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75)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75화(75/405)
그로부터 한 달 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던 윤슬은 준비한 조퇴증을 들고 서울시청 다목적홀로 향했다.
“이쪽으로 가면 돼.”
“진짜 넌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시청 내부도 잘 알아 백휘야?”
“…그러게. 너 여기서 살아?”
시청 정문에서 재언과 백휘를 만나, 가는 중이었다. 윤슬은 재언이가 교복을 이렇게 단정하게 입은 모습을 처음 봐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교복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재언도 자신이 어색한지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윤슬은 장엄한 홀의 문을 열기 전 오랜만에 입는 춘추복의 니트를 한번 털어 정리한 후 고요한 내부로 들어섰다.
끼익-
두꺼운 나무 문이 소리와 함께 열렸다. 윤슬은 어두운 내부의 바닥 아래 조명이 비치는 길을 따라 단상 앞을 마주했다.
“자, 우리 꿀떡… 아니 윤슬 학생. 이번에 아주 큰일을 했어요. 아주 귀감이 돼요, 귀감!”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눈치를 챈 거예요.”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엄숙한 분위기를 너스레를 떨어 부드럽게 바꿔주는 최강묵 의원으로부터. 윤슬은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푸른 벨벳이 입혀진 상장을 건네받았다. 옆에는 각자의 교복을 입은 재언과 백휘도 함께했다. 셋은 표창장을 받았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찰칵거리는 소리가 요동쳤다.
[고등학생들이 사이버 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협조…]고등학교 1학년, 팀 ‘최선’ 학생들이 장학금과 문화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사용자가 앱을 다운로드받기 전 이용약관을 모두 살펴보지 않는 허점을 이용해 일어난 이번 피싱은 팀 최선의 학생들이 이용약관을 살펴봄으로써 실마리가 잡혔다.
커뮤니티와 SNS에서 피해자의 사례를 모은 팀 최선 학생들의 발 빠른 대처는 범죄 조직을 잡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최 장관은 “우리나라는 IT강국으로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앞장서고 있지만, 모든 일에 명과 암이 있듯 개인 정보 도용이 심각하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가 만연한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법안 하나가 없다는 것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분개했다. 또한 SNS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에 대해 강력 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다.
최 장관은 “특히 지켜주어야 할 미성년자들마저 이용한 이번 범죄는 가벼이 넘길 수 없다.”라고 주장해 현장에 있던 다른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한편 팀 최선의 멤버 ‘최백휘’ 학생은 최 장관의 손자로 알려졌다.
행사에 참석한 기자들은 빠르게 기사를 써 내려갔다. 윤슬은 단상 앞에서 로봇처럼 어색하게 포즈를 취했던 자신을 회상하며 후회했다.
“나 아까 눈 감은 것 같은데.”
“괜찮아. 연사니까. 그중에 하나로 쓸 거야.”
“…눈 감아도 귀엽게 보일걸.”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고등학생들의 사정은 조금도 봐주지 않은 행사답게 시작은 오후 1시였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조퇴해 시청 홀의 벨벳 의자에 앉아있던 윤슬은 조금씩 노쇠해져만 갔다.
“백휘야. 나 박수치다 하루 다 간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나.”
“윤슬아 속지 마… 저 말 벌써 다섯 번째야.”
계속된 행사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드디어 행사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1시에 시작한 행사는 세 시간이 넘은 뒤에야 끝났다. 왜 이렇게 절차가 길고 박수치는 시간이 많은지. 물론 행사가 끝났어도 셋은 풀려나지 못했지만.
“최 장관님은 정말 부럽습니다. 어쩜 손자가 저리 훤칠한지요!”
“손자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아주 대단해요. 나라의 미래가 밝아요, 미래가!”
“권재언 학생이라고 했나? 자네, 내가 잘 알지. 지난 올림피아드도 대상 받았더만!”
“윤슬 학생 용기가 아주, 이거야 이거. 여학생이 이런 강단이 있다니.”
가슴팍에 국회의 배지를 단 사람들이 끝도 없이 악수를 요청했다.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윤슬은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 할 뿐이었다.
‘배고파….’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늦더라도 밥 먹고 오는 건데.
윤슬은 오늘 급식표를 말하면서 아련하게 잡던 소희가 생각났다.
“윤슬아, 조금만 먹고 가면 안 돼? 오늘 스파게티에 돈가스 나와…. 수요일도 아닌데 이런 날 흔치 않아.”
디저트로 나온다던 요구르트라도 하나 받아 올걸.
윤슬은 어느새 동태눈이 되어 있었다.
“이런! 우리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어요.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회포를 풀고, 우리는 이제 갑시다!”
눈치 좋게 최강묵은 퇴장할 빌미를 만들어주어 윤슬에게 점수를 땄다. 한쪽 눈을 장난스레 찡긋 감아 보인 최강묵을 바라보며 윤슬은 웃고 백휘는 굳었다.
* * *
“근데 우리 너무 햄버거만 먹지 않나?”
