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7)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7화(7/405)
“그러니까, 윤슬님 말씀은. 데일리 룩뿐만 아니라 제품 협찬 글도 작성을 하실 거다, 이거죠?”
“네. 그런데 협찬 글 같은 걸 전속 에디터가 작성하게 되면 계약 위반이니까요. 광고비를 두 군데에서 받는 거잖아요.”
병아리의 눈이 빛난다.
원래 이 업계에서 최고로 쳐주는 건 댓글 수도 조회수도 아니다, 제대로 돈을 물어다 줄 협찬사지. 글 아래에 떠 있는 광고 배너, 그거 한번 클릭해봤자 몇십 원 안 되거든.
“그럼,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조건은 이랬다. 마침 키키 게스트에 브랜드에서 보내주신 의류들을 모아놓는 창고가 있는데, 자유롭게 가져다 쓰시면 어떻겠냐고. 지금 SS시즌을 맞아 들어온 옷이 많고 최우선적으로 내게 먼저 선택권을 주겠다고.
‘지금 안 팔리는 에디터들은 뒷전으로 하겠다는 거네.’
현재 키키 게스트에는 주로 20대 에디터가 많다. 아마 협찬으로 들어온 의류들은 내가 노리는 타깃층보다 살짝 더 나이대가 높을 거다.
그러나 최우선적으로 받아 온 제품들, 그걸 내가 직접적으로 촬영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몇 배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
‘시간 대비 효율이 전혀 맞지 않잖아.’
무엇보다 전속 에디터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페이지에 들어온 타인의 데일리 룩은 못 쓰게 되니까.
자기 사진으로 돈 번다는 얘기가 나오면 반발심이 심할 테고. 최악의 경우 사진을 내려달라는 요청이 물밀듯 밀려와 대부분의 사진을 삭제해야 할 수도 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직접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는 아직 자신이 없네요.”
“어후, 무슨 그렇게 겸손한 말씀을 하세요, 윤슬님. 저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윤슬님 감각에 대해서는 다들 대단하다고 얼마나 말이 많았는데요.”
「[스킬: 병아리의 열정 (C)]」
머리 위 스킬이 반짝인다. 말을 늘리며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기세가 보인다.
그래, 조금만 더- 이 연극의 조연이 한 명만 더-
똑똑-
“죄송해요. 아직 미팅 안 끝난 거 맞죠?”
“팀장님!”
조금 더 윗선으로 보이는 여자가 서류를 들고 성큼성큼 테이블로 걸어 들어왔다.
“반가워요. 저는 키키 게스트 마케팅 1팀 팀장입니다.”
윗사람까지 들어와서 지원사격을 하는 거 보니, 어지간히 놓치기 싫은가 보네.
나는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힘을 줘서 참아냈다.
드디어 본격적인 연극 시작이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윤슬님 재능에 투자하고 싶어요. 최대한 협업하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스킬: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B)]」
머리 위에서 팀장의 스킬이 반짝거린다.
그냥 계약서에 0만 많이 써 주면 날 데려갈 수 있는데, 왜 그걸 모르니….
“어떻게 해야 저희 측에 와주실지,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셨으면 해요. 저희 팀에서는 회의할 때마다 윤슬님 얘기가 나오거든요.”
“저는 키키 게스트와 계약을 하지 않고서도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올릴 생각이에요. 저도 좋아하거든요. 글 쓰는 거.”
두 담당자의 눈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어림없지.
작전 1, 줬다 뺐기.
“하지만 제가 이리로 계약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팔로워 분들이 보내주시는 사진은 올릴 수 없을 거예요. 자기 사진으로 명확히 돈을 버는 걸 알게 됐는데, 마음속으로 손해다 싶은 생각이 들겠죠?”
“아….”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해봤다는 표정이다.
지금에서야 다들 좋은 마음으로 ‘다 같이 참여해서 만드는’ 콘텐츠에 너그럽지. 당장 몇 년 뒤에는 너도나도 인튜버 하겠다고 난리인데. 자기 콘텐츠를 좋게 내줄 리가.
“그러면 제가 따로 콘텐츠에 시간을 쏟아야 되는데…. 지금 같은 퀄리티를 유지할 수가 없을 거고. 키키 게스트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셔도-”
“맞아요, 아무래도 여럿이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죠.”
“그래서 말인데.”
“네.”
“지금처럼 사진은 계속 받으면서, 따로 광고를 받는 콘텐츠는 제가 직접 만들게요.”
“그러면… 남들 글 하나 쓸 시간에, 윤슬님은 몇 개를 더 쓰실 수 있겠네요.”
