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5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59화(59/405)
“저 아시죠?”
‘네가 누구신데요…?’
팬 사인회에 온 팬 같은 대사를 한 윤슬이 환하게 웃었다.
“아 제가 너무 대뜸 물었죠. 마음이 급해 가지고… 저 그림콘서트 사진 찍었던, 왜 그 어플. 인터뷰에서 감사하다고 언급해주셨잖아요.”
“그림 콘서트….”
잠깐 생각하던 하진은 커다란 손으로 박수를 짝, 쳤다. 날카로운 얼굴에 웃음이 번지니 한층 보기 좋았다. 하진의 뺨에 작은 인디언 보조개가 파였다.
“와. 이런 데서 다 만나 뵙네요.”
하진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더 반가운 티를 냈다. 윤슬도 그런 하진을 보며 더 환하게 웃었다.
“제가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거든요. 그 인터뷰 때문에.”
“정말 제 팬이셨구나. 혹시 사인이라도 해 드릴까요? 제 차에 저희 이번 앨범 있거든요. 그거 가져올 테니까-”
이렇게 적극적인 팬을 만나 기쁘다는 듯 하진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최대한의 팬서비스를 했다. 5년 차 아이돌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윤슬은 웃으며 거절했다.
“에이. 저희 오늘 이야기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차에 갔다 오시면 안 되죠. 앉으세요.”
“그럼 끝나고 드릴게요. 꼭.”
“앨범 말고….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세요.”
“네?”
마시던 커피의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킨 윤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하셨던 MQ 인터뷰 봤어요.”
“아. 그거요.”
온라인에서 정말 빠르게 품절이 된 데다가 오프라인에서도 역시 물량이 부족했다고 들었다. 그것마저 챙겨보다니 정말 자신의 팬이 맞는 것 같아 하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말을 하는 윤슬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어플을… 오피셜로 팬이 만든 걸로 대답을 하셨더라고요?”
한쪽 볼에 얼음을 넣어 다람쥐 같은 볼을 한 윤슬이 하진을 바라봤다. 하진은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며 대답했지만 그런 말을 바란 게 아닌지 윤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시죠? 원래 뭐든 오피셜로 말을 해버리면 나중에 뒤집기 힘든 거.”
“네, 그쵸. 알죠. 근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문제… 있죠….”
마주하는 윤슬의 눈에 어딘가 은은하게 광기가 서려 있었다.
“문제… 그래, 문제가 있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윤슬의 얼굴에서 하진은 어딘가 데자뷰를 느꼈다.
‘뽀식이.’
늘푸른빌라 201호의 제왕, 뽀식이를.
옆집 아주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인형 같은 포메라니안, 뽀식. 작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뽀식이는 전투력이 상당했다. 늘푸른빌라뿐만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은 모두 뽀식이를 알고 있었다. 뽀식이가 오기 전 동네의 영원한 제왕이었던 치와와. 와르메스마저도 한 번에 네 발로 기어가게 만들었으니까.
“와르메스! 네가 참아!”
말리는 주인을 뿌리치고 뽀식이에게 달려든 와르메스는 그 뒤로 산책을 하다가도 포메라니안만 보면 낑낑 앓는 소리를 냈다.
뽀식이의 주인인 늘푸른빌라 201호 아저씨는 뽀식이에게 키링처럼 달랑달랑 끌려다니고는 했다.
진정 강한 개는 짖지 않는다. 오로지 한 번의 으르렁으로 제압할 뿐.
8살 때 하진이 느낀 세상의 진리였다.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동그란 눈에 은은한 광기를 담아서 이빨을 드러내던 뽀식이의 얼굴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강렬함이 있었다.
하얗고 말랑한 얼굴 위로 뽀식이의 잔상이 보이는 느낌에 하진은 잠깐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희가 팬심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만들었거든요.”
“무슨 계획이요?”
“고등학생이 계획이면 대학밖에 더 있겠어요? 수시 쓰려고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잘 돼 가지고…. 엘더아머 아시죠? 최근에 그 브랜드랑도 광고 계약을 했거든요. 전속으로.”
“와, 대단하네요. 광고면 무슨 광고예요?”
“한 번 보여드릴게요. 태블릿 켜보세요.”
하진이 커다란 손에 쏙 들어오는 태블릿 화면을 키자 그 안에는 어플 베타 버전이 들어 있었다. 맞은편에서 윤슬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어플의 설명을 했다.
