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2)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2화(52/405)
첫 장이 시작되자 빔 프로젝터를 바라보는 엘더아머의 팀원 전체가 동태눈이 되었다. 수천 번을 반복해서 본 엘더아머 본사의 시즌 광고였다.
윤슬이 뭐라고 설명했지만 딱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외국에서 자리 잡은 엘더아머의 브랜드 이미지와 현재 판매량이 높은 대표 제품.
엘더아머의 담당자는 바버숍에서 공들여 다듬는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지며 시시껄렁한 딴생각에 잠겼다.
‘아… 여기에 광고 맡기자고 누가 했어….’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았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느슨하게 앉은 브랜딩 담당자의 눈이 커진 건 그때였다.
윤슬이 다음 장으로 넘긴 순간 팀원들의 눈이 순식간에 빛났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감흥 없게 보고 있던 엘더아머의 대표 제품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장의 PPT는 SNS 피드에 맞춰 찍은 일상 사진들이었다. 어플로 흑백 보정을 한.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던 윤슬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 저 얼굴들에 반응 안 하면 말이 안 되지.’
냉정한 얼굴감별사 윤슬이 인정하는, 피지컬이 친절하고, 얼굴이 맛있는 둘에게 모두가 집중했다. 정정당당히 얼굴로 승부하는 사진들에 시선을 전부 빼앗겼다.
그 뒤로 두 번 다시 엘더아머의 팀원들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일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윤슬이 말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으므로.
윤슬이 만든 어플의 필터는 총 일곱 개.
흑백의 밝기를 자유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고, 필름 카메라처럼 날짜와 시간을 모서리에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시선을 사로잡는 색깔의 대비였다.
필터마다 하나씩 흑백 컬러 사이로 파란색, 초록색 그리고 빨간색만이 눈에 들어오게 보정할 수 있는 포인트 기능이 있었다. 이집트 벽화 같은 오줌필터와 이가 시릴 만큼의 새파란 필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 감동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눈에 박힌 건 지나치게 과한 사진이 아닌 어느 정도 힘을 뺀 자연스러운 사진들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처음과는 달리 모두가 흥분해 떠들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전부 저희 옷 맞죠?”
백휘가 입은 작은 로고의 티셔츠부터 재언의 트레이닝복까지. 팀원들은 앞에 놓인 자료들을 펼쳐 저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얘기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에이스북이 강세인 지금. 유스타 하면 딱 떠오르는 특유의 감성이 자리 잡기 전 맛보기로 슬쩍 보여만 줬을 뿐인데 다들 끝도 없이 감탄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 진짜 우리 옷이 맞냐고 물어보는 직원들에게 윤슬은 속으로 답했다.
‘요즘 정보만 물어보시고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없는 분들이 많아 많이 피곤하네요.’
‘앞으로는 정보 모두 DM으로만 답할게요?’
‘메종 드 윤슬은 늘 문의량 폭주라 답이 조금 느릴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는지 계속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 그들의 사이로 윤슬은 아까 잠시 접어두었던 엘더아머 담당자의 상태창을 켰다.
아까는 급하게 보느라 스킬만 확인했지만 여유가 있는 지금은 천천히 위에부터 훑어 나가던 윤슬은 잠깐 흠칫했다.
‘화술이… 말이 돼?’
「화술: 777/999」
난생처음 보는 수치에 대체 어떤 치트키를 쓴 건가 하는 눈으로 아직까지 한마디 말이 없는 담당자를 바라봤다. 다들 쉬지 않고 얘기하는 사이 천천히 자료를 끝까지 보던 담당자가 조심스러운 손으로 다시 맨 첫 페이지를 폈다.
“전… 정말 감동했습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777. 잭팟에 빛나는 화술이 시작되었다. 윤슬은 혼잣말 능력까지 화술로 쳐주는 상태창이 심히 의심스러웠다. 카톡으로 했다면 분명 [더보기…]가 떠 있을 만큼의 장문이었다.
처음으로 맛보게 된 감성 한 스푼에 진한 감동을 느낀 것 같았다.
“저희가 이번 시즌은 인터넷 광고만 하기로 결정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저희의 광고시안을 전부 합쳐도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일반적인 화보보다는 이런 일상 사진들에 타겟층이 구매 욕구를 느낄 것이고-”
“저… 숨을 좀 쉬고 말씀하시는 게….”
