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8)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8화(48/405)
“야, 요즘 너 너무 새로운 친구랑만 노는 거 아니냐?”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백휘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는 재언에게 민준은 능숙하게 헤드록을 걸었다.
“우리랑도 좀 놀고 그래, 임마. 너 없어서 옆 반한테 축구 개 발린다. 아 죽여 버려.”
“그래서 그런가? 옆 반 반장이… 나한테 고맙다고 아이스크림 사 주던데.”
“아, 미친. 그거 다 우리한테 삥뜯어 간 거야. 넌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먹은 게 아니야.”
“…그럼?”
“우리 반의 피땀눈물을 먹은 거다. 새 남자가 그렇게 좋아? 우린 헌 남자라 이거지?”
맞아 권재언! 나쁜 남자. 새 친구가 그렇게 좋아? 우린 친구도 아니야? 사랑이 식었어! 재언과 민준의 주변을 둘러싼 반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던지며 야유를 했다.
순식간에 재언의 중고세상 비인기매물 사용감 별로 없어요. 택포 만 이천 원짜리 헌 남자가 되어 버린 1-2반 친구들은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재언은 백휘를 떠올렸다.
‘친구? 나랑 걔가? …생각해보니 같이 밥 먹은 적도 몇 번 있고.’
“윤슬아, 뭐 먹을래? 뭐가 좋아?”
“음… 까르보나라! 재언아 너는?”
“…나는.”
“여기는 고르곤졸라가 맛있어. 저기요~”
“나는…!”
“고르곤졸라 하나, 까르보나라 하나, 웰던 스테이크 둘에 샐러드 하나, 콜라 두 개. 그리고 캐모마일 한잔 부탁드립니다.”
여우 같은 놈은 윤슬의 입맛에 맞춘 메뉴 선정을 했다. 재언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았다. 윤슬은 주문을 하면서도 태블릿 PC를 들고 일을 하며 간간이 대화에 참여만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최백휘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고르곤졸라 완전 좋아~”
“…….”
“그치. 고르곤졸라 잘 먹더라.”
‘나도 고르곤졸라 말하려고 했어!’
재언은 말을 빨리하는 법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진짜 속이 터졌다. 다시 떠올려도 억울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밥만 먹지도 않았다.
‘…같이 카페는 셀 수 없이 갔고.’
“아이스 초코 두 개, 시럽 추가에… 휘핑 많이, 사이즈 업그레이드 해주세요.”
“넵, 아이스 초코 두 잔 맞으시죠?”
“…아이스 캐모마일 티도 한 잔요.”
“너네 둘이 이제 서로 취향 잘 아네~”
백휘는 단 거는 안 마시더라, 라고 말하며 휘핑크림을 한가득 떠먹은 윤슬이 해맑게 웃었었다. 작은 스푼 위로 휘핑크림을 산더미처럼 한 스푼 뜨는 솜씨가 귀여웠었다.
“그러네, 고마워. 다음엔 내가 아이스 초코 사다줄게.”
눈을 접어 웃는 백휘는 재언은 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크림을 떠먹는 윤슬을 봤다.
‘근데 친구라, 친구….’
뭐 일단 엄청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비록 재수는 많이 없어도.
하지만 재언은 불쌍한 척 민준에게 말했다.
“친구… 아니야.”
“엥? 그렇게 자주 만나서 노는데 왜?”
“…….”
재언은 짙은 눈썹을 내려뜨리며 시무룩하게, 상처받은 것처럼 가련하게 말했다.
“걔가 나 좀… 미워해.”
왜냐면 재언은 요즘 민준을 안 놀린 지 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이 실리지 않은 헤드록을 걸고 있던 민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순식간에 가해지는 힘에 목이 눌린 재언은 쿨럭, 헛기침을 했다.
“뭐?! 야, 걔가 널 왜 미워해!”
“너도 날 좀 미워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 너 같이 정 많은 놈이 어디 있다고!!!”
“살려주세요….”
자기 일처럼 어이없어하며 민준은 언성을 높였다. 점점 헤드록을 하던 팔 힘이 더 들어가 재언의 혈액순환이 강하게 방해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미백을 당해 새하얘진 재언은 민준의 팔을 두드렸다. 그 둘의 주위를 둘러싼 친구들 역시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교실 안이 떠들썩해졌다.
* * *
‘흠.’
[오늘의 운세. 사소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습관처럼 신문을 집어 구석까지 글자를 읽던 백휘는 운세 칸을 읽었다. 물론 운세 같은 거 믿지 않았지만. 자꾸 윤슬의 생일에 맞춘 운세까지 체크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윤슬의 오늘 운세는 아주 좋았다.
“사소한 오해?”
