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9화(9/405)
「▼상세 설명▼
[페리페로 립 틴트: 앙큼한 핑크 프린세스]10,800
→ 촉촉한 질감으로 발랐을 때 각질 부각이 되지 않는다. 노란기 없는 차갑고 시원한 채도 높은 핑크 컬러로, 쿨톤에게 잘 어울린다.
▶찰떡지수: 62
특성: 입술의 혈색을 높여준다. 엄청 안 어울리지는 않지만 베스트도 아니다. 보습력이 좋은 만큼 묻어남이 있다. 수시로 덧발라 줘야 한다.
매력: 스탯 변경 없음.」
‘머리 위 화살표를 누르면, 해당 상대에게 아이템이 어울리는지 창이 바뀌는 거였구나…!’
주변을 둘러보자 이제 아까와는 달리 반짝이는 효과가 있는 제품들이 바뀌었다. 나랑 나연이 톤이 다르니까, 찰떡 지수가 높은 제품 역시 다르겠지.
“나연아 지금 바른 거 지우고 이거 한번 발라볼래?”
“응? 알겠어~”
옆에서 황금색 반짝이가 있는 립을 하나 골라 건넸다.
찰떡지수 70~80은 화이트, 85~95는 핑크였는데, 이런 황금색인 걸 보니…
“슬아, 이거 잘 어울려?”
확실하다.
띠링-
「▼상세 설명▼
[페리페로 립 틴트: 수줍은 코랄 프린세스]☞당신에게 찰떡콩떡!
10,800
→촉촉한 질감으로 발랐을 때 각질 부각이 되지 않는다. 흰 기가 많이 들어간 사랑스럽고 옅은 코랄 컬러. 웜톤에게 잘 어울린다.
▶찰떡지수: 100
특성: 바르는 순간부터 얼굴에 형광등이 켜진다.
매력: 스탯이 (+10) 늘어난다.」
찰떡지수 100. 처음 보는 높은 숫자였다.
* * *
「▶System
【미션: 일반】
▶어-이! 허니 쥬뗌므
외국인 팔로워가 ( 3000 )명에 도달한 당신! 이제 더 큰 세계로 나아갑시다.
외국인 팔로워를 ( 7 )일 안에 ( 500 )명 추가 모집하세요.
보상
○유명세 스탯 상승
수락하시겠습니까?
[ Yes ] [ No ]」‘이걸 어제 눌렀어야 했다….’
어제 나연이와 화장품을 하나하나 발라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화장품을 전부 늘어놓고 태그로 #koreacosmetics 를 달아놨더니 k-beauty를 미리 알아보고 덕질하던 코덕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를 하고 갔다.
이제 더 이상 윙크 셀카를 받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 나도 모르게 좋아요 눌러 준 외국인들의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고, 그렇게 또 누르고. …외국인 팔로워들이 백 명 가까이 늘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모이는데.’
팔로워는 한번 모으기가 어렵지 모으고 나면 늘어나는 속도가 꽤 빠르다는 걸 체크한 지금, 보상이 다소 심심하더라도 일단은 수락하기로 했다.
띠링-
수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카운트가 세어졌다.
「※ 외국인 팔로워를 ( 6 )일 안에 ( 498 )명을 추가로 모집하세요.」
‘그새 두 명이 더 팔로우를 추가했나 보네. 이 상태로라면 일주일 전에 500명 모을 수….’
똑똑-
문밖에서 느릿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빠다. 어제 새벽에 지방에서 돌아온.
“슬아, 아빠 잠깐 들어가도 될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목소리였다.
* * *
“…그래서, 슬이 졸업식에 아빠가 이번엔 못 갈 것 같아. 미안해.”
결국 아빠는 공장을 팔아야만 했다. 그래도 다 못 갚을 빚들을 무마하려 애쓰다가 간신히 내 졸업식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그래 봤자 며칠 뒤엔 또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우리 공주 사진 백 장 찍으려고 그랬는디…. 아빠가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꼭 갈게. 응?”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우리 아빠.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라 눈에 꼭 새겨 놔야 하는데, 아빠 얼굴이 내가 기억하던 그때와는 너무 달라서….
“아빠 얼굴 안 볼 거여?”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본 아빠는 햇볕에 타고 피부도 거칠거칠했다.
우리 아빠 이렇게 주름이 깊었었나.
입술을 깨물고 참아보려고 해도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무언가가 올라왔다. 아빠가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말해주는 것 같아서.
“울지 말어…. 느이 아빠 가슴 찢어진다….”
“크흥….”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막으려 해도 뚝뚝 떨어져 허벅지에 닿았다.