“원래 저러시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안 믿기시겠지만 지금 굉장히 차분한 상태세요.”
좋좋소 사원 시절 부장이 취하기만 하면 시작했던 [내 생각에는 말이야 (Stage Ver)]를 계속 듣고 있자니 이번엔 윤슬의 눈이 동태가 되었다. 초점이 흐릿해진 상태로 중간중간 고개만을 끄덕이던 윤슬은 잠시 딴생각을 했다.
뽀링-!
“아, 깜짝야.”
“네…? 제가 혹시 깜짝 놀라게 해드린 건가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깜짝 놀라게 해드렸는지 말씀해주신다면 보완하여”
“아뇨. 저와 어쩜 그렇게 똑같은 생각만을 하실 수 있는지 정말 계약서에 도장 찍기도 전에 저희 어플이 참 잘 맞는 브랜드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와 생각이 정말 잘 맞으시는군요! 사실 처음에 나이를 들었을 때 정말 놀랐지만 프레젠테이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놀랐-”
대충 둘러댄 윤슬은 캐시 충전을 한 듯한 담당자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끝없이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담당자의 주변에 유료 스킨처럼 크고 작은 하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덩치에 안 맞는 핑크색 반짝이 하트들이 낯설었다.
이 흥분한 담당자의 머리 위로 귀여운 게임 효과음과 함께 하트들이 터지며 글자가 빛났다. 잘못된 담당자 꾸미기에 윤슬의 넋이 나갔다.
「[랜덤 스킬: ♐♢♡과녁을~ 향해! ♡♢♐ (S+)]」
‘누구 마음대로 상태창 꾸미기를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불안한 마음으로 글자를 클릭한 순간, 윤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랜덤 스킬: ♐♢♡과녁을~ 향해! ♡♢♐ (S+)]
슈웅~ 콕! 만점이야♡ 사랑의 화살이 원석을 보는 눈 정 가운데 정확히 꽂혔을 때 랜덤으로 발동되는 스킬입니다.
스킬 발동 시, ♡두근두근♡해져 일시적으로 ‘화술’이 ( ??? )% 상승합니다. [5~80% 랜덤!]
※ 목적 달성 실패 시, ♥의기소침♥해져 일시적으로 ‘화술’이 ( ??? )% 감소됩니다. [1~20% 랜덤!]
※ 랜덤 스킬 사용자에게서 5%의 확률로 소원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주의: 스킬 발동은 ( ??? )일 동안 지속됩니다.」
‘저 얼굴로 이런 스킬이 있단 말이야…? 이거야말로 상태창의 사기 아냐…?’
짙은 눈썹과 포마드로 넘긴 머리, 턱수염 삼종세트에다가 진한 이목구비의 엘더아머 담당자는 윤슬을 보며 눈빛을 빛냈다.
윤슬은 아직도 말을 멈추지 않으며 하트를 쏟아내고 있는 진한 인상의 담당자를 보며 아침에 먹은 포춘쿠키로 기껏 회복한 HP가 빠르게 감소되는 걸 느꼈다.
다른 팀원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자기들끼리 백휘와 재언이의 사진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인기 투표를 하고 있었다.
잠깐 닫았던 고막을 열어보니 점점 백휘와 재언이의 사진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다.
시킨 적도 없는데 얼굴 리뷰 이벤트에 참여해 별 다섯 개를 주는 담당자를 바라보며 윤슬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궁금했다.
경험상 결론을 쉽게 내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는 인간만큼 위험한 게 없었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구상해주셔서 정말 저희가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하면 좋을지….”
‘뭐야, 감사 말고 돈이나 줘요.’
계속 계약조건과 계약금을 말하지 않는 담당자를 보며 윤슬은 자신의 스킬을 이용하기로 했다. 알림 때문에 시끄러워 꺼두고 있던 호감도창을 켰다.
* * *
「▶[스킬: ‘토끼네 찰떡방앗간’]
상대방의 찰떡같은 선호도를 열람할 수 있는 스킬.
※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50 미만인 경우는 아주 작은 정보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정된 상대의 현재 찰떡취향 키워드는 ( 엘더아머랑 잘 어울리는 남자 )입니다.]」
담당자의 머리 위로 나름 색깔을 맞춘 핑크색의 글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아. 그래서 애들 사진 보고 바로 어플에 꽂혔던 거네.’
