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7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71화(71/405)
마루에 놓여 있던 수박을 큼지막하게 썰어 두 친구에게 건넨 서충남 씨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
‘내 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그럼 일단 보통 사이는 아닐 텐데!’
늘 옆에 붙어있지도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마침 윤슬이 잠든 틈을 타서 어떤 녀석들인지 알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눈이 불탔다. 늘 장난스레 웃어 보이던 충남은 짐짓 무게를 잡았다.
“그 뭐. 여자친구, 로 우리 윤슬이를 생각하는 건…? 아니. 둘 다 일단 여자친구 있나?”
‘아빠 미쳤나 봐…!’
장인어른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은 충남의 목소리에 방에 있던 윤슬의 얼굴이 붉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아빠 뭐래~!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설마….’
가끔 자신을 향한 이유 모를 호의들. 눈이 마주치면 웃어 보이는 모습들. 언제나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윤슬은 종종 생각했다.
‘혹시 얘네가 나를….’
물론 따지고 보자면 나이 차이도 한참 나지만!
넌 이상형이 어떻게 돼?ㅎ 손 되게 작다ㅎ 나 내일 모닝콜좀 해줄래?ㅎ 같은 말 한번 나눠본 적 없지만!
‘진짜 혹시…!!!’
자신이 애써 모르는 척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친구라고 생각했던 건 본인 혼자가 아닐까. 심장이 쿵쿵 뛰다 못해 온 집안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윤슬은 가볍게 덮여 있던 이불을 사정없이 손으로 쥐고 구겼다. 발끝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수박을 들고만 있던 백휘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여자친구는요. 대학 가야죠.”
“…어???”
“맞아요. 대학, 가야죠.”
유난히 나직한 백휘의 목소리가 귓가에 박히듯 꽂혀 들고, 뒤이어 재언의 확인 사살이 윤슬의 얼굴에 불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이불을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잠재운 윤슬은 쥐고 있던 이불을 얼굴 위로 휙 뒤집어썼다.
‘미쳤나 봐. 와, 진짜 서윤슬… 미쳤나 봐!!!’
착각도 병이라더니. 자신은 잠시 불치병에 걸렸던 게 틀림없었다. 자신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그동안의 착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창피하다 못해 수치스러웠다.
‘(일단) 대학 가고 생각해야죠.’라는 의미를 담은 그 말들은 윤슬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엥? 왜 이러세요…. 저희 그냥 대학 가려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인데…. 그냥 공부 같이하는 친구죠. 어떻게 생각하기는요…. 조금 당황스럽네요.’
“하하! 그치! 그래. 잘 생각했어.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응. 대학에 가야지! 그래. 둘 다 공부는 잘하고?”
“못 하지는 않아요. 무난하게 스카이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좀 잘하는 편입니다.”
만족스러운 충남 씨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게를 잡던 모습은 사라지고 윤슬이 수학을 언제부터 싫어했는지, 구구단을 가르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같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사과 열 개가 있다. 그런데 아빠 두 개 주고, 엄마 세 개 주면 몇 개 남을까? 이렇게 가르쳤더니. 글쎄 하는 소리가… 왜 아빠 두 개 줘야 돼? 하나만 가져가. 이러더라니까! 속이 터져, 안 터져?”
재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고, 백휘는 다시 한번 수포자가 쓸 만한 수시 목록에 대해 고심했다.
마루 위에서 아삭거리는 수박 먹는 소리가 풀벌레 소리와 함께 울렸다. 윤슬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래. 내가 아주 미쳤었다. 좋아하긴 무슨… 대학이나 가야지.’
해가 떠오르는 아침. 윤슬은 쌀쌀한 공기와 함께 마음까지 쌀쌀맞아졌다.
* * *
“아빠, 나 갈게. 얼른 들어가.”
“조심해서 가고. 잉? 또 자다가 역 지나치고 그러지 말어.”
“아, 내가 애야?”
“니가 길 잃는 게 한두 번이여? 거꾸로 가고 지나치고 아주 레퍼토리가 다양혀.”
역까지 마중 나온 아빠는 얼른 가라는 데도 끝까지 가지 않았다. 전날 내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길이 생각날 것 같아 나는 또 코끝이 시큰해졌다.
“가면서 맛있는 거 먹어.”
“이건 왜 줘! 안 줘도 돼.”
“씁, 친구들이랑 점심도 먹고 해야지. 그러지 말어.”