팀장은 내 계획이 마음에 드는지, 아까보다 표정이 풀려 있다. 흥미로운 걸 보는 시선.
나는 여유롭게 몸을 팀장 쪽으로 살짝 숙였다.
“맞아요. 그리고 지금은 옷 위주로 사진이 들어오지만, 앞으로는 화장품도 같이 할 생각이거든요. 차근차근… 아니,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할 거예요.”
“브랜드 협찬의 선택지 폭이 넓어지겠네요?”
“네. 그래서 저는 키키 게스트가 협찬이 들어오는 브랜드 광고비를 저한테 비율적으로 정산해주셨으면 해요.”
우리 이제 계약서 새로 쓰자, 응?
“전속으로 월급 받는 에디터가 아니라, 광고 모델이자 에디터로. 프리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앞에 둔 이 종이 내가 좍좍 찢을게요.
* * *
‘졌다….’
키키 게스트 마케팅 1팀의 팀장은 미팅룸에 들어온 지 5분 만에 앞에 있는 애기에게 완패했다.
‘대체 이런 발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우리 앱에 글을 올린 건가?’
당황한 얼굴은 감추는 게 고작인 자신에 비해 윤슬은 이 계약을 아예 갖고 놀았다.
“이 상태로라면 일주일에 데일리 룩 글은 두세 개 정도. 기본적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고. 광고는 2주마다 한 번씩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잦아도 안 좋으니까.”
“맞아요. 보는 입장에서는 신뢰도가 조금 떨어지죠.”
이젠 자기 부하직원이 어린애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성적으로 듣고 있다.
‘예지 씨, 그쪽이 말리면 어떻게 해….’
“그리고 광고 후에 저는 화장품이나 옷 같은 걸 다 쌓아 두지는 않을 거거든요. 주기적으로 팔로워 이벤트를 해서 처분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이벤트마다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이용자가 꾸준히 키키 게스트를 이용한다면,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 역시 클릭해서 볼 테고, 헤비 유저가 되는 비율이 높겠죠. 작게나마 글 아래의 광고 트래픽까지 쌓일 테고.”
‘어쭈, 그다음 스탭도 계획하네.’
“사실 지금 페이지에 광고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데, 키키 게스트와 미팅 전에는 아무것도 픽
스 되지 않은 상태에요. 다른 대행사보다는… 여기가 아무래도 믿음이 가니까요. 먼저 저를 알아보고 컨택 해주시기도 하셨고….”
“그럼요~ 진짜 저희만큼 빨리 알아본 곳이 어디 있겠어요.”
치켜세워주기로 마지막 굳히기까지.
키키게스트 마케팅 팀장은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인정했다. 이미 주도권은 윤슬에게로 넘어가 있다는 걸. 얘는 정말 되는 애라는 걸.
윤슬은 회의가 길어지자 잠깐 피곤한 듯 살짝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띠링-
“윤슬님, 핸드폰에 알림 왔어요.”
“네, 잠시만요.”
언뜻 본 핸드폰 화면엔 이메일 창이 띄워져 있었다.
[협찬문의/ 친구 없으면 못 부르는 페이지님! 안녕하세요…]“대행사 측에는 다음 주까지 일단 다시 연락을 드린다고 했는데, 키키 게스트 측에서도 내부 회의 거치시고 난 다음에 연락주시면….”
“아니요.”
키키게스트의 마케팅 팀장은 여기서 윤슬을 놓치면 너무 큰 손해라고 생각했다. 윤슬이 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윤슬님이 원하는 대로 하죠. 그 계약.”
벌써 돈을 불릴 줄 안다. 서윤슬이 주장하는 프리랜서 브랜드 모델 협찬 계약은, 일반 전속 에디터가 받는 금액의 최소 2.5배다. 즉, 대기업 월급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고액이다. 내부 회의고 뭐고 일단 더 자세한 조건을 듣기로 했다.
기다렸다는 듯 원하는 요구 사항을 물 흐르듯 말하는 윤슬이었다. 팀장은 앞에 둔 계약서를 도로 가져가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근데, 고등학생이 내부 회의라는 단어를 쓰네.’
그 고등학생이 사실은 엊그제 태어난 게 아니라 꽤 오래전 태어났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 * *
제법 시간이 오래 지나있었는지 빌딩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몸은 가볍기만 했다.
‘회의 중간에 랜덤 협찬 보상을 쓴 게 아주 적절했어.’
일부러 협찬 문의 메일 화면을 밝기 100으로 키워놨었다. 나 너네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연락 많이 와, 라는 무언의 표시를 주기 위해.
