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64)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64화(64/405)
기다리던 호캉스의 날이 밝았다. 얼마 전 엘더아머 측에서 보낸 돈이 들어오자마자 윤슬은 가장 하고 싶던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서프라이즈로 하려 했지만.
“저, 죄송하지만 미성년자의 숙박업소 계약은 보호자의 동의서가 있어야지만….”
장렬하게 실패했다.
‘나이를 깜박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할머니에게 털어놓았다. 돈은 내가 낼 테니 우리 여행처럼 서울에서 호캉스를 하자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아, 할머니….”
“어린 애 코 묻은 돈 내게 하는 노인이 있으면 그건 치매가 온 거지.”
“코 안 묻었어요!”
“쯧. 어디를 가고 싶은데? 예약해주마.”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제 소원이에요. 네? 네? 네???”
단호한 할머니에게 윤슬은 싹싹 빌다시피 해 간신히 돈을 낼 수 있었다. 조식까지 포함할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결국 눈 딱 감고 포함하기로 했다.
‘와…. 손 떨린다.’
큰맘 먹고 결제한 호텔은 삼성동 한복판에 있어 한눈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회귀 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제인의 SNS에서 자주 보이던.
[익명게시판] 여기 호텔 스위트룸 자주 가는 거면 금수저 맞지? (67)자주 보는 유스타스타인데 진짜 어나더클래스인거같아서..ㅜ 내 기준으로는 쌉금수저인데 여기에서는 얘 정도면 은수저? 이러길래ㅋㅋ
‘@hajaneee
요즘 우울하다고 했더니 엄마가 쉬자며 끌고 왔다ㅠㅠ 어릴때부터 너무 자주 와서 이제 제 2의 내 방 같은 느낌♥ 역시 가족이 최고야’
게시글에만 있는거 아니고 스토리에도 엄청 자주 올리더라
-호텔 가서 옷만 바꿔 입고 사진 찍는 유스타스타 많음ㅋㅋ
˪?? 왜 그러는데?
˪다른 날 온척하려고ㅋㅋㅋ 걍 자주가는 척… 여기가 내 제2의 방인척… 이쯤은 아무것도 아닌척…
˪찐인게 요즘 골프장에도 이런 사람 많음
-쌉금수저까지는 아니지 내기준도 은수저
-여기 애들 믿지마ㅋㅋㅋ 거의 뭐 이재영 딸 모임임
˪ㅋㅋㅋㅋㅋㄹㅇ 지난번엔 새내기 데일리백으로 다 명품만 추천하더라
-원래 물건 말고 저렇게 생활습관에서 묻어나는 게 찐 금수저 맞음
집안이 망하기 전에는 호캉스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다. 호텔은 여행 갔을 때 가는 곳, 혹은 가족끼리 특별한 날에 하루 가는 곳이었지 훌쩍 쉬러 떠나는 곳은 분명 아니었다.
윤슬은 항상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게 많았다. 제인의 SNS에 올라오는 피부 관리실이나 청담의 헤어숍, 호텔에서 독립한 주방장이 새로 오픈한 오마카세, 골프, 호캉스 같은 것. 물론 엄마의 생일선물로 큰맘 먹고 스카프 하나를 선물해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번 생은 달라야지.’
엄마와 할머니에게 줄 선물까지 가방 안에 챙겨 넣은 윤슬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요즘 점점 피곤해 보이는 엄마를 마음 놓고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또 힘든 식당 일일까 봐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던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무슨 일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으므로.
“엄마 식당 일 같은 거 아니지? 무거운 거 들고….”
“별걱정을 다 하네요. 거의 쉬면서 돈 벌어서 마음이 무거울 정도인데?”
별걱정을 다 한다며 무릎베개를 한 자신의 머리를 넘겨주던 엄마였다. 하지만 세상에 쉬면서 돈 버는 직업은 하나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무슨 일하는 건데? 그럼 나 한번 놀러 가도 돼?”
“그건 절대 안 되지! 가뜩이나 일도 없는데. 딸이 와서 놀고 있어 봐, 얼마나 눈에 띄어?”
그래서 그냥 넘기려 했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를 넘겨주던 엄마의 손이 제법 거칠해져 있었다.
‘조만간 다시 물어봐야지, 진짜.’
* * *
이날을 기다린 건 윤슬만이 아니었다. 퉁명스러운 척 디데이를 세던 매란이었다. 매란은 핸드폰을 들어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챙겼다.
