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1화(51/405)
‘서윤슬이겠네.’
어른들 앞에서 늘 예의상 몇 마디 대답만 하는 게 다였던 최백휘가 식사 내내 최상의 팬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달라진 태도에 제인은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속내를 도저히 모를 것 같던 애가 저렇게까지 투명해질 수 있다니.
식사가 끝난 후 어른들끼리의 대화시간을 가질 때. 제인은 백휘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어른들이 없자 다시 이전처럼 싸늘해진 백휘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2층의 거실에 앉아 백휘는 노트북으로 뭔가를 끝없이 확인하고 있었고, 제인은 가만히 SNS 어플을 켰다. 오늘도 수천 개의 하트가 날아오고 있었지만 지금 자신은 한 사람의 좋아요가 필요했다.
“서윤슬이지?”
한 번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던 백휘는 그 이름이 제인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오늘 처음으로 마주한 눈이었다.
“그게 왜 궁금해, 니가?”
“맞구나.”
더 이상 대화를 할 의지가 없다는 듯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긴 백휘에게 뭔가를 더 캐묻고 싶었다. 네가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건지, 왜 걔인지 같은.
하지만 그래봤자 대답이 없을 백휘를 알기 때문에 조용히 핸드폰으로 수많은 메시지에 답장을 해 줄 뿐이었다.
“제인아. 이제 가자!”
“백휘야, 오늘 반가웠어!”
1층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에 백휘는 마중을 하러 노트북을 덮었다. 백휘가 계단을 내려가자 테이블 위 놓인 노트북이 눈에 들어온 제인이었다.
‘잠깐만 열어 보면….’
식사 시간엔 내내 어플 제작 얘기만 하면서 말을 빙빙 돌린 백휘였다. 사진 어플이라는 것만 말했지만 그게 어떤 건지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백휘가 지금 하는 게 궁금했던 제인은 잠시 덮어진 노트북을 빠르게 열어 화면을 확인하려 하던 그때.
“안 내려오고 뭐 해?”
순간 백휘가 내려가던 계단을 다시 올라와 제인을 바라봤다. 제인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
“나 메시지 답장하느라. 이제 내려가.”
“빨리 가.”
백휘는 무언가 눈치챈 것처럼 계단 위에서 조용히 팔짱을 끼고 제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성과 없이 백휘의 집을 나선 제인은 가만히 창문 너머로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빠.”
“응?”
“우리 집 어느 정도 살아요?”
뜬금없는 제인의 질문에 핸들을 잡고 있던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요. 우리 집 정도로 살려면 어렵겠죠?”
“제인아. 아빠가 늘 말하지? 대한민국은 아직도 계급이 있어요. 우리 집안이면 브라만이고 로열이지.”
평소라면 너무 자주 들어 듣기 싫었을 말이 오늘따라 반가웠다. 제인은 앉아 있는 시트에 몸을 묻었다. 누구보다 계급을 좋아하는 제인의 엄마가 교양 있는 척 그런 아빠를 말렸다.
“여보.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요. 애 교육에 안 좋아.”
“애도 알 건 알아야지. 막말로 그 누구야? 여보. 얼마 전에 사업 다 말아먹고 집 팔았다던.”
역시 걱정되는 척하면서 윤슬의 집안이 망했다는 말을 옮긴 제인의 엄마였다. 제인은 어련하시겠냐는 웃음으로 답했다.
“…서윤슬이요.”
“제인이 니 친구야?”
“그냥 아는 애요.”
“그래. 친구도 가려 만나야지. 아무튼 지금이야 다들 교복 입고 다녀서 모르겠지만, 너 고등학교 졸업하는 그 순간부터 노는 물이 확실히 달라지는 거야. 알았어?”
“…네.”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이 제인의 뺨에 닿았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제인은 뒷자리에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 *
드디어 엘더아머와의 미팅 D-day 1일. 윤슬은 PPT를 정리하다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팀 이름이 없네?”
맞은편에서 얌전히 캐모마일 티를 마시고 있던 백휘와 휘핑크림을 떠먹던 재언이 그런 윤슬을 바라봤다. 굉장히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그냥 윤슬이 네 이름만 쓰면 되지.”
“…맞아. 대장이잖아.”
“어쩌다가 내가 그런 지위를 가지게 됐지?”
PPT 맨 첫 장에 이름을 쓰는 칸을 비워뒀다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윤슬은 작게 한숨 쉬고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며 팀 이름 후보를 정하려 했다.
