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우와아! 놀이공원이다!”
4차 경연을 마치고 마지막 생방송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열심히 노력한 연습생들에게 포상의 개념으로 특별한 외출이 준비되었다.
“놀이공원 진짜 오랜만이다!”
“우리 진짜 안 기다리고 막 타도 되는 거야?”
심야 대관이었기 때문에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연습생들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소풍에 온 아이들처럼 흥분했다.
“가자! 나 놀이공원 전세 내는 거 처음이야! 부자되면 이런 느낌이겠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처음인 게 당연해요. 그리고 전세는 방송국에서 내 주신 거고요. 일단 아직 가도 된다는 말씀 없으셨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죠.”
들뜬 마음에 팍 튀어 나가려는 도유다를 붙잡은 이단비가 진정하라는 듯 차분히 대꾸했다.
‘도대체 누가 막내인지 모르겠군.’
“니콜라스 형 같은 사람들은 놀이공원도 턱턱 전세 내면서 쓰겠지? 막 개인으로 빌려 버려. 웃긴다.”
“…….”
장난스레 던져진 도유다의 농담에 이화영은 부정하지 않은 채 지긋이 녀석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이 점점 길어질수록 도유다의 얼굴은 창백해지기만 했다.
“농담이에요. 설마 진짜인 건 아니겠죠. 제발 없다고 해 주세요. 저 니콜라스 형이 그렇게까지 부자인 걸 체감해 버리면 더 이상 형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으아악!”
비명을 꽥 지른 도유다가 머리를 부여잡자 이화영은 코웃음을 흘렸다. 그 꽁트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즈음, 넓적한 손이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한승범 연습새앵.”
“…트레이너님, 스케줄 때문에 바쁜 것 아닙니까?”
트레이너 중에 대표로 한 명쯤은 따라가야 한다며 꾸역꾸역 촬영에 동행한 제이였다.
“당연히 바쁘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요. 그런데 놀이공원 전세 내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스케줄 다 땡겨서 여유 만들었어요.”
나는 조금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제이를 보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진짜 저러는 것도 정성이다.’
솔직히 나는 놀이공원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슝슝 왔다 갔다 하기만 하는 것들을 몇 시간씩이나 기다리고, 돈을 내면서까지 타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포를 체험하고 싶다면 서유성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된다.
‘그쪽은 실제로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막상 오니까 그냥 수학여행 감독하는 선생님이 된 기분이에요. 즐겁기는 무슨, 애들 잃어버리거나 다치는 사람 생길까 봐 겁난다니까. 제작진들도 뭔가 저를 감독역으로 여기는 것 같고요.”
“…아하, 그러시군요.”
“한승범 연습생이 저 좀 도와주세요. 어차피 놀이 기구 타는 거에 별로 감흥 없잖아요? 저는 다아아 알아요.”
“…….”
나는 투정부리듯 웅얼거리는 제이를 조용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칼같이 외쳤다.
“안녕히 계세요.”
– 아학, 전달 못 받았구나. 풉, 파이팅!
‘편곡 트레이너 때 있었던 일, 나는 아직도 잊지 않았으니까.’
“안 돼! 나를 버리고 가지 마!”
나 서유태, 30년 넘게 살았지만 이래 봬도 스무 쟐.
오직 제이를 열받게 만들기 위해 놀이공원을 인생 처음으로 만끽하러 가겠다.
* * *
“…허.”
제이를 버리고 평소 친분이 있던 연습생 무리에 돌아가자 난데없이 액세서리 스토어에 끌려왔다. 그곳이 단순한 기념품 가게라고 생각했던 나는 입구에 발을 딛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야, 그거 내가 고른 거야!”
“먼저 잡은 사람이 임자지!”
방송에 예쁘게 나가기 위한 연습생들의 치열한 액세서리 점령전으로 액세서리 숍 내부는 아주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저, 저런 표독스러운! 제가 눈독 들이고 있었던 머리띠를 낚아채 갔어요!”
랜덤 플레이 댄스에서 조우했던 퀸대현에게 리본 머리띠를 빼앗긴 도유다가 이를 갈며 고자질했다. 나는 그런 도유다를 텅 빈 눈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도대체 머리띠를 몇 분 동안 고르는 거야. 적당히 하고 정리해.”
“그럼 형이 하나 골라 주세요.”
“어, 그래. 이거 어떠냐, 너구리 머리.”
“정말 최악의 센스군요. 기각!”
적당히 눈앞에 있는 모자를 하나 골라 건네며 말하자 도유다는 질색을 하며 너구리 모자를 냅다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너구리 눈깔에 묘한 광기가 있는 게 내가 봐도 기묘하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다.
“왜, 마스코트 캐릭터잖아. 세트로 꼬리도 있는데.”
“저는 귀여운 거 쓸 거거든요! 카메라도 돌아다니는데 방송에 추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외친 도유다는 다시 머리를 진열대 사이에 처박으며 머리띠를 고르기 시작했다.
“강원 형, 얘 좀 말려 봐. 20분째 이러고 있다.”
“뭐라고, 승범아?”
