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92)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92화(92/405)
“저거 뭐야.”
나는 햇빛이 잠깐 창문 틈 사이로 닿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책상 아래에서 은은한 빛이 점점 강한 빛이 되고, 상태창이 뜸과 동시에 방 안이 터질 것처럼 빛났다.
그리고 서서히 빛이 줄어들고 내 눈앞에는….
“쀼?”
짙은 남색의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아주 조그마한.
“이건 뭐야?”
그 새는 팔랑팔랑 날아와 내 침대 위에 함께 누웠다. 철푸덕 누워서 옅은 노란색 부리로 털을 고르고 있었다.
“귀엽다….”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새는 벌떡 일어나 종종거리며 한 바퀴를 돌았다.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새는 아무래도 제비 같았다.
“혹시, 내 펫인가?”
생각해 보니 히든 보상 알림이나 상태창이 없었다. 그냥 얘가 책상 아래에서 나온 거지.
“게임에서 캐릭터 뒤에 있는 그런 건가 봐!”
이해가 된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제비를 검지로 한번 가볍게 톡, 하고 건드려보았다.
“뺘!”
“어떡해, 너무 귀여워.”
내 생각과 달리 이 펫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따로 상태창이 띄워지지는 않았다.
게임 설명 같은 거 보면 펫 옆에 그런 거 다 뜨던데.
「미니제비펫: 남쪽나라에서 추위를 피해 온 제비. 귀여운 얼굴로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제비의 부리뽀뽀를 받으면 박키스 0.5개의 효과가 있다
※ 제비에게 곡식을 먹이면 버프 효과가 생겨 박키스 최대 ( 3 )개 복용과 같은 효과가 난다.」
이런 거. 근데 왜 얜 아무것도 없냐.
나는 몇 번 더 톡톡 제비를 건드려봤지만 여전했다.
혹시 아직 아이템을 안 먹여서 그런가? 배가 고픈 펫은 아무 능력도 없고 그런 거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체력이지!”
이왕이면 체력 펫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제비를 보며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웃었다. 아무래도 지난번 상태창이 준 미션에서 나오는 ‘새로운 아이템 숍 오픈’이라는 건 펫에게 먹일 아이템인 것 같았다.
“내가 굶어도 너는 안 굶게 해준다.”
가장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나는 제비에게는 절대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도록 포인트를 개같이 벌어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삐잉~”
“…어?”
뭐야 이거. 제비가 작은 날개로 쭉 기지개를 피더니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너 어디가!!!”
반짝이 가루가 설탕처럼 차르르 떨어지며 내 눈앞에서 제비가 사라졌다.
“돌아와!!!!!!”
전생의 기억처럼 제비와의 다정한 한때가 스쳐 지나갔다. 봄나들이를 가 내게 화관을 만들어주었던 제비, 여름에 함께 콩가루인절미바닐라시럽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우리, 가을이 되면 낙엽을 함께 밟고는….
“안 했지.”
차재겸에게 배워 온 날조가 아직 내 뇌를 점령하고 있군. 상태창에게 뒤통수를 한두 번 맞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줬다 뺏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구질구질하게 아까 제비가 나왔던 내 책상 아래를 다시 한번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곳엔 제비는 없고 하얀색 쪽지만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거 옛날에 내가 뽑았던 거 아닌가?”
앞뒤로 살펴봤지만 포춘쿠키에서 나왔던 쪽지에 그려진 그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오로지 흰 공백뿐.
“아, 혹시 내가 펫 소환 스킬이 생긴 건가?”
앞으로 나오는 포춘쿠키마다 하나씩 펫 가챠가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은 내 팔로워가 부족해서 제비를 부화시키지 못한 걸지도.
“아아~. 기간이 지났구나!”
생각해보니까 상태창이 영구 소장 가능한 펫을 줬을 리가 없다. 분명 기간제였겠지. 그리고 마침 제비는 기한이 다 됐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앞뒤가 딱딱 맞았다.
“아쉽다. 좀 정들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다음에 또 뽑아야지.
나는 오랜만에 침대에서 뒹굴려던 생각을 버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 * *
“또, 또야 또…!”
여기는 라모레 퍼시픽. 고급스러운 개인 사무실에 앉은 여자가 결 좋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모니터 화면은 이번 분기 예상 매출 그래프가 떠 있었다. 상반기에는 끝없는 상향 곡선을 그리던 그래프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했는데, 왜….”
그녀의 책상 위 반짝이는 명패가 오늘따라 빛을 잃은 것 같았다. 자신의 자랑이던 명패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일어났다. 평소와 다르게 탁한 명패를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은 그녀는 자개가 차르르 빛나자 그제야 지문이 묻어나지 않게 조심스레 손을 뗐다.
