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4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49화(49/405)
지잉-
백휘에게서 온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윤슬은 안구건조증이 순식간에 완화됨을 느꼈다. 버석거리던 눈에 포근한 햇살 같은 이목구비가 담겼다.
깔끔하게 정돈된 넓은 방 사이로 전신거울에 비친 백휘가 보였다. 너른 어깨 위 걸쳐진 티셔츠의 핏이 예뻤다.
[저장하시겠습니까?]윤슬은 자신도 모르게 저장하기 버튼을 눌렀다. DSLR로 찍은 것 같은 고화질의 핸드폰 카메라였다.
‘아니, 이건 저화질이어도 뚫고 나오는 얼굴이다.’
그때였다. 다시 한번 진동이 짧게 울렸다. 이번엔 재언이었다.
[(사진)] [이렇게 찍으면 되는 거야?]자신의 눈을 의심한 윤슬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눈을 한 번 감고 다시 떴지만 여전했다. 그때 주마등처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애프터눈 티 옆 자신의 거지 같았던 사진. 세상에서 제일 못생기게 찍어놓은 주제에 수줍고 당당해 보였던 재언의 얼굴. 그리고 머리 위로 떠올랐던 숫자.
「사진촬영 : 10/999
사진보정: 5/999」
그렇다. 재언이는 사진이라고는 단체 사진 정도만 찍어본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었다.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꼽으라면 어릴 때 태권도복을 입고 발차기를 용감하게 하는 사진을 말할 것이었다.
“망했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조그마한 탁상거울에서 안에 재언으로 추정되는 검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나마 좀 보이는 건 눈과 그림자가 확실하게 진 높은 콧대 부분이었는데, 역광을 받은 재언의 눈매는 한층 사나워 보였다.
윤슬이 뭐라고 답장해야 좋을지 몰라 멍하니 있는 그 순간 백휘가 답장을 했다.
[지금 표정 뭐지? 나 이거 경찰서에서 본 것 같은데.] [나 환하게 웃고 있는 거 안 보여?] [수배 전단지에서 분명히 봤어]차마 재언이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험상궂은 사진 속에서 재언이 웃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윤슬은 심장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걸었다. 낮은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을 가득 묻히고 재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많이 별로야?
“재언아, 그… 작은 거울이 아니야. 일단 방에 있는 전신거울 앞으로 가볼까?”
-그런 게 보통… 방에 있어?
“…없어?”
-아니야, 만들게. 잠깐만! 잠깐만 끊지 말아봐.
그러더니 갑자기 우당탕쿵쾅 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뭐야 형 갑자기!
-나가봐.
-왜 나가래? 나 숙제하잖아… 뭐야.
-나가 뛰어놀 나이야. 당장 나가.
-아악! 왜 이래!!!
그러더니 재언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뭔가 닫힌 방문을 두드리는 주먹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윤슬은 애써 무시했다.
-응. 나 전신거울 앞으로 왔어.
“그래. 거기에서 백휘가 찍었던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찍으면 되는 거야. 쉽지?”
-알겠어. 해볼게.
윤슬은 믿고 싶었다.
거울 사진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심지어 훌륭한 예시까지 바로 있으니까. 재언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바로 이해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윤슬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지잉-
[(사진)] [이렇게?] [이자 받으러 온 깡패 같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던 듯한 백휘가 칼 같이 답장을 했다. 이번에도 윤슬은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이상하지. 분명히 전신거울 앞에서 가볍게 찍는 전신 샷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머리 위 공간이 이렇게 인심 좋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비어 있었고 발밑의 공간은 요만큼밖에 없었다.
늘 거리에서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솟아 있는 재언의 키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그리고 원래 방주인의 취향인지 재언의 뒤에는 흑백 영화 포스터가 보였다.
[차카게 살자!]조폭 영화인 건지 큼직한 글씨로 쓰여 있는 포스터는 지금의 재언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윤슬은 애써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했다.
[다 좋은데 머리 위 공간이 너무 남네^^… 조금 아래에서 찍는 느낌으로 한번만 더 보내볼래~?] [재언이 다리길이 살려보자!] [(강아지가 힘내라는 이모티콘)] [다 좋다는 말 믿지 말고 제대로 찍어봐]이번엔 백휘의 말에 상처를 입은 듯 재언은 사진을 조금 오래 찍는 듯했다. 몇 분 뒤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은 차마 백휘조차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는지 그저 잠잠하기만 했다.