받던지, 무슨 주의씩이나… 하여간 미신으로 종이를 낭비하다니. 한심하다는 듯 내뱉고 다음 장을 넘기며 백휘는 운세를 잊었다.
[기름값 폭등.. 생계를 위협받는 국민들, 대책 없는 정부를 향한 원성]‘그래. 신문엔 이런 거만 적혀 있어야지.’
백휘의 예상과는 달리 신문의 운세는 제법 잘 맞고 있었다.
* * *
재언의 주변으로 이제 옆 반 친구들까지 몰려왔다. 민준이 더 크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티를 낸다고??!!”
“응….”
헤드록을 풀어낸 재언은 더 불쌍한 척 아예 구깃구깃 어깨를 접었다. 그래도 태평양 같은 어깨라 별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민준의 눈에 불쌍해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이상한 새끼네, 그렇게 자주 만나면 좀 알 텐데… 눈치가 없나?”
“재언아 새 남자가 널 무시해? 언제든지 돌아와. 여기 헌 남자 있잖아.”
“그래. 헌 남자 대표 민준이가 너 없어서 밤새 엉엉 울더라. 요새 후회남임.”
“과도한 날조 금지.”
“그냥 권재언 무섭게 생겨서 그러는 거 아님? 나였어도 마음의 문 닫았어.”
“맞아, 말도 많이 안 하고.”
우리도 새 학기에 뒷문 열고 들어오는 널 보면서 빵 사다 바칠 준비 하고 그랬다, 요일마다 빵 당번도 정하려고 했다며 재언의 편을 들어주던 같은 반 친구들은 어느새 본 적도 없는 백휘의 편을 들었다. 재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던 옆 반 반장까지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언은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얘들아. 왜 이래…. 나 되게 착한 애야.”
“그치, 착하지.”
“근데 생긴 건? 아빠가 된 일진 짱이야.”
아빠는 또 왜 돼…. 중얼거리는 재언은 정말 착하고 순하고, 정 많은 놈이 맞았다. 다소 험악하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짙은 눈썹을 찡그린 재언은 나지막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상처야…. 너네 같이 나쁜 애들이랑은 못 놀겠어. 그러니까 간다.”
민준이 다 놀렸으니까 됐다. 이젠 가야지.
재언은 노트북이 든 스포츠 더플백을 넓은 어깨에 걸치고 망설임 없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교실을 나섰다.
평소에는 수건과 운동화, 생수병, 그리고 딱 볼펜 하나가 있던 그 가방에 이제는 노트북과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진 개발 서적들이 들어 있었다.
‘윤슬이는 좀 잤으면 좋겠다.’
재언은 오늘도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지긋지긋한 프로그램 화면과 지긋지긋한 백휘를 만나러 갔다. 어플의 기본 토대 잡기가 거의 끝나가는 초여름이었다.
하복을 입어 허전해진 팔에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다. 거리의 나무들이 온통 푸르렀다.
* * *
엘더아머 미팅 D-day 7.
대장답게 며칠 내내 밤을 샌 윤슬은 키키 게스트의 본사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키키 게스트 사무실 내부의 창고로.
“윤슬 님, 들어온 협찬 건 중 엘더아머 제품은 여기 있어요.”
엘더아머와의 미팅이 가장 먼저 잡혔다.
아직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지 않았으니까.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엘더아머는 다른 스포츠웨어보다 입지가 좁았다.
‘시즌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잡고 싶겠지.’
얼마 안 있어 한국에서도 대형 브랜드가 될 엘더아머를 미리 만나게 된 건 가장 큰 행운이었다.
윤슬은 아직 국내에 많은 자료가 풀리지 않은 엘더아머의 정보들을 정신없이 수집했다. 그동안 외국에서는 어떤 이미지였는지, 어떤 모델을 기용했는지, 브랜드 정신은 뭔지에 대해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체크하고 또 체크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사랑스러운 키키 게스트 팀장님에게 받은 SSS급 고급 정보까지 손에 넣었다.
“근데 엘더아머는 아직 한국에서 정식 광고 안 만들지 않았어요?”
-그쵸. 런칭한 지는 좀 됐는데…. 한두 달 됐나?
“저희 어플 하단에 그럼 무슨 광고를 넣겠다는 거예요? 찾아보니까 외국에서는 이번 시즌 광고 있던데, 그거 넣나….”
-큼. 윤슬 님. 이건 진짜 비밀인데요.
‘진짜 비밀인데!’ 원래 이 말은 정말 마법이 담겨 있다. 지루하던 자리에서도 이 한마디가 자그맣게 나오면 순식간에 도파민이 돌지 않던가.
