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78)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78화(78/405)
예원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윤슬은 맛있는 떡갈비가 지글지글 구워져 가는 냄새를 맡으며 멋쩍게 서 있었다.
“아, 나는 엄마 심부름 때문에… 어. 내일 보자.”
“우리 예원이 친구니?”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윤슬에게 살갑게 이쑤시개에 꽂힌 떡갈비를 내미는 예원의 어머니였다. 거절하고 가려 했지만 두 번 세 번 권유하는 그 손짓에 어쩔 수 없이 떡갈비를 삼켰다.
“엄마 심부름도 잘하네~? 얘는 생전 엄마 심부름이라면은~”
“그런 얘길 왜 해!”
“암튼. 얘가 좀 성격 별나긴 해도 나쁜 앤 아니야. 친하게 지내 줘, 응?”
“하하. 예원이 되게 착해요. 저랑 반에서 제일 친해요.”
“진짜? 아줌마가 떡갈비 크게 줘야겠네~”
분명 맛있는 떡갈비일 텐데 가시방석 위에서 먹자니 맛을 잘 못 느끼는 윤슬이었다. 얼굴이 빨개져 씩씩거리는 예원에게 팔짱을 꼈다.
“예원아,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가자.”
“…갑자기?”
“기다려 봐. 아줌마가 용돈 줄게, 둘이 같이 먹게.”
“어어어어!!! 아니에요!!! 저 선물 받은 기프티콘 있어서 그거 쓰려고 그래요! 떡갈비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윤슬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더 단단히 예원에게 팔짱을 꼈다. 질질 끌다시피 해서 마트 밖을 벗어난 윤슬은 강하게 밀쳐졌다.
“뭐야, 너 뭐하는데.”
“야 아퍼….”
“그건 미안. 나 간다.”
“나 배고파! 너도잖아. 우리 오늘 보릿고개 체험했잖아….”
장난스럽게 예원의 팔을 잡고 흔들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 듯했다. 윤슬은 한발 물러났다.
“나 혼자 먹기 좀 쪽팔려서 그래. 제발 부탁.”
“그럼 그러든가….”
이런 자존심은 윤슬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원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누구보다 혼자 밥 먹는 걸 잘하는 윤슬은 예원과 함께 근처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나중에 갚을게.”
“뭘 또 갚아. 됐어.”
억지로 햄버거를 두 개 주문한 윤슬은 빠르게 세팅했다. 툴툴대는 것 같아도 배는 고팠는지 예원도 묵묵히 감자튀김을 집어 먹었다.
“애들한테 말할 거야?”
“오늘 우리 둘만 햄버거 먹은 거?”
“아니. 우리 엄마… 마트에서 일하는 거.”
“안 하지.”
예원이 아까부터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거인 듯했다. 콜라를 마시는 예원을 보며 윤슬은 생각했다.
‘…갑자기 옷은 왜 필요하지.’
10월 초. 하나둘씩 새로 산 후드 집업이나 가디건을 교복 위에 걸치고 다니는 날씨였다. 예원은 기침을 하면서도 뭘 입지 않아 친구들은 종종 묻고는 했다.
“예원이 넌 안 추워? 마이만 입네.”
“어… 아직은 별로.”
“기침하는데?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학기 초에 윤슬의 무릎담요를 몇 번이나 빌려간 걸로 봐서는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윤슬은 예원이 새로 샀던 운동화를 떠올리고는 깨달았다. 익숙한 로고가 있던 그 운동화.
‘…그 회사 망해서 그렇군.’
BJ가 고급화 전략을 쓰며 만들어 낸 브랜드였다. 워낙 인지도가 높은 유명 BJ였고, 연예인 협찬도 공격적으로 해서 금세 인지도가 높아졌었다.
‘아이돌 육상 선출권 대회에도 PPL 냈었지.’
아이돌이 입고 신으니 곧이어 어린 층의 구매로 이어졌다. 예원 역시 같았고.
하지만 경영의 부재로 누구보다 빠르게 내리막길을 걸었고, 곧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우스워졌다. 워낙 짭에 가까울 정도로 디자인을 표절하기도 해서 더더욱 땡처리 이미지가 굳어졌고.
‘저렴한 거 여러 벌 대신 비싼 브랜드 하나를 산 건가.’
입을 옷이 없다고 울먹이면서 짜증을 낸 걸 보니 알 것 같았다. 띠링거리는 주문 벨 소리와 주변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내는 소음이 상당했지만, 둘은 조용히 햄버거만 먹었다.
“근데 가을옷은 좀 돈 아깝지 않아? 나만 그런가.”
윤슬은 자연스럽게 툭 뱉었다. 최대한 예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물론 오래된 윤슬의 생각이기도 했다.
