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65)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65화(65/405)
“윤슬이 오늘도 빨리 가?”
“우리 근처에서 놀다 가자~”
윤슬의 팔을 한 쪽씩 잡은 서은과 가영이 양옆으로 흔들었다. 어플 때문에 그동안 반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윤슬은 오늘만큼은 마음 편히 놀 수 있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이 딱 삼 일 남은 금요일이었다.
‘하루라도 더 등교시키겠다 이거지.’
금요일에 깔끔하게 방학을 시켜주면 될 걸, 굳이 월요일까지 등교시키겠다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옆에서 들뜬 애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또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윤슬은 여고답게 점점 자연인으로 등교하게 된 친구들과 오랜만에 메이크업을 고쳤다.
교실 거울 앞에서 협찬으로 들어온 제품으로 립을 바르던 윤슬을 본 서은이 엉덩이를 토닥였다.
“끝?”
“이제 가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이었지만 넷은 계단을 뛰듯이 내려갔다. 뒤에서 강소엽 선생님이 천천히 가라며 작게 소리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여기 지난번에 소희랑 왔었는데.”
“맞아. 우리 중간고사 때 먹고 처음 오지?”
오늘도 돌쇠네 떡볶이를 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득 찬 가게를 보던 소희와 가영은 맛있는 가게가 있다며 윤슬과 서은을 끌고 갔다. 학교에서 좀 떨어진 거리라 택시를 타자는 서은의 말은 기각되었다.
“택시비 아껴서 사이드 하나 더 시키자.”
인생에서 가장 강인한 나이였다. 소희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십여 분을 걸어간 곳은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은 깔끔하고 예쁜 가게였다.
넷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나지 않을 소소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어른이 된다면 그땐 재밌었지, 하고 가볍게 넘길 이야기들이 지금은 너무 재미있었다.
옆의 예쁜 카페에서 새로 나온 망고 빙수를 먹고, 노래방에 가서 지금은 최신곡이지만 윤슬에게는 추억의 명곡이 된 노래들을 불렀다. 서비스로 더 넣은 40분을 더 불러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 진짜 재밌다….’
다 마신 이온음료 캔의 차가움이 기분 좋아 계속 쥐고 있던 윤슬은 소희가 부르는 노래에 호응해줬다. 머리를 전부 비우고 하루를 보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름이라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은 오후였다. 서비스 시간이 끝나가자 핸드폰을 잡고 있던 서은이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근처에 라몽드 매장 들렸다 갈 사람?”
“라몽드? 지금 세일해?”
“아니 나 아까 윤슬이가 바른 거 사려고.”
윤슬이 자신이 협찬받은 것을 서은에게 주겠다 했지만 서은은 그동안 받은 것도 너무 많다며 선을 그었다.
“이러다가 집문서도 주겠다 너는.”
핸드폰 지도가 가리키는 가장 가까운 곳은 근처 마트 안에 있는 매장이었다. 널찍한 매장 내부에서 서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진지하게 고르던 윤슬은 퍼스널 컬러가 아직 마케팅에 적용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은이는 가을 뮤트 같은데….’
쨍하고 짙은 웜 컬러 위주의 신제품들을 보던 윤슬은 저 뒤에서 나는 커다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내가 이걸 일주일 전에 샀다니까!”
“그러니까 고객님, 영수증이 필요하신데….”
덩치 큰 남성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직원의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윤슬과 친구들도 걱정되는 마음에 소란이 난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 직원과 윤슬의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어….”
온 세상이 전부 슬로우 모션에 걸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윤슬은 손에 들고 있던 라몽드의 샘플을 떨어뜨렸다. 주위의 모든 소음이 멎은 것처럼 자신의 쿵쾅대는 심장 소리만 들렸다.
고함을 한 번 더 친 남성은 팔짱을 끼고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윤슬과 잠시 눈이 마주친 직원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빠르게 운동화를 신은 발을 옮겨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슬이 직접 고른 그 운동화였다.
* * *
윤슬은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이곳이었다.
‘한강….’
회귀한 뒤로는 처음 온 장소였지만 어쩐지 익숙했다.