“아빠 큰일 났다. 나 졸업할 때 예뻐 죽을 텐데, 킁… 보지도 못하고….”
둑이 무너진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가끔 아빠를 잊은 것처럼 살아가고는 했다. 매일 똑같은 하루들을 지내다 보면 아빠의 기일이 코앞에 다가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흐려진 것도 무뎌진 것도 아닌 안에 담아두고 애써 외면했던 일이었음을 알았다.
“짜식이, 더 울면 못생겨져, 뚝.”
“아빠 얼굴에서…흐윽. 이 미모가 나온 게 기적이야아… 흐어엉….”
문밖에서 얼른 아침 먹으러 나오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우리 딸 흥 하라며 티슈를 코 밑으로 가져다줬다.
문을 열고 콧물 안 멈추는 거 보라며 엄마가 깔깔 웃었고, 덕분에 오랜만에 집 안에 웃음이 감돌았다.
띠링-
「※ 외국인 팔로워를 ( 6 )일 안에 ( 495 )명을 추가로 모집하세요.」
* * *
「▼상세 설명▼
[O!O! 플라워 패턴 원피스 (핑크/Size S)]☞당신에게 찰떡콩떡!
138,000
→SS 시즌을 맞이해 새로 나온 제품. 허리에 있는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다. 은은하게 시원한 핑크 바탕에 작은 장미 패턴으로 사랑스러움을 더했다. 넥 라인이 하트 넥이라 목걸이를 함께 하면 매력 스탯이 추가된다.
▶찰떡지수: 95
특성: 누가 봐도 당신의 것!
매력: 스탯이 (+15) 늘어난다.」
두유 노우 김치? 무릇 외국인의 마음을 공략하는 데는 한국적인 것이 최고다.
이미 몇 년 뒤 한류가 인터넷을 타고 넷홀릭스와 인튜브의 인기 순위를 당당하게 차지한 걸 알고 있는 나는 주저 없이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첫 번째로 한국적인 배경 건물이 드러날 것, 두 번째로는 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옷의 브랜드를 입을 것, 세 번째는 계절이 드러날 것.’
경복궁은 이미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장소라 유스타그램에 태그를 걸었을 때 노출도가 높을 거다.
그리고 오늘 입은 O!O! 브랜드는 올해 일본으로 진출했으니 그나마 협찬으로 들어온 브랜드들 중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높을 거고.
‘세 번째, 계절이 드러날 것.’
경복궁은 겨울에도 매화가 피기 때문이다. 이 애매한 2월 둘째 주에도 몇 군데는 제법 화사한 봄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물 사진, 건물 사진, 그리고 풍경 사진까지. 외국인 팔로워를 모을 수 있는 데다가 사진 스탯 올리기까지…. 경복궁만 한 곳이 없다.
「▶System
【미션: 히든】
▷하루에 ‘100’장 이상의 사진
사진촬영 연습을 성실히 진행하였습니다.」
‘이 상태창이 나왔던 걸 기억해보면, 분명 오늘도 히든 보상이 있을 거다. 아마도 홀수. 1,3,5 겠지.’
오늘 300장 정도 되는대로 셔터를 눌러서 잘 찍힌 종로 거리 풍경 사진들 업로드하고, 매화 핀 경복궁 업로드하고, 뜨는 디자이너 브랜드 입고 찍은 사진 업로드하고. 이게 바로 코리아의 맛이다를 알려주면…!
‘외국인 팔로워 오백 명? 껌이지.’
웅장함이 느껴지는 기와지붕,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오래되었지만 전통의 멋이 살아있는 나무 문, 그 아래의 높은 돌계단까지.
언제 봐도 국뽕이 차올랐다.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했다.
하지만 이 한국의 절제 미학이 가득 담긴 경복궁 옆, 매표소에 쓰여 있는 글자는 나를 눈물 흘리게 했다.
▶휴관: 화요일 휴무
휘이이잉-
겨울바람이 불었다. 2월에 봄 원피스 입고 여기까지 왔는데…. 몸이 시린 건지 가슴이 시린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눈물 콧물 흘리고, 이 집안 반드시 내가 일으켜 세우리…! 하는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냅다 전쟁에 나가는 장군처럼 나왔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 경복궁 직장인들도 쉬어야지.’
같은 직장인끼리 돕고 삽시다. 경건히 마음을 다스리고 서촌 한옥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오늘 히든 보상 확인을 해야 하는 날이니까.
크흥, 매서운 바람에 코가 빨개졌지만 가보자고.
