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4)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4화(54/405)
“신경 쓰지 마. 사진 못 쓰게 할 거야. 근데 옷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왔지.”
“거짓말.”
“뭐가 거짓말이야.”
“권재언만 예뻐해 놓고…. 난 잘 안 어울린다고 혼자 버려두고.”
가늘게 눈을 뜬 백휘가 못마땅하다는 듯 단단히 팔짱을 꼈다. 윤슬은 대놓고 하는 투정이 귀여워 크게 웃었다.
“뭐야. 최백휘 논란발언~”
“맞잖아. 걔한테만 가서 사진도 찍어주고. 하…. 난 이용만 당했지.”
“그래서 오늘은 너한테만 왔잖아. 얼른 팔짱 풀어. 어허.”
작게 웃은 백휘는 윤슬이 달래주기 좋게 상체를 기울였다. 윤슬은 시위하던 팔짱을 얌전히 풀어 둔 백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앰버서더 하면 계약조건 달라져?”
“아마 그렇기야 할 텐데…. 그래도 신경 쓰지 마.”
“왜? 그럼 좋은 거잖아.”
“네가 그런 걸 싫어하는데 뭐가 좋은 거야.”
회귀 전 제인의 브이로그에 몇 초간 얼굴이 나왔던 백휘였다. 단 한 장면으로 온갖 커뮤니티가 뒤집어졌는데도 백휘의 개인 SNS는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가 더 보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던 백휘는 제인의 Q&A에 무조건 나왔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Q. 언니ㅠㅠ 그때 나왔던 오빠 언니 남친 아니에요? 커플 브이로그 해주시면 안될까요…
Q. 그때 그 오빠 얼굴 더 보고 싶어요 진짜 념념굿
Q. 15분 1초남 계정 알려주심 안돼요?ㅠㅠㅠㅠㅠㅠㅠ 제발요 30초로는 부족해요
‘그때마다 제인이가 백휘는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해서 계정이 없다고 답했지.’
윤슬은 굳이 인터넷에서 백휘의 이야기가 이전처럼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킬 마음도 전혀 없었고.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백휘와 눈을 맞춘 윤슬은 다시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때였다.
띠링-!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이해도 +10
이름: 최 백휘
▶이해도: 80/999
▷인물에 대한 이해도 상승으로 랜덤 보상을 얻었습니다.
히든 보상
○‘두근두근 초대권’이 지급되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알림이 떠서 꺼뒀던 이해도가 어느새 생각보다 높게 올라 있었다. 히든 보상이 지급되었음에 윤슬은 슬쩍 곁눈질로 인벤토리를 봤지만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두근두근 초대권 어디 있지, 그냥 로딩이 안 되고 있는 건가?’
똑똑-
문밖에서 나지막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다정한 물음이 따라왔다.
“백휘 학생, 간식 가져왔어~”
그 말에 한 치의 의심 없이 문을 연 백휘가 뻣뻣하게 굳었다. 이모님 뒤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조부가 있었다.
“우리 백휘! 손님이 왔구나~?”
이쪽을 향해 매서운 눈길을 보내는 백휘의 조부, 최강묵 씨는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나, 백휘 할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럽고 매너 있는 자세로 윤슬에게 악수를 청했다. 윤슬은 작고 하얀 손으로 최강묵의 손을 마주 잡았다.
“네! 안녕하세요. 백휘 친구, 서 윤슬입니다.”
“우리 백휘한테 이런 친구가 있었네~. 처음 보는데.”
역시 보는 눈 있게 키운 보람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이 조그맣고 잘 빚은 꿀떡 같은 여자애. 반질반질하고 귀티가 나는 것이 최강묵은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백휘가 스스로 자기 방에 들이기까지 하다니 여간 괜찮은 아이가 아닌 듯싶었다.
자리에 앉아 이모님이 갖다주신 접시 위의 화과자에 포크를 찍어 윤슬 쪽으로 다정하게 내민 강묵은 티 나지 않게 속으로 가늠했다.
자신의 까다로운 큰 손자가 친히 방으로 들일 만큼 친한데, 자신이 모르고 있는 아이라는 건 대체 어느 집 자제인지 꼭 알고 싶었으므로.
“얼른 들어요~ 자 귀여운 토끼 모양~”
“와~ 감사합니다~”
옆에서 얼른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는 큰손자는 모르는 체 강묵은 백휘의 몫이었던 캐모마일 티를 마셨다.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백휘쪽으로는 일부러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최강묵은 윤슬에게 친근히 말을 건넸다.
