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8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81화(81/405)
근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구냐고 물으면 좀 그렇겠지.
나는 또다시 어색한 알파카처럼 웃었다.
“나 유리야, 김유리.”
“…어?”
그게 누구신데요. 눈앞에 있는 긴 생머리의 고양이 같은 여자애는 내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나 차재겸 친구! 김유리!”
“…아!”
지난번에 피싱 사건 때 연락 주고받았던 유리였다.
유리는 바로 내 앞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하려던 그때, 다시 한번 문이 열리고 담당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스타일 슈어의 서포터즈, 슈어즈 분들.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담당자가 될 엘리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사람은 작은 상자를 하나 손에 들었다.
“여러분은 이제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셔야 되는데요. 과연 첫 번째 미션이 뭘까요?”
‘…이게 뭔디.’
그냥 옷 주면 알아서 입고 사진 찍는 거 아니었어?
갑작스럽게 본격적인 대외활동의 느낌이 물씬 나는 분위기에 나는 억울했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뺏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벱은 없는겨….’
내가 웬만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인데, 화가 나네…. 저강도의 노동을 생각하고 온 내게 이런 고강도 노동을 시켜?
주변에서 살짝 들뜬 목소리로 미션에 대해 유추하고 있을 때, 드디어 입을 열어 밝힌 건 바로 지난번에 내가 예상했던 어플 서비스의 확장이었다.
“이 상자에는 이번 FW 스타일 슈어의 새로운 제품들이 있는데요. 놀라지 마세요! 앞으로 스타일 슈어는 단순한 유저들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공간이 아닌, 이어서 쇼핑까지 할 수 있는 어플로 변신합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몇 명은 SNS로 광고를 받아 이미 알고 있는 체를 했다.
“저거 이제야 말씀하시네.”
“연지, 너는 알고 있었어?”
“응. 나연이 너는 몰랐어? 아, 너한테는 광고 안 갔겠다….”
아 저거 볼수록 밉상이네. 고은하랑 영혼의 단짝이 될 것 같다.
“모든 브랜드를 바로 쇼핑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스타일 슈어와 제휴한 업체에서는 바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오픈부터 이번 겨울까지 쭉~. 할인 쿠폰과 회원가입 시 증정하는 다양한 혜택들을 만나 보실 수 있으세요.”
본론으로 좀 들어가 줬으면 좋겠다. 판촉 행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슬슬 지루해지려 할 때쯤, 진짜 최종의 최종 목적이 나왔다.
“그래서 이 상자에는, 스타일 슈어에서 쇼핑이 바로 가능한 브랜드들의 신제품들이 들어 있습니다. 뽑은 옷은 선물로 받아 가시는데, 이 선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업로드한 다음 1등, 2등, 3등을 뽑을 예정이에요.”
뭐 적당히 찍고 빠져야겠다. 이런 행사에서 1등 해봤자 문화상품권이나 주려나? 1등이 5만 원일지 10만 원일지 생각하고 있던 나의 귀에는 믿지 못할 경품이 들려왔다.
“크게! 화려하게! 센스 있게 시작하는 만큼, 경품은 1등. 앤플패드 프로. 2TB.”
‘반드시 우승한다.’
2등과 3등은 들을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1등을 하고 말테니까. 되팔면 대체 얼마지?
나는 세 자리 수는 거뜬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내 앤플패드를 떠올렸다.
“다만, 업로드하는 플랫폼은 스타일 슈어입니다. 유스타를 비롯한 에이스북 같은 SNS에는 올려주셔도 좋고, 안 올리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올려주시면 저희가 많이 기쁠 거예요. 하하.”
상자를 잠시 흔들어 보인 엘리는 맨 앞줄부터 한 명씩 뽑게 다가갔다.
“저희 스타일 슈어에 앞으로는 ‘좋아요’를 많이 받으시는 분들께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100명의 좋아요를 받는다면 적립금 1만 원. 1000명의 좋아요를 받는다면 3만 원. 이 적립금은 입점된 브랜드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하십니다.”
스타일 슈어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몇은 감탄을 했다. 아마도 좋아요 천 개 정도는 거뜬히 받는 사람들인 듯했다.
‘가입부터 해야겠네, 난.’
