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0)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0화(50/405)
오늘도 연예인 브랜드 지수를 확인하던 엘더아머의 브랜딩 담당자는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연예인의 모공도 HD 화질로 볼 수 있는 시대. 연예인 굴욕이라는 단어는 연예인들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단어였다.
[배우 김XX, 아이 엄마 맞아?… 출산 후 놀라운 몸매]하지만 ‘각도의 중요성’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배우 김XX, 세 아이 엄마랍니다~ 후덕해진 라인]각도에 따라, 옆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그리고 그날 연예인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고 뒤집히고 떠오르고 추락하는 게 제품에 대한 이미지였다.
[배우 김XX, 아이 엄마 맞아?… 출산 후 놀라운 몸매]-김XX씨가 선전한 석류즙 샀는데..^^ 포만감도 있고 좋더라고요. 역시 김XX씨도 먹으면서 몸매 관리 한다고 하니 믿을 만하네요.
대중들은 하나에 열광하다가.
[배우 김XX, 세 아이 엄마랍니다~ 후덕해진 라인]-김XX씨 석류즙 매일 먹는다고 그러던데.. 그거 다 설탕 덩어리에요. 에휴..쯧. 안됐네요. 젊은 시절은 미스코리아 저리가라였는데~~~ㅠ 아 내 청춘 돌리도~~
가차 없이 버려버리고는 했다.
엘더아머의 브랜딩 담당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브랜드의 모델을 뽑는다는 건 곧 브랜드의 사활을 모두 건다는 것이었다.
정통성은 추구하는 나인키와 세련됨을 추구하는 아디너스. 그리고 엘더아머는 지금 아디너스의 자리를 차지했다. 브랜딩에서 밀리면 이제 간신히 선점한 시장에서 쫓겨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 진퇴양난이다.’
1인당 의류 소비량이 높은 나라인 한국은 아시아에서 엘더아머가 탐을 내는 시장 중 하나였다. 그래서 브랜드를 들여왔을 때, 온갖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려고 했으나.
* * *
“뭐?! 지금 뉴스 틀어보라고??”
이 전화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로 시작되는 것 같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깔끔하게 계약하고! 제대로 된 사진 찍고! 언론에 뿌릴 일만 남았던 계획들이 전부 불타 재가 된 게 벌써 두 달째.
그사이 엘더아머 담당자는 저주 같은 전화를 세 번이나 받았었다.
“연예인 김XX씨가 상습적 마약 혐의, 성매매 알선으로 인해 구속 수사를…”
“배우 정X 씨가 여자친구를 폭행 후 감금으로 인해…”
“방송인 이XX 씨는 어제 저녁, 음주운전 후 시비 걸린 행인을 뇌사상태로…”
이거 굿이라도 해야 하나. 할 수만 있다면 브랜드 로고에 팥과 소금을 뿌리고 싶었다.
“제발요. 말도 안 돼요 이건….”
현실을 아무리 부정해 봐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매스컴에서 지목하는 범죄 연예인마다 엘더아머의 모델이 될 ‘뻔’했던 사람들이었다.
-아니 라이징 남연들 다 범죄자 됐네;;
-정X 이 이 새끼는 광고도 많이 찍었는데 정신 좀 차리고 살지ㅋㅋㅋ 위약금 갚다가 늙을 듯.
˪그래도 님보다는 돈 많을 듯요
-소속사 공식입장 안 나오지 않았음? 이XX는 입장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함 음주 측정농도도 안 나왔잖아;ㅋㅋ
˪네 다음 대가리 깨진 빠순 쉴드 칠 걸 쳐야지ㅋㅋㅋ
˪팬 아닌데ㅋㅋ? 국민들 개돼지처럼 구는 게 꼴 보기 싫은 것뿐 ㅜ
-김XX 이 새끼 유흥 살 붙을 때 알아봄ㅋㅋㅋ 빠르게 탈덕할 걸 옛정이 뭐라고 붙들고 있었다가 나만 병신 됨
-상견례 입뺀상들만 사랑했던 나 이제 2D 세계만 믿기로 했습니다. 관상은 과학입니다
그렇다. 엘더아머가 추구하는 되고 싶은 남성, 강인한 남성!
…그렇지만 좀 젊은 남성.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을 누구로 할지, 후보로 두었던 연예인들이 줄줄이 경찰서에서 정모를 하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네요….”
“다행~!? 이게 다행입니까?!”
“생각해보세요. 경찰이 양옆에서 팔짱 끼고 가는데 걔 가슴팍에 엘더아머 로고가 딱.”