윤슬이 수고했다며 회식을 제안하자마자 또다시 붙잡혀 온 곳은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였다. 틈만 나면 고생시킨 둘에게 소고기를 사주려고 하는 윤슬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276번 거!객!님! 햄버거 나와씁니다-!!!”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직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소중하게 종이 표를 가지고 있던 재언이 빠르게 일어났다.
능숙한 손길로 햄버거의 포장을 까 쥐어 주는 재언은 며칠 새 살이 빠져 있었다.
“어, 이거 기사 벌써 나왔다.”
“음? 빠르네.”
“윤슬아, 여기 물티슈.”
핸드폰으로 확인하자 예쁜 게 죄야 포션을 먹었음에도 어딘가 묘하게 부한 자신과 둘의 사진이 담긴 기사들이 뜨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백휘는 당연히 잘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재언이 너무 잘 나와서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졌다. 재언은 어두운 조명일수록 사진이 잘 나오는 타입인 듯했다. 극악의 조명 사이에서 재언은 포스터를 찍은 배우 같았다.
“아니 그냥. 너 새삼 잘생겼구나 싶어서.”
윤슬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햄버거를 먹었다. 잘 나온 사진 하나라도 있어야 아빠한테 보낼 텐데. 모든 사진에서 로봇같이 뚝딱대고 있었다. 윤슬만 합성한 것 같았다.
이걸 그대로 아빠에게 보냈다가는 프로필 사진으로 박제될 게 뻔했다.
(거지 같은 기사 사진)
서충남: 자랑스런 울딸ㅎ 서윤슬이
그리고 모두가 윤슬의 사진을 한 번씩 구경하겠지….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특히 가장 거지같이 나온 사진을 보며 윤슬은 눈물을 삼켰다.
‘박동진 기자 반드시 복수한다.’
이가 보이도록 웃으라는 요구에 웃었더니, 태극일보의 박동진 기자는 그때의 모습을 먹이 앞둔 알파카처럼 찍어 올렸다. 윤슬은 망설임 없이 화나요 버튼을 눌렀다. 후속 기사 원해요 버튼은 이미 두 개가 눌려 있었다.
‘이걸 그새 누가 누른 거야.’
그동안 백휘와 재언은 굳어서 한 입도 먹고 있지 못했다. 윤슬의 그 한마디가 주는 파장이 컸다.
‘새삼 잘생겼구나 싶어서, 잘생겼구나, 잘생겼….’
둘의 귓가에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재언의 죄 없는 빨대가 잇새에서 씹히고 백휘의 죄 없는 냅킨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이날 처음으로 재언은 햄버거를 남겼다. 붉어진 얼굴로 차가운 콜라만 들이킬 뿐이었다.
* * *
[와~^^ 용감한 어린이 상을 받은 거예요?] [(꽃다발을 든 바보멈 이모티콘)]‘누구 맘대로 어린이지? 네가 더 어린데.’
하진에게 자랑을 했더니 곧이어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들어 하진과 연락을 자주 하며 부쩍 친해진 둘이었다. 윤슬은 오늘 받은 상을 자랑했다.
[사진 잘 나왔네요. 특히 이거] [(박동진 기자의 사진 캡쳐)]입력: 장난해요?│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거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윤슬은 언젠가 하진이 가사 사진으로 굴욕을 당한다면 반드시 복수해 줄 거라는 다짐을 했다.
입력: 그때 말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
윤슬이 질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빠른 답장이 왔다.
[잠깐만요^^]그리고는 끝없는 진동이 이어졌다.
지잉-지잉-지잉-지잉-지잉-
[아, 미안해요. 내가 한 번에 보내기를 안 했네…] [사진] [사진] [이미 가고 있는 사진] [사진] [멈추기가 안 되네요…] [(당황한 바보멈 이모티콘)]그렇게 끝도 없는 사진의 행렬이 이어졌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모델들의 사진들이었다.
* * *
막 표절 어플이 피싱 범죄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윤슬은 두 번째 어플에 대한 고민을 했다.
“보정 어플이 유출됐다는 게…. 사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꺼림칙하지. 다른 것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될 거고.”
“맞아. 아무리 보안을 중시한다고 말했어도 믿기 힘들 거야. 어쩌면 출시일을 좀 늦추는 게….”
“아니. 늦추지 마.”
윤슬과 재언이 걱정하고 있을 때, 백휘는 단호히 대답했다.
“제2, 제3의 어플은 언제든지 나와. 막말로 피싱 기사 나면 ‘아 나도 저렇게 돈 벌어야겠다.’ 싶은 병신들 있겠지.”
“그렇긴 해.”
“차라리 선점해버려서 우리 어플만 위주로 쓰게 만들자. 어차피 그 어플 이제 없어질 테니까 그대로 보정 다 따서.”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윤슬은 연락이 닿았던 피해자들이 경찰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게끔 했지만 이걸로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또 다른 피싱 어플이 언제든 나올 수 있으니, 그 어플에 흥미 자체를 갖게 하지 말자는 백휘의 말이 묘하게 안심되었다. 대중은 언제나 ‘인기 1위’를 고민 없이 선택하는 법이니까.