앞에서 불어오는 강의 바람이 들뜬 윤슬의 얼굴을 미지근하게나마 식혀줬다.
윤슬은 여전히 뜨거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너무 익숙한데, 너무 익숙해서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요즘 너무 잘 된다 했어.’
이 나이로 돌아왔을 때부터 윤슬이 실패한 것은 없었다. 열심히 살아도 별다른 보상 없던 지난 생과 달리 이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보상이 뒤따랐다.
그 때문일까,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산더미인데 잠시 우쭐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이대로면 안 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빨리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돌아온 의미가 있다.
윤슬은 작게 가슴을 들썩이며 눈물을 삼키려 노력했다.
‘집 가야 되는데….’
윤슬은 감정을 추스르고 집에 가려 씩씩하게 젖은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눈앞에 닿은 한강이 오늘따라 유난히 예뻤다.
그때였다.
머리 위로 흰 천이 덮였다.
“여기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 재언이었다.
* * *
“와, 이거밖에 안 왔는데 덥네.”
“그러게.”
차가운 생수병을 딴 재언은 순식간에 한 병을 다 비웠다.
강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습하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맞이한 재언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기분 좋게 쓸어 넘겼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 햇빛에 닿아 부서지는 반짝임의 물결은 언제 봐도 좋았다.
그때 재언의 눈에 갑자기 익숙한 누군가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재언은 반사적으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먼저 가라.”
“야! 어디 가!”
뒤에서 민준이 당황하며 외쳤지만 개의치 않고 뒷모습의 주인공을 향해 나아갔다. 저 멀리 가장 바람이 세게 부는 강가 가까이 윤슬이 홀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 급하게 한 손으로 머리를 정리한 재언이 슬쩍 윤슬을 바라봤을 때였다. 혼자 한강을 보고 있던 윤슬이 팔로 세게 눈가를 문질렀다.
재언은 아무렇게나 맨 더플백 안에 넣어두었던 하복 와이셔츠를 윤슬의 머리 위로 덮어줬다. 윤슬은 갑작스럽게 올려진 와이셔츠에 당황하다 작게 훌쩍였다.
“햇빛이 세서… 눈 뜨기 힘들지.”
둘 사이에 강바람이 흘렀다.
* * *
‘개쪽팔린다.’
나는 머리 위에 덮인 옷을 치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실컷 질질 짠 모습이니까.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나이가 어려지니까 정신연령이 같이 어려진 건지.
‘어린애들 앞에서 이게 뭔….’
울 때마다 남한테 들키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짜릿한 흑역사였다. 키즈니아 직업체험에 ‘울보’ 항목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적성에 백 프로 맞았을 거다. 알바사냥꾼 시절 키즈니아 담당 때 들은 ‘선생님 쟤가 내꺼 뺏었어요’, ‘쟤는 내꺼 뺏었는데 왜 나는 뺏으면 안 돼요? 왜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를 회상하며 나는 말없이 막혀버린 코로 숨이나 들이쉬었다.
‘그래도 다 울 때쯤 와서 다행인가.’
지난번에 이어서 또 남의 옷에 눈물 콧물 흘릴 수는 없었다. 서러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사회적 체면이 있지.’
괜찮은 충격요법이었다. 이제 살짝 코가 뚫려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기도 알 수 있었다.
“재언이 옷에서 애기 냄새 나네.”
“마음에 들어…? 그 옷 너 줄까.”
어이가 없어서 나는 웃으며 머리에 덮여있던 옷을 집었다. 커다랗고 하얀 셔츠를 다시 재언이에게 돌려줬다.
창피할까 봐 배려해 주는 건지 괜한 걸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전거 핸들을 쥐고 서 있던 재언이 대충 가방 안에 셔츠를 구겨 넣었다.
“넌 여기서 뭐해?”
“나? 탈선하는 중.”
“자전거 타는 게 무슨 탈선이야.”
“비밀인데….”
진짜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은근하게 목소리를 낮춘 재언이었다. 고개를 숙여 귀 가까이 대고는 또 어이없는 말을 했다.
“시속 180이야 이거….”
“야 누가 믿어!”
