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8)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8화(58/405)
“우리, 밥 먹기 전에 잠깐 근처 서점 갈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위로 올라가도, 주변에서는 청현 얼굴이 더 나오지 않겠냐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영화관을 나섰다.
그래서 지금 윤슬은, 남성 잡지 ‘MQ’를 손에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
윤슬의 SNS에 하진의 팬들이 끝없이 좋아요와 메시지를 보냈을 때부터 느낌은 불길했다.
어플을 잠깐 홍보하려 했을 뿐인데, 어느새 어플보다 하진에 중점이 맞춰져 있었다. 포커스가 날아간 사진처럼.
‘어쩐지 뭔가 불길하더라니….’
늘어나는 팔로워. 외국인들까지 아이디는 전부 하진에 관련된 것이었다. 영화 카메오로 나온 아이돌 청현 역시 하진과 같은 그룹이었다. 모든 것이 빨간 불처럼, 그렇게 윤슬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윤슬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윤슬은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을 보고 달려온 백휘와 재언에게 웃어 보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너네는 책 다 골랐어? 우리 그럼 이제 갈까?”
손에 든 잡지의 표지에서는 흑백으로 담겨져 있는 하진이 있었다. 미소를 띠고 있는 그 표정은 마지막 한 부마저 전부 팔린 뒤였다.
윤슬은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키며 쥐고 있는 샘플 잡지를 계산했다.
“손님 이건 샘플인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새 거 안 사도 되거든요.”
‘…윤슬이는 혹시 저런 남자가 취향인가?’
‘지난번에 카메라를 부순 것도 저 사람 때문인가.’
윤슬은 봉투가 필요하냐는 말에 아뇨, 됐어요. 대답한 다음 모서리가 구겨지든 말든 가방 안에 잡지를 쑤셔 넣었다.
* * *
인터뷰 전문을 본 윤슬은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자신이 불러 모으고 싶었던 건 대중이었는데 타깃층은 아이돌 팬층만으로 한정되었다.
‘대중들의 입에 올라가는 건 어플이 아니고 하진 하나뿐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하진이다. 대중은 흑백사진이 잘 어울리는, 팬이 직접 어플까지 만들어주는 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하진을 엘더아머 브랜드 모델로 세우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애써 생각했다. 윤슬은 이 흐름이 굳어지기 전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슬님~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주시고? 혹시 앰버서더?
“아뇨아뇨. 그, 혹시 요즘 하진… 아세요? 네네. 제 생각엔 지금 하진으로 모델 결정하시면 어떤가 해서요. 브랜드랑도 잘 어울리고 어플이랑도 잘 어울리고.”
-아. 되게 잘 어울리긴 하더라구요. 반응도 좋고, 근데….
“네, 그런데…?”
윤슬은 담당자의 다음 대답을 기대했다.
제발… 가봅시다!
-저희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연예인으로 하는 전문 화보보다는 일반인이 찍는 일상 사진이 좋아서요. 흠. 그리고 그 학생들로 진행하면 연예인 같은 일반인으로 바이럴이 될 것 같은데요.
‘망했다….’
단순히 생각한 게 문제였다. 윤슬은 전화를 끊고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쳤다.
엘더아머랑 잘 어울리는 남자면 모델로 좋다! (X)
엘더아머랑 잘 어울리는 일반인 느낌이 좋다! (O)
‘이대로는 안 돼. 만약에 하진이 엘더아머 모델이 안 되면 이 어플 그냥 하진 어플 된다.’
이러면 윤슬과 브랜드 모두가 손해다. 하진만 이득을 보는 구조가 완성되고 만다.
그렇게 결론 내린 윤슬은 하진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일상 사진 느낌이 그렇게 좋다면 이제는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엘더아머가 일상 사진을 원한다면 일상 사진을 줘야지. 하지만 일반인이 아니라 연예인으로.’
그것도 윤슬이 잡아 온 하진으로 만드는 수밖에.
* * *
“이렇게 되면… 빠순이밖에 안 되잖아.”
아이돌의 팬을 지칭하는 말. 속된 언어로 빠순이. 윤슬의 팀이 만들어 낸 성과는 잘못하면 사회에서 ‘빠순이 어플’로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끝날지도 모른다.
