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86)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86화(86/405)
고등학교 축제란 늘 그렇듯 주변 학교 학생들이 심심하면 들러 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한국 고등학생들답게 진정한 축제는 학교가 끝난 3시 이후부터 북적이고는 했다.
덕현여고의 바로 근처에 있는 학교가 아닌 재언은 자신이 간 뒤에는 이미 교실 문이 닫혀있을 것 같아 조퇴를 선택했다.
그 결과, 지금 덕현여고에서 재언은 그 누구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되었다.
“저거 어디 교복이야?”
“몰라… 이 근처는 아닌 것 같은데.”
이미 오며 가며 눈에 익은 교복들 사이 재언의 교복은 낯선 것이었다. 무엇보다 시선을 잡아끄는 건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솟아 있는 재언의 키와 슈트를 입은 듯한 어깨였다.
운동장 위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교문 앞에는 [제83회 덕현제]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야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커다란 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그런 마음들이 네게 모여-”
템포가 빠른 노래들이 울리며 축제임을 알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로비에 좌판을 늘어놓은 동아리들이 몇 보였다.
“직접 만든 인형 사세요~. 테디베어부입니다.”
“저희 수예부 수세미! 이거 진짜 거품 잘 나요.”
로비를 가로질러 윤슬의 교실을 찾아가려던 재언은 저 앞에서 세 걸음당 한 번씩 잡히고 있는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저기, 혹시 여자친구….”
“바빠서요.”
싸가지가 없는 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재언은 인정했다. 사이비가 그렇게 많다던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도 한 번 잡혀본 적 없는 재언은 계속해서 잡히는 백휘를 바라보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내가 먼저 가야지.’
그 시도는 곧 빠르게 무산되었지만.
“저기 친구가 있어서요.”
자신을 핑계로 단호히 벗어나는 최백휘였다.
너른 보폭으로 옆에 와서 서는 백휘를 바라보며 재언은 내심 안타까웠다.
“…나 어떻게 찾았어?”
“바로 앞에 냉장고만 한 게 있으니까.”
백휘는 재언의 뒷덜미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여기 교실 가는 길 아닌데….”
“알아. 그냥 따라 와.”
* * *
“자! 다음 분-! 앞에 가서 서세요!”
번호표까지 배부하면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일학년 교실. 윤슬의 교실은 그 어떤 교실보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밖에는 A4용지로 만든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진지하니까 궁서체로 24포인트.
[※당신의 민증을 책임져드립니다※]▶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사진관만 가면 현기증이 나시는 분
▷이건 내가 아니야! 도무지 믿기지 않으시는 분
▷태극일보 박동진 기자에게 원한이 있으신 분
★누구나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
-연사 찍어줘 손님 극구사절
-확~ 달라졌습니다. 전에 없는 얼굴! 눈 기본 3배 확대! 지금 바로. 문의주세요.
괴상한 홈쇼핑 같은 종이를 보고서도 대기표는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윤슬은 지금 방송실에서 가져온 그린스크린으로 친구들의 증명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회귀 전 트렌드. 뒷배경을 고를 수 있는 사진관에서 아이디어를 따 온 아이템이었다. 사람의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는 이번 미션도 이용할 겸 선택한 것이었다. 축제 전 사전 준비 파트를 맡은 반 친구들이 열심히 꾸며 둔 교실은 아기자기하게 소품이 정리되어 있었다.
‘찰떡지수 보이는 건 이럴 때 참 편하단 말이야.’
화장은 메이크업을 잘하는 편인 지영이.
“아, 나 축제 때 좀 놀고 싶었는데….”
“그래도 지영이 너만큼 화장 잘하는 애가 우리 반에 없잖아… 애들이 너 화장할 때면 슬쩍 구경하는 거 몰랐지?”
“…그랬냐?”
“한 번만~”
고데기는 가영이와 예원이가.
“뭐… 그러던가. 근데 다른 반 애들은 지들이 하라고 해.”
“난 너무 단발만 아니면 돼! 내가 데이게 할까 봐 무서워서.”
번호 대기표와 줄 정리는 소희가.
“아니. 아까 37번 불렀는데 10분 지나도 안 와서. 지금은 현장대기 해야 돼. 저거 끝나고 다음 사람까지 한 다음에 해 줄게.”