띠링-
「※ 외국인 팔로워를 ( 5 )일 안에 ( 483 )명을 추가로 모집하세요.」
좋아, 순조롭게 늘어나는 팔로워! 기다려라 외국인들아. 코리아의 맛에 빠지게 해 준다.
* * *
장매란의 아침은 늘 단조롭고 정직했다.
사악- 사악-
눈을 뜨면 아침 빗질을 하고, 아침 새가 울기도 전에 눈이 뜨여 뜨거운 물에 국화차를 우려내는 게 그녀의 아침 시간이었다.
그리고서는 아침에 쓸었던 마당을 다시 쓸었다. 별다를 것 없는 화요일의 어느 날.
‘평화롭군….’
“꺄아아악!!!”
‘까마귀인가…? 대장이 될 목청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매란은 다시 한번 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였다.
앳된 목소리는 귓가에 대고 지르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 마당을 쓸던 싸리 빗자루를 내팽개치고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뭔가를 두 손에 꼭 쥐고 입을 막은 여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리 소란을 떠는 게야.”
별일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자 괜히 불퉁스레 말이 나갔다. 비명 소리에 놀란 심장은 오랜만에 쿵쾅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월급을, 받아서요.”
활짝 웃는 여자애 얼굴은 아직 교복을 벗지 않은 나이임이 분명한데, 월급이라?
매란은 말갛게 웃는 아이의 나이가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성인이 되지 않았을 터인데.’
“학생이 아닌가?”
“맞긴 한데…. 제가 앞으로 집안을 세울 거거든요! 월급 당연히 벌어 와야죠.”
때 묻지 않은 얼굴에서 나오는 당돌한 대답의 뒷말을 더 듣고 싶어졌다. 마침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화사하지만 얇은 옷을 입은 소녀는 코와 손끝이 새빨갰다.
‘국화차가 얼마큼 남아 있더라….’
매란은 잡았던 문손잡이의 고리를 잡고 한 사람이 더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문을 열었다.
“날 추운데, 들어오지.”
앞말도 뒷말도 없이 냉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당황스러운 얼굴이 된 소녀는 두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왠지 오랜만에 타인과 이야기하는 게 싫지 않아진 매란은 말없이 손을 까딱하며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 * *
열일곱 살.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해외에서 사업 대금을 받지 못해 팔게 된 공장과 압류되어 경매로 곧 넘어갈 집, 그리고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운 집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침울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자기 연민에 빠질 법도 한데 눈앞의 이 소녀는 오히려 더 씩씩해 보였다. 정말 집안을 일으킬 마음을 굳게 먹은 듯이.
매란은 그런 윤슬이 썩 마음에 들었다. 바닥을 친대도 바닥에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는 그런 독기가. 그리고 남다른 생각이.
“그래. 집을 일으키겠다고.”
“네….”
아까 전엔 치기 삼아 한 말이었는지, 내심 쑥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꼭 하룻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 매란은 피식 웃었다.
“어떻게 일으킬 셈인가?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이 적을 텐데.”
“나이가 어린 건….”
찻잔을 꼭 쥔 눈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섞인 총기가 엿보였다. 코흘리개 주제에 대범하다. 여전히 빨개진 코를 훌쩍거리며 윤슬이 말을 더했다.
“미래를 더 잘 볼 수 있다는 뜻도 되니까요.”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은다?”
“네. 앞으로는 더 인터넷을 활발히,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이제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도 없고.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면 제가 자는 시간에도 확실히 돈이 들어오니 학생이 돈 벌기에 더 좋잖아요.”
매란은 지난 세월을 바탕으로 사람 보는 눈이 호랑이와도 같았다. 어떤 게 잘 자랄 싹인지, 어떤 게 버릴 싹인지 누구보다 확실히 거르는 재주가 있었다.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거르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사랑방 문지방이 닳을 듯 드나드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꿈이 커 봤자 입으로만 떠드는 이는 많았고, 행동하는 이는 드물었다. 머리를 굴리는 이는 많았고, 연일 성실한 이는 적었다.
“그래. 집은 어디라고 했지?”
“압구정입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군.’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했던가, 어느새부턴가 매란은 구르지 못해 한 구석에서 이끼를 가득 두르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바위가 된 기분을 느꼈다.
넓은 집,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없이 고요한 곳에서, 그저 혼자…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처럼.
“집안을 일으킬 셈이라면, 나와도 계약 하나 하지.”
“헙…!”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이 집으로 와.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줬으면 하네.”
“…네?”
“공부하랴, 일하랴, 바쁜 자네 시간을 뺏는 만큼 내가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지.”
