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3화(43/405)
“니 얘기 별로 안 듣고 싶고. 부담스럽게 굴어서 피한 나랑 물건 훔친 너랑.”
“…….”
“아니 뭔. 쌤쌤인 척 치려고 해도 어이가 없어서.”
이제 어느 정도 다 울었는지 은주는 가쁜 호흡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딴 거, 다 돌려주면 되잖아…. 누굴 거지 취급해.”
중얼거리는 은주를 이젠 그냥 눈 딱 감고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린 애를 상대로 이렇게 진심으로 화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모르는 척해주려 했지만 저렇게 반성도 안 하는 애를 보고 있자니 화가 끓어올랐다.
“뭘 돌려줘, 잘라서 다른 통에 몰래 넣은 립스틱?”
어떻게 알았냐는 듯 은주의 눈이 흔들렸다.
“케이스만 갈아 끼운 내 팩트?”
“…….”
“아니면 오래전에 산 척하려고 케이스 아세톤으로 문지른 틴트?”
“…….”
점점 말이 없어진다.
언니 올리브일 알바할 때 너같이 물건 훔치는 애들이 한 둘이었을까. 다 보인단다….
“내일 지갑, 알아서 내 사물함 안에 넣어 놔. 여는 법 잘 알지? 그동안 자주 열어봤잖아.”
띠링-!!!
「♥호감도: -200(-130↓)/999」
「[스킬: 영원히 함께해 (S)]
※ 스킬 실패 시, 목표물을 향한 호감도가 –200 이하으로 변경됩니다.
※ 주의: 호감도가 떨어진 다음은 돌발 이벤트가 생성될 수 있으니 명심하세요!」
은주를 뒤로 하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아까 맞은 뺨에 작게 생채기가 난 것 같다.
반지를 끼고 뺨을 치는 게 어디 있냐. 얇은 실반지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저딴 거 하나도 안 무섭다.’
진짜 무서운 건 올리브일에 환불하러 오는 사람들이지 올리브일에서 물건 훔치는 학생이 아니었다.
윤슬은 아여하세여어~. 오리브일민니다~. 찾으시는 상품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대충대충 자동응답기처럼 말하던 때를 떠올렸다.
“아, 당 떨어져….”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케이크나 하나 먹고 들어가야겠다.
슬쩍 쓸어본 뺨은 조금 부어 있었다.
* * *
‘도착해서 바로 지갑 있는지부터 봐야지.’
오랜만에 윤슬은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결국 돌려받을 수 있으면 됐다.
날씨가 좋아 핸드폰 대신 길거리를 보면서 걸었다. 학교로 가는 돌담길. 언제 봐도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는 등굣길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래. 가끔은 SNS도 상태창도 잊고 살아야지….’
“윤슬아, 이거 봤어?”
학교에 가자마자 윤슬의 마음이 빠르게 바뀌었다.
아. 잊지 말았어야 했다. 핸드폰을 보면서 왔어야 했는데.
[Acebook]▶덕현여고 대신 전해주세요 페이지
1학년 ㅅㅇㅅ 같은 반 애한테 물건 도둑맞아서 어제 둘이 얘기하는 거 봤는데.. 계속 훔쳐간 거 같더라구요..ㅠㅠ 도둑질한 애가 오히려 뺨도 때리던데; ㅅㅇㅅ 같은 반 학생들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익명이요!
댓글: 268개
‘…일 났다.’
학교 페이지에 댓글이 200개가 넘는다는 건, 이미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이 사건을 다 봤다는 말이 된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으니까.
“아… 일단 페이지에 내려달라고 메시지는 보냈는데….”
“언제쯤?”
“음. 아침에 봤으니까…. 지금 한 이십 분 됐어.”
“…저거 아침에 올라온 거 맞지.”
“응. 그래도 네가 당사자니까, 따로 메시지 보내봐 윤슬아. 그럼 바로 내려줄지도 몰라.”
소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윤슬을 바라봤다.
“윤슬아, 괜찮아?”
“근데 도둑 누구야…?”
“야. 윤슬이 지금 왔잖아.”
“아니, 우리도 당할지 모르잖아. 같은 반이라며.”
주변을 둘러싼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몇몇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았다.
드륵-
“윤슬이. 선생님 좀 보자.”
담임 선생님이었다. 윤슬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누구인지는 말 안 할래. 너네도 너무 묻지는 말아주라.”