[확실히 아래에서 찍으니까] [다리가 길어 보이긴 하다] [고마워 윤슬아] [이거 맞지?]다리 길이만 이 미터 팔십 센티가 된 재언의 사진이 있었다. 얼마나 아래에서 찍었는지 생매장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본 듯한 조폭의 모습이었다.
윤슬은 또다시 배경으로 나온 영화 포스터의 제목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착하게… 살자….”
아무래도 재언이에게는 특별 보충 과외가 필요할 듯했으므로.
* * *
“재언아, 형 복싱장 바닥 타일 새로 깔아야겠니. 구멍 나겠다.”
한숨 쉰 관장은 벌써 한 시간째 바닥을 닦고 있는 재언을 바라봤다.
바로 몇 시간 전, 오랜만에 시무룩하게 들어와 샌드백을 치던 재언은 갑자기 핸드폰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었다. 재언의 목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글러브가 바닥으로 내팽개쳐질 정도로.
“형…!”
“뭐, 뭔데.”
답지 않게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긴장한 듯한 재언은 꿀꺽. 침을 삼키더니 심장 부분으로 손바닥을 가져갔다. 지금 심장 박동 수가 어느 정도 뛰고 있는가를 예상하듯이.
“내일… 내일 복싱장, 문 닫으면 안 돼요?”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문을 왜 닫아.”
스파링할 때만 똑바로 뜨던 눈이 갑자기 초롱초롱해져서 생기가 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대체.
원래 항상 느슨하게 세상이 귀찮은 듯 눈도 대충 뜨고 다니던 재언이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하루만 닫아요, 형.”
“지금 무슨 소리냐 재언아!”
“그래. 관장이 아무리 만만해도 협박이라니!”
“그 무서운 얼굴을 봐서 닫으라니. 형이 너 그렇게 가르쳤어?”
시무룩하던 재언이 갑자기 생기를 띄자 놀려먹고 싶어 근질거리던 형들이 하나둘씩 시끄럽게 말을 거들었다. 그런 형들에게 재언은 작게 대답했다.
“친구가… 와보고 싶다고. 저 운동하는 데를, 그… 보고 싶다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지, 가슴께에 손바닥을 펴서 가져다 대고 있던 재언은 이제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렇게 누추한 데에….”
순간 관장은 눈물이 날 뻔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복싱장이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야 이 새끼야. 형 이거 대출받은 거거든…. 청담에서 복싱장 하나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 에휴, 그래…. 내일 휴관 하루 해 준다. 대신 중등부 스파링 몇 번만 뛰어줘. 알겠냐.”
그러든 말든 재언은 벅차오른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서도 땀 냄새가 나고 저기서도 땀 냄새가 났다. 흉악한 얼굴들이 가득 차 있는 이 복싱장. 윤슬이 왔다가 그냥 갈 것 같았다. 재언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딸랑-
평소처럼 귀엽게 웃으며 복싱장의 문을 열고 들어온 윤슬이 주변을 보고 굳을지도.
재언은 운동할 때 사진을 찍는 게 자연스럽고 좋겠다는 윤슬의 연락을 보며 빨리 답장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뭐야? 여기가 재언이 너가 운동한다던….”
“응…. 맞아.”
수줍게 재언이 고개를 끄덕이면 윤슬은 싸늘한 표정으로 있을지도 모른다. 이 허름한 복싱장에 대해 실망할지도.
“권재언 누추해!”
그렇게 이 거지 같은 복싱장을 바로 나가버릴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착잡하다.
레드카펫을 깔아놓지는 못할망정 빨간 글러브들이 굴러다니는 이곳. 재언은 머리를 굴렸다.
‘어디를 고쳐야 하지.’
번뜩이는 눈으로 재언은 넓은 복싱장을 한 번 둘러봤다. 잘못된 점이야 많았지만, 아무리 봐도 등장인물들이 제일 아니었다.
‘형들을 치워야 해….’
형들을 윤슬이의 눈앞에서 치우지 못한다면 캐비닛 안에라도 소중히 넣어놔야지.
형들이 들으면 뒷목 잡고 넘어갈 계획을 세우는 재언의 눈이 뜨겁게 빛났다.