그 뒤로 매란이 입을 열었을 때, 소녀의 표정은 당황이 아닌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대체, 뭐지? 이거 히든 보상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상태창이 켜져 있지 않았다.
‘이 할머니 진심으로 나한테 이 정도 금액을 부른 거야? 그냥 단순히, 말벗하라고…?’
아까 전, 한옥마을에 다다른 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습관적으로 다시금 통장 어플 새로고침을 하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 초였다.
[입금 내역: 키키 게스트 계약금 2,000,000]누추한 통장 잔액에 갑자기 0이 쌓였다. 계약금이 들어왔음을 체감해 뒷목을 타고 흐르는 짜릿함을 목 안으로 삼킬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지른 비명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와 확인하던 무뚝뚝한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나랑 계약을 하자고?’
솔직히 따져 보면 내가 밑지는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액수라 마음이 붕 뜨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제 값어치가 그 정도의 액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단순한 말벗으로 받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라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굴러온 복, 내가 차는구나…. 꿀꺽.
양심과 함께 침을 크게 삼켰다. 아쉽지만 이건 거절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집안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섞이신 것 같습니다. 종종 사진 찍으러 놀러 올 테니 방금 해주신 제안은 괜찮습니다.”
여전히 김이 나는 국화차를 우아한 손으로 그림처럼 들어 올린 후.
“나는 사람 다루는 일을 오래 했었지.”
홀짝, 태연하게 차를 마신 할머니는 덧붙였다.
“그러니 누구보다 사람값 치루는 법을 아네. 옥이 작다고 동의 값을 주고 사면 쓰나.”
‘그리고, 난 사람 동정하는 법 몰라.’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는 남은 국화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세상 돌아가는 걸 생생하게 좀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 보다시피 이 집엔 나 혼자고,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재미를 느껴봐서.”
노인의 얼굴에 진한 외로움이 스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액수가 당황스럽다면, 다음번까지 다시 생각해 와. 나중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집안 일으키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머릿속으로 날짜를 잠깐 확인한 다음, 그나마 괜찮은 날을 하루 골랐다.
“그럼… 월요일에 올게요.”
주름이 진 노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미미하게 피어났다. 찻잔 안에 남은 국화 꽃잎처럼.
* * *
띠링-
「▶System
【미션: 히든】
▷하루에 ‘100’장 이상의 사진
사진촬영 연습을 성실히 진행하였습니다.
○히든 보상
[사진촬영] 스탯이 상승합니다.▶ +1
[사진보정] 스탯이 상승합니다.▶ +1」
추운 겨울 얇은 봄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보람이 있다.
한옥마을을 다니며 삼각대로 인물 사진을 찍고 다음 콘텐츠 준비를 위해 한옥마을의 풍경도 촬영했더니 히든 보상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오늘은 계약금도 들어오고, 히든 보상도 들어오고, 운이 좋은 날이야.’
사람의 마음은 통장 잔고로 채워지는 것. 든든해진 잔고를 확인해 보니 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휘이이잉-
…취소. 아, 진짜 추워 죽겠다. 훌쩍거리며 언 손을 주물렀다. 이제 지하철역으로 다시 가야지.
따뜻한데 들어가 있다가 나오니까 훨씬 더 춥다. 국화차 은근히 맛있었는데. 집 가면서 따뜻한 거 뭐라도 사 마실까….
“아, 맞다.”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다 보니 할머니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게 떠올랐다. 혹시라도 못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하염없이 그 커다란 한옥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오게 됐지만, 다시 가보는 게 좋겠지.’
* * *
똑똑똑-
“할머니!”
한옥집 문을 두드린 게 세 번째다. 아무리 두드려봐도 인터폰 밖으로 아는 체하는 목소리도 없고, 문이 열리지도 않는다.
‘그새 어디 나가셨나.’
에휴, 괜히 돌아왔네. 이제 집에 가자,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나의 발목을 잡아챈 건 아주 작은 소리였다.
“으으….”
작게 신음하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추운 날에 밖에 쓰러져 있다면, 쓰러진 시간이 꽤 오래 흘렀다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밟고 올라설 것이 하나도 없다.
“할머니, 기다리세요! 잠깐만요!”
119에 전화를 하긴 했지만 이 담을 넘어야 했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이 날씨에 버티게 할 수 없다.
‘안 되겠다, 일단 이거라도.’
손에 쥐고 있던 삼각대를 단단히 고정시킨 후 몸무게를 싣지 않은 채로 위쪽에 발을 살짝 끼워 넣었다.
한 발로 삼각대를 밟아 높은 담장의 기와에 손이 닿는 순간 지지대로 삼은 삼각대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