“어쩌지. 이제….”
[Professional]그녀의 직급은 프로페셔널. MZ 세대에 맞춰 무겁고 딱딱한 호칭을 벗어던지고 크게 3단계로 세분화한 직급이었다. 과장급에 해당하는 직급을 이 나이에 달게 된 그녀는.
“아빠한테 뭐라고 말해!”
라모레 퍼시픽 그룹의 일원이었다. 소위 다이아몬드수저를 물고 태어난 찐부자. 라모레 오너의 막내딸. 회사의 주식 상당수를 물려받은 후 뷰티 영업 전략팀을 이끌고 있었지만 세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이론과 달라, 왜지….’
친근함을 이용하기 위해 유명 인튜버에게 광고도 맡기고, 전문성을 이용하기 위해 광고마다 성분을 말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허영심을 부추기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와 콜라보도 했고, 워너비라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에도 PPL을 넣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익명게시판] 오늘자 산으로 가는 드라마 jpg (댓글 130개)(지나치게 완벽한 메이크업의 여자주인공.jpg)
쇼파에서 쪽잠자고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의사.. 근데 풀메ㅋㅋㅋ
(수분크림을 바르고 있는 중년 여배우의.jpg)
우아한 재벌 사모님…^^ㅋㅋ 로드샵 크림 바르시고요?
(로드샵으로 들어가 선물을 고르는 서브 남주의.jpg)
세상에… 고등학생때부터 짝사랑한 여자 생일선물을 로드샵에서 사는 섭남
(똑같은 로드샵 쇼핑백을 들고 온 남주를 보고 뒤돌아서 가는 장면.jpg)
와……….. 와……
(주먹질 하는 개구리 밈짤)
감사합니다.
-요즘 라모레 감 다 뒤짐 진짜 왜저러나몰랔ㅋㅋㅋㅋ
-나 뻥 안치고 SLN인줄 알았어ㅠㅠ이게 개그가 아니면 뭐란 말임
-제갈은숙 드라마 중에 이게 제일 최악ㅋㅋ 재밌게 보다가도 PPL 장면만 보면 파사삭 식게됨
˪2222 역대급임
˪33 제작사 양심 있냐? 시청률 나락가길
-너무 속상하다 내 배우 오랜만에 오는 드라마판인데 이런 망작을 필모에 끼워넣게 되다니…
˪아이돌 끼면 드라마 대체적으로 이렇게 돼… ㅠㅠ
˪나 그 아이돌 팬인데 걔 때문에 드라마 이렇게 됐다는 증거도 없는데ㅋㅋㅋ 니 뇌피셜 아님?
-이 드라마는 4화에서 엔딩임 암튼 그럼
일반 커뮤니티를 비롯해, 드라마 영업의 주축이라고 될 수 있는 갤러리에서는 반응이 더욱더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드라마 갤러리] 개새끼들아 단체로 시말서 써라 [공지] 갤매입니다. 과한 스탭 및 배우 비방은 삭제처리됩니다 [드라마 갤러리] 기껏 밥차보내서 밥멕여놨더니 하는짓이 X발아 [드라마 갤러리] 근데 이와중에 둘 케미 미쳤음ㅠ [드라마 갤러리] 오늘자 스토리와 감정선 정리jpg. [드라마 갤러리] 과한 PPL도 삭제처리 좀 되길 돈 그만받아쳐먹어 [드라마 갤러리] 아이돌 제발 꺼져 아득바득 드라마판 기어들어오지마SNS를 타고 타고 드라마는 물론이고, 과한 PPL을 집어넣게 된 라모레는 집중타격의 대상이 되었다. 조롱은 물론이고 반발심까지.
헤비 인터넷 유저들이 밈으로 만들면 일반 인터넷 유저에게로, 그리고 그다음은 커뮤니티라고는 주변 지인들과 소식 나누기용인 SNS만을 하는 유저들까지에게로 흘러간다.
‘이대로 계속 가면 내년 상반기 큰일이다…!’
그 말인즉슨, 브랜드 이미지가 맛이 간다는 소리다. 소비의 주축이 되는 30대는 물론이고 20대, 10대까지 외면해버리면 로드 숍의 강점인 ‘영한 이미지’와는 영영 안녕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장년층에게 어필하기엔 로드 숍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고급스러움을 추구하기엔 애매하니까.
스타 작가의 드라마, 아름답고 우아한 여배우, 감각 있는 디자이너와의 콜라보, 친근한 인튜버, 전문성을 강조한 특허 제품….
이 모든 게 그녀의 머릿속을 깜깜하게 어지럽혔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식이라고 자신했는데, 이러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판이었다.
‘이 명패를 어떻게 얻어낸 건데!’