아직 스타일 슈어 어플도 깔지 않은 상태인지라 0에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나는 내 자리로 온 엘리가 내미는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바스락-
손에 잡히는 빳빳한 종이를 열어보니 브랜드명과 제품명, 그리고 컬러가 써 있었다. 빠르게 핸드폰을 들어 검색했더니,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브랜드인 O!O!의 메인 원피스가 나왔다.
‘…별로야.’
그리고 그때, 내 뒷자리에서 작게 탄식이 나왔다.
“아, 짜증나…. 진짜 별로야.”
“연지 왜? 뭐 뽑았는데?”
나연이가 궁금한지 뒤를 돌자, 자신의 종이를 구기며 오연지가 짜증을 냈다.
“몰라. 그냥 맨투맨. 칙칙한 거.”
“그럼 나랑 바꿀래?”
브랜드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걸 놓칠 수는 없지.
나는 빠르게 뒤를 돌아 내 쪽지를 보여줬다. 살구색 옷을 입은 오연지의 취향은 O!O!에 가까울 테니 먹이를 보여줘야 성공률이 높을 것 같았다.
“진짜 바꿔주게?”
“어. 난 아무거나 괜찮거든.”
뻥이다. 하지만 내가 탐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 줄 수도 있으니까.
내 예상대로 오연지는 쪽지를 바꿔주었다. 무난한 브랜드의 회색 맨투맨을 손에 넣은 나는 앤플패드를 얼마에 팔지나 고민하기로 했다.
‘1등은 내 거다.’
왜냐면 아까 등수를 고를 때, 좋아요 개수로 하겠다는 말은 없었거든.
* * *
제인은 오랜만에 은하와 단둘이 만났다. 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외출할 때면 일대일이 아닌 여럿이서 만나는 걸 선호했던 제인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래서 서윤슬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줘도….”
“너무 그러지 마.”
서윤슬을 만났다는 얘기에 꼭 단둘이서 만나고 싶어졌으니까. 워낙 말이 많은 데다가 사람이 가벼운 은하는 제인에게 친구가 아니었지만, 은하에게 제인은 단둘이 만나자는 말에 승낙만 해줘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지난번 윤슬을 만났던 이야기를 더 과장해서 늘어놓고 있었다.
“걔 진짜 흙수저 물더니 정신 나갔나 봐. 물론 다 좀 싼 옷이긴 해서…. 거기서 뭐 따지고 할 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지 원피스 잘 뽑아놓고서, 내 옆자리 있는 애 칙칙한 맨투맨이랑 바꿔주더라니까.”
“원피스 입고 갈 데가 없나보지.”
“아! 내가 그걸 생각을 못 했네. 걔 뭐 유스타 보면 친구들이랑 이상한 떡볶이집이나 다니던데. 이전처럼 이런 카페는 간 걸 못 봤다.”
학동역 사거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호텔 로비에서 둘은 먹지도 않을 애프터눈 티를 시켜놓고 사진만 찍는 중이었다. 요즘 이전보다 더 좋아요에 집착하게 된 은하는 사진을 찍을 때면 꼭 이런 장소를 고집했다.
“제인아, 너 태그한다?”
“응. 맘대로.”
[Youstagram]요즘 살쪘다는 걸 알지만~ (✿˘◡˘✿) 가을 애프터눈 티는 먹어조야지~ 제인이랑 시켜놓고 한참 즐거운 시간. 봐도봐도 예쁜 내 친구.
장소-임패리얼 플레이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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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어나더레벨… 고등학생끼리 호텔이라니
-은하언니 오늘도 넘예ㅠㅠ 제인언니랑 오랜만에 노시는 것 같아용
˪같은 학교라 매일 봐요^^
-@강은솔 상대적 박탈감 오진다 이거봐 우리랑 나이 똑같은데 호텔다니고 명품삼ㅠㅠ
-부모님 직업 물어봐도 대나요…ㅠㅠ
-존예끼리 노네
-언니 오늘 귀걸이 혹시 리올이에요?
자신과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의 부러움과 열등감을 한 몸에 사는 것은 중독적이었다. 자신의 하루, 입고 있는 것과 먹고 있는 것, 자주 가는 곳, 취향과 생각까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하루 종일 늘어나는 하트의 개수를 세다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윤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급이 다른 자신이 아닌 윤슬의 하루와 입고 있는 것들을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그거 언제부터 해?”