진짜 어이가 없다. 진지한 척 말하는 재언이랑 눈이 마주치자 세워져 있던 킥 스탠드를 가볍게 차올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내 앞에 다가왔다.
“타 볼래? 진짜인지, 아닌지.”
뭐. 한 번쯤 속아줘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못이기는 척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 재언이 웃으면서 핸들을 쥐자 티셔츠 너머로 날개뼈가 움직였다.
“꼭 잡아. 위험하니까.”
티셔츠 끝자락을 말아쥐자 자전거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갔다. 두 사람의 체중을 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속도였다.
페달 밟는 소리가 주변의 소음에 편안하게 섞어 들었다.
* * *
“이거 흰옷이잖아.”
“뭐 어때.”
계단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건 돗자리가 아닌 엄연한 교복이었다. 가방 안에서 셔츠를 다시 꺼낸 재언이 돌계단에 셔츠를 피고 나를 앉혔다. 우리가 꽤 오래 자전거를 타다 보니 사람이 드문 공원의 구석까지 도착해버렸다. 근처 자판기에서 이온음료까지 뽑아 온 재언이 캔을 따 내밀었다.
“고마워.”
재언은 옆자리에 그냥 털썩 앉았다.
‘아까 보니까 가방 안에 든 게 없던데 저거라도 깔고 앉지.’
그렇게 생각하며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온음료의 차가움을 느꼈다. 세 입에 한 캔을 끝낸 재언이 옆에서 나도 금세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 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어때.”
“뭐가.”
굳이 말해봤자 달라질 건 없다. 좋은 얘기도 아니고.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온음료나 마시고 있는 나를 옆에서 바라보던 재언이가 손에 든 캔을 구겼다.
“속도 마음에 들어? 특별히 200으로 했어.”
모르는 척하는 내게 재언이는 또다시 말을 돌려줬다. 뒤에 세워 둔 자전거는 인정할 만했다. 진짜 빨라서 바람이 강가에서 맞았던 것보다 훨씬 시원했다.
“응. 마음에 들어.”
“그럼 다행이고….”
우리는 말없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강을 바라봤다. 화려하게 불이 켜진 유람선 한 대가 여유롭게 강물을 가르며 반대편으로 쭉 나아갔다. 우리 머리 위쪽에 있던 가로등에 불이 켜지며 동시에 길가의 모든 가로등이 밝아졌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한 번에 들리는 시간.
얼마쯤 또 가만히 있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언아.”
“응.”
“난 꼭 여기 다시 돌아올 거야.”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재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동적이었지만 이 순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였던.
말도 안 되는 걸 알지만 내뱉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다시금 목표가 확실해진 기분이었다. 잠깐 느슨해졌던 마음을 되잡고 나니 한결 나았다.
“이제 집 가야지.”
* * *
집은 평소와 같았다. 갓 지은 밥 냄새가 났고 거실엔 TV가 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현관에는 내가 사줬던 엄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왔어?”
신발을 벗고 주방 쪽으로 향하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엄마가 웃었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머니는?”
“정기검진 가셨어. 손 씻고 앉아.”
내 앞으로 밥을 차려 준 엄마는 옆에 숟가락을 들고 앉았다. 저녁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직 밥을 안 먹고 나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달그락-
평소와 같은 척을 하려 애를 쓰는 두 사람 사이에서는 간간이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 반찬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특히 치즈를 넣은 계란말이랑 비엔나 소세지. 귀찮다고 문어 모양으로는 잘 안 해 주는데 오늘 소세지는 바다에서 건져왔다고 해도 될 만큼 다리가 많았다.
“윤슬아.”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나는 물을 마시는 척 손을 움직여 시스템창을 눌렀다.
「▼상세 설명▼
거기 동작 그만! (사용 시간 1시간)
: 상대방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포션. 어떤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밝혀내는 것은 당신의 몫. 대부분의 거짓은 진실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법.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는 까만색 X표가 생겨난다.」
겨우 쌓은 포인트를 털어 비싼 아이템을 하나 샀다. 타깃을 정하라는 듯한 세모 깜빡이가 켜졌다.
‘이거 여러 명이랑 있을 때는 여러 개 사야 하는 거였네….’
아무래도 두 번 쓸 만한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