“그래. 이 집에 놀 것이 없어서 심심하지는 않아요~?”
“아, 저희 사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백휘가 사진을 참 잘 찍지요.”
“네! 맞아요. 그래서 저희 팀 리더입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정치인의 능구렁이, 최강묵의 눈이 반짝 빛났다.
“팀? 혹시 그 어플?”
“네. 백휘랑 같이 만들고 있는 그 어플 팀입니다. 저랑 백휘랑 다른 친구까지 해서 셋이서 해요.”
“정말 대단하구만! 내가 딱 원하는, 아주 그림 같은 학생이에요. 응? 문화를 선도할 줄 알아. 그래, 학교는 어디를 다니고?”
“이 근처 덕현여고 다녀요.”
최강묵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한번 듣고 본 건 웬만해서는 까먹는 법이 없었다.
덕현여고와 서윤슬? 강묵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낯선 듯 익숙한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자 얼마 전 자신의 비서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뇌리를 스쳤다.
“그래. 장매란이가…. 오랜만에 재단에 방문했다고.”
-네 회장님. 이제 장매란 회장님도 마음을 추스르신 것 같습니다.
“오래 됐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사업을 이끌어 나가던 매란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 건, 자식과 손자를 한 번에 비행기 사고로 잃어버린 후였다.
집 밖으로 나오지도,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고 그 넓디넓은 한옥 안에서 은둔하던 매란이었다. 그런 매란의 소식은 천금보다도 귀한 것이었다.
-재단으로 오셔서, 손녀분의 일을 처리하셨다고 하는데요.
“손녀? 장매란이는 손녀가 없는데. 뭘 잘못 안 게 아니야?”
-친척분인가 했는데, 성을 들어보면 아예 남 같습니다.
“흐음. 이름이?”
-서 윤슬 학생입니다.
종로의 뿌리 깊은 충신 집안. 조선시대 때부터 왕의 곁을 지킨 장씨 가문. 해방 이후 종로의 모든 것들은 장씨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던, 그 거대한 권력!
그런 대단한 집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란의 은둔을 아쉬워하던 정치판의 거물들이 몇이던가.
그런 매란이 이제는 움직인다는 소식에 몇 번이나 찾아가 봤지만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던 최강묵의 심장이 요동쳤다. 머릿속의 모든 퍼즐이 딱 맞춰졌다.
“자네 할머니 성함이… 장매란이 맞나?”
“할아버지. 뭘 그런 것까…지 물으세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지요~. 윤슬 학생, 응?”
최강묵의 눈동자에는 사랑이 묻어났다. 백휘는 타고난 눈치로 최강묵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인간이 저렇게 굴 때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장매란?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성함을 곰곰이 생각하던 윤슬의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장매란 여사님 일반 병실에 모시면 어떡하나!”
“죄송합니다. 갑자기 방문하셔서….”
“미쳤어? 당장 일인실로 이동해!”
병원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 그리고 그때 들은 할머니의 이름.
“아, 저희 할머니 맞아요! 친할머니는 아니시지만….”
환하게 웃는 사랑스러운 하얀 얼굴. 굴러들어온 꿀떡.
“내가 윤슬 양 할머니 친구예요, 친구! 나도 친할아버지처럼 여겨요~”
최강묵은 진심으로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늘 아침마다 바라보는 청와대에 이제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혹시… 덕현여고 다니면 집이… 할머니랑 같이 사나?”
“네! 할머니랑 엄마랑 셋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자, 하나 더 먹고, 많이 먹어요. 다음엔 우리 백휘가 윤슬 양네 집에 놀러가도 되겠지요?”
“그럼요~”
“이 할아버지도… 초대해주나…?”
“아, 할아버지. 좀.”
사과 앙금이 들어간 벚꽃 모양 화과자를 먹은 윤슬이 고개를 끄덕이며 히히 웃었다. 강묵도 진심을 다해 환하게 웃었다.
‘꿀떡아!!! 할아버지가 맛난 거 줄 테니 할머니에게 가서 내 칭찬 좀 해주지 않으련?’
아직 받지 못한 초대권, 즉 인벤토리를 채워 줄 NPC가 윤슬에게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 * *
최강묵은 신이 났다. 어쩜 우리 큰손자는 하는 짓이 이렇게 다 예쁜지 몰랐다.
‘장매란이 손녀랑 친하다 이거지? 아고, 그 작은 꿀떡 같은 것.’
