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3화(53/405)
“그래서 뭐라고 했어?”
미팅이 끝나고 혼이 빠진 상태에서도 소고기 회식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둘은 비틀거리는 윤슬을 양옆에서 잡고 바로 앞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다.
그렇게 윤슬은 눈 깜짝할 새 강남역 대로변의 햄버거 가게에 앉아 남은 분노를 풀었다.
“뭘 뭐라고 해!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윤슬아 케첩 날아가….”
분노한 윤슬이 테이블을 치자 흔들린 케첩이 저 너머로 날아갔다. 힘들게 아래로 몸을 숙여 주운 재언은 커다란 손으로 섬세하게 케첩을 쭉 짰다.
재언이 짜둔 케첩을 바로 윤슬의 앞으로 놔둔 백휘가 마저 물었다.
“잘했어. 너무 화내지 말고.”
“맞아. 얼른 먹어. 먹다 보면 진정이 될 거야.”
감자튀김을 한 움큼 집어 먹은 윤슬은 콜라를 마시며 흥분을 다스렸다. 미팅할 때 재언과 백휘는 함께 들어오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장장 다섯 시간이 넘는 미팅을 한 후에야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꼭! 생각 바뀌면 연락해주세요! 믿고 있을게요~.”
언제 봤다고 마음대로 믿는 건지. 솥뚜껑 같은 두 손을 입 옆으로 둥글게 모아 청순하게 소리친 담당자를 두고 헐레벌떡 도망친 윤슬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 윤슬은 햄버거를 먹다 말고 눈앞의 두 소년을 바라봤다.
“왜. 역시 하나로는 부족해?”
“내 거 줄까…?”
왜 그렇게 매달리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담당자는 크게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프레젠테이션에 준비한 것처럼만 모델로 계약하고 싶다고. 그가 쩌렁쩌렁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소비자도! 일상 사진을 보정하는데!!! 팝업으로 누가 봐도! 화보가! 나와 있으면!!! 어색하지 않을까요! 보여주신 팀원들의 사진들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래요!”
“안 돼요. 그거 그대로 어플에 광고 넣으면 애들 얼굴 사람들이 다 보는 거잖아요! 전문 모델 쓰세요.”
“모델을 따로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얼굴에 전문성이 있었어요.”
엘더아머의 담당자가 거의 울다시피 매달리자 뒤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있던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광고 하단에 넣는 게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엘더아머 계정에만 올리면 안 될까요? 아직 한국계정이 좀 썰렁한데.”
“오, 그거 좋다.”
“저희는 안 좋은데요….”
“에이. 그러지 말고요. 사진에 있는 팀원 계정까지 태그해서 업로드 해둘게요. 이상한 댓글 같은 거 달리면 바로 삭제하고! 팔로우도 늘고 괜찮지 않아요?”
“저희 애들 SNS 안 해요. 평소에 사진도 잘 안 찍는 애들한테 굳이 그런 거 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윤슬이 또다시 거절했음에도 팀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었다.
“SNS를 안 한다니 너무 좋다. 진짜 딱이다.”
“그러게? 논란거리 없겠는데? 이번은 진짜 망할 걱정이….”
“하나도… 없네…?”
거절의 말이 오히려 도화선이 된 것처럼 이제 모두가 윤슬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안광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열망이었다.
위기를 느낀 윤슬은 이제 그만 학원 주말 보충에 가 봐야 한다는 고등학생다운 핑계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완전한 탈출은 아니었다.
[앰버서더는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최대한 편의를 맞출 예정입니다 얼굴이 많이 보이는 사진을 제외하고 주셔도 저희는 만족합니다 연예인에게 치이고 지친 저희에게 일반인으로 하는 브랜딩이라는 건 정말 놀랍고도… 더보기]다 먹은 햄버거 종이를 접어두려던 윤슬의 손이 떨렸다. 테이블 위 핸드폰에 미리보기로 와 있는 카톡을 애써 무시하고 남은 콜라를 삼켰다.
턱수염이 진한 담당자의 머리 위에 있던 스킬 주의사항을 회상하며 윤슬은 다짐했다.
「※ 목적 달성 실패 시, ♥의기소침♥해져 일시적으로 ‘화술’이 ( ??? )% 감소됩니다. [1~20% 랜덤!]
