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9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93화(93/405)
“언니 여기 보세요~”
한기가 올라오는 복도에서 부드러운 담요를 둘둘 말아 덮고 다니는 풍경이 익숙한 11월 말. 수능이 끝난 학교는 대체적으로 한산했다. 늘 치열했던 3학년들은 느슨해졌고, 수능 디데이를 세게 된 2학년들은 아직 학년이 바뀌지 않아 긴장감이 덜했다.
“이거 잘 나왔다!”
“슬아, 언니 눈 조금만 더 키워줘.”
윤슬의 교실은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번호표 배부가 끝도 없이 길어져 아쉽게 앞에서 잘렸던 방송부 2학년들은 동아리 시간을 이용해 윤슬에게 증명사진을 찍어달라 졸랐다.
‘어차피 미션 완료도 아직 안 됐으니까.’
인물 사진을 더 찍어야 했던 윤슬은 흔쾌히 언니들에게 화장품을 빌려주며 이게 어울린다, 저게 어울린다 조언을 아끼지 않고 쏙쏙 골라줬다.
“야 진짜 너 이게 훨씬 낫다.”
“매트립 다 갖다 버려…. 거울 봐 대박임.”
비록 아직 메이크업을 남들에게 잘해 줄 정도는 아니라 색깔만 골라준 게 다지만, 제각기 맞는 스타일링에 한 발자국 다가서자 미묘하게 예뻐진 언니들은 기뻐했다.
그중 몇 명은 자연모보다 탈색모나 염색모가 훨씬 잘 어울리는 퍼스널 컬러를 가지고 있어 윤슬은 나중에 수능 끝나면 머리할 때 꼭 말해줘야지 다짐했다.
‘그러고 보면 김유리, 걔도 염색모가 훨씬 잘 어울리는데.’
화려한 스타일링이 잘 어울리는 유리였지만 아쉽게 학생다운 데일리 스타일링을 고수하고 있었다. 유리에게 염색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니 뿌리 염색 비싸서 싫다고 했었다. 윤슬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품들을 떠올려보다가 다음번에 유리의 사진을 찍어줄 일이 있으면 조언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윤슬아, 언니들 보정하느라 힘들지~”
“니가 눈 더 키워달라고만 안 했어도 벌써 다 끝났어.”
“애기 힘들게 뭐하는 거야, 니가 눈에 힘을 꽉 줬어야지.”
“언니 저 별로 안 힘들어요.”
이미 숙달된 솜씨로 빠르게 보정을 해 나가는 윤슬은 옆에서 장난을 치는 언니들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 찍는 건 언니들이 알려주기도 했고.’
동아리 시간마다 2학년과 3학년은 너나 할 것 없이 1학년들을 가르치기에 바빴다. 성심성의껏 DSLR 사용법을 가르쳐 준 덕에 사진 실력이 훌쩍 늘었던 윤슬은 이번 기회에 마음의 빚을 덜어낼 수 있어서 오히려 기뻤다.
“윤슬이가, 사진을 마이 잘 찍네….”
윤슬이 축제 때 찍어줬던 코랄 빛 배경의 증명사진을 프로필로 해둔 소엽 쌤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린스크린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해졌다. 그 와중에 교사답게 내년에는 1학년에게 바로 그린스크린 쓰는 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조잘대는 학생들로 방송부 안이 활기로 가득 찼다. 소엽 쌤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이 환히 웃는 소소한 일상.
띠링-!
「▶System
【미션: 메인】
▶똑같은 건 이제 그만!
충분히 주위의 [사람] 사진을 찍은 당신! 중지되었던 포인트 지급이 다시 시작됩니다.
아이템 숍이 재개장됩니다.
―성공적으로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새로운 아이템 숍 오픈 ☜ Click」
‘드디어.’