브랜드에 잘 어울리는 느낌으로 모델을 세워둔 덕분에 담당자의 랜덤 스킬이 작용한 것 같았다.
내 새끼 자랑하는 마음으로 뿌듯해진 윤슬은 이 담당자가 말은 많아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연예인으로 하는 브랜딩은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이번에 혹시 들으셨나요? 저희가 원래 광고를 안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하는 족족 망할 뻔했던 거?”
“아니요. 모르는 일인데요.”
대외비를 몰래 알려준 키키 게스트 팀장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부러 모른 척한 윤슬은 30분 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이 담당자는 아주 나쁜 사람… 아니 나쁜 새끼였다.
* * *
‘그냥 들었다고 할걸….’
“그래서 말이죠! 그때 전화를 받고 제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첫 번째 연예인이 구속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팀원들은 이제 핸드폰을 꺼내 자유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심지어 아직 구속 연예인이 두 명이나 남았다.’
구속 연예인 두 명 이야기에 엘더아머 담당자의 처절한 슬픔 이야기, 고생했던 팀원들의 눈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어플 계약조건까지 듣다 보면 오늘 안에 집에 못 갈 것만 같았다.
윤슬은 어느새 매크로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저희 계약은?”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래요. 출시일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제 마무리 단계라 다음 달 초면 될 것 같아요.”
“다음 달 초…. 다음 달 초라. 저희는 전속으로 진행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전속.
지금까지 쭉쭉 빠르게 빠져나가던 윤슬의 HP가 전속이라는 단어를 듣자 순식간에 차올랐다.
체력과 더불어 전투력이 백 프로 채워진 윤슬은 표정 관리를 하고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전속은 아직 저희가 생각을 안 해 봐서요. 아무래도 한 광고만 보게 된다면 너무 질리지 않을까 해서….”
“에이! 계속 보는 것도 아니고, 저장할 때 가끔 나오는 건데요. 광고 버전을 여러 개 제작하면 되죠.”
“그리고 광고로 한 브랜드만 계속 나와서 저희 어플에 대한 선호도도 낮아질까 걱정도 되고요.”
“설마요. 그래도 쓸 수밖에 없는 어플일 겁니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어플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조건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자와 전속계약을 통과시키려는 자 사이의 싸움이었다.
‘돈 더 달라는 소리를 못 알아듣는 척하네?’
윤슬은 전속으로 계약을 해서 소비자 선호도가 낮아지건 말건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무료 고객이니까.
오히려 광고 보기에 질색을 하는 소비자일수록 다음 어플에 대한 충성심이 견고해질 것이었다. 다음 어플은 유료 어플로 배포할 예정이므로.
윤슬은 그냥 겉치레로 빙빙 돌리던 말을 직구로 던졌다.
“음… 말씀하신 대로 전속이면, 조건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략적으로요.”
= 돈 많이 주면 생각해볼게.
“이 정도를 제시하려고 했는데…. 에이, 오늘 이 프레젠테이션 보고 이 금액은 말이 안 되죠. 이 정도 어떠세요?”
= 사실 처음부터 저 금액이었지만 쇼맨십 좀 해볼게.
고생한 지 2개월 차에 번 금액치고는 상당했다. 아니. 아주 대박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광고가 엎어진 이 절박한 브랜드에서 빼내 올 수 있는 돈치고는 적었다.
윤슬은 고민하는 척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조금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전속계약은 계획에 없던 터라 타 브랜드와의 미팅도 진행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잠깐만!!!”
이제야 만족스러운 금액이 나오는군.
윤슬은 새로 더해진 0의 개수를 세며 담당자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계약도장을 찍었는데도 아직 담당자가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어딘가 싸한 기분에 윤슬은 마무리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얼른 튀어야지.’
하트로 온몸을 감싼 진한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인 윤슬은 이만 이 미팅의 엔딩을 내리려 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마무리를 하려던 윤슬의 눈이 부셨다.
「찰떡취향 키워드: ( 엘더아머랑 세상에서 제일로 짱짱 잘 어울리는 남자 )」
찰떡취향 키워드가 담당자의 혼잣말처럼 길어졌다. 빛나는 키워드와 함께 랜덤 스킬 글자가 겹쳐졌다.
“혹시! 저희 앰버서더도 같이 맡기면 안 될까요? 오늘 PPT에 나왔던 그 사진들로 팝업을 띄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