※ 랜덤 스킬 사용자에게서 5%의 확률로 소원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주의: 스킬 발동은 ( ??? )일 동안 지속됩니다.」
이 스킬 발동 기간만 지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물음표가 세 개나 있는 숫자가 두려웠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아이템 숍에서도 구할 수 없는 소원석이 조금 아쉬웠지만 미련 없이 놓기로 마음먹었다.
‘고작 5%의 확률로 받는 거니까…. 에이, 거의 못 받는 거지 뭐.’
5%의 확률에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친구들을 넘길 수는 없지.
햄버거조차 단정하게 먹는 백휘와 버거를 디저트처럼 먹고 있는 재언을 바라보며 윤슬은 아련하게 말했다.
“얘들아. 낯선 아저씨가 말 걸면 어떻게 해야 돼. 따라가야 돼? 턱수염 있는 아저씨야.”
“음… 일단 성함을 여쭤봐야겠지.”
“아니, 안 따라간다고 해야지.”
“할아버지 친구일 수도 있어서 아예 안 따라가기는 좀.”
“하… 재언아! 네가 말해봐. 낯선 아저씨가 말을 걸어.”
“…나한테?”
눈썹을 살짝 찡그린 재언이 물었다. 생각해 보니 재언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낯선 아저씨가 많은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조용히 윤슬은 남은 콜라에서 쪼로록 소리가 나도록 마실 뿐이었다.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계약금이 들어올 날을 생각했다.
* * *
이제 아침이 되면 익숙한 톡을 확인하는 것으로 윤슬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초반엔 영혼을 쏟아 길게 보내는 메시지에 예의상 자신도 길게 답장을 해주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서로 말이 짧아졌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결정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희 팀원들이 그쪽 방면으로는 생각이 없어서요. 아쉽지만 저희는 계약서 내용대로만 진행하겠습니다.]에서.
[앰버서더 합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앰버서더 ㄱ?] [앰버서더 ㄴ~] [ㅇㅂㅅㄷ?] [ㄴㄴ]까지.
윤슬은 피곤한 눈가를 꾹꾹 눌러가며 유스타에 들어갔다. 쌓인 메시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다 귀여운 고양이를 프로필 사진으로 해 둔 사람에게도 답장을 해주려고 눌렀더니.
[윤슬님~ *^^*인스타 피드가 훌륭하네요♥ 어쩐지 PPT에서도 피드버전으로 꾸민 게 인상이 깊더군요 이런 피드를 저희 브랜드에서도 선보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앰버서더?]“으아아악!!!”
엘더아머의 담당자였다. 윤슬을 이미 팔로우해 둔 그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란 의지가 돋보였다.
‘대체 며칠이나 더 남은 거지…?’
준비한 광고를 세 번이나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밖에 없었던 이의 한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음에 윤슬은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랜덤 스킬이 언제까지 발동될지 몰라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늘도 꿋꿋하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 * *
다음 날도 아침부터 거절하고 집으로 온 윤슬은 키키 게스트에서 보내준 협찬 물품들을 확인했다. 오늘따라 많다 싶더라니 엘더아머 측에서 보낸 게 절반 이상이었다.
택배 상자를 하나하나 열던 윤슬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옷들을 꺼내 펼친 순간 접힌 옷 사이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왔다.
툭-
[From. 앰버서더가 되어주시길 희망하며… 엘더아머]“하…. 편지까지….”
편지 봉투를 열지도 않은 윤슬은 핸드폰을 찾아 키키 게스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님? 이걸 왜 보내주신 거죠…? 엘더아머는 대체 왜…. 이건 그리고 제 사이즈도 아니에요.”
-그쪽에서 선물이라고 보낸다길래요. 재언 학생네 집에는 따로 보냈는데 윤슬 님한테도 들어갔나요…?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에서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와 뭔가 클릭하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아! 백휘 학생네 집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윤슬 님이랑 집 주소가 비슷해서 한 번에 다 보내졌나 봐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근데 이거 선물 맞죠? 뇌물 아니고?”
-에이. 듣자하니까 그냥 입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던데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거 거짓말이에요…. 믿지 마세요….”
체념하며 통화를 마친 윤슬은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절박한 이의 정신승리였다.
‘그냥 애들 옷 늘어나면 좋은 거지…. 어차피 안 하겠다고 확실히 했는데.’
마침 피곤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며 윤슬은 산책 겸 백휘의 집에 직접 가져다줄 생각을 했다.