“재언아. 형 집 좀 가자….”
“먼지. 아직도 많아요. 이것 보세요.”
그렇게 윤슬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지만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높은 창틀 위의 먼지까지 닦아 내는 재언 때문에 졸지에 관장 형도 새벽까지 청소를 했다. 그동안 남자들만 있는 곳이라고 눈에 보이는 곳만 했더니 먼지는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었다.
* * *
어제에 이어 재언은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복싱장을 쓸고 닦았다. 얼마나 열정적인지 5층의 [건강지킴이 착한 한의원] 원장님이 와서 물어볼 정도였다.
“뭐여. 정관장! 이사혀?”
“이사 아닙니다. 선생님, 그냥 청소 좀 하는 거예요.”
“그냥 청소가 아닌디? 바닥 좀 봐…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사 간다니까 서운혀….”
“안 간다니까요….”
“잉. 잘 가고.”
아련한 눈망울로 사라지는 한의사를 바라보며 관장 형은 갑작스러운 두통을 느꼈다. 어쩌면 이렇게 두통을 느끼게 해 쑥뜸과 침을 영업하게 하는 게 원장님의 노하우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이 와중에 재언은 한시도 쉬지 않고 커다란 손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의원 원장님이 이사가는 거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
“야 임마, 어제도 했잖아!”
답답함에 소리 지른 관장은 재언의 대답에 뒷목을 잡았다.
“먼지는… 하루 사이에도 쌓이는 거예요. 형, 책임감을 가져야죠.”
졸지에 자기 복싱장에 책임감 없는 관장이 된 형은 청소에 질려 테이블에서 바나나 우유나 마시고 있었다.
“야, 너 걔 데리러 안 가냐.”
츄리닝을 입고 신데렐라처럼 바닥을 닦던 재언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확인했다. 커다란 몸으로 허둥거리니 주변에 있던 집기들이 부서질 것 같았다.
와당탕-!
“형, 다녀올게요! 사람 오면, 절대 들이지 마요! 먼지 날려요!”
문을 꼭꼭 잠가 휴관임을 알리라며 소리친 재언은 교복으로 단정하게 갈아입고 뛰어나갔다.
어느새 추리닝을 벗고 하복으로 갈아입은 재언은 그 와중에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인지 테이블 위 베이비 로션을 쭉 짜서 손에 바르며 나갔다.
“야, 누가 보면 우리 복싱장 진짜 먼지 날리는 줄 알아….”
왁스 칠까지 해서 박박 닦아놓은 복싱장의 바닥은 눈이 부셨다. 재언이 내팽개치고 나간 바닥 싹싹 스프레이와 걸레를 집어 든 관장은 피식 웃었다.
* * *
딸랑-
얼마나 기다렸을까, 복싱장 문 위에 달린 종이 자그맣게 귀여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재언의 뒤로 하얀 여자애가 들어왔다. 쑥스럽다는 듯 웃는 까맣고 부드러워 보이는 긴 머리. 관장은 왜 재언이 그렇게 바닥을 쓸고 닦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어-, 재언이 친구. 어서 와요.”
미리 창문을 열어두길 잘했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초록빛 나무들이 보였다. 윤슬은 복싱장을 한 바퀴 둘러보다 재언의 손에 든 것을 관장 형에게로 내밀었다.
“이건 별거 아닌데요. 빈손으로 오기가 그래서요.”
“세상에….”
험악한 관장 형은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살면서 이런 센스. 듣도 보도 못했다. 보통 가져와 봐야 편의점에서 산 과일 주스 아니던가…?
진정한 헬창들만 아는 근손실의 넥타르와 같은 단백질 음료. 운동을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이런 걸 신경 쓸 정도면 정말 많이 생각을 했을 텐데.
‘이렇게 세심할 수가….’
손으로 입을 막고 눈에 감동을 가득 넣은 관장은 윤슬을 바라봤다. 재언이가 왜 이렇게 밤새 쓸고 닦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친구였다.
‘아무래도 회귀 전 트렌드는 헬창이었으니까… 잘 먹히네.’
탄단지를 외치며 삼대 500 되세요? 가 인사말과 같은 밈으로 돌았던 회귀 전을 생각한 윤슬이었다. 단백질 음료를 대단히 귀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던 관장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웃는 두 사람 사이로 긴장한 재언만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