“업로드? 다음 주 월요일.”
“그래…?”
은쟁반에 옥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는 목소리가 있다면 이런 것일 정도로 우아한 목소리로 제인이 물었다. 목소리에 가려진 음습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밝은 목소리로 제인은 은하에게 물었다.
“나도 도와줄까?”
“어떻게? 홍보해주게?”
“그런 건 좀… 대놓고 하면 없어 보이잖아.”
제인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제인은 그날 은하와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은하의 계정을 태그해서.
[Youstagram]Sunday Afternoon tea.
장소-Seoul. 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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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에게 1등을 줄 수는 없었다. 고작 이따위 일이라 할지라도. 1등이 윤슬의 것이어서는 안 됐다.
* * *
“얘 머리 좋네.”
커뮤니티에서 작업해 둔 메이크업 브랜드의 선호도를 조사하고 있던 윤슬은 고은하를 만나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인과 함께 사진 찍은 은하를.
[20대 게시판] 나보다 어린 애들인데 박탈감…오짐…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유스타스타라 알람설정해두고 보는데ㅠㅠ 해외에 별장도 여러 개 있고 갖고 있는 건 다 명품이고… 가끔 좀 나쁜 생각 들긴 하는데 워낙 이쁘고 사진도 잘찍어서 보는 맛 났거든
일상도 보면 뭐 하이틴임ㅋㅋㅋ 빙의글 삶이 그대로 있음; 난 대한민국에 이렇게 부자 많은지도 처음알았다 ㅅㅂ 친구들끼리 뻑하면 개비싼 파티룸 빌려서 생파하는 것까진 그렇구나 싶었는데 친구들끼리 명품관 돌면서 카드 긁는거 보니까 진짜 머리가 띵하다
나 오늘 알바 잘려서 새 알바 구하다가 그거보고 눈물남
-ㅌㄷㅌㄷ…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음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고? 무슨 고등학생들끼리 그래? 상속자도 아니고
˪나도 아는데 그냥 상속자 실사판임ㅋㅋㅋㅋ 올라오는 사진 보면 부러울 만한 클래스도 아님 걍 딴 세상사람
-(제인과 은하의 사진 캡쳐) 얘네 맞지? 나도 오늘 봄
-상관도 없는 남 보고 울고 그러는 거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다 요즘 상대적 박탈감 박탈감 하는데 그냥 신경 끄고 열심히 사는게 나을듯 남는것도 없는데 계속 SNS잡고 보고 자기랑 비교하고 나이먹고 머함
˪훈계 오졌다
˪너한테 충고 바란 사람 아무도 없어 괜히 일침충짓 하지 말고 너나 니 인생 살아ㅋㅋㅋ
은하는 스타일 슈어 계정을 만들자마자 명품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있는 사진을 업로드했다. 유스타와 동시에. 그리고 앞으로의 일상 사진은 스타일 슈어에 올리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팔로워가 빠르게 늘어났다.
‘명품 쇼핑 하울을 벌써 생각하다니, 이건 감 좋다.’
스타일 슈어에 쇼핑한 명품 쇼핑백 사진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뻔한 구매처인 백화점, 보는 사람 부러울 만한 높은 가격, 제품명을 말한 다음 사람들에게 공약을 건다.
[좋아요가 1,000개가 넘으면 언박싱해서 보여드릴게요~ (๑♡ᴗ♡๑) ]그럼 또 뭘 샀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비싸니까, 쉽게 보기 힘드니까, 일단 명품이니까!
본인의 취향이 아니어도, 살 물건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보고 싶어 했다.
‘그래. 이게 회귀 전 금수저 마케팅이 잘 먹힌 이유 중 하나였지….’
명품 하울이라면 일단 조회수가 남들의 배는 됐다. 돈이 돈을 불러 금수저들에게는 높은 조회수와 많은 구독자, 그리고 안정적인 광고가 들어갔다. 윤슬은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려 했다.
‘근데 내가 하는 거랑 그다지 다를 것도 없지 뭐.’
자신도 나연의 물건을 빌려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을 느끼게 만드는 건 은하뿐만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이런 부질없는 감정에 또 잠길 뻔한 윤슬은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었다.
“그래도 일등은 내가 가져가야지.”
이런 거에 지지 않거든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한테는 안 될걸.
윤슬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오늘도 박키스 포션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