사진은 서은이.
“턱 좀만 더 들어볼래? 아니아니, 그렇게 목젖 보이게는 말고.”
그리고 마지막.
“이게 마음에 들어? 아 근데 좀 연한데…. 뒷배경이랑 생각하면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그런가? 근데 내가 봄 웜톤?이어서!”
‘거울을 봐라. 누가 봐도 톤그로다.’
스타일링은 윤슬이.
그동안 모아 온 화장품들을 모두 교실에 펼치고 사람마다 빛나는 찰떡컬러를 맞춰 주고 있었다. 그렇게 고른 화장품으로 지영이 메이크업을 해 주면, 윤슬은 기록을 했다.
[39번. 살짝 쨍한 컬러 메이크업. 뒷배경은 채도 높은 노란색.사용된 메이크업 제품 리스트: 페리페로 굿나잇 프린세스/ 에뛰앙 촉촉 틴티드 CC크림/ 이니스포리 자연의 햇살/…]
그린스크린이 있으니 누끼를 따 뒷배경의 색을 바꾸기는 쉬웠지만,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이번은 속도가 생명이니까.’
대신 피부 보정이랑 얼굴 보정은 잘 해줘야지.
윤슬은 다시 한번 태극일보 박동진 기자를 떠올리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윤슬아! 이거 원하는 사람은 스타일 슈어 태그 해 준댔지? 나 해주라.”
“어어. 아이디 말해 줄래? 적어 둘게.”
이 나이 때라면 SNS 팔로워를 더 모아 준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별로 없을 거란 계산하에 윤슬은 어그로를 끌어보기로 했다. 사용한 제품을 함께 써 둘 생각이었다.
‘아직 스타일 슈어에 메이크업 브랜드는 입점을 안 했거든.’
할 거면 제대로 해 보자.
윤슬은 판을 더 키울 생각이었다. 지금 스타일 슈어에 메이크업 제품들도 올라오고 있으니 안 될 건 없어 보였다.
‘증명사진이라면 10대, 20대. 그리고 30대까지 다 잡기 좋지.’
증명사진은 누구나 못 나오는 진실의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민증을 쉽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필요에 의한 사진을 찍었지 취미로, 보관용으로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진부한 하늘색이나 네이비색 뒷배경이 아닌, 저마다에게 잘 어울리는 색색깔 뒷배경으로 예쁜 보정을 해 주는 트렌드가 시작되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은 사진 촬영 문화는 길거리로까지 확장되었다.
‘인생필름, 포토리즘,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 화보, 바디 프로필, 브라이덜 샤워의 활성화까지. 일단 윤슬은 증명사진의 트렌드부터 바꿔 볼 생각이었다.
“윤슬이 안녕~”
“언니 안녕하세요!”
방송부 부장, 소영 언니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윤슬은 언니들의 민증 사진을 책임져주겠다고 자신했으나.
“윤슬아…. 언니들 이미 민증 나왔어.”
“와, 세상에나 죄송합니다.”
이미 처참한 증명사진으로 민증이 발급된 후였다. 그래도 윤슬은 굴하지 않았다. 언니들한테 사진을 배웠으니 꼭 자기도 찍어주겠다는 그 말에 속는 셈 치고 온 둘이었다.
“여기는 내 친구, 유겸이.”
“하이.”
‘이름이 묘하게 낯이 익은데?’
그리고 어딘가 아는 사람을 좀 닮은 것 같았다.
윤슬은 괜찮다고 하더니 그래도 좀 기대가 됐는지 안경을 벗은 소영 언니를 지영에게 데리고 갔다.
“얘들아, 소희 언니.”
윤슬은 소희에게 색이 잘 어울리는 메이크업 제품을 체크했다. 지영이 아이라인을 그려주는데, 어딘가 쭈뼛거리고 있는 듯한 예원이 보였다.
‘…아. 학기 초에.’
소영 언니가 소희의 친언니인 줄 모르고 막말했었지.
그때 일을 아직 잊지 않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가영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근데 여기서 그때 언니 욕했어요, 죄송합니다. 이러기도 좀 뭐 하지 않나.’
소희를 바라보니 별생각 없는 표정이었다.
“우리 소희랑 잘 지내?”
“그럼요~. 소희 돌쇠네 딸이라서 같이 가면 김가루 산처럼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히히.”