이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왔지만, 분명 다들 핸드폰으로 이미 누구인지 추측하고 있을 것이었다. 적어도 반 안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편하게 앉아. 1교시는 일단 들어가지 말고.”
“…네.”
선생님이 종이컵에 건네주시는 뜨거운 녹차를 일단 마시지는 않고 손으로만 들고 있었다. 따뜻해지니까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교무실 안쪽 자그마한 상담실이었다. 차가운 가죽 소파의 촉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공간 안에 담임 선생님과 나, 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에이스북 페이지를 봤는데. 그 글이 사실이니?”
“…네.”
“훔쳐 간 친구는, 후…. 누구야.”
“…조은주요.”
담임 선생님은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직 조은주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일어나자마자 글을 봤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단결석을 할지도 모른다.
“없어진 물건은. 몇 개나 되고.”
“…….”
“윤슬아. 덮어주면 안 돼. 일 커질 수도 있어.”
담임 선생님은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윤슬은 침묵을 유지했다.
4월, 벚꽃 잎이 떨어진 시기. 곧 학교폭력 교육 시즌이었다. 덕현여고는 위클래스 상담 중 학교폭력에 관한 건이 0건으로 몇 년째 유지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로 서울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기록을 깨고 싶지 않은 건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사건이 나중에 터지기라도 한다면. 윤슬이 나중에 마음을 바꿔 신고라도 하게 된다면, 교육청에 이야기를 한다면.
올해 학교는 난리가 날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런 것들을 막고 싶어 했다.
…그 안에 윤슬의 마음을 헤아리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 * *
“윤슬아, 담임이 뭐래?”
“괜찮아~? 슬….”
반으로 들어오자마자 온갖 관심이 바로 쏠리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니 대충 조은주로 범인을 다 정해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긴 한데.’
그때 가영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야, 어제 조은주가 너 때린 거 진짜야?”
“아….”
어제 엄마랑 할머니 앞에서도 안 들키려고 일부러 저녁은 밖에서 먹고 피곤하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가벼운 생채기도 바로 알아보는 가영의 눈썰미는 피할 수 없었다.
“이거 봐. 뭐 긁힌 자국…. 미쳤네?”
평소 늘 웃던 가영이 정색하고 내 얼굴을 매만지자 교실에서 웅성대는 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조은주 학교 언제 와?”
“쪽팔려서 못 오나 보지….”
“야, 옆 반 지갑 도둑도 걔 아니야?”
“헐…. 그러고 보니까 옆 반에서도 지갑 털리지 않았어?”
“지갑 담당 도둑이네 조은주!”
은주의 무리 아이들이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은주의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자니 이제 일을 되돌릴 수 없음을 확실히 알았다. 옆 반에서 일어났던 지갑 도난 사건까지 범인을 은주로 확정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핸드폰 자판을 빠르게 누르는 아이들도 몇 있었다.
‘옆 반 애들한테 말하나 보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나는 옆 반 지갑 도둑까지 은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말릴 기분이 아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드륵-
“자, 수업 시작한다! 자리에~”
앞문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온 선생님은 곧 어수선한 반 분위기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놈들, 시험 끝났다고 정신 안 차리지~”
교실 안은 선생님이 칠판에 분필을 딱딱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희는 말없이 옆으로 마잉쭈를 쓱 내밀었다.
“윤슬이. 집 가기 전에 선생님 좀 다시-”
‘오늘 몇 번이나 보는 거냐….’
나는 수업이 끝나고 기다리겠다는 서은이를 먼저 집에 보내고 교무실에 갔다.
드디어 조은주와 연락이 닿았는지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일, 어머니 모시고 와라.”
“…네?”
이게 말이 되는. 조은주 어머니만 학교에 오면 모를까, 왜 우리 엄마를?
“은주네 어머니가…. 큼. 일단 사건 경위를 알아봐야겠다면서 학폭위 신청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학폭위? 지금, 학폭위라고 했어?
학교 폭력 위원회.
갑작스럽게 내일 덕현여고에서 열리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학교폭력 예방 시즌이 오기 전에 얼른 이 일을 부드럽게 무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 *
사악- 사악-
매란은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한옥 앞마당 빗질을 했다. 단순 노동을 하면서 명상을 하는 것이 그녀의 오랜 취미였으니까.
‘요즘 우리 강아지가 힘이 없는데…. 무슨 일일꼬.’