그렇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직면한 이 문제를 돌파해야만 했다. 그녀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기를 바라며 소비자 반응을 다시 검색했다. 제발 돌파구가 생기길 바라며.
검색: 라모레
그러던 와중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조롱과 밈 사이에서 오랜만에 올라오는 질문글이었다. 이전이었다면 발에 치일 정도로 작성되던 골라줘 글이 오늘따라 반갑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재빨리 클릭해 글을 살폈다.
[나 이 색 잘 어울릴지 살말해주라!] (댓글7개)여기 이 사진에 나온 사람이랑 전체적으로 좀 비슷한 느낌? 인데 내가 평소에 이런 색을 발라본 적이 없거든ㅋㅋ 근데 사진상으로는 투명하고 예뻐보여ㅠㅠ 요즘 라모레 세일 잘 안해서 정가주고 사야되는데 써본 익둥이 있어?
-오 이쁘네 나라면 살듯 얼마야?
˪ㄱㅆ: 만 팔천원!
-나 써봤는데 나쁘지 않음 발림성이나 지속력 둘다 무난무난
˪ㄱㅆ: 고마워ㅠㅠ 혹시 무슨 색 샀는지 물어봐도 되니
˪바삭낙엽 가을1호!
-(사진) 이거 누구야?
˪ㄱㅆ: 스타일슈어에 올라와있던 증명사진인데 일반인? 일거야
보통 공들인 사진이 아니었다. 세심하게 보정이 되어 있는 증명사진은 지금까지 봐왔던 일반적인 증명사진과는 달랐다. 배경 화면이 일반적으로 사진관에서 봤던 색이 아닌데다가 뽀얀 피부 결, 매끈한 립, 초롱초롱하게 빛을 담은 눈동자!
“…화보로 딱인데?”
대충 뭉개놓은 진실의 이목구비가 담겨있는 것. 이것이 증명사진의 정의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새로운 방식의 메이크업 화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사진이 있었다. 홀린 듯 키키 게스트 홈페이지에 접속한 그녀는 이 사진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게 되었다.
[♥오늘의 주목할 STYLE♥]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맨 윗칸, 스타 유저의 글이었으므로.
[인생 증명사진 찍는 메이크업 꿀팁 모음]세일을 잘 안 해서 아쉽지만, 가격값 하는 훌륭한 틴트! 매트 립 사이에서 단비처럼 내려온 글로시 틴트 ˖✧(*^ω^*) ✧˖
사진관 조명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머릿결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 립의 광택도 한몫한다는 점.
드라마에 넣은 PPL보다, 지금 스타일 슈어에서 퍼온 게시글이 훨씬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었다. 역대급 망작이라고 내부에서 말이 나오고 있는 FW 캠페인 제품에 대한 유일한 긍정 반응이었다.
‘물론 우리 것만 있지는 않지만….’
라모레의 광고가 아니니 다른 로드 숍 브랜드 제품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반응을 더 솔직하게 이끌어 내고 있었다. 대놓고 하는 광고라면 대충 훑어 읽거나, 어느 정도의 반발심을 사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사 제품과 자연스레 섞여 있는 라모레의 제품들은 광고가 아니었기에 소비자들은 꼼꼼히 읽었고 어느새 ‘나도 한번 사볼까?’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세번째 립 발색 어때요? 써보신 분 ㅠㅠ
˪저 괜찮앗어요! 근데 케이스가 좀 허술해서 새니깐 파우치 조심하세요
˪헉 감사합니당…!ㅎㅎ
-다섯번째 사진 레전드… 윤슬님 저때 메이크업 튜토리얼? 같은 거 올려주실 수 없으신가요ㅜ 눈썹 결 잘 살린거 대박이에요
˪제가 한 건 아닌데 친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ㅎㅎ
댓글창은 더욱 쓸만했다. 아니, 대박이었다. 유저들이 하나의 작은 커뮤니티처럼 이 계정의 댓글창을 이용하고 있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결제 버튼을 누르게 하고 있었으니까.
캄캄하기만 했던 다이아수저의 머릿속에 작은 빛이 새어들어 왔다. 그 빛은 점점 강해져 어느새 명쾌한 하나의 답 위를 비췄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있는 전화를 들었다.
“지금 스타일 슈어 측으로 컨택 시작합시다. 지난번 거절했던 입점 건에 대해 다시 논의해봐야겠어요.”
맑아진 머리 위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새가 부리로 콕콕 그녀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일 슈어 서포터즈 중 한 명한테 메시지 보내죠. 서윤슬이라고.”
작은 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반짝이 가루가 그녀의 눈동자 안으로 들어갔다. 연이은 PPL 실패로 인해 빛을 잃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