만 원짜리 몇 장을 억지로 내 손에 쥐어 준 아빠는 백휘와 재언이에게도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놀러와. 그땐 아저씨가 좋은 데 많이 데려갈게.”
“네.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수박 맛있었어요.”
“그치? 자식이 장군감이여. 수박을 그냥 햄스터처럼 다 먹어.”
사나이들 간에 수박으로 다져진 우정이 있는 것 같았다. 기차에 타서도 창문 너머에서 손을 계속 흔드는 아빠가 멀어졌다.
‘좋아. 열심히 하자.’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윤슬의 노트북은 꺼질 줄을 몰랐다. 노트북이 뜨거워질 때쯤 다시 출발했던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고등학생의 방학은 너무나 짧은 걸 느끼고 있는 윤슬이었다. 잠깐 눈을 떴다 감았을 뿐인데 개학 D-7일이 적힌 캘린더를 보다 한숨을 쉬었다.
‘일한 기억밖엔 없는데….’
한강 한 번, 바다 한 번이 윤슬의 방학이었다. 나머지 날들은 모두 일을 하거나 밀린 인강을 듣는 것으로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습관처럼 미션 완료를 위해 SNS를 체크한 윤슬은 이제 바로 뜨는 제인의 피드를 살폈다.
[Youstagram]내가 제일 좋아하는 별장에서 우리 가족이랑.
장소-Kota Kinabalu
좋아요 7,596
댓글 123
-엥 제일 좋아하는…? 제인님 혹시 별장이 여러 개…이신건가요? 설마?
˪네 작지만 여러 개에요ㅎㅎ
-대박 언니 너무야해요ㅠㅠㅠㅠㅠ얼른 가려요ㅠㅠㅠㅠㅠ
-비키니 대박적… 하제인 귄카
-섹시청순 우리언니가 다해먹었다 언니 기억나요? 루브르 박물관… 생략
딱 사진 하나를 올렸을 뿐인데 한 시간 만에 좋아요 칠천 개를 넘기는 제인을 보며 윤슬은 혀를 찼다.
‘급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여행뿐이 아니라, 별장이라니. 그것도 여러 개.
윤슬은 제인의 댓글을 읽다 위에 뜨는 알람에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개학 직전을 맞이해 반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곳이 약속 장소라 살짝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입력: 나가는 중ㅎㅎ
아직 윤슬의 좋아요는 세 개를 합쳐 만 개를 채우지 못했다. 나름대로 인생 샷을 건졌다고 기뻐했던 마음이 제인의 해외 별장 사진 앞에 초라해졌다.
* * *
“녀석들…. 오랜만이다.”
깡패 두목이 손 턴 부하들을 만나 인사하는 것 같았다. 물론 돌쇠 아저씨였다. 나름대로 반기는 듯한 미소는 오늘따라 위협적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용~”
“늘 먹던 걸로 주시죠.”
“소희야, 오늘은 쫄면 넣자.”
라면 사리인지 쫄면 사리인지 우동 사리인지 진지한 토론 끝에 오늘은 쫄면이 이겼다. 치열한 가위바위보의 결과였다.
“…마시면서 먹어라.”
은밀하게 마약을 건네는 것 같은 표정의 돌쇠 아저씨는 윤슬의 테이블에 꿀피스를 내려놨다. 복숭아 맛. 가끔 돌쇠 아저씨는 혼자 꿀피스를 마시고는 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복숭아 맛이었다.
“아저씨, 왜 맨날 복숭아 맛만 드세요? 파인애플 맛은 안 드시고.”
파인애플 맛을 제일 좋아하는 가영이 어느 날 묻자, 돌쇠 아저씨는 진지하게 말했다.
“파인애플 맛은… 입 안이 까진다….”
생각보다 아주 여린 아저씨였다.
“이쪽 숙녀분께서 보내셨습니다.”
서은이는 차가운 건 여전한데 이제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했다. 와인 따르는 소믈리에를 따라하겠다며 점점 꿀피스를 든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근데 사람 별로 없다. 그치.”
“응. 방학이라 그런가 봐.”
오늘도 돌쇠 아저씨가 산처럼 쌓아 준 볶음밥 위 김가루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돌쇠네 떡볶이 안에는 윤슬의 테이블뿐이었다.
여고 뒤편에 작게 자리한 이 가게는 분명한 맛집이었다. 하지만 골목길 사이에 자리하다 보니 아는 사람만 오는 가게였다.
