤슬은 정말이지 한 번씩 눈길이 갈 정도로 청순한 분위기가 들었다.
‘저건 어디 거지…?’
은주는 당연히 윤슬의 니트가 궁금했다. 그래도 지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은주의 심장이 크게 쿵쾅거렸다.
자기가 한 짓들을 윤슬이 눈치챌까 무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건을 아무리 훔쳐 가도 알아채지 못한 듯한 모습이 부럽고 얄미웠다.
‘나는 이거 몇 개 사기도 힘든데….’
일반적인 고등학생은 새로 나온 틴트를 컬러별로 사기에도 손이 떨렸지만, 윤슬은 그런 일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거 발라 봐.”
자기와 친한, 같은 무리의 민경에게 아무렇지 않게 턱턱 새로 나온 화장품들을 빌려줄 때면 은주는 정말이지 윤슬이 되고 싶었다.
“이거 발라 봐.”
“대박. 은주야 새로 산 거야?”
“아니. 협찬받은 거야.”
그런 말을 하는 건, 자신이 되고 싶었다.
윤슬을 따라 산 반지를 강박적으로 매만졌다. 은주의 검지에 끼워진 장미 넝쿨 반지는 나연과 윤슬이 함께 맞춘 그 반지였다.
* * *
‘저건 판 적 없는데. 내꺼 맞네.’
윤슬은 아이템 찰떡지수창을 켜서 은주를 샅샅이 체크했다.
‘지금 입술에 바르고 있는 저거, 머리 좋네. 케이스만 바꿔서 학교에서 쓰고 있었단 말이지.’
은주가 꽤 많은 물건을 윤슬에게서부터 사들여 찰떡지수창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확실히 대조해 보니 답이 드러나고 있었다.
‘많이도 가져갔다….’
어느새 윤슬 모르게 꽤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CCTV 넣어 놓기 전까지만 훔쳐 갔네, 딱.’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딱 시험 첫날. 그때만 훔치고 끝내버린 은주의 꼬리를 언제 잡을까 윤슬은 밤새 고민했다.
은주의 머리 위 호감도는 알람을 끈 사이 오히려 더 높아져 있었다. 윤슬은 살짝 소름이 돋는 팔을 문질렀다.
정답은 나와 있다. 가영이의 말대로 한 번만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열 번 되는 것이다.
부러운 마음에 부채질만 해준다면, 덫 안에 있는 치즈를 조금 더 크고 탐스러운 걸로 바꾼다면. 지갑 뒤에도 또다시 은주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띈다면.
‘반드시 잡힌다.’
윤슬은 잠복근무하는 베테랑 형사 같은 눈을 했다. ‘괜찮아질 거야’ 소원석을 쓴 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때마다 그 소원석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괜찮아질 거야. 많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뿐이야.’
윤슬은 소원석에 떠올랐던 문구를 떠올리며 눈을 감아 마음을 다시 차분하게 만들었다.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 * *
“윤슬~. 블러셔 뭐야. 대체 뭘 바른 거야~?”
주현이 윤슬을 간지럽히며 말했다.
“너무 예쁜데 오늘~”
“나 원래 예뻐.”
“조금 재수… 없는 편이네?”
“헐, 주현 재수 있는 편? 강남 대석 가서 재수할 거야?”
“미쳤어? 시험 끝나자마자 재수 얘기를….”
실없이 장난을 치는 윤슬은 오늘의 약속을 주현과 잡아놓은 상태였다. 마침 시험이 끝났고 보상 포인트는 거지가 됐다. 윤슬은 이번 주, 쥐가 덫을 찾아오기 전까지 아이템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포인트를 쌓아 둘 생각이었다.
‘사진 하루에 천 장 넘게 찍고, 집에 가서 보정한 다음…. 그리고 SNS 업로드를 자주 해서 팔로우를 모으고, 그러면 되겠지.’