윤슬은 자신이 생각한 게 맞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아이템 숍이 궁금했다. 만일 예상대로 포춘쿠키에서 펫들이 나오는 게 맞다면 아이템 숍에는 펫에게 줄 제품들이 업데이트되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상세 설명▼
✧✿여기 있어요✿✧ (사용 시간 5시간)
: SNS에서 눈에 띌 수 있는 포션! +1~100 (확률 랜덤) 입니다.
당신의 계정이 무작위로 SNS 사용자들의 피드에 노출됩니다.
※ 유명세 ( 100 )부터 사용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 현재 사용이 불가합니다.」
‘오, 좋은 거다.’
돈 주고 해야 되는 SNS 광고를 무료로 할 수 있다니.
심지어 한 플랫폼 한정이 아니었다. 에이스북이나 유스타에 한정된 포션이 아닌 SNS라고 적혀 있는 글자를 본 윤슬은 속으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나중에 인튜브 시작하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도 훨씬 쉽겠어.’
알고리즘의 선택. 무명 인튜버도 순식간에 천만 뷰를 만들어주는 시스템의 은혜. 윤슬은 회귀 전 그런 경우를 몇 번이나 봤다.
[눈감으면 럭비부 주장이 말거는 하이틴 플레이리스트]조회수 265만회
-현실: 이거 들으면서 수능특강 푸는 중
˪나도 이댓 쓰러옴ㅋㅋㅋㅋ
-개좋다 27:31 무한반복중( *ฅ́˘ฅ̀*)
-알고리즘에 떴는데 이분 플레이리스트 다 찐임ㅠㅠㅠㅠ
-내 알고리즘 왜 이제야 이걸 발견한거야 진짜 노래 다 너무 좋다ㅠㅠ 잠깐만 자기야 나 노래듣잖아 간지럽히지마 빅터~~!
˪이미 과몰입 완.
-저 진짜 유학다녀온 사람인데요ㅋㅋ 여기 하이틴 환상? 가지고 계신 분들 많은 것 같아서 써보자면…ㅠㅠ 현실은 리스닝 간신히 하고 과제에 치여 하루하루 살다가 얼렁뚱땅 학기 끝납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개심함 마음같아서는 총 꺼냇음
˪헉… 고생하셧네요
˪진짜 나도 환상 가득하게 떠났는데ㅋㅋㅋ 나중엔 얼른 한국 들어가서 옆의떡볶이나 조지고싶엇음 아니면 내 옆에 잇는 미친홍인을 조지던가
[빙의된듯한 큰누나]조회수 371만회
-동생이 라면 안끓여온듯;
˪그니까 빨리 물올려야지
-에휴… 큰누나 이유가 잇겟지 동생이 컴퓨터 비켯어야지
-목소리 듣고 PTSD개쩔게옴 저 복식호흡으로 하는 “김민철!!!!” 이게 군대 알람보다 사람 깨우는데 효과 좋음ㅋㅋㅋㅋㅋㅋㅋ
-누나가 저렇게 집에 오면 일단 대가리 박아야함
˪이거지 생존율 조금이라도 높힐라면 기어야지ㅋㅋㅋ
-대한민국 군부대가 인재를 놓쳤군요 지금이라도 누나 입대 시키세요
[작고 더러운 고양이가 우리집 왕이 되기까지]조회수 650만회
-복 받으실 겁니다…^^ 고양이가 선한 사람을 찾느라 길가에 오래 있던 것일테니 주인분 일찍 데려갈걸 하는 후회, 이제 버려두시고… 씩씩이와의 하루하루에 충실하시길…
-이것은 마치 운명 같은 만남 마법의 순간들에 그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 (울면서 우는 이모티콘)
-저 착한 애를 버리다니ㅠㅠㅠ 전 주인 죽어라 개새끼야 넌 살 자격도 없다
-6:00 여기부터 갑자기 불어남ㅋㅋㅋㅋ 애가 세배가 됐네요
˪갈비뼈 보이다가 이제 뼈가 흔적조차 없어짐ㅋㅋㅋ뚱냥이 커엽
이렇게 알고리즘을 탄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는 음악 차트의 순위권에 맴돌기도 했고, 유명해진 일반인은 종종 방송에 초대되어 나오기도 했다. 버려진 동물을 키우게 되는 영상들은 윤슬도 종종 보면서 감동하고는 했다.