앞으로도 이런 보상들은 바로 열어보지 말고 나중에 클릭해서 써야겠다.
띠링-
눈앞에는 다시금 상태창이 띄워져 있었다.
「▶System
【짝짝짝! 첫 계약】
▶나아가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히든 보상 랜덤 뽑기☜ Click」
몇 번 봤다고 그새 익숙해진 상자를 클릭했다. 정해진 미션 성공뿐만 아니라 그냥 자기 맘대로 히든 보상을 줘 버리는 상태창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상태창의 반짝이 효과가 아까울 만큼의 소소한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아 대충 버튼을 눌러버렸다.
꽃잎처럼 떨어지는 종이 비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랜덤 보상: ‘오디야 핫초코’ (F) 획득!]
○오디야 핫초코(1회권)
축하합니다!
[지금 사용하기] [인벤토리에 넣기]」…야, 이거 내가 뿌렸던 거 다시 받는 거잖아.
가성비가 폭풍우처럼 내려오는 오디야 쿠폰을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안고 집 근처 매장을 들어갔다. 느슨해진 기분을 깨우고 싶어 굳이 아이스를 주문했다.
“휘핑크림 많이요.”
“네 고객님- 어느 정도로 드리면 될까요-”
눈이 살짝 동태처럼 초점이 없는 점원이 표정 변화 없이 목소리만 상냥하게 응대해준다.
나 오늘 당 많이 떨어졌는데.
“퇴근하고 싶은 만큼요.”
“어머- 그럼 천장까지 닿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웃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점원을 보니 금방 다시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동태력이 +(5) 올랐습니다! 하는 상태창이 금방이라도 뜰 것 같은 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빨리 주문하고 사라져줘야 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 말을 잇는데
“그럼….”
“안녕.”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
“휘핑크림 적당히, 아이스 초코 맞지?”
“어?”
“한 잔이랑, 아이스 캐모마일 티 한 잔이요.”
최백휘다.
방금 전 점원과의 대화를 들은 모양인지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처음부터 일행이었다는 것처럼 백휘가 카드를 내밀었다.
“고객님, 자리 잡으셨나요?”
“네? 아니요.”
“저희 자리가 많이 없는 타임이라 주문 전에 잡아주시는 게 좋으세요-”
영혼 없지만 친절한 말투로 직원이 안내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남은 자리가 몇 개 없었고, 그나마 불편한 바 자리 몇 개와 딱 하나의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마시고 갈 거야?”
능숙하게 다시 카드를 받아 든 백휘가 물었다. 코끝으로 차분하고 무거운 백휘의 향수 향기가 밀려 들어왔다.
“같이 앉을까.”
처음부터 여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백휘에게.
“…그래.”
바보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갔다 와?”
내 앞으로 트레이 위에 있던 냅킨을 놓아 주며 눈을 맞춘다. 가지런한 속눈썹에 단정한 콧대.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리는 입술.
“야 옆에 봐….”
“미친.”
아까부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 둘의 자꾸만 백휘의 얼굴을 향해 힐끔거리는 시선이 멈추지 않는다.
아니… 옆 테이블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여자들 모두. 한 번씩은 눈길이 가는 매끈한 얼굴이긴 하지.
백휘는 이런 시선이 익숙한 듯 스트로우의 껍질을 벗겨 컵에 넣어주는 게 자연스럽다.
“나? 음…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거든?”
“뭔데? 이렇게 뜸 들이니까 궁금한데.”
“알려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하하, 대체 뭘 부탁하려고 이러지… 일단은 들어줄게.”
“나, 사진 찍는 거 가르쳐줘.”
백휘는 부탁하려는 게 고작 그거였냐며 살짝 눈을 접어 웃었다.
계약도 한 김에 제대로 뭔가를 보여 줘야 해.
‘그래야 다음번 몸값이 더 올라가지.‘
콘텐츠는 콘텐츠고. 이왕 할 거면 더 퀄리티 있는 게 좋잖아.
“그냥 가르쳐 달라는 거 아니야. 나도 대신 네가 부탁할 거 있으면 들어줄게.”
“뭘 그렇게까지, 그래서, 비밀이 대체 뭔데?”
“나 키키 게스트랑 계약하고 오는 길이야, 지금.”
“와. 그럼 나보다 사진 훨씬 잘 찍을 것 같은데.”
아니야… 상태창이라는 지표가 말해준단다. 이렇게 말해봤자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그런데 내가 사진 찍는 거 좋아한다고 말했었나?”
“그… 나연이가! 말해줬어. 너 사진 되게 잘 찍는다고.”