그동안 쌓아 놓은 보상 포인트를 박키스로 다 써 버렸던 윤슬은 다시 히든 보상으로 포인트를 얻을 생각이었다.
은근히 노력하는 대로 다 알아주는 상태창을 생각하며 도박을 시작하기로 했다.
잠은 죽어서 자자.
* * *
“…어. 뭐지.”
“왜, 뭐가.”
노트북을 마주 대고 카페에서 백휘와 함께 어플 작업을 하던 재언이 잠깐 고개를 까딱였다.
‘왠지 불길한 뭔가가 있는 거 같기도 한데. 누군가 우리 말고 잠을 죽어서 자자고 생각하는 것 같은…. 아니겠지.’
그런 재언을 보며 백휘는 ‘버그?’ 무심하게 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음. 백휘는 가볍게 대꾸하고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듯 집중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백휘는 재언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어디로?
“일단 노트북 가지고. 주소 찍어주는 데로.”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가채점을 해봤을 때 대충 전체 과목에서 세 개 정도 틀린 백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재언을 만나러 왔다.
“날씨 좋네….”
학교가 더 일찍 끝나 재언의 학교 근처로 가는 백휘는 동호대교를 가로지르며 이런 날씨에 재언과 단둘이 있다니. 조금 슬퍼졌다.
‘윤슬이는 한강 좋아할까…. 이제 곧 한강에 놀러 가기에 제일 좋은 날씨인데. 대충 어플이 마무리되면 다음 달에 가보자고 해야겠다.’
백휘는 햇빛에 부딪혀 반짝이는 강물을 보며 윤슬을 대학보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 * *
“이거, 이 페이지 컬러 변경.”
“…어디.”
디자인을 옅은 그레이색으로 색감을 맞춘 재언은 백휘의 손을 따라 포인트 컬러를 연핑크로 바꿨다.
“그리고 또….”
백휘는 단정하게 쭉 뻗은 손가락을 이동해 다시 화면 어딘가를 가리켰다.
재언의 눈엔 뭐가 그렇게 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UI가 깔끔하기만 하면 됐지 로고부터 색깔까지 세심한 포인트를 잡는 백휘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이거 수정하자.”
“응.”
“이것도 채도 낮추고.”
“이거는… 따로 변경 안 한다?”
백휘 손 근처로 어딘가를 집은 재언은, 잠깐 마주 닿은 백휘의 손의 온도가 뜨거움을 느꼈다.
“야.”
“음?”
“…아프지. 너.”
아프냐, 묻는 것도 아니었다. 재언은 확실하게 백휘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먼저 들어가라…. 어차피 수정하는 데 시간 좀 걸리니까.”
“됐어. 안 죽어.”
“너 그러다가 이승탈출 넘버원 나온다.”
‘눈치 빠른 새끼. 어떻게 알았지. 티 하나도 안 냈는데.’
37.8℃. 오늘은 훨씬 열이 떨어진 상태였다. 얼굴이 빨갛지도 않았다. 잠깐 손이 스친 걸로 재언은 눈치챈 것이다.
“시간 없어. 그냥 해.”
“…고집은.”
둘은 다시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깔끔한 미적 감각이 있는 백휘는 디자인을 변경하길 말했고, 재언이 코드를 만지는 사이 필터, 넘버, 각각 다 어울리는 보정 값을 설정했다.
“좀 따뜻한데 하얗고. 조금 뿌연 느낌이어도 괜찮아. 오래된 느낌이고 싶으니까.”
“어플 첫 번째는 핑크색이 주가 됐으면 좋겠어. 핑크랑 블루. 둘 다 인물 사진으로 썼을 때 화사한 느낌이잖아.”
모든 건 강아지 대장의 분부대로.
벚꽃잎이 떨어진 거리도 분홍색이었다. 둘은 착실히 자판을 두드렸다. 타닥타닥. 심장이 뛰는 소리에 맞춰서. 제법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