진짜 비밀인데 =진짜 재밌는 얘기
너만 알고 있어 =진짜진짜 재밌는 얘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진짜진짜 재밌는 얘기 놓치면 평생 후회함
공식을 이미 알고 있는 윤슬은 팀장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원래 엘더아머 한국 런칭할 때 진짜 크게 광고하려고 했었거든요. 배우 ㅇㅇㅇ 씨 아시죠?
“그, 입건된….”
-맞아요. 다 촬영해놓고 엎어졌었죠, 그리고 두 번 더 구했는데. 그 사람들이….
“아… 지금 전부….”
한국 런칭 하자마자 사회면에 세 번이나 날 뻔한 엘더아머의 정보를 들은 윤슬은 미안하지만 진짜 기뻤다. 지금쯤 엘더아머 대신 죄수복을 걸치고 있을 연예인들에게 사식으로 크림빵이라도 넣어주고 싶을 만큼.
‘이건 기회다!’
엘더아머 로고가 그려진 스포츠웨어를 손에 든 윤슬은 씩. 웃었다.
이런 기회 만들어 준 거, 내가 꼭 은혜 갚을게요, 팀장님. 속으로 흥얼거리며.
* * *
“집 주소?”
-응. 빨리빨리! 급해.
백휘야 지금 내가 급해서 그런데 편의점가서 기프트카드 좀 사 줄 수 있어? 핸드폰이 고장 났는데 수리비를 기프트카드로 달라네…, 같은 보이스 피싱이 아닐까 잠시 백휘는 고민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집 주소를 부르라니? 하지만 일단 윤슬의 목소리니 백휘는 순순히 대답했다.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주소를 다 부르자마자 윤슬이는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선언했다.
-지금 퀵 보냈어!
“대체 뭘…?”
시간이 아깝다는 듯 끊긴 전화를 허망하게 들고 백휘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진동이 온 핸드폰을 귀에 댄 재언 역시 집 주소가 털리고 있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그리고 전화가 끊긴 모양이었다. 한발 늦은 재언은 끊긴 전화에 대고 느리게 중얼거렸다.
“대체 뭘…?”
귀가한 둘을 맞이했던 건 커다란 상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 상자 ‘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보자면.
“이게 대체 다 뭐야?”
산처럼 쌓여 있는 엘더아머의 로고가 그려진 상자들이었다.
[아무거나 일단 뜯어서 마음에 드는 거 한번 입어봐!] [그리고 거울 셀카 보내줘~] [ppt 만들다보니까 너네가 입은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강아지가 춤추는 이모티콘)] [둘이 옷 좀 다른데 그냥 내가 어울리는 거 위주로 넣었어]윤슬은 재언과 백휘의 집으로 산더미 같은 퀵을 보낸 후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브랜드에서 어플을 확실하게 탐내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프레젠테이션이 필요한 법이다.
윤슬은 이번 프레젠테이션의 중점을 어플이 아닌 엘더아머 브랜드에 두기로 결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엘더아머가 만들어 낼 SNS에서의 트렌드로.
어플의 완성도보다는 이 어플로 엘더아머가 볼 광고 효과에 대해.
‘연예인으로 세 번 망할 뻔했으니 소비자들을 이용한 광고가 잘 먹히겠지.’
그동안 브랜드에 대해 서치해 본 결과. 외국에서 엘더아머는 화보와 파파라치 컷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 위주로 홍보가 되는 듯했다.
가끔 다른 착용샷을 찾을라치면….
[Tender] [Viktor 21]Fitness Owner
Lives in Amsterdam
(엘더아머 티를 입고 찍은 거울셀카. 은근슬쩍 팔에 힘을 줘 근육을 펌핑 시킨 듯하다.)
6피트 3. 만난다면 날 싫어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해. 날 빅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줘.
‘대부분이 이따위군. 한국에서도 이러면 안 팔리지.’
윤슬은 해외에서 밀고 있는 엘더아머의 스포츠 스타들의 성능 좋은 ‘운동복’이라는 이미지 대신 입기 무난한 일반인들의 ‘데일리 룩’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적당한 분위기만 만들어 본다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윤슬은 사람들이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에 아주 특별한 취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주류와 비주류이고 싶어 하는 주류.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왜냐면…. 진짜 비주류는 크게 돈이 안 되거든.”
돈이 안 되는 쪽은 딱히 타겟팅할 마음도 없었으므로. 한 줌도 아니고 부스러기만 한 소비자층을 노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ppt는 재언이 입을 헬스장 데일리 룩과 백휘가 입을 진짜 데일리 룩. 이렇게 두 가지를 만들 예정이었다.
윤슬은 여유롭게 시계를 바라봤다. 엘더아머 미팅까지 여유롭게 만들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며칠은 쉴 수 있겠네….”
윤슬은 몰랐다. 이 행복한 상상이 결코 현실이 될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