“앗, 파리가….”
“이쪽 숙녀분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불길하게도 이렇게 파리가 날리고 있었다. 어쩐지 늘 씩씩해 보였던 돌쇠 아저씨의 어깨도 오늘따라 작아 보였다.
‘임대료 괜찮나?’
윤슬은 바로 가게 견적부터 생각했다. 역에서 거리가 제법 있으니 임대료는 다른 가게보다 분명 낮을 테지만 공과금이며 세금까지. 이 상태라면 돌쇠네 떡볶이는 그저 추억의 맛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지금 진지하게 손에 들고 읽는 건 어쩌면 마이너스 표시가 가득한 가계부가 아닐까. 윤슬은 걱정했다.
딸랑-
“형님!”
“…네놈, 왔구나.”
돌쇠네 떡볶이집 문 위의 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윤슬아, 뒤 돌지 마…. 눈 마주치지마.”
“깜방 동기인가 봐.”
윤슬의 맞은편에 있던 서은이 조용히 말했다. 가영이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슬은 영문을 몰라 그저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다. 소희는 관심이 없는지 볶음밥을 긁어내는 데 열중했다.
윤슬의 등 뒤에는 돌쇠 아저씨만큼 험악한 사내가 손에 수상한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형님! 힘들게 구한 것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지요. 오픈하고 나서는 처음입니다!”
쩌렁쩌렁 가게를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제법 험악했다. 돌쇠 아저씨를 깍듯하게 대하는 것이 친분이 보통은 아닌 듯했다.
“오냐, 오랜만이다.”
그때였다.
「[스킬: 팩트 폭격 시작합니다! (A)]」
“깡패….”
가영의 머리 위 스킬이 빛나더니,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볼륨 조절이 안 된 탓에 스윽 험상궂은 사내가 테이블을 쳐다봤다.
“…깡패?”
되묻는 듯한 얼굴에 가영은 딸꾹, 작은 딸꾹질을 했다.
“그래. 까페! 우리 이제 다 먹었으니까 가야지.”
「[스킬: 내가 곧 판사다 (A+)]」
자연스러운 얼굴로 스킬을 빛내는 소희가 가방을 들고 일어나자, 모두가 허겁지겁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까!페! 는 어디로 갈까.”
“…가까운데 가자.”
부자연스럽게 윤슬이 까페를 크게 강조하고, 서은이 말을 이었다. 빠른 동작으로 그들은 돌쇠네 떡볶이 가게를 나섰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진짜, 돌쇠 아저씨 이제는 손 씻은 거 맞겠지.”
“오랜만에 본다잖아….”
가게에서 나올 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숨죽여 달아나던 친구들은 가게에서 멀어지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숨을 크게 쉬었다. 죽다 살아난 기분으로 그들은 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험상궂은 사내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얼굴 같았는데.”
“네가 아는 어린애가 어딨냐.”
어깨를 으쓱해 보인 사내는 아이들이 나가고 나서야 수상한 봉투를 열어 내밀었다.
“형님! 이게 그. 프랑스에서 왔다던 마카롱입니다. 제가 한 시간 줄 서서 샀습니다. 백화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주 그냥 사람들이~”
귀여운 핑크색 박스를 꺼냈다. 검은 비닐봉투 안에 담겨 있는 마카롱은 옅은 핑크색으로 깜찍하게 레드 리본까지 묶여 있었다.
“…….”
돌쇠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감동받은 얼굴로 험상궂은 사내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마지막 남은 거! 제가 가져온 겁니다. 형님, 종이 쇼핑백도 똑 떨어졌다 해서 그냥 달라고 했습죠.”
“기특한 녀석….”
솥뚜껑 같은 손으로 돌쇠 아저씨는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작은 마카롱을 하나 꺼내서 깨물었다.
‘녀석들이 급하게 가지만 않았더라면, 하나씩 먹여 주었을 텐데.’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간 녀석들에게 조금 섭섭했다. 오랜만이라 많이 반가운 것은 자신뿐인 것만 같았다.
이 작은 떡볶이 가게는 초라해서 그다지 정을 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돌쇠 아저씨는 카운터에 작은 인형이라도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텅 비어 돌쇠 아저씨의 마음까지 휑하게 만들고 있는 이 작은 가게. 쓸쓸한 이 공간에 며칠 뒤 사람들이 한가득 들이닥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