하진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만든 어플도 아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완성했다 쳐도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연인을 위해서라면 로맨틱, 친구를 위해서라면 멋진 우정,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대단한 효, 하지만 연예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절절한 마음도 그저 빠순이가 된다.
며칠 만에 들어가 본 유스타의 메시지창은 아직도 하진 어플 언제 나오냐는 물음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혹시 어플 언제 나와요?
-어플 나오는 일자라도 써줘요ㅠ 너무 무책임? 하신 거 아닌가… 기다리는 사람 생각좀 해주세요
-왜 멤버 하나에만 애정 쏟으시는지 진짜 궁금해서 메시지 보내요ㅋㅋ 평소에 좋게 봤는데 그냥 악개세요? 굳이 한멤만 콕 찍어서 사진 푼 게 의도가 없었다고는 안보여요 그저 투명….더보기
“와… 인생…. 부질없다.”
평소 윤슬의 팔로워들이 다정하게 보내주던 메시지함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윤슬님~ 지난번에 바보멈 좋아하신다고 하셔서!ㅎㅎ 마침 저 바보멈 팝업카페알바 하게 돼서 연락드려요! 오시면 제가 멈멈도넛 하나 서비스로 드릴게요 (*ૂ❛ᴗ❛*ૂ) ♥
-언니 옛날에 고민상담 해준 사람인데 혹시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저 친구들이랑 그때 잘 풀었고 언니 덕에 이제 혼자 다니지 않아요..ㅠㅠ… 가끔가다 그때 생각만 하면 언니한테 너무 고마워요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해지는 게 이쁘더라구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그냥 사진 보내봐요ㅎㅎ 귀찮으실 텐데 죄송합니다! 답장은 안 주셔도 돼요
팔로워는 그새 몇천이나 늘어나 있었지만 윤슬은 이전의 메시지함이 그리웠다.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런 작은 호의가 힘이 되고는 했었다.
윤슬이 아무리 피곤해도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고 꼬박꼬박 답장했던 건 누군가의 대가 없는 마음을 꽤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띠링-!
「▶System
【미션: 메인】
▶군중 속의 고독은 안녕!
많은 인플루언서는 팔로워들 사이에서 외로워합니다.
작은 친절을 베푼다면, 그들은 잊지 않을 거예요!
( 1,000명 )이상의 사람에게 ( 고맙다 )라는 인사를 받으세요.
※ 범위는 온라인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보상
○[당신은 나의 보석 (C)] 스킬 등급 상승
○화술 스탯 상승
수락하시겠습니까?
[ Yes ] [ No ]」“내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 건가?”
고독을 씹는 시간조차 일하라고 채찍질하는 상태창의 만행을 노려보던 윤슬은 눈을 깜박였다. 본 적도 없는 숫자가 나타나 있었다.
“천 명…?”
아련했던 마음들이 산산조각 났다. 심지어 시키는 일에 비해 보상은 너무나 탐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좋좋소에서 험난하게 키워졌던 윤슬은 이 정도로 절망조차 하지 않았다. 깔끔한 노비의 마인드로 Yes 버튼을 눌렀다.
미션이고 뭐고 일단 일을 수습하는 게 훨씬 중요했다. 잡생각을 접고 일단 할 일을 해야 했다.
“기한 없는 게 어디냐….”
윤슬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키키 게스트 팀장님☎]“아, 지금 밤 아홉 시 넘었지.”
전화를 하려던 윤슬은 직장인의 마음가짐을 살려 예약 메일을 발송했다. 잡지에서 인터뷰를 했다면 키키 게스트에서도 인터뷰를 시킬 생각이었다.
[해당 메일을 오전 11:00 발송하도록 예약하시겠습니까?] [Yes] [No]딸칵-
윤슬은 Yes를 눌렀다.
그리고 아직 SNS에서 업로드 되고 있는 하진의 흑백 보정 사진들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진아. 나 대학가야 된다.”
사실 윤슬은 어플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미 수시전형을 생각했으며 한발 앞선 큰 크림을 그리고 있었다.
[학생 때부터 사진과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으며, 키키 게스트에서 에디터 활동을 했다. 10대와 20대의 호응을 얻어 몇 개의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SN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보이는 사용자의 인상.각자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위한 퍼스널 브랜딩을 위한 어플 개발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스포츠 브랜드와의 콜라보 …]
이게 윤슬이 생각하는 완벽한 자소서의 시나리오였다. 1학년 때 이 정도로만 해두면 2학년, 3학년 때는 더 포장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키키 게스트와 엘더아머라는 인맥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더 빨리,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열심히 세워둔 내 계획을 망칠 수는 없지.’
