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You Turned Your Back On Me, We Became Strangers RAW novel - Chapter (111)
돌아서면 남인데 (110)화(111/111)
외전 10
레일리는 준비된 이들의 의상을 보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섬세하게 준비를 할 줄은 몰랐다.
“이야기가 잘되어서 다행이에요. 제국과 서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왕비는 레일리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감사해요, 너무 아름다워요.”
준비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레일리를 둘러싸 원을 만들었다. 신성한 의식이 진행됨과 동시에 레일리는 가운데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래를 파고들었던 발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처음 보는 광경에 카베르 역시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보았다.
길게 내려온 치맛자락을 가볍게 쥔 이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좌우로 흔들며 사뿐사뿐 모래 위를 걸어 다녔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끼네, 모든 것을 주고받은 둘은 하나가 되네.”
아름다운 선율에 레일리는 귀를 기울였다.
“축복이 내려와, 한곳에서 퍼져 나가네. 낯선 이가 찾아와 나를 두드리네. 아아아, 아아아.”
그들은 한 소절을 부르곤 땅을 가볍게 치며 자리를 바꿨다. 치맛자락에 모래가 흩날리고, 바람이 그들의 주변을 에워쌌다.
신비한 느낌과 더불어 레일리는 마음 가득 충만함을 느꼈다. 이들의 진심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느새 하나가 된 이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카베르는 즐거워하는 레일리를 눈에 담았다.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뻐하시니 저희야말로 기분이 좋습니다.”
카베르와 왕은 덕담을 나누며 즐기는 이들을 보았다. 축복을 내림과 동시에 밤하늘에 별똥별이 쏟아져 내렸다.
사막 가운에 핀 오로라가 그녀를 축복하듯 빛을 발했다. 레일리는 절대로 잊지 못할 날을 선사해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 * *
본국으로 돌아온 레일리를 반기는 이들이 꽃잎을 뿌리며 환영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국에도 소문이 퍼진 것이다. 레일리는 얼굴을 붉히곤 카베르의 옷깃을 잡았다.
“벌써 소문이 퍼졌나 봐요.”
‘뭐,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열렬히 반겨주니 좀 쑥스럽긴 하네.“
카베르는 황궁의 앞에서 레일리를 기다리고 있는 레타를 발견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 올 기세로 둘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뒤에 있는 게 좋겠어.”
“왜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토끼가 달려들 것 같거든.”
차마 황소라고는 표현하지 못했다. 레일리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했으니까. 하지만, 카베르는 달려오는 레타로 인해 뒤로 넘어질 것이 걱정되었다.
“레타가 있어요?”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레일리가 두리번거리며 앞을 주시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깡충 뛰어대는 모양새가 레타 같았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레일리는 카베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타의 격한 반김이 그리웠지만, 조심해야 했다.
마차에서 내린 레일리를 향해 레타가 달려오다 멈칫하며 발걸음을 늦췄다.
저를 막아선 카베르 때문이었다.
“뭐예요?”
“몸조심해야 해서. 그렇게 달려와서 안기면 위험하지.”
“……아!”
그제야 레타가 깨달은 듯 조심스럽게 레일리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언니, 정말 축하해.”
“나를 보면서 축하해 줘야지.”
“하지만, 조카에게 먼저 인사하고 싶은걸?”
가진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레타는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했다. 괜스레 울컥하고 눈물이 났지만, 참고 웃어 보였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예상치 못한 큰 선물도 가져오고!”
레타의 말에 레일리가 얼굴을 붉혔다. 하반이 준비한 꽃다발을 레일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나라의 큰 경사가 생겼습니다.”
“고마워요, 꽃까지 준비해 주시고.”
레일리는 하반에게 꽃을 받아 들곤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둘 사이가 꽤 친해 보였다. 그리고 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저를 좀 봤으면 하는데.”
“……나?”
“그래, 너하고 하반 경 말이야.”
레타가 조금은 찔린 얼굴로 하반을 보았다. 레일리의 눈이 가늘게 뜨임과 동시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네.”
“언니, 이 기쁜 날에 빨리 연회를 열어야지!”
레일리의 등을 떠밀며, 레타가 하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가 카베르에게 이것저것 건네며 바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모두 다 축하의 말을 전해 왔습니다. 연회를 열어 사람들이 축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 안 그래도 물도 해결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을 공포해야지.”
카베르는 하반의 편을 들어주며 안으로 들어섰다.
레일리는 저만 빼고 다 한통속인 것을 깨달으며 렌을 보았다. 하지만 그마저 레일리의 시선을 외면했다.
렌마저 그녀의 시선을 피하니, 하는 수 없었다.
“알았어, 그러니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하기다?”