애교 많은 가영이 대답했다. 예원이는 언니를 보지도 못하고 고데기만 껐다 켰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희랑 누가 제일 친해?”
“저요!”
가영이랑 윤슬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서는 누가 소희랑 가장 친한지 배틀을 펼쳤다. 어느새 전문가처럼 손이 빨라진 지영이 메이크업을 다 끝마쳤다.
고데기를 할 차례, 가영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데기를 들 때였다.
“예원이 니가 해 줘. 우리 언니.”
손님 명단을 확인하던 소희가 문자를 보내며 말했다. 양손으로 고데기를 조심스레 쥐고 있던 예원이 눈을 깜박였다.
“…내가 해도 돼?”
“어. 언니, 쟤 고데기 잘해.”
“그래? 그럼 우리 예원…이? 어. 예원이가 해주라.”
가슴팍에 있는 명찰로 이름을 부른 소영 언니가 예원이 앞에 앉았다. 예원이는 우물쭈물했지만 그동안에 왔던 모든 손님들보다 훨씬 더 정성 들여 머리를 매만졌다.
‘그래. 어린 애들 싸우면서 크는 거지.’
자신도 예원과 학기 초 제법 기 싸움을 펼친 사실은 저 기억 속에 묻어 두고 윤슬은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 보자~. 이 언니는….’
큰일 났다. 살짝 창백한 피부인 이 손님에게 어울릴 만한 제품이 몇 개 없었다. 피부가 지나치게 밝은 것도 한몫했고, 아주 옅은 색만 어울리는 게 치명타였다.
“난 메이크업 안 하고 찍으면 안 돼?”
“왜!!! 해보라니깐.”
“해도 이상하기만 하던데.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고.”
‘그건 당신이… 어려운 퍼스널 컬러를 가졌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하면 할수록 어딘가 어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윤슬의 앞에 있는 유겸이 딱 그런 타입이었다. 특히 눈 화장을 화려하게 하면 합성한 것처럼 되는.
드륵-!
그때였다.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뒷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윤~슬이~”
“차재겸?”
“그 반응 뭐야? 얼른 날 반겨… 누나?”
“…니가 여기 왜 와. 공부는 안 하고!”
그제야 윤슬은 맞은편의 선배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닮았다 했더니 차재겸의 여자 버전이었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의.
‘저 집안 얼굴 참 잘하네….’
누나에게 잡혀 뚜드려 맞고 있는 재겸을 보며 윤슬은 새삼 감탄했다.
“윤슬아, 감탄하지 말고…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아직 입은 안 맞은 것 같아.”
니가여기왜와공부할시간도모자른데너도2년있으면고3이다정신을차려라미친놈아수능이장난이야?장난이냐고.
합격 목걸이를 드려야 할 것 같은 전달력에 윤슬은 작게 박수를 쳤다. 맞으면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재겸은 맷집은 1등급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내 요약집. 다 저 언니 거였네?’
그동안 본의 아니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세를 져오던 윤슬의 마음이 불탔다. 윤슬은 잠시 주인 없이 비어 있는 의자 등받이를 들고 외쳤다.
“이제 그만 패고 앉으세요~”
“아직 덜 팼어! 이 새끼 이거 정신 차리려면 아주 한참 남아가지고….”
“언니 뒷사람들이 기다려용.”
“…아, 미안.”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싫어하는 타입인지, 차재겸을 팰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윤슬은 찰떡 지수가 높은 제품을 손에 들고 유겸을 바라봤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 * *
백휘와 재언은 양손 무겁게 봉투를 들고 마침내 윤슬의 교실 앞에 다다랐다.
‘사람 많나보네, 더 사 올 걸 그랬나.’
매점을 있는 대로 쓸어와 마실 게 한가득이었다. 원래 사람이 모인 자리에 빈손으로 가는 법이 아니라고 배웠던 백휘는 재언까지 짐꾼으로 썼다. 몇십 개가 훌쩍 넘는 음료 캔을 쥐고 교실을 들어선 둘은 눈을 의심했다.
“그거지! 좋아 언니 예뻐요~. 내가 제일 예쁘다. 그렇게! 찰!칵! 웃어보세요.”
…윤슬이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처럼 카메라를 들고 아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