일본 장인이 만든 도자기 화분에 담긴 난을 슥슥 닦으며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마음속으로 윤슬을 손녀 며느리로 찜한 강묵은 비서를 소환했다.
“요즘 여학생들은 뭘 좋아하나?”
“옆의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계란찜과 주먹밥 추가는 반드시 챙겨야 할 덕목입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강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한 표정의 비서는 오늘도 참 눈치가 없었다.
“그래도 그걸 선물로 줄 수는 없지 않나.”
“…아! 선물 말씀이십니까.”
강묵은 조금 한숨 쉬었다. 다 닦은 난을 창가에 보기 좋게 두자 비서가 말을 이었다.
“가수 콘서트 티켓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오. 그거 좋지. 자네 요즘 가수 중에 누가 핫한지 아나?”
가요계는 하도 유행이 빨리 바뀌어서 지난 국가 행사 때 온 애가 이번에는 바뀌어 있고 그랬다. 최강묵은 작은 꿀떡이에게 제일 핫한 가수 콘서트 티켓을 주고 싶었다. 그 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 딱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저는 역시 클래식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효녀가수 현순만 한 가수가 없죠.”
최강묵은 싸늘하게 비서를 바라봤다. 트로트의 시대는 반드시 다시 온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비서는 답이 없어 보였다.
“나가게….”
“…네.”
닫힌 문 너머에서 꿋꿋하게 주장하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정말 요즘 가수 맞습니다. 최근에 17집 흔들리는 불빛 속의 당신과 나 앨범을 내셨습니다.”
강묵은 착잡하게 컴퓨터를 켜 콘서트 티켓 가격대를 비교했다. 문화부 장관다운 트렌디함.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기는 곧 액수와 비례했으니. 그러던 중 이거다 싶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20회 그림 콘서트: TRAVEL TO KOREA BEGINS]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몰라 일단 다 나오는 것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마침 바로 다음 주에 시작되는 콘서트였다.
연락을 넣어 제일 좋은 자리의 초대권을 손쉽게 구한 최강묵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창가에 둔 난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았다.
백휘는 몰랐다. 이날 콘서트 티켓 하나 줬던 걸로 이 정치인이 얼마나 오래 우려먹을지는….
아마 알았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 *
“…이게 뭐야?”
윤슬은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백휘가 테이블에 놓아둔 콘서트 티켓을 봤다. 세 장의 종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너 아이돌 좋아해?”
재언도 티켓을 확인하고는 느릿하게 말했다. 둘의 시선을 받은 백휘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니… 너네, 주라던데. 우리 집 정치인… 아니, 할아버지께서.”
윤슬은 가만히 티켓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들어 라인업을 검색했다.
콘서트 출연진의 목록을 보던 윤슬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윤슬아. 좋아하는 사람이 안 나와?”
재언이 커다랗고 따뜻한 손가락으로 슥슥 윤슬의 찌푸려진 미간을 문질렀다. 그러자 바로 백휘는 재언의 손목을 집어 친절하게 티켓을 쥐여 줬다. 윤슬의 미간에서 바로 손을 뗀 순간은 체감상 일 초가 걸리지 않았다.
“자, 너도 봐. 날짜 확인해야지. 혹시라도 바쁜 일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산뜻하게 웃은 백휘를 보며 재언은 이제 통역이 되는 것 같았다.
-오지 마라.
재언은 티켓을 가볍게 한번 훑고 다시 테이블 위에 놨다. 둘 다 윤슬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대권이 이거구나… 가야지…. 꼭! 갈 거야.”
어딘가 다짐한 듯 윤슬의 목소리가 음울하게 울렸다. 누가 보면 콘서트가 아니라 전쟁에 나가는 사람 같았다.
윤슬의 핸드폰 화면에는 여전히 출연진 목록이 떠 있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는 지금 받은 초대권 외에 하나의 아이템이 하나 더 들어차 있었다.
윤슬은 이 두 개의 아이템으로 아직까지 랜덤 스킬 발동이 끝나지 않은 담당자를 잠재울 예정이었다.
‘겸사겸사…. 돈 더 되면 좋고.’
지금 완성된 어플의 사용자 수 역시 놓치지 않고 잡을 생각을 하며 티켓을 꼭 쥐었다.
* * *
윤슬은 집으로 돌아와 인벤토리를 열었다. 어제 미션 완료창이 뜨며 받은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잊기 전 노트를 꺼내 그림 콘서트 출연진의 회귀 전 활동들을 적어 내려가던 윤슬은 이 중에 가장 이용 가치가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쓸 수 있는 필름이 많이 없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