“무료인데 필름처럼 보정하려면 저장 버튼 누를 때 광고 팝업 뜨게 할 거예요. 이렇게 눌러 보면….”
저장 버튼을 누르자 광고 팝업이 하나 떴다. 팝업창에는 윤슬이 찍은 하진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엘더아머의 로고가 새겨져 마치 브랜드 광고 같았다.
“짠. 괜찮죠?”
“내 사진으로 했네요.”
윤슬은 잔잔하게 웃고 있는 하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협박보다는 부탁이 먹힐 타입이군.’
나는 두 가지 안을 준비해왔다. 상태창을 볼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상대에게 맞출 생각이었다.
A안
협박한다.
“네가 만일 엘더아머의 브랜드 모델을 안 한다면! 너 대신 요즘 치고 올라오는 라이징 남돌을 대표로 세워버린다! 그럼 반응 어떻게 나갈지 예상가지?”
[아차차! 내 것이 아니었네~. 하진, 멋쩍은 미소] [하진 물렀거라~ 여고생 마음 사로잡은 염호] [대세는 염호! 타이틀 ‘불길’로 팬들의 마음도 활활]기사 타이틀은 안 봐도 훤하겠고.
-하진 망신살 레전드ㅋㅋㅋㅋ 얘 사주에 망신살 있는 듯ㅜ
-설레발치면서 인터뷰한 거 내가 다 공감성 수치…
-그 그룹 팬들 후배그룹 견제질 하는 거 꼴도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싶음ㅋㅋㅠㅠ 그 보정 즈그들만 쓸 수 있단 식으로 우기는 거 이제 못하겠지ㅉㅉ
커뮤니티 반응까지.
내가 갖지 못할 바에야 부숴 버리겠어 버전이다. 아니면.
B안
동정심에 호소한다.
“흑흑. 하진 씨가 인터뷰까지만 안 했어도 오피셜 하진 팬 어플 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이제 앞으로 시리즈로 준비해놨던 다음 어플들도 모두 하진 팬 어플이라는 이름이 붙겠죠. 전 이제 입시도 입사도 모두 미끄러질 거예요. 4대 보험도 들어주지 않는 악덕 좋좋소에 들어가서 야근을 매일같이 하며 일만 하게 될 거예요…. 이제 하진 씨가 모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전 끝이겠죠.”
내 인생 책임져 버전.
이걸 위해 하진을 만나기 전 포인트까지 털어서 아이템까지 구매한 뒤였다. B안이 조금 억지 같아도 설득당할 수밖에 없게끔.
「▼상세 설명▼
아아, 마이크 테스트 (사용 시간 1시간)
: 마이크를 쥔 MC처럼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한다! 설득력 (37+)으로 늘어납니다.
※ 인원이 10명 이하일 경우에는 더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두 가지 안을 다 취소하고 C안으로 가기로 했다. 어쩌면 가장 자신 있는 방향이었다. 나는 하진의 상태창을 훑으며 여전히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상태창>
이름: 하 진
나이: 25
키: 187cm
몸무게: 77kg
체력: 287HP/999
매력: 333/999
사진촬영: 777/999
사진보정: 10/999
화술: 210/999
[스킬: 지치지 않는 법 (S)] [스킬: 인생 샷을 찍혀줄게 (C+)]!Debuffs! 슬럼프
→디버프로 인해 스킬 [지치지 않는 법] 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디버프로 인해 스킬 [인생 샷을 찍혀줄게] 스킬이 잠금 되었습니다.」
“운동 좋아하시죠?”
“에이. 좋아한다기보단, 그냥 해요.”
“사진도 잘 찍으시고. 아무래도 많이 찍으셨으니까 잘 나오는 포즈나 노하우 같은 거 있으시죠?”
“잘 찍는다기보단… 그냥 해요. 윤슬 씨 같은 팬 분들이 워낙 잘 찍어주시니까.”
하진은 양아치 같은 얼굴과 다르게 겸손한 상태로 내가 하는 칭찬을 흘려내듯 받았다. 연예인이라면 이런 칭찬쯤은 지겹도록 들어봤을 텐데 어쩐지 그의 표정은 조금 공허해 보였다.
‘디버프 상태가 이런 건가?’
스킬이 잠금도 되는 건 처음 알았다. 회귀 전의 내 나이와 똑같은 하진이라 왠지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몇 번 더 버튼을 눌러 다양한 버전의 엘더아머 광고 팝업을 보여주었다. 예시는 아홉 개. 모두 그의 사진이었다.