“자, 한 명씩 손들고 말해보세요.”
윤슬이 작은 손으로 가볍게 박수를 치며 집중시키자 오른쪽 팔을 씩씩하게 올린 재언이 대답했다.
“…팀 그레이스 윤슬.”
“뭐야 그거, 게임 이름 아니야? 금방 나만을 위한 사전예약 받을 것 같은데.”
“재언아, 왜 내 이름만 넣어….”
사실 임패리얼 그레이스 윤슬이라고 더욱 고급스럽게 말하려고 했던 재언이 최대한 심플하게 줄인 이름이었다.
[그레이스 윤슬: 새로운 전설의 시작]으로 팀 이름을 추진하려 했던 재언의 계획이 멋지게 무산되었다.그러자 어딘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왼쪽 팔을 낮게 든 백휘가 대답했다.
“음, 윤슬이와 아이들은 어때.”
“뭐야. 그거, 사물놀이패 아니야?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
“백휘야 넌 왜 또 내 이름만 넣어….”
무슨 프로젝트 하나만 하면 한국적인 캐릭터와 함께 플래카드가 걸리는 상황을 보면서 자라온 백휘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윤슬이(32포인트)와 아이들: 최백휘(15포인트) 권재언(3포인트)]으로 팀 이름을 추진하려 했던 백휘의 계획 역시 멋지게 무산되었다.그 뒤로도 제법 많은 이름 후보들이 거론되었으나 하나도 쓸 만한 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윤슬은 상태창에 센스라는 항목이 있었다면 얘네 둘이 합쳐서 -100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캡틴 슬-”
“재언아. 그것도 내 이름이잖아.”
“윤슬이 한마당?”
“백휘야 노인정 계모임이니.”
고민하던 윤슬은 이 팀 이름을 내가 안 지으면 안 되겠다. 싶어 머리를 굴렸다. 옆에서 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고 있었다. 그래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또 해괴한 이름이 나오기 전 떠오른 아이디어로 윤슬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 우리 이름을 다 넣자.”
“이름?”
“…한 글자씩?”
“그래. 최백휘, 서윤슬, 권재언, 셋이 한 글자씩 해서 최, 서, 언. 이렇게 합쳐서 최선. 어때?”
둘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윤슬이 ~팀 윤슬이와 아이들, 돌아온 더 그레이스 캡틴 한마당~ 이라고 이름 지었어도 너무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렇게 팀 이름은 ‘최선’이 되었다.
PPT 맨 앞장에 당당히 이름이 새겨졌다. 셋 모두 똑같이.
* * *
아침이 밝았다. 한숨도 자지 않고 밤새 발표 준비를 한 윤슬은 대본 없이도 매끄럽게 말할 수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때였다.
띠링-
「▶System
【미션: 히든】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 2 )주일 이상 ( 3 )시간 미만으로 잠든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뽑는 순간★100% 행!운!보!장! ※꽝 절대 없음! ♨화끈한 보상이 기다립니다♨ 24시간 행!복!대!기! ♣지금 바로 뽑아보세요
보상
○히든 포춘쿠키 뽑기☜ Click」
“뭐야. 이 수상쩍은 건.”
이런 수상한 상태창은 처음이었다. 윤슬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상태창의 글자를 훑었다.
아무리 봐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꽝 절대 있음! 시시한 보상이 기다립니다! 24시간 미!션!대!기!로 해석한 윤슬은 팔짱을 꼈다.
‘너무 스팸 같은데….’
뽑지 말까. 잠시 고민하는 윤슬에게 상태창이 노오력을 하기 시작했다. 스팸 메시지 같은 창이 더욱 커졌다.
「♣지금! 바로 뽑아보세요!!!」
글자에 느낌표가 생기며 반짝거렸다. 색도 눈이 아픈 황금색으로 변했다.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상태창 은근히 세심하다. 비록 디자인적 센스는 빵점에 가까웠지만….
「♣지금! 바로!!! 뽑아보세요!!!!」
이제 글자까지 확대되며 일곱 빛깔 무지개색으로 바뀌었다. 이쯤 되자 윤슬은 그냥 져주는 마음으로 클릭 버튼을 눌렀다.
「▶[히든 보상: 행운의 ★포춘쿠키★ 획득!]
○행운의 ‘포춘쿠키’ (1개)
축하합니다!
[지금 사용하기] [인벤토리에 넣기]」「▼상세 설명▼
행운의 포춘쿠키
: 가볍고 부드러운 쿠키.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다.