입력: 지난번에 산 그걸로 토요일 아침에 대기시켜│
그 명대로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앞에는 새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섰다. 3억을 호가하는 4인승 오픈카인 페라레 포르토피노. 매란의 비서가 차 앞에 서 있던 윤슬과 정혜의 작은 캐리어를 차 안으로 옮겨주는 동안 둘은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할머니 차인가요 이거…?”
별거 아니라는 듯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 매란은 비서에게서 차 키를 건네받고 능숙하게 시동을 걸었다.
“타!”
그렇게 셋은 오픈카로 여름의 바람을 만끽했다. 눈에 닿는 도산대로의 전광판마다 엘더아머가 새겨져 있었다. 윤슬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이 눈에 새겨졌다. 새파란 하늘과 흔들리는 초록색의 나뭇잎들 사이로 뻥 뚫린 도로 한가운데, 윤슬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윤슬은 회귀 전 인튜브에서만 보던 남들의 호캉스에서 이제는 자신의 호캉스가 될 호텔의 로비에 내리자마자 심장이 떨렸다.
친절한 도어맨과 잔잔한 음악이 울리는 내부. 이렇게 좋은 호텔에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 체크인부터 조금 어색하게 군 윤슬은 직원이 건네는 말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룸 업그레이드를요?”
“맞습니다, 고객님. 저희 호텔을 이용해주시는 분들에 한하여 썸머 이벤트를 진행 중이온데, 고객님께서 그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윤슬이 말한 룸보다 업그레이드된 룸으로 예약한 매란은 태연하게 연기하는 직원을 보며 모르는 척 웃었다.
“할머니!”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윤슬을 위해서라면 이런 연기쯤이야.
* * *
“이게 뭐야?”
엄마와 할머니, 두 사람의 입에서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백화점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본 후 호텔에 들어온 셋이었다.
윤슬은 작은 케이크에 초를 붙이더니 셋의 첫 호캉스 기념일이라면서 상자 두 개를 내밀었다.
“얼른 열어봐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오히려 선물을 준 윤슬이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겨 본 둘의 표정은 오묘했다.
“엄마 거는~ 일할 때 신으라고 운동화, 할머니 건 포푸리라고. 방에 걸어두는 건데요. 국화예요! 더 큰 거는 입욕제. 욕조에 세 스푼 정도만 넣으면 된대요.”
매란이 자주 마시는 국화차를 알고 있는 윤슬이었다. 요새는 자주 먹지 못했지만 가끔 윤슬이 눈을 일찍 뜬 주말 아침이면 둘이서 도란도란 나눠 마시고는 했다.
“비싼 거는 아닌데….”
아무런 말이 없는 두 사람이 머쓱한지 손가락을 꼼지락대던 윤슬은 선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다음엔 진짜 더 좋은 걸로-”
“고맙다.”
가벼운 포푸리 주머니를 든 매란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엄마 역시 투박한 운동화를 매만지다 고개를 들었다.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대…. 요만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컸지.”
“뭘 또 컸대.”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윤슬은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선물 타임 끝! 모두 창밖을 보세요~”
땅거미가 어둑해져 장밋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높다란 빌딩들이 자리해 있었다. 빌딩 한 면을 큼직하게 자리 잡은 전광판에서는 엘더아머 광고들이 끝도 없이 송출되고 있었다.
자그마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과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신호등에 맞춰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그 위를 윤슬이 만든 영상이 장식하고 있었다.
저무는 해의 진한 빛을 받은 윤슬은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딸래미~. 저게 우리 슬이가 만든 거라구?”
“아니 내가 만든 건 아니고, 그냥 아이디어만 낸 거지!”
“광고는 아이디어가 8할이지. 장하다.”
셋은 한 면이 모두 통창으로 된 스위트룸에서 코엑스의 전광판을 바라봤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윤슬이 가장 갖고 싶었던 보상이었다.
[Youstagram]할머니랑 엄마랑 호캉스 (*´◡` *)♪ 다음엔 아빠두 같이 와야지ㅎㅎ 스위트룸이라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눈 부릅뜨고 있는 중
윤슬은 SNS에 호캉스 사진을 업로드했다. 빠르게 올라가는 좋아요 수와 댓글을 뒤로 하고 핸드폰의 화면을 끈 뒤 유리 너머 잠들지 않는 도시를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끝없이 흘러나오는 엘더아머의 광고를.
코끝에 스치는 어메니티의 평온한 향기가 앞으로도 이런 삶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을 굳히게 했다.
그날 새벽, 윤슬의 SNS에는 익숙한 아이디가 좋아요를 눌렀다 빠르게 취소했다. 마치 실수를 한 것처럼.