…생각을 했더니 정말 끔찍해졌다.
엘더아머 담당자는 머리가 아파 왔다. 두통약을 억지로 한 알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짚었다.
“경찰서에서 로고 반짝거리면 참 예쁘겠네요.”
“그만….”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촬영한 외국인 모델들의 사진만 걸려 있는 엘더아머였다.
한국의 워너비 남성, XX이 입은 엘더아머 제품. 나도 사볼까?
그런 건 없었다. 그들은 모두 물 빠진 파란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엘더아머 팀은 다음 시즌 화보를 ‘죄수복 카키’, ‘모범수 블루’로 네이밍 할 뻔한 심장을 쓸어내렸다.
연예인 강공들은 오늘도 모두 엘더아머 로고 대신 3241 같은 숫자를 가슴팍에 새기고 죄수복 카키 컬러의 SS 신상을 입고 교도소에서 자신이 먹은 식판을 닦았다. 박박.
팔락-!
“이게 아니야. 난 이제 아무도 못 믿어….”
브랜드 지수, 몸값, 현재 스케줄, 바디프로필 등이 적힌 서류를 전부 휘날린 엘더아머의 담당자는 책상 위로 머리를 박았다.
하얗게 쏟아지는 종이들이 허망했다. 벌써 한국에 런칭한 지 두 달째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예상 매출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속이 터졌다.
“살다 살다 인터넷 광고만 한다니….”
풍성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한 그는 지금 브랜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지 다시 한번 떠올렸다.
“SS시즌은 버리고 가죠.”
들어오자마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거라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모두가 SS시즌을 버리고 천천히 FW를 준비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은 인터넷과 SNS 위주의 팝업 광고와 연예인 협찬으로 진행하고, 모델을 천천히 찾아보자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제일 광고 효과가 좋다는 스타트업 ‘키키 게스트’로 광고를 맡겼지만, 어딘가 뻥 뚫린 듯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효과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 기대도 안 한다.”
담당자는 다시 땅에 떨어져 있는 서류를 주섬주섬 주우면서 한숨을 쉬었다.
* * *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람 사이로, 단둘.
“…조금, 누추하지.”
그래도 열심히 치운다고 치웠는데. 온통 까맣고 회색에, 모서리가 조금 낡은 샌드백이 있는 장소에 윤슬을 데려다 두려니 여간 멋쩍은 게 아니었다.
목덜미를 슥슥 매만진 재언은 들고 있던 윤슬의 토끼 열쇠고리가 달린 가방을 소중하게 의자 위에 올려놨다. 나름 이 체육관에서 제일 새것인 의자였다.
“뭐가 누추해. 운동하는 데가 다 똑같지! 그리고 여기 되게 깔끔한데?”
윤슬은 호탕하게 웃으며 한 바퀴 둘러봤다. 그리고는 먼지 하나 없는 구석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샌드백조차 말끔히 빛나고 있었다.
“…그래?”
재언은 눈을 접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어제 윤슬이 가져오라 한 운동복들을 모두 캐비닛에서 꺼냈다.
커다란 거울이 벽면에 붙어 있는 복싱장 안에서 사진찍기 과외가 시작되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이렇게! 어? 딱 이렇게!”
“응….”
넌 반드시 챔피언이 될 수 있어! 이렇게 하란 말이다! 열정 넘치는 은퇴 챔피언이자 재언의 코치처럼 윤슬은 계속 재언의 사진을 탈락시켰다.
핸드폰 각도를 잡아놓으면 턱을 너무 숙이거나 너무 올렸고, 얼굴 각도를 잡아놓으면 자세가 어정쩡했다.
“이 피지컬이… 어떻게 이렇게 담기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윤슬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재언을 유심히 살폈다. 조금 시무룩해 있는 것 같은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다.
‘그래. 애가 사진을 좀 못 찍을 수도 있지.’
사실은 아주 많이 못 찍지만. 그래도 윤슬은 이 정도면 어제의 그 참사와도 같았던 사진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칭 생매장 시점에서 1인칭 삥뜯김 시점 정도로 수정이 되었다.
“자 봐 재언아. 그래도 이거랑 이거는 좀 괜찮다.”
핸드폰 화면을 켜 앉아있는 재언에게로 내밀었다. 편하게 앉아있던 재언이 순순히 고개를 들어 윤슬을 바라봤다. 풀 죽어 있던 까만 눈동자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조금 더 찍으면 할 수 있겠지?”