즉시 피로회복 효과와 HP 증가 (20↑)가 일어난다.
※ 주의: 먹기 전 반드시 반으로 갈라 안에 든 행운의 종이를 확인하세요!」
평소처럼 상자 안에서 종이가 폭발했다. 오늘은 다른 게 있다면, 종이가 사탕 모양처럼 양옆이 프릴처럼 접혀 뭔가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
피곤한 윤슬이 가만히 손바닥을 벌리고 있자 그 사이로 하나가 떨어졌다. 작고 가벼운. 한쪽엔 빨간색, 한쪽엔 파란색 리본을 단 캔디 모양의 포춘쿠키가.
바스락-
“엥? 이게 뭐야?”
윤슬이 얇은 종이를 열어 쿠키를 꺼낸 뒤 가볍게 반으로 갈랐을 때였다. 개발새발 그린 것 같은, 포춘쿠키 안 종이에는.
“웬 참새…? 비둘기…? 까치나 제비?”
뭐 아무튼 날개 달린 것이 있었다. 누가 그렸는지 이렇게 거지같이 그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짜 개나 고양이의 앞발로 펜을 쥐어 그린 것만 같았다.
윤슬은 그림을 살펴보다 아무 생각 없이 갈랐던 포춘쿠키를 입 안에 넣었다. 입 안에서 가볍게 사르륵 녹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맛은 있네.”
날개 달린 뭔가가 그려진 종이는 책상 위에 두고 나갔다.
그 새는 윤슬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 * *
키키 게스트 회의실에는 귀여운 고등학생들이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게 또 기특하고 귀여워서 팀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아까 윤슬이 미리 보여 준 자료 덕분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는 그녀는 며칠 전 엘더아머와의 컨택을 떠올렸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있지만, 너네가 요즘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니까 그나마 맡겨본다는 그 태도를.
‘보면 바로 계약도장 찍자고 달려들 거면서.’
쉬지 않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꾹 눌러가며 그들을 기다렸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시를 가리킬 때를 딱 맞춰 엘더아머 팀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너무 늦게 도착했나요?”
“아니에요. 딱 맞춰 오셨는걸요. 편히 앉으세요.”
자리마다 프린트된 자료들이 놓여 있는 회의실에 사람이 들이차자 윤슬은 조금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윤슬을 뒤늦게 발견한 엘더아머의 담당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안녕하세요?”
끝맺음이 미묘하게 물음표로 끝나는 인사였다. 윤슬도 그런 그에게 인사로 답했지만 미묘해진 표정은 돌아올 줄 몰랐다.
“혹시… 이번 어플 개발하셨다던 에디터님이 맞으세요?”
“네. 제가 담당입니다.”
“실례지만 나이가?”
“열일곱 살입니다.”
열일곱 살. 윤슬이 나이를 밝히자 엘더아머 팀들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담당자는 누군가와 시선을 교환하지도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미묘한 표정은 더욱 굳었다.
‘아, 이거 안 좋은데.’
윤슬은 빨간불을 직감했다. 하긴 자신이어도 고등학생이 담당자라고 나오면 처음부터 신뢰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잠깐 열정 좋아하는 어른들이랑 돈 걸린 사회인을 헷갈렸다….’
그동안 열!정! 이면 환호하며 박수쳐 줬던 시간들이 너무 달달한 나머지 사회인 자아가 옅어졌던 탓일까. 이런 분위기가 생길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윤슬은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엘더아머 담당자의 표정은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망했다!’
예의상 자리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그를 보며 윤슬은 조용히 상태창을 켰다. 그의 스킬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스킬: 직장인의 마음가짐 (A+)] [스킬: 원석을 보는 눈 (A+)] [랜덤 스킬: 과녁을 향해 (S+)]」
‘랜덤 스킬?’
처음 보는 문구가 하나 떠 있었다. 잠시 랜덤 스킬이 뭔지 눌러 확인을 해보려던 윤슬은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엘더아머 담당자의 말에 막혔다.
“시작…해주시죠.”
기대할 것도 없다는 투에 윤슬은 조금 빈정이 상했다. 물론 돈이 걸린 일이니까 이해는 한다만 비련의 주인공처럼 슬퍼진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삭해져 먼지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 그를 바라본 윤슬은 조용히 빔프로젝터의 버튼을 눌러 화면을 띄웠다.
불이 꺼진 회의실에 환한 첫 화면이 밝았다. 팀 최선이 만든 첫 발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