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무대가 시작됐을 때, 현장 평가단의 아우성 사이로 들었던 내 팬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 기량아, 자신 있게!
– 잘할 수 있어! 백기량!
한심하게도 나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따라서 팬들의 응원을 하나하나 들을 여유는 없었고, 그 내용을 제대로 들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니콜라스! 이번에도 보여 줘!
– 대장, 가자!
처음으로 귀에 담아 본 응원에는 승범이와 니콜라스의 팬들이 뱉는 것과는 달리 분명한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의 이유를 지금에 와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불안감이 팬들에게 옮겨 간 거구나. 내가 계속 나약하게 겁에 질려 있으니까.’
나는 영문을 모를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아 높은 순위를 얻긴 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가장 따라오지 못하는 연습생이었다.
[백기량은 도대체 뭐하는 애임 상위권에 있는데 정작 무대에서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나.] [┗ 백기량 쉴드러 양성소임ㅋㅋ 걔네 팬들 맨날 쉴드 치러 다니느라 바쁘잖아.] [┗ ┗ 아 백기량 각성할 때까지 존버한다고 ㅋㅋ] [백기량 데뷔 멤에 포함되면 탈덕한다. 한승범한테 텔레파시 보내는 중임.]따라서 팬들은 언제나 나의 흠집을 감싸기에 바빴고, 나는 그것에 항상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팬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이돌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이 비해 너무나도 과분한 위치를 누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빼앗아야 한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손 안에 쥔 것이 분에 넘치는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몸을 숨기는 비겁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 모순 사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시간을 낭비하던 나는 어느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과연 아이돌을 하기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연습생들은 다들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어 성장해 갔다. 점점 메인 보컬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 유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어느덧 쟁쟁한 연습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게 된 젠, 익숙하지 않은 일마저 해야 한다면 악착같이 해내는 단비.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나는 매일같이 제자리였다.
다른 연습생에 비해 노래를 연습한 시간이 길었고, 이미 실력을 꽤 키워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성장이 적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와중,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느샌가 텅 빈 주변을 발견하면 그 생각은 점차 머릿속에서 지워지곤 했다.
– 잘해야 하는데… 보란 듯이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 백기량 연습생도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얻어 가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초조함.
– 형은 왜 그렇게 항상 주눅 들어 있어요?
– 그러니까 내가 항상 충고하지 않았니.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그리고 나의 초라한 근간이 모조리 드러나고 있는 것에 대한 수치심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을 끌어안은 채 가라앉고 있던 중, 내 두려움을 송두리째 가져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 아이돌을 하기에 어울리는 성격이 도대체 뭔데? 그런 건 다 허상이야. 그렇게 치면 나도 아이돌 때려치워야 하거든.
– 나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화가 많아. 하지만 그 덕분에 빠른 결단력과 강한 추진력을 가졌지. 사람의 성격은 원래 그런 양면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형은, 형만의 장점을 찾아가면 돼.
마치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듯 건네진 말들은 너무나도 간단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단번에 나의 불안감을 가져갔다.
그런 승범이에게 이끌리듯, 따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과 나와 함께 성장할 멤버들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최고의 무대를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하지만 우리의 노력과는 별개로,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틱. 틱.
‘MR이 튀었어. 그것도 랩 파트에서!’
인 이어를 통해 MR이 끊겼다가 앞전의 구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단비가 랩의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 마셨던 숨을 가파르게 뱉는 소리였다.
머금고 있어 봤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빠른 래핑에 맞춰 치밀하게 계획했던 호흡이 단번에 무너진 게 여실히 느껴졌다.
센터에 서 있는 단비는 동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차분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럴 심리적인 강인함까지 갖춘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시 랩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하필 멜로디가 거의 없고 비슷한 비트만 반복되는 구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었다.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나오고 있는 비트가 노래의 어느 구간인지 몰라서야 섣불리 다시 랩을 이어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스타일로 채우기에는 아직 랩 경험이 너무 짧았다.
“…….”
‘그렇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자 방송 사고가 발생하고 고작 0.5초 남짓한 시간.
그 눈꺼풀을 깜빡이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 사이 무대 전체가 마치 지도를 펼쳐 놓은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어떤 특성을 가진 멤버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주를 건너뛰어도 어느 부분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건 나와 승범이 정도밖에 없어. 하지만 승범이는 동선상 바로 센터로 오기 어려울 거야.’