‘유저들 눈에 띄면 모으기도 훨씬 쉽지.’
인튜브의 알고리즘 덕에 무명 아이돌이었다가 순식간에 인기를 얻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아이돌 직캠 같은 경우는 더더욱 유명세에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근데 아직 유명세가 100이 안 되네.’
초반 키키 게스트 에디터로 시작했을 땐 유명세가 제법 빨리 올랐었는데, 아직도 유명세는 70에 멈춰 있었다. 윤슬은 상태창의 루틴을 적어 둔 노트를 떠올리다 그럴싸한 가정을 하나 했다.
‘생각해보면 유명세는 확실하게 눈에 띄는 성과가 있어야 줬네.’
에이스북 페이지의 팔로워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거나, 유스타에서 좋아요를 평소보다 많이 받는다거나. 즉 윤슬이 해내던 ‘평균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야지만 오르는 것.
‘그럼, 이제 슬슬 스타일 슈어로도 유명세 오를 때 됐는데.’
사용하는 유저 수에 한계가 있어 에이스북이나 유스타만큼 빠르게 오르진 않았지만, 이용자 수가 적은 만큼 윤슬의 인지도는 더 높았다.
‘그러고 보니 펫 아이템은 아니네…. 그럼 그 제비는 뭐지?’
딩-동-댕-동
펫에 대해 고민을 하던 순간, 동아리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윤슬은 기지개를 켰다. 고민을 날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동아리실을 나섰다.
지잉-
[스타일 슈어 엘리 담당자님: 윤슬님 안녕하세요! 😀 저 엘리입니다. ㅎㅎ 잠깐 통화 가능하실까요?]그때였다. 스타일 슈어의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 * *
라모레 퍼시픽은 로드 숍 중 가장 큰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업이었다. 엘리 담당자는 얼마 전 회사 주식을 몇십억이나 증여받았다는 뉴스가 떠들썩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오너의 직계 가족…!’
말만 과장급이지, 실제로는 웬만한 임원보다 더 큰 파워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지난번 입점 문의도 칼같이 거절했던 콧대 높은 그 기업이 먼저 연락을 해주니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아니, 놓치면 안 되지.”
메이크업 브랜드 입점을 라모레로 스타트한다면 다른 브랜드를 끌어오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몇 개가 있는 것보다 라모레 라인 한 개 있는 것이 훨씬 나았으니까.
‘그리고 대기업이 온다면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얼마든지 한 번쯤 고민은 해 볼 테고.’
스트릿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입점한다면 30대 이용자들까지 끌어올 수 있을 터였다.
지금 스타일 슈어의 유저 나이대는 지나치게 10대와 20대에 치중되어 있었다. 유저들의 사진을 올리는 SNS가 아닌, 새로운 쇼핑의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요구 조건은 한 가지.’
스타일 슈어의 서포터즈, 서윤슬과 컨택해달라!
고민할 시간도 아까웠다. 엘리 담당자는 연락을 받자마자 딜을 걸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윤슬에게 연락했다. 지금 스타일 슈어의 일등 공신, 자기 과시의 장에서 원래의 목적대로 순수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윤슬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아까워 죽겠네….”
윤슬이 업로드한 증명사진 꿀팁 글은 여전히 활발하게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저마다 글에 나와 있는 제품부터, 없는 제품까지 후기를 얘기하고 서로에게 추천을 해주고 있었다.
“저거 링크 달아놨으면 매출이 얼마야!”