‘가을은 체감상 2주밖에 안 되는데 옷 가격은 겨울이랑 비슷하단 말이야.’
회귀 전 가을옷은 고민하다 내려놓고, 고민하다 내려놓고를 두 번 반복하면 이미 겨울이 와 있었다. 그래서 늘 대충 입고 다녔던 기억뿐이었다. 트렌치코트는 가을의 대명사라는데 윤슬에게 있어 가을의 옷이라고는 플리스 집업이었다.
“넌 돈 많잖아.”
“누가 그래? 야, 나 용돈 안 받아.”
그 말에 예원의 눈이 커졌다. 생각도 못한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진짜…? 너 그럼 알바해?”
“유스타에 광고 받는 게 다 알바지. 나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중고세상에서 거래 네임드야. 하도 파는 물건이 많아서.”
뻣뻣하게 굴던 예원의 모습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어느새 둘의 사이는 이전과 같아졌다. 예원은 윤슬이 자신을 무시하지는 않을까 털을 세우고 경계했지만, 자신에게만 말하는 비밀이 있다는 게 제법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나 뭐 협찬 들어오면 ‘와, 이거 팔면 잘 팔리겠다.’ 자동으로 이 생각 든다니까?”
“그럼 화장품 반 애들한테 주지 말지! 돈 아깝게.”
“이미 바른 건데 팔기도 어렵지. 그리고 화장품은….”
윤슬은 목소리를 조그마하게 줄였다.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짓하자 예원과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택배로 보내면 깨질 확률이 커서… 다시 환불해줘야 돼….”
그러자 예원이 크게 웃으며 얼굴을 가렸다. 이런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너 현체 때문에 그러지.”
“…어. 나 가을옷 입을 게 없어서.”
“그럼 나랑 같이 그냥 교복 입을래?”
“미쳤어! 교복을 왜 입어. 쪽팔리게.”
참 쪽팔릴 것도 많다. 회귀 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놀이공원에서 교복을 대여해 사진을 찍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윤슬은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었다.
‘뭐. 이 나이가 한창 남 시선 신경 쓸 나이긴 해….’
윤슬도 그랬다. 브랜드 없는 게 뭐가 그렇게 창피했는지 몰랐다. 나중엔 배송비 포함 만 원짜리 티셔츠도 잘만 입고 다녔는데 말이다.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브랜드 로고뿐인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뭐가 쪽팔려~. 우리 학교 교복 예쁜데~”
“그래도. 우리만 교복 입는 거잖아.”
“그럼 다 입히면 되지.”
윤슬은 뻔뻔한 얼굴로 웃었다.
야, 어린애들 달래는 거 언니가 못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 * *
“얘들아~ 주목해줘~~~”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적당히 어수선한 교실 안에서는 다들 다음 주 있을 현장체험학습 때 뭘 입을지 얘기하고 있었다. 장소는 늘 그렇듯 놀이공원이었다. 윤슬은 칠판 앞으로 가 보드에 글자를 썼다.
[교복 파티원 구함]큼지막하게 써진 글자에 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윤슬을 바라봤다.
“우리 다음 주 수요일에 교복 입을 사람 있어?”
그러자 교실 안이 아까 전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윤슬은 두 팔을 펼쳐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왜? 혹시 학교에서 교복 입으래?”
“아, 미친… 나 옷 사놨는데.”
이미 사복 입을 걸 기대하고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윤슬은 여유롭게 웃었다.
“아니~, 학교에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우리 반의 추억을 위해?”
“갑자기 무슨 추억?”
반 아이들은 윤슬의 말에 의아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솔직히…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강전 간 뒤로… 더 친해지지 못했잖아. 그치~”
조은주 사건이 일어난 다음 반 아이들은 은근히 친해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한데 모아두고 같이 놀게 해주던 키즈니아 알바 출신. 윤슬이 지나치게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은주와 함께 다니던 무리는 홀수가 되어서 그 사이에서 약간의 다툼도 일어났다.
다른 무리들은 혹시나 그 홀수인 친구가 자신들에게 다가올까 일부러 슬슬 내뺐다. 이미 다들 짝수를 맞춰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 나이 때는 혼자가 죽기보다 싫으니까, 어쩔 수는 없지.’
그렇게 적당히 어색하게 늘 노는 친구들끼리만 노는 반이 되었다. 다른 반들은 방학 때 단체로 만났다고도 하는데, 윤슬의 반은 그런 게 없었다. 단합왕 주현에게 얘기를 전해 들었던 윤슬은 이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거기서 회전목마 앞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다들 내가 개인 사진도 한 번씩 찍어주고 싶어! 그리고 그 사진 인화해서 우리 겨울방학 때 롤링 페이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윤슬~, 나 질문!”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던 지영이 귀엽게 손을 들었다.