움직이는 빗질에 벚꽃 잎이 가득 넘쳐났다. 힘이 없는 강아지. 시험도 끝났는데 맛있는 것 멕이면 좀 괜찮을까.
매란은 윤슬이 좋아할 가게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끼익-
눈에 졸음을 달고 마루로 나온 슬의 엄마, 정혜는 오늘도 빗질을 하는 매란의 옆에서 차분히 마루를 닦았다.
“거, 먼지 안 쌓였대도.”
“그래도요…. 혼자서는 심심하잖아요. 이렇게 말동무도 하고 얼마나 좋나요.”
말하는 애교스러운 정혜의 목소리에 어딘가 힘이 없었다.
‘쯧, 강아지들이 쌍으로…. 말하기 전에 물어보면 안 되려나, 난 진짜 가족도 아니니 불편하겠지….’
살짝 정혜의 얼굴을 본 매란은 빗질을 하는 손에 힘이 빠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노인이라니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며 빗질을 하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 오늘 점심은 혼자 드셔야겠어요.”
마루를 닦던 슬의 엄마는 잠깐 한숨을 쉬었다.
“우리 슬이….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있나 봐요.”
물기가 맺힌 목소리로.
* * *
오늘따라 빠르게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윤슬의 방 안. 등교 준비를 하는 윤슬에게 발걸음한 정혜는 깜짝 놀랐다.
“엄마,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어머, 슬이 너 뺨이….”
정혜는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의 뺨에 웬 생채기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저녁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는지 찹쌀떡같이 하얀 볼에 빨간 상처가 나 있었다.
“너 이게 뭐야!”
“놀라지 말라니깐. 상처가 있긴 한데, 틴트랑 섀도로 쪼끔 더 바른 것도 있어.”
손거울을 꺼내 본 윤슬이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리얼하지? 재능이 있어 내가.”
“얘가 진짜.”
등짝을 아프지 않게 때린 정혜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니까… 네 물건을 도둑맞았는데, 상대방 어머니가 학폭위를 열자고 했다고?”
“엄마도 이해가 안 가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오늘 열 시까지 오면 된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았더니. 이게 다 뭐야….’
정혜는 남편이 생각났다.
상대방 부모는 둘이 오면 어쩌지. 우리 슬이 조금이라도 서러우면 어쩌지.
“걱정하지 마. 일단 증거는 다 있고…. 그쪽이 우기면 내가 울어버릴 테니까. 선빵필승 알지 엄마? 내가 무조건 다 이겨.”
환하게 웃는 윤슬은 어딘가 묘하게.
‘믿는 구석이 있는 어른 같은데?’
정혜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딸이 얼마나 어리광쟁이인데.
* * *
매란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외출 준비를 했다.
‘이게 얼마 만인지.’
차 사고로 남편을 잃고, 그다음 비행기 사고로 아들 내외를 한꺼번에 잃었다. 매란은 꽤 오랜 시간 모든 걸 포기하고 그저 시간에 몸을 맡겨 살아갔다.
셀 수 없이 울다가 지샌 밤, 죽지 못해 살았던 밤, 그리고 이제는….
“권 비서. 외출 준비하게.”
‘오랜만에 내 학교를 가야겠어.’
그녀의 말 한마디에 권 비서는 매란 명의의 차고에서 가장 좋은 차를 몰고 왔다.
“회장님, 타시죠!”
…번쩍번쩍한 롤스루이스 고스트. 집 한 채에 달하는 가격의 수입차였다.
“그… 오랜만에 나오려니까.”
가만히 서 있는 매란을 보며, 매란의 비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회장님께서 이렇게 일을 하러 가시는 게 얼마 만인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시겠지….’
“차가 너무 오래됐네. 쯧. 강아지 스무 살 되면 오랜만에 차나 보러 갈까 했는데, 아직 한참 남아서…. 이거 원. 다음 달에 당장 가야겠어. 이런 차는 물려 줄 수도 없지. 고물이야. 고물.”
롤스루이스가 들으면 어이가 없어 울어버릴 것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출발하게.”
입꼬리에 웃음을 매단 매란이 명령했다. 차는 곧 부드럽게 나아갔다.
매란은 이제 내일을 기다리는 밤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따뜻하게 들어차는 식탁을 만날 수 있는 다음날을.
‘기다려라, 내 새끼….’
요 며칠 기운이 없던 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란 말이지.
학교폭력 없는 덕현여고에 진짜 폭력 같은 행차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롤스루이스는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