괜한 거짓말에 양심이 좀 찔린다. 아이스 초코를 쭉 크게 한입 삼키는데 맞은편에서 짓궂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나연이? 내 칭찬을 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예리하기는.
머쓱해서 백휘를 쳐다보며 그냥 헤실헤실 웃었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엔 머리 위에서 스킬창이 조금도 반짝이고 있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거의 계속 반짝였던 것 같은데.
“아냐, 나연이가 너 칭찬 많이 했어.”
“음, 예를 들면?”
“잘생겼다고 했는데. 막 최백휘 한 번 걸어 다니면 불을 안 켜도 형광등을 켠 것 같이-”
“이건 급조한 티가 너무 나는데.”
“맞아. 나연이가 잘생겼다고 한 건 거짓말. 그냥 내가 말 하는 거야. 너 잘생겼다고.”
“…큼.”
목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백휘의 귀가 불에 탄 듯이 새빨갛다. 그리고 동시에 머리 위 스킬창이 쉴 새 없이 반짝거렸다.
진짜 불을 안 켜도 형광등을 켠 것 같다 백휘야….
「[스킬: 알 수 없지만 (A+)]」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자를 보니 맞은편의 이 남자애의 나이가 실감 난다. 지난번에 스킬창이 반짝였던 건 초면이라 쑥스러워서 그랬구나.
답지 않게 살짝 눈을 피하는 백휘의 눈을 따라 놀려대듯 웃으니 애써 말을 돌렸다.
“정확히 어떤 사진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
“아, 그러니까 어떤 거냐면-”
설명 백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게 편하지.
나는 핸드폰을 켜 그동안 찍어댔던 사진들을 보여줬다. 백휘가 내 쪽으로 살짝 상체를 숙이자 넓은 어깨 때문에 그림자가 지며 아까 전의 무거운 향수 향기가 다시금 밀려왔다.
“이미 충분히 잘 찍는데.”
“그래도, 훨씬 더 뭔가… 어? 느낌이 딱! 오는 그런 거.”
내가 생각해도 진상 클라이언트 같은 주문이었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심플한데 눈길 가게.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욕하면서 야근했는데 막상 내가 말하려니까 이게 최선이다.
좋좋소에서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거든. 사진 많이 찍어서 글 많이 업로드하는 게 깡패여서 그래.
내 요구에 백휘는 진지하게 깍지 꼈던 손을 빼 그대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내내 미미하게 웃음 짓던 얼굴이 진지하게 바뀌며 머리 위 빛나던 스킬이 꺼졌다.
자꾸 눈이 가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감상을 하고 있는데 내리깔았던 눈동자가 이리로 향했다.
“새로운 콘텐츠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데…. 유학할 때 같은 반 클래스 SNS 보여줄게.”
커다란 손으로 내미는 핸드폰 화면의 액정 안에는 나에게도 익숙한 사진들이 띄워져 있었다. 작은 가방, 옆에 늘어진 핸드폰, 립스틱, 앤플패드, 작은 통에 담긴 캔디, 핸드크림….
“인 마이 백?”
“맞아, 자주 올리더라. 학교에서도 찍고.”
단순히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여 주는 컨텐츠인 ‘인 마이 백’.
소지품으로 대략적인 가방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각기 다른 가방 안에 있는 소지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킬링 타임으로 쓸 만하고, 무엇보다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가볍게 참여할 수 있겠지.
“대부분 침대 위에서 사진을 찍더라. 흰 이불 위…. 이건 일단 배경이 깔끔해서인 것 같고.”
길고 잘 빠진 손가락으로 슥슥, 화면을 밀어 가며 다양한 사진을 설명했다.
감이 잡힐 것 같다. 조금만 더, 뭔가 느낌이 오면…!
“아직 사진을 찍는 게 많이 익숙하지 않아도, 윤슬이 네가 찍은 거 보니까 대칭적인 구도는 잘 잡는 것 같아. 수평도 무난하게 맞췄고.”
그거야 내가 사실은 그동안 SNS에서 봐 왔던 게 있으니까 그렇지. 몇 년 뒤면 내가 운영하는 것 같은 페이지가 넘치고 넘치니까.
“지금 혹시 가방 안에 있는 거 꺼내 봐도 괜찮아? 지금 여기서 간단하게 찍어볼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핸드폰을 보기 위해 서로 가깝게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눈이 마주쳤다.
한 뼘 거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려니 지나친 고화질의 이목구비가 당황스럽다. 습관인지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얼굴을 피해 시선을 다시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인 백휘의 핸드폰 화면 위가 반짝였다.
[넌 왜 맨날 답장이 없어?] [한국 들어와서도 나한테 계속 이럴거야 너?]제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