* * *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인은 윤슬이 궁금했다. 싫은 만큼 부러웠다.
늘 며칠 뒤에야 사라지는 1을 바라보며, 오늘도 답장하지 않는 백휘와의 대화창을 의미 없이 올리며 훑던 제인은 습관처럼 윤슬의 SNS에 들어갔다.
‘팔로워 9만….’
여전히 자신에 비해서 부족한 팔로워였다. 좋아요도, 댓글도. 그리고 피드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도. 자신이라면 걸치지 않을 싸구려 옷을 협찬이랍시고 찍어 올리고, 친구들끼리 보잘것없는 떡볶이 가게나 가는 윤슬의 일상.
그에 비할 수조차 없는 제인의 SNS는 자정이 가까운 지금 이 시간에도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진짜 이게 어케 고등학생의 삶이란 말임 ㅜ @yuzinnn
˪고등학생이라고??;;; 누가 봐도 김여주
-나는 당신의 미소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완벽한 햇살 같은 미녀
-제인님 커뮤니티에 제인님 사진 올라왔는데 메시지 확인해주세용!ㅜㅜ
-여전히 공주~ 제인아 여름에 다시 보스턴 와? 나 이번여름에 잠깐 들어갈듯! 얼굴 잠깐 보자
-인생 개짜릿할듯… 사진 자주올려줘용 대리만족하게
제인은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말들을 무심하게 보고는 다시 윤슬의 SNS 페이지로 되돌아갔다.
-하… 이제 떡볶이 맨날 먹는 것도 귀여워 보이고… 언니 사랑해요
-ㅋㅋㅋㅋ서윤슬 개웃겨 이쯤 되면 돌쇠아저씨 딸
˪친딸은 소희야 소희랑 가면 볶음밥 위 김가루가 달라짐
-언니랑두 놀쟈♥ 언니 돌쇠네 맨날 가는데 왜 못 만났지?
-이름 개명 추천: 귀여워
별거 없었다. 정말 별거 없는데 자꾸만 들여다보게 됐다. 이제는 윤슬이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외울 지경이었다.
모두 정말 별거 아니었는데도.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늘어난 윤슬의 팔로우 숫자에 1이 더해지자 제인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차재겸이 왜…?”
재겸의 SNS에 들어가서 확인하자 서로 팔로우 된 사이였다. 윤슬의 일방적인 팔로잉이 아니라.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됐지?’
둘 사이의 접점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답을 생각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는 제인은 재겸의 댓글까지 꼼꼼히 읽었다.
-겨미겨미 에이스 감?
˪ㄴㄴ 오늘은 알파ㅋㅋ 올거?
˪얘들아 시험기간인데 공부좀해라 당구만 치지 말고
˪오늘 도서관 삼십분이나 갔다 옴 니나 잘하는 게 어때?
˪신기록이네
서윤슬과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최백휘, 그리고 그 자리에 굳이 간 차재겸. 제인의 눈이 싸늘해졌다. 윤슬 같은 애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제인은 지금 늘 입버릇처럼 아버지가 하던 말을 깨달았다.
“신분제가 없어졌다고 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야. 엄연히 계급이 있고 천민이 있다 제인아.”
그때 제인이 보고 있던 윤슬의 SNS에 새로운 글이 업로드되었다. 호캉스를 하고 있는 야경이었다.
‘피크하얏트네?’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신경을 건드리는 윤슬이 싫었다. 없는 형편에 일부러 자신이 자주 가는 호텔에 보란 듯이 가는 것도, 자신 앞에서 기죽지 않는 것도. 무엇보다 제인 주변의 사람들에게 치대는 것까지.
당연한 자신의 자리에 염치없이 한 발 걸치려 드는 윤슬을 생각하면서 제인은 신분제를 떠올렸다. 자신과 윤슬이 같을 수는 없다고.
“신났네, 윤슬이가….”
빚쟁이인 윤슬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를 불쌍히 여기면서 제인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래봤자 자신의 수준까지는 죽어도 못 올라올 윤슬이의 호캉스가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랐다.
열심히 사는 윤슬을 바라보며 제인은 무력감을 느끼는 한편, 우월감도 동시에 느꼈다.
‘그래. 열심히 살아 너는.’
그래봤자 영원히 아래일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태생부터 특권층인 자신과는 다르다. 제인은 윤슬의 사진을 바라보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하트를 눌러버렸다.
실수로 누른 좋아요를 빠르게 취소한 제인은 지금도 받고 있는 자신의 좋아요 수를 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제인을 좋아한다고. 노력하는 윤슬보다 노력하지 않는 제인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