다들 정보는 스타일 슈어에서 얻고 구매는 다른 사이트에서 할 것이었다. 줄줄 새고 있는 돈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건 엘리 담당자뿐만이 아니었다. 라모레의 막내딸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휴우우우….”
누구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건 윤슬이었다.
* * *
‘너무 늦었잖아. 진작 연락했으면 세이브 되는 매출이 얼마냐.’
빠릿빠릿하게 연락 좀 해 둘 것이지.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스타일 슈어의 서포터즈 미팅 날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야 해 서둘렀다.
‘키키 게스트로 연락했을 땐 저자세더니.’
키키 게스트 에디터로 라모레가 연락했을 때는 몇 살인지 모르는 에디터니까 동등하게 대했었다. 아니, 오히려 을에 가까웠지.
하지만 스타일 슈어의 서윤슬은 이제 열일곱 살. 아직 사회를 모르는 애송이라 판단한 듯했다.
‘그러니까 하청을 맡기지.’
미팅에 성의가 없었다. 라모레에서 직접 오는 게 아닌 스타일 슈어 쪽에서 말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영향력이 그냥저냥인 인플루언서에게나 하는 방식이었다. 적당한 재고 떨이를 해주는 공구 인플루언서에게나 하는.
제안서나 가이드라인 몇 장 띡 보내놓고 이대로만 하라 이거다.
‘얼굴 한 번 안 내보이시겠다?’
이번에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계약금이나, 광고비가 아니다. 기업의 주식. 계약금보다 돈을 덜 받아도 되고 광고비로 돈을 덜 받아도 된다. 단지 그만큼의 주식으로 달라 이거지.
그러려면 일개 사원과 하는 미팅으로는 부족하다.
‘아쉬운 놈이 오게 돼 있다.’
아직 덜 맞은 모양이지.
인터넷에서 개같이 밈화되며 처맞던 억지 PPL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 계약 조건 건 것을 한번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 * *
“아, 그러니까….”
나는 A4용지에 출력되어 있는 제안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긍정의 신호라고 생각하는지 엘리 담당자도 마주 보며 웃었다.
[광고비: 50만 원 (협의 가능)]“이런 대기업에서 먼저 광고 컨택이 온다는 건, 정말 윤슬님을 좋게 봐주셨다는 거거든요!”
뭘 좋게 봐, 병신으로 봤겠지…. 50만 원을 누구 코에 붙이는데. 최저 임금도 간신히 나오겠다.
“저희 스타일 슈어에 라모레가 입점하면, 초반엔 윤슬님을 뮤즈로 한 이벤트가 진행이 될 텐데요.”
띄워 줄 테니까 팔로워 좀 얻고 무임금 노동하라 이거군. 뮤즈고 뭐고 다른 애들이라면 먹힐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 마음 같아서는 소주병에 불 꽂아서 던지고 싶거든?
“더러운 자본가들! 개혁하라!”
처형장의 이슬로 마무리 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래서 세계사 공부가 중요한 거다.
‘그래도 사탐은 생윤 고를 거지만.’
스타일 슈어 서포터즈 중에서 얼굴 좀 되는 애들 몇 명만 골라서 증명사진을 찍고, 그 아래에 사용 제품을 전부 라모레로 통일한다. 그리고 지금은 10대만 서포터즈로 뽑았지만 본격적으로 내년 상반기부터는 20대, 30대도 인플루언서들을 섭외해 서포터즈 판을 키울 예정이라고 설명을 듣던 나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내 돈 내놔.’
내 바이럴 주력 파트는 메이크업 브랜드였거든. 회사 주가에 따라 광고비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기억을 못 할 것 같냐.
곧 라모레 퍼시픽의 주가는 불처럼 치솟는다. 현재 한 주에 27만 5천 원. 그리고 1년 뒤부터는 45만 4천 원.
이걸로는 너네 회사 주식 한 주 간신히 산다.
‘적어도 이거의 열 배는 받아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