* * *
“백휘 학생, 왔어요? 간식 먹을래? 장관님 선물로 좋은 화과자가 들어왔거든.”
“괜찮습니다. 이모님 많이 드세요.”
청와대 근처에 자리 잡은 조부의 2층 전원주택. 자신의 방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백휘는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하루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다는 건 백휘에게 있어서 최고의 일이었다. 이 며칠 동안은 뜬금없이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고 기껏 써둔 스케줄러에 빗금을 칠 일도 없었다. 이렇게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백휘는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한 시간만 자유 시간을 보낸 뒤 『돌머리도 할 수 있다 똘똘수학』을 다시 일 회독 할 예정이었다.
책갈피가 꽂힌 원서를 펼치던 순간이었다.
지잉-
당연히 무시하려고 핸드폰을 뒤집어 두려던 손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슬의 전화였다.
-백휘야, 지금 뭐해?
“지금? 그냥 있지. 윤슬이 너는?”
-괜찮으면 오늘 나올래? 나 너한테 줄 거 있는데.
“…….”
-바빠? 그럼 다음에 주고.
“그럴 리가. 나오라면 나와야지. 나 원래 말 잘 듣잖아.”
조심스레 펼쳐놨던 책을 아무렇게나 휙 덮은 백휘가 일어섰다. 책갈피까지 곱게 꽂혀 보관되던 책이 책상 구석에 처박혔다. 집 앞으로 가겠다는 윤슬의 말에 방금 전까지 여유로웠던 마음이 다급해졌다.
모든 일정이 어긋났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 * *
‘오, 진짜 부잣집.’
담벼락을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던 문이 드디어 나왔다. 성벽처럼 높게 쳐진 담은 거대하고 고급스러웠다. 결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문패를 보던 윤슬이 자그마한 초인종을 눌렀다.
“외액-!”
남다른 벨소리가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대문이 열렸다. 열리는 소리마저 묵직한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보니 잘 정돈된 정원이 널찍하게 보였다.
돌바닥을 밟으며 주위를 구경하던 윤슬은 빠르게 달려오는 백휘를 마주했다.
“백휘 하이~”
“내가 가도 되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안 힘들었어?”
“조금 힘들었어. 아니 진짜 아무리 걸어도 그냥 너네 집 담벼락이더라.”
윤슬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든 백휘는 오늘따라 반짝반짝했다. 윤슬은 그런 백휘를 가만히 보다 물었다.
“어디 다녀와?”
“…어?”
“왜 이렇게 차려입었지? 아무리 봐도 집에서 있는 옷이 아닌데.”
각이 잡힌 셔츠에 살짝 넘긴 머리를 하고 있는 백휘는 잠시 고민하다 나긋하게 웃어 보였다.
“음…. 별로야? 안 어울려?”
“아니 좋은데.”
“좋아?”
“어. 좋아.”
“그럼 매일 이렇게 입고 다녀야지.”
걸을 때마다 평소와 같은 백휘의 향수가 코끝에 닿았다. 쇼핑백만 주고 좀 더 혼자 걸으려던 윤슬은 백휘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진짜 이쯤 되면 박탈감도 안 느껴진다….’
몇 대가 쌓은 부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윤슬이 들어 온 현관문 입구에는 유려한 붓글씨로 쓰인 족자가 걸려 있었고. 얼핏 봐도 장인이 만든 것 같은 가구 위에는 매끄러운 도자기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중후해 보이는 짙은 나무 빛깔의 집 거실 끝자락에는 자갈이 깔린 조경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집안은 한눈에 담기도 어려웠다.
“좀 거리감 느껴지려고 해….”
윤슬은 중얼거리며 백휘를 따라 걸었다. 방까지 걸어가는 거리조차 제법 멀었다. 작게 소리 내어 웃은 백휘가 문을 열어주자 사진에서 봤던 그 방이 나왔다.
“이거 내 선물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엘더아머에서 보낸 선물. 안에 맘대로 편지도 넣었더라.”
쇼핑백을 열어 본 백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지를 뜯어 읽었다. 빠르게 읽어 내린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편지에서 뭐래?”
“똑같지. 사진 좀 쓰게 해달라던데.”
어깨를 으쓱해 보인 백휘는 편지를 고이 접어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윤슬의 맞은편으로 백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공간이 온통 백휘에게서 나는 향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