레일리가 못 이긴 듯 레타에게 말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 * *
연회는 성대하게 열렸다. 레일리를 못마땅해하던 귀족들도 한마음이 되어 축복했다. 제국을 이어 나갈 후계자가 생겼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지.”
“쉿, 그런 말은 하지 말게. 폐하께서 들으면 노하실 말이니.”
그들은 황급히 입을 닫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명부에 쓰인 순서대로 귀족들이 하나둘 레일리와 카베르에게 인사를 올리며 선물을 내놓았다.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에 레일리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카베르, 너무 과하지 않아요?”
“걱정 마. 국가의 비상금으로 놔둘 테니까.”
둘은 속닥이며 귀족들이 저에게 주는 선물들을 보았다. 아이와 관련한 선물을 빼곤 좋은 일에 쓰일 예정이었다.
레일리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얼굴로 저를 축복해주는 이들을 향해 유려하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온화한 미소와 더불어 아름다운 미소에 절로 귀족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이만 일어나게.”
카베르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레일리가 툭 하고 그의 옆구리를 찔러 눈치를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만 가서 연회를 즐겨도 좋다.”
젊은 귀족들이 인사를 올릴 때면 카베르는 서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다.
질투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아무도 그에게 반박하진 못했다. 카베르가 아니었다면, 절로 넋을 놓고 레일리를 봤을 테니까.
모든 인사가 끝나자 카베르가 레일리에게 춤을 청했다.
“오랜만에 함께 추는 게 어때?”
“괜찮겠어요? 제가 발을 밟을지도 모르는데.”
레일리의 말에 카베르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 발을 밟아도 난 모를 거야. 깃털처럼 가벼우니까.”
“……정말 못 말려.”
결국 레일리는 카베르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향했다. 허리를 잡고 선 그와 함께 손바닥을 맞대곤 닿을 듯 닿지 않게 서로 움직였다.
간질간질한 느낌과 함께 저를 가볍게 들었다 놓으며 팔 사이로 몸을 넣어 부드럽게 춤을 췄다. 음악에 맞춰 모든 이들이 가볍게 발을 맞추곤 서로를 쳐다보며 춤을 이어 나갔다.
손을 잡지 않고 추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설레게 했던가.
몸에 닿지 않고 살짝 간격을 주어 음악에 맞춰 빙글 도는 이들이 아름답게 대형을 맞췄다. 파트너가 바뀌는 순간에도 카베르는 레일리를 놓지 않았다.
“오늘은 나하고만 춰.”
“알았어요.”
레일리는 카베르의 질투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정말로 철이 들려면 멀었다. 그녀는 결국 다른 이들과 춤을 추지 못한 채 카베르와 연회가 끝날 때까지 호흡을 맞춰야 했다.
* * *
“조,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레일리가 힘겹게 호흡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렌이 보다 못해 진통을 억제했지만, 점점 잦아지는 통증은 잡기 힘들었다.
“흐윽, 윽!”
“레일리.”
카베르가 레일리의 손을 잡고 울상을 지었다. 이러다간 그녀가 죽을 것만 같아 애가 타들어 갔다.
“아이의 머리가 보여요! 황후 폐하 조금만 더 힘을!”
산파가 레일리에게 힘을 보태며 아래쪽에서 아이를 받을 준비를 했다. 레일리는 찢어지는 고통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하악! 아아악!”
레일리의 비명과 함께 아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방 안에 가득 퍼졌다.
숨을 고르며 카베르를 보면 그녀의 시선이 산파에게 안긴 아이에게로 향했다. 카베르를 똑 닮은 아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레일리, 이것 봐. 당신을 닮은 아들이야.”
“……무슨 소리예요. 카베르를 닮아서 잘생겼는걸요.”
그녀가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가며 제 품에 안긴 아이를 보았다. 연신 울어대던 아이는 그녀의 품에 안기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레일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며 아이를 보았다.
“믿기지가 않아요.”
품에 안긴 작은 아이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작고 연약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건 카베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아 봐도 된다는 산파의 말에도 카베르는 차마 안지 못했다.
“그러다 부서지면 어떻게 하나.”
“괜찮습니다. 폐하, 한번 안아 보시지요.”
산파의 말에 카베르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정말, 울보가 따로 없군.”
렌은 카베르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도 흐르는 것은 분명 눈물이었으리라.
“아가, 네 이름은 베르야.”
행복이란 뜻을 가진 단어를 함축하여 카베르와 이름을 합쳤다. 베르는 제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레일리의 손가락을 잡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만연했다. 그제야 그녀에게도 완전한 행복이 주어진 것이다.
언제나 그녀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사람들은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제국에 아이의 웃음소리가 만연한 날이 상상되었다. 레일리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그제야 모든 것을 털어 놓은 듯 환한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돌아서면 남인데』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