“그럼 일단 내가, 필터를 여러 개 더 만들어서….”
“나도 사용할 수 있는 폰트를 더 알아볼게.”
전체적으로 핑크빛과 하늘빛이 도는 이번 어플은 특히 셀카 보정에 잘 어울렸다. 윤슬은 말없이 생각했다. 회귀 전 보정 어플들을 하나씩 떠올리던 윤슬은 또다시 익숙하게 돈을 생각했다.
돈, 비싼 거, 잘 팔릴 거, 유명한 거….
“유스타?”
그러자 결론은 SNS. 이른바 아이돌의 일상 사진에 생각이 미쳤다. 괜히 연예인들이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연예인들의 잘 찍은 사진은 화제와 이익을 둘 다 불러왔다. 일단 잘 찍힌 사진과 한눈에 봤을 때 그럴싸한 피드는 사람을 불러 모으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윤슬은 유일하게 아는 연예인한테 연락을 했다.
입력: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잘 지내시죠?
입력: (활기찬 바보멈 이모티콘)
하진이었다.
물론 처음 제안은 조금 절망적이었다. 아는 여자 연예인, 특히 셀카를 잘 찍는 연예인에게 어플을 먼저 써 보게 해줄 수 있냐는 질문에 하진의 답은 이 모양이었다.
[친한 여자 연예인이라…] [최근 프로그램에서 번호를 주고받은 분이 계신데.] [해 주실지는 모르겠네요. 부탁은 드려볼까요?]‘이 정도로 극존칭이면 분명 탑 연예인이다.’
아이돌도 좋지만, 배우도 좋지. 윤슬은 빠르게 두뇌를 돌렸다. 배우면 사복 차림이 많을 테니 OOTD 모음으로 뿌리면 좋을 것 같았다.
[효녀가수 현순 선배님이신데, 일단은 말씀 드려볼게요. 윤슬 씨 부탁이니까]입력: (바보멈이 말리는 이모티콘)
입력: 아니 소속사 후배라도 있잖아요;;;
[모르는 선배가 부탁하면 그건 부탁이 아니라 반쯤 협박 같을 거라] [(당황하는 바보멈 이모티콘)]‘그렇긴 해.’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다. KTM 소속사 중 비주얼 센터로 유명했던 여자 아이돌을 노리고 있던 윤슬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데뷔가 몇 년 차인데 친한 여자 연예인 하나가 없을 줄이야.
[이번에도 내 사진으로 하면 안 돼요?] [나는 별로예요?]응. 별로였다. 퍼브스지가 선정한 핑크가 가장 안 어울리는 남자로 채택될 만한 하진이었다. 윤슬은 읽고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윤슬의 머뭇거림에 하진은 시무룩해진 듯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이모티콘을 보내도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바보멈의 옆에 있던 빨간 1이 사라질 뿐이었다.
* * *
“형 뭐함? 여친?”
“아, 제발 노크….”
하진은 오늘도 몰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박치즈를 바라봤다. 요즘 목 관리를 잘 하지 않아 고음 처리마다 삑사리가 나는 녀석이었다. 춤도 곧 그룹과 뜻이 맞지 않아 탈퇴를 하고 외국 공작소로 가 새 뜻을 꾸려나갈 것 같은 느낌으로 설렁설렁 췄다. 그걸 보고서도 팬들은 필사적으로 흐린 눈을 했지만.
-우리 치즈냥ㅠㅠㅠㅠ 이제 완전 프로 다됐지 설렁거리는데도 손끝 발끝 다 각 살아있고 동작 안 날림…ㄹㅇ 올라운더 내 보물 움쫩쫩 (리트윗 6879회 인용한 트윗 1610회 마음에 들어요 2,075)
현실은 뭐 여자친구랑 싸운 날이면 대충 추고 표정도 온갖 권태에 시달리는 슈퍼스타처럼 굴었다. 그리고 지금 박치즈는 무대 위에서 보여준 적 없는 생태 눈을 하고 외출 전 오늘의 코디를 물으러 왔다.
“나 오늘 어때 이거?”
“그거 내 옷 아니냐?”
“빌려줘잉.”
“벗고 나가.”
“어, 이거 지난번 그 여고생? 혹시 썸? 너무 어리지 않나.”
“나가.”
하진은 침대 위에 있던 베개를 던졌다. 요령 좋게 받아들고 웃는 얄미운 얼굴을 보다 하진은 불현듯 떠올랐다.
“야, 너… 친한 여돌 많지.”
“엥 왜?”
“부탁 하나만 하자.”
그렇게 오랜만에 박치즈는 본인의 전공을 잘 살렸고, 효녀가수 현순이 아닌 1군 여돌들의 SNS에 두 번째 어플, 로맨스 필름이 사용되었다. 출시 2주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