“제가 SNS에 하진 씨 사진에 어플을 써본 거는요. 그날 다른 연예인들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이거다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진짜로!”
물론 뻥이다. 너만 찍었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하진의 마음이 조금 말랑해지는 게 보였다. 동시에 호감도가 살짝 올라갔다.
띠링-!
「♥호감도: 49(20↑)/999」
“그러다 딱 와. 너무 좋다. 진짜 잘 어울린다, 해서 올리게 됐어요. 마침 얼마 전에 이렇게 언급도 해주시고.”
“네. 하하. 감사합니다.”
“아까 말한 문제는 사실 뭐 크지는 않아요. 하진 팬 어플이라고 사람들이 인식을 하기 시작한 건 쉽게 바꿀 수도 없는 거잖아요.”
“아…. 그렇죠. 제가 생각 없이 언급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에요. 오히려 잘 됐어요. 저는 거기서 딱! 한 글자만 바꿨으면 좋겠는 거예요. 부탁 한 번만 들어주시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뭔데요?”
“팬 한 글자만 빼기. 하진 팬 어플에서 그냥 하진 어플로요.”
“…네?”
“엘더아머 브랜드 모델이 되면 이제 사람들이 그냥 부르기 좋게 하진 어플이라고 할걸요? 팬이 만들어줘서 브랜드 모델이 됐다, 얘기하는 것보다는 원래부터 브랜드 모델이었는데 티저로 내보낸 거다, 라고 얘기하는 게 더 보기도 좋을 것 같고. 어떠세요?”
하진의 머리 위 떠 있던 슬럼프라는 글자가 일렁였다. 나는 스킬을 써 하진을 지정했다.
「[스킬: 토끼네 찰떡방앗간 (A)]
※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50 미만인 경우는 아주 작은 정보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정된 상대의 현재 찰떡취향 키워드는 ( 새로운 방향 )입니다.]」* * *
하진은 지금 태블릿에 띄워져 있는 광고 팝업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대형 소속사의 1군 아이돌. 그중에서도 리더. 모든 아이돌 연습생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문득 의미가 없게 느껴지고는 했다.
본인조차 데뷔 전에는 이 자리를 마음을 다해 바라왔으면서도.
그는 대기실 안에 있을 때면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진 형. 이번 생일 조공 중에서 여친한테 줬던 거 그거 팔찌 뭐에요? 그거 나도 누나 주려고.”
“무슨 누나? 그리고 안 줬어. 커플로 하느라 하나 더 산 건데?”
“그게 그거지.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나 릴리 누나랑 잘되는 중이라니까.”
“아! 이 새끼 망돌만 골라서 뭐하냐. 급 개떨어져.”
“이쁘잖아요. 근데 이번 도시락 맛없다. 할 거면 비싼 데에서 하지 좀.”
하진의 앞엔 팬들이 보낸 조공 도시락이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대기실 안을 촬영하던 때까지만 해도 소중한 척 들고 있던 도시락이었다. 뚜껑에 붙어있는 글자들이 애처로웠다.
[우리 사랑이니까 맛있게 먹어♥쫀떠기들]하진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비슷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이 많이 벌어들인 돈. 명예. 그리고 사랑까지.
분명 다 같이 땀 흘리며 보낸 새벽이 있었다. 간절하게 기다리던 데뷔 일이 있었다. 끝나고 눈물 흘린 첫 콘서트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이젠 당연히 수록곡까지 차트에 들어가고, 컴백하면 트로피를 받고, 생일이면 명품을 조공받는 데다가 지하철에 얼굴이 걸린다. 회사에서 하란 대로 하면 앞으로도 몇 년간은 무난히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대체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와야 할 자리 위에서 하진은 늘 위태위태했다. 가끔은 텅 빈 무대 위에 혼자 남는 꿈을 꾸고는 했다.
열심히 앞만 보고 가던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밟고 있는 사람이 자신 하나임을 알아도 멈추지 않았던 하진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회사에서 밀어주는 멤버는 따로 있고 대중들이 원하는 멤버는 따로 있다. 그곳에 하진의 자리가 있을까.
종말이 다가오는 세상 속에서 외로이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것 같은 하루의 연속이었다.
그의 머리 위 글자가 깜박이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전부터였다.
「!Debuffs! 슬럼프
[해제 조건: ( 새로운 방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