윤슬은 그날 밤새 하진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윤슬은 PPT 장인의 영혼을 그날 다시 한번 꺼냈다.
* * *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키키 게스트 본사. 윤슬의 담당 마케팅 팀장은 유난히 햇살 좋은 주말에 출근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복덩이가 부탁하는데.’
“아,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걸어 온 윤슬을 보며 팀장은 마주 웃었다. 윤슬은 작은 손에 간식거리를 가득 쥐고 와 팀장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유, 뭐 이런 걸 가지고 왔어요.”
“에이~. 저 때문에 주말에 출근하게 되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1층 도넛 맛있던데요?”
윤슬은 능숙하게 도넛 상자를 깠다. 쫀득하고 고소한 츄이스티 도넛, 설탕 코팅을 입혀 달달한 글레이즈드 도넛, 지나치게 달지 않지만 입 안에 넣으면 초콜릿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카카오 도넛 그리고 담백한 베이글까지.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팀장은 옆에서 뜨겁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어어. 아니에요. 편하게 드세요.”
베이글을 집자 여전히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슬은 자리를 뜨고 있지 않았다.
“팀장님. 저에게 뭐 해주실 말 없으실까요? 이 도넛들을 한번 보세요.”
“…오늘 미팅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그 말을 기다렸던 건 아닌지 윤슬의 눈썹이 내려갔다. 가뜩이나 처진 눈이 더 시무룩해져 있자 팀장은 알았다는 듯 카카오 도넛을 윤슬에게 내밀었다.
“이거 내가 먹을까 봐 그렇구나! 자! 초코 맛. 윤슬 씨가 먹어요.”
“감사합니다….”
“에이, 내가 감사하지! 도넛 고마워요.”
“네!!!”
초코 도넛을 들고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미팅룸으로 사라지는 윤슬을 바라보며 팀장은 기대했다.
‘이번엔 또 뭘로 놀라게 해주려나.’
팀장은 홀짝. 윤슬이 준 커피를 마시며 베이글을 하나 집어 먹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따뜻하고 쫄깃했다. 베이글을 잡길 잘한 것 같았다. 초코 도넛을 자신이 집었다면 윤슬이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았다.
약속 시간을 조금 넘기고, 키키 게스트 미팅실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팀장 앞에 걸어와 인사한 그는 하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실물로 뵈니까 사진보다 훨씬 더 멋지신데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오늘 편한 느낌으로 오라고 하셔서 헤어 세팅은 힘 좀 뺐는데…. 괜찮나요?”
“너무 괜찮아요. 저희 이제 안내해 드릴 테니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침을 다 먹은 팀장은 능숙하게 그를 미팅룸으로 인도했다. 가장 안쪽 룸으로 들어가며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기다리고 있는 윤슬의 귓가에 확실히 닿았다.
“그럼, 얘기 편하게 하세요.”
팀장이 문을 닫았다. 딸깍하고 문고리가 돌아가며 닫히는 소리에 하진은 당황했다.
“어…? 팀장님은 여기 안 계세요?”
뒤를 봤지만 이미 팀장은 발걸음을 옮겨 미팅룸을 나간 후였다. 룸 안에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여기 앉으세요.”
놀란 눈으로 순순히 윤슬의 맞은편에 앉아 하진은 태블릿을 자신에게로 밀어주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잘 쳐줘 봐야 스무 살인데…. 연줄로 들어온 인턴, 뭐 그런 건가?’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업계에서는 연줄과 빽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턴들이 발에 채였다. 어리고 실력 없고, 연예인을 구경하러 왔거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나에 취해 있는 사람들.
‘그래도 얘는 최연소다. 제일 어리네.’
하진은 가만히 순한 얼굴의 소녀를 쳐다봤다. 올망졸망하게 처진 눈이 살짝 접히며 웃음을 짓고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윤슬입니다.”
“…네. 인사가 늦었네요. 하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 아시죠?”
“네?”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매서운 눈이 윤슬을 향해 잠깐 의문을 가졌다가 이윽고 가만히 깜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