아마 이 상황을 가장 안정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이는 노래를 직접 편곡한 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댄스 브레이크를 소화한 후, 이미 무대의 센터에서 상당히 먼 곳으로 잠깐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이 상황을 수습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었다.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커버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호승심과 망설임 사이에 갈등하던 나는 결국, 나의 조언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승범이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믿어 주고 있어…….’
그것을 눈에 담은 순간, 미약하게 남아 있던 망설임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훅 온기가 돈 손을 들어 올린 나는 단단하게 마이크를 쥔 채 그대로 센터를 향해 나아갔다.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해라.’라는 암시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마치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불쾌하지는 않아서, 몸이 시키는 대로 단비의 앞에 서 도발하듯 어깨 위에 팔을 걸쳤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 마신 후 노래하기 시작했다.
– and I…….
지금의 나는 내가 가진 무기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단비는 구분할 수 있는 구간이 조금 나오기만 하면 바로 어느 부분인지 알아채고 랩을 이어 갈 수 있을 거야. 그 아이는 어느 상황에서든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기본기를 확실하게 다져 놓았기 때문에 특별히 연습해 보지 않은 노래도 아주 능숙해 보이게 부를 수 있었고,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을 가졌기에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뛰어난 관찰력과 배려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적당히 파트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현장 평가단은 이미 무대 사고가 난 걸 알아 버렸고, 그런 그들의 의식을 단번에 되돌리기 위해서는 도박이 필요해.’
즉,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I won’t run away!
평소 실전에서는 내지 않았던 3옥타브를 넘는 고음 애드립을 뱉으며 공백을 채우자 곧바로 관객들이 숨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
“…….”
그리고 짧게 이어진 적막을 부정이라도 하듯, 관중들이 내지른 감탄 가득한 환호가 무대를 꽉 채웠다.
“와아아아아!”
어느덧 그 함성이 멎을 즈음에는.
– You have the right to remain silent!
이미 완벽하게 태세를 갖춘 단비가 있었다.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피로감에 숨을 몰아쉬며 현장 평가단에게 인사를 하자 제작진에게 새로운 대본을 전달받은 양하준 선배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던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해 준 우리 연습생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짜 똑바로 좀 해라.] [아니 데뷔도 못한 연습생들이 제작진보다 프로다운게 말이 됨?] [근데 솔직히 말하면 즉석에서 막 커버하는 거 너무 신기하고 멋있어서 방송사고 한번 더 났으면 좋겠음 ㅋㅋㅋㅋㅋ케] [┗ 사실 나도 ㅋㅋ] [┗ ┗ 333] [양하준한테 대신 사과시키지 말고 PD 나와서 머가리 박아. 국민 오빠 쉴드 도대체 몇 번을 써먹는 거임] [┗ ㄹㅇ.]분노한 채팅이 실시간으로 폭발하듯 올라가는 것을 보며 양하준 선배님은 난처하게 웃더니 바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연습생들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역시 오늘 무대에서 정말 큰 발전을 보여 준 백기량 군의 인사를 들어 보지 않을 수는 없겠죠?”
그 첫 번째 순서는 나였다.
지금까지 무대를 마친 후 내게 질문이 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어색하게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입을 열었다.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자신감 없고 부진한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껏 못했던 인사들을 몰아서 하듯 끊임없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말들을 토해 내던 중, 문득 승범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이 꿈을 처음 가졌을 때, 형이 꿈꿨던 형의 모습은 뭐야?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들어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무대의 열기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 우리가 준비한 무대를 진심을 다해 함께 즐겨 주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의식하지 못한 사이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말이 툭 튀어 나왔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자랑스러운 아이돌이었나요?”
나는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사랑받고, 자랑스러워하기 충분할 정도로.
나는 오늘 그 꿈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 있자 팬들의 외침이 들렸다.
“당연하지!”
“와아아아!”
“잘했어, 기량아!”
그 목소리를 듣자 정말 거짓말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흐릿해진 눈을 소매를 소매로 훔치자 선명해진 시야 사이로 팬들의 얼굴이 다시금 보였다.
“울지 마! 오늘 진짜 잘했어!”
그들의 눈에는 나와 같이 눈물이 서려 있었고,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중, 내 등을 툭 치는 손이 느껴졌다.
“누가 봐도 칭찬받을 만한 무대 했으면서 왜 그렇게 울상이야?”
“…승범아.”
퉁명스러운 듯 건네진 다정한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분명 축축하게 젖어 볼썽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만, 승범이는 굳이 그것을 꼬집지 않았다.
대신 박수를 보내는 현장 평가단을 응시하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잘했어. …나도 형에게 베팅해서 다행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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