“응.”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재언이 기특해 윤슬은 자신도 모르게 결 좋은 머리칼 위로 손을 얹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윤슬이 바닥에 앉아있는 재언을 쓰다듬자 큰 개를 놀아주는 주인 같았다.
잠시 굳어 있던 재언은 윤슬이 쓰다듬기 좋게 머리를 조금 더 숙였다.
열린 창문 사이로 여름이 불어왔다. 윤슬의 코끝에 옅은 베이비 로션의 향기가 닿았다. 살랑거리는 공기가 복싱장의 반짝이는 바닥 위로 미끄러졌다.
* * *
“나도 핸드폰 사진은 못 찍는 척했어야 했는데….”
노트북 구석에 뜨는 현재 시각을 바라보며 백휘는 후회했다. 평균적으로 15분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혹시 계획된 건가?’
사람이 그렇게까지 사진을 거지같이 찍을 수는 없다. 일부러 윤슬과 단둘이 있을 시간을 벌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 아닌가.
백휘는 윤슬이 새로 제시한 흑백 보정 값을 확인하며 침울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똑똑-
조용한 방 안을 울리는 노크 소리에 백휘는 하던 창을 모두 내리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우리 큰손자~. 저녁 먹어야지~”
유쾌한 목소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자신의 조부 최강묵이었다. 평소엔 늘 바빠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렇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날은 달랐다.
‘아, 또 갑자기 손님 오시나 보네….’
최대한 빨리 완성해서 윤슬에게 보여주려던 계획에 다시 한번 금이 쳐졌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한 백휘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조부를 보며 되물었다.
“식사 때 누구 오세요?”
“하 관장네 거의 도착했다는구나. 준비하고 내려오너라.”
손님의 이름을 듣자 단번에 표정이 굳은 백휘를 알아챈 듯 빠르게 방문을 닫고 사라지는 조부였다. 백휘는 다시 적막함을 되찾은 방 안에서 가만히 옷을 갈아입고 제대로 먹히지 않을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백휘 너무 오랜만이야~. 그치?”
“이야~. 너! 완전 남자 다 됐는데.”
“하하. 사내 녀석 열일곱이면 옛날에는 다 컸지.”
화목하게 들어오는 제인의 가족들을 보며 백휘도 화답하듯 미소 지어 보였다. 잘 차려진 상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덕담을 하며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시간 낭비였다.
‘빨리 먹고 빨리 가지, 좀….’
식사는 어쩜 그렇게 느리게 하는지. 반찬 하나 집어 먹고 맛있다고 칭찬하기를 반복했다. 묵묵히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제인을 바라보지 않고 정갈히 젓가락질을 하던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너네. 한국 들어와서는 통 연락 안 한다면서?”
“아, 엄마!”
“아줌마 서운해~. 백휘 사윗감으로 점찍어놨는데~”
곱게 매니큐어가 발려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제인의 어머니 얼굴을 보며 백휘는 모래알 같은 밥알을 삼켰다.
“요즘 우리 백휘가 아주 바빠요. 친구들이랑 컴퓨터로 작업을 하거든. 백휘야, 말해봐라. 그 뭐였지?”
“아직 시작인데요, 뭘.”
“와. 한국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녀석 진짜 성실하네! 그래. 뭘 만드는데?”
자신에게 쏠린 시선의 따가움을 느끼며 백휘는 머리를 굴렸다.
‘뭐, 도움받을 어른 하나 늘어나면 더 좋겠지.’
물론 굳이 친근하게 자신의 요즘 생활을 털어놓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손해 볼 건 없었다. 매끄럽게 어플 이야기를 털어놓고 슬쩍 대회 이야기를 하자 또 바로 미끼를 물어주는 제인의 아버지였다.
“그래.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어플 하나 만들면 잘 나가는 건 따 놓은 당상이지. 대회라… 장관님. 중기부 박 장관님이랑 요즘 친하게 지내시죠?”
“친하기는. 그냥 고향이 같아서 밥 몇 끼 한 사이지.”
“에이, 어차피 장관님한테 다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데 그냥 친하다고 해 주시죠. 아무튼 중기부에서 청소년 대상으로 대회 한 번 열 때 안 됐습니까?”
중소기업 벤처기업부. 국가 기관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어플 대회를 만들기만 한다면 윤슬의 생활기록부는 아주 탄탄해질 것이라는 계산을 마쳤다.
백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지겨운 식사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진심 담긴 미소였다.
백휘의 맞은편에 앉은 제인은 싸늘하게 식어 버린 밥알을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