“넹. 물어보세요.”
“사진 찍는 건 그렇다 치고 왜 교복인데? 사복 입고 찍으면 안 돼?”
예리하다. 하지만 이미 준비해 둔 말이 있었으므로 윤슬은 매끄럽게 넘겼다.
“사복 입어도 돼. 근데 난 이거 때문에.”
그리고 준비한 사진들을 보여줬다. 20살이 넘어 교복이 한창 그리울 사람들이 고등학교 때의 교복을 입고 회전목마에서 찍은 인생 샷들이었다. 유명한 유스타스타들의 만우절 사진들로만 골라왔다.
“회전목마 앞에서는 사복보다 교복이 훨씬 예쁘길래…. 너네 찍어 줄 거 이왕이면 예쁘게 찍히면 좋잖아.”
그 말에 교실이 술렁였다. 아무래도 크게 먹힌 것 같았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옷에 신경 쓰던 아이들의 목적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 같은 반 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옷 한번 고르는 데도 많은 고민이 필요할 나이였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비슷한 옷을 입고 싶어 하는 나이이니만큼 크게 튀는 옷을 고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옷이 무난한지 저 옷이 무난한지 고민할 나이.
[10대 게시판] 내일 현체인데 코디 좀 골라주라!ㅠㅠ 보기 있음(댓글 47)1. 핑크색 니트+흰색 테니스 스커트
2. 까만색 후드+까만색 테니스 스커트
3. 이건 제일 입고 싶은 건데… 브이넥 니트에 아메리칸 어퓨어 디스코팬츠ㅠㅠ
3번 짧긴 짧은데 놀이기구 ㅂㄹ 안 탈거고 사진만 찍을 거임. 초커랑 같이 했을 때 친구들은 예쁘다고 해줬는데 반에 나 좀 꼽주는? 일진은 아닌데ㅋㅋㅋ 걔네한테 친한 척 하는 애 있거든 걔네무리가 보고 뭐라 뒷담 깔까봐 좀 망설여짐… 세 개 중에 골라주라
-3번 입는 순간 그 꼽 주는 무리 말고 전교생이 니 얘기함
˪2222 야 저건 에바임…
˪33 나 보자마자 히익;;;함 홍대 놀러갈 때나 입어
-1번 개취로 예쁨
-그나마 2번… 애초에 놀이공원 갈때 테니스 스커트 입는 거 좀 ㅂㄹ아닌가 일단 치마 입었다고 말나올듯
˪테니스 스커트 다 입는데 누가 뒷말을함ㅋㅋㅋㅋ 엄마가 사준 옷 입고 오는 애들이 그럴 듯
˪학교마다 다른 거지 우린 그럼; 아득바득 나댈라고 하는 거 같오ㅎㅎ
-무난하게 입어 무난하게~ 선생님들도 뭐라 함 3번은 ㅠㅠ
얘기를 듣는 반 친구들은 아직 주문한 옷이 도착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사람 몇 명, 작년에 산 옷이 마음에 안 들어 고민하는 사람 몇 명.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토끼 머리띠와 인생 샷을 건져 올 생각에 들뜬 몇 명이 섞여 있었다.
“그럼 나 교복 입을래, 나 찬성!”
교실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지영이 제일 먼저 찬성하자, 주변에 있던 몇 명도 말을 거들었다.
“사실 나도 교복 입고 놀이공원 한번 가보고 싶었어.”
“야, 언제는 남친 사귀면 입고 간다며?”
“그럼 나도 교복 입을래~”
점점 교복을 입겠다는 쪽이 많아졌다. 오히려 이제 사복을 입고 싶어 하는 쪽이 적은 와중 윤슬은 선심 쓰듯 말을 더했다.
“아 물론 다 똑같이 입자는 건 아니고! 현체 때 입으려고 산 가디건이나 후드 집업? 있으면 그거 걸쳐도 예쁠 것 같아, 난.”
그러자 빠르게 또 몇 명이 합류했다. 윤슬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에 끼고 싶은 여고생은 없으니까. 복잡하고 웃기지만 이 나이가 이런 법이었다.
“사복 입고 싶은 사람은 입고, 그럼 우리 반 드레스 코드는 일단 교복~”
중간부터 자신도 입겠다고 말한 예원과 눈이 마주쳤다. 윤슬은 언젠가의 최강묵이 했던 것처럼 한쪽 눈을 감아 예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윤슬이 눈에 먼지 들어갔어?”
“…어어. 뭐 그런 거 같아.”
소희가 인공눈물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놀이공원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