그 모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한 이를 찾자 선글라스와 고깔을 낀 거구가 어딘가에서 우당탕탕 나타났다.
‘아니, 저건 또 뭐야.’
콩!
“아이고!”
가뜩이나 커다란 키에 고깔까지 얹어 놓으니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 매달린 장식품들을 다 박고 다녔다. 그에 할 말을 잃고 굳어 있자 험난한 여정을 거친 우강원이 겨우 내게 도달했다.
“자, 승범이 거.”
그리고 활짝 웃으며 살포시 내 머리 위에 무언가를 씌웠다.
그래, 그 곰 같은 손으로 말이다.
“푸흑.”
“오랜만이다! 야옹 승범! 아하하!”
나보다 먼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백기량이 마시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뿜고, 도유다는 폭소를 터트렸다. 나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
1차 경연 때와 비슷한 흰색 고양이 귀 머리띠였다.
일을 저지른 우강원이 너무나도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어라 쏘아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뚝 선 채 파들파들 떨고 있던 중, 이화영과 눈이 마주쳤다.
“…….”
“하.”
이화영은 곧바로 비웃음을 흘렸고, 나는 이 꼴을 이화영에게 보였다는 수치심에 떨며 머리띠를 벗으려 했다. 그러자 도유다가 아쉬운 투를 담아 말했다.
“팬분들이 진짜 좋아하실 텐데 그냥 차고 있는 거 어때요?”
“…….”
팬분들이 진짜 좋아하실 텐데, 라는 말이 마취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멈췄다.
“구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계산대에서 머리띠를 계산한 뒤였다.
찰칵.
“아, 즐겁다. 오늘 촬영료 톡톡히 받아 가네. 놀이기구 안 타도 돼.”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제이는 내 꼴을 보고 낄낄 웃더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 유유히 자리를 떴다.
“…….”
이거 맞아?
* * *
“우리 다음에는 저거 타요! 솔직히 여기 놀이공원 왔으면 그거 타 줘야죠!”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평소라면 한참을 기다려야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를 빠르게 정복한 연습생들은 바로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 놀이공원의 상징에 해당하는 어트랙션, 자이로 100을 타기 위해서였다.
아파트 25층 정도의 높이에서 한 번 떨어지기만 하면 끝나 버리는 그 놀이 기구는 출연 연습생들을 한꺼번에 태우고도 남을 정도의 탑승 인원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무리로 다 함께 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또 못 타네.”
우강원을 제외하면 말이다.
[신장 130cm 이하, 190cm 이상의 승객께서는 탑승하실 수 없습니다.]어트랙션의 입구에 붙어 있는 신장 제한 안내를 확인한 우강원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강원은 범퍼카처럼 별로 스릴을 느낄 수 없는 가벼운 놀이 기구만을 탈 수 있었다. 물론 그 범퍼카마저 다리를 접고 접어 겨우 탈 수 있었지만.
“진짜 너무 커도 문제가 생기기는 하네요. 저는 키 크면 무작정 좋을 줄만 알았는데.”
“역시 뭐든 평균이 좋은 거예요.”
“어허. 풀 죽은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우강원의 키에 대해 쫑알거리는 병아리들의 등을 냅다 떠밀어 놀이 기구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샌가 다가온 제이가 내 귓가에 작게 소곤거렸다.
“저거 타지 마.”
“…….”
‘뭐지?’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날씨가 추워져 애초에 탈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이는 만족했는지 내게서 고개를 돌려 연습생들에게 소리쳤다.
“연습생들! 이거 마지막으로 타고 럭키 센터로 돌아갈 거예요!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상한 곳으로 빠지면 안 돼요.”
“네에!”
우렁찬 대답을 들은 제이는 바로 자리를 떴고, 연습생들은 곧바로 동그란 원에 인원 수를 채워 앉게 되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중 갑자기 PD가 두 손을 모으며 내게 애원했다.
“미안한데 한승범 연습생도 한번 타 줄래요? 인원이 부족해서 화면이 조금 허전해 보여요! 승범 군 놀이 기구 잘 타니까 괜찮죠?”
“…….”
방송상 그림이 안 나온다니 뭐 어떡하겠는가, 타야지.
제이의 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놀이 기구를 잘 타는 모습을 제작진에게 보여 버렸기 때문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화영 옆의 빈 자리에 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바로 안전바가 내려왔다. 그리고 안전바가 완전히 고정된 것이 확인되자마자 어트랙션이 작동되었다.
수직 레일을 따라 어트랙션이 최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이화영이 말을 걸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 그냥 빠져도 됐을 텐데.”
“그래도 제작진들 부탁인데 뭐 어떡하냐. 놀이 기구 못 타는 편도 아닌데 웬만하면 들어줘야지.”
“너, 얼굴이 창백해.”
“뭐?”
덜컹!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어트랙션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리고 탁 트인 전망을 과시하듯 몇 초 동안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자이로 100은 상공, 72m! 72m까지 올라갑니다. 25층! 25층 높이까지 올라가면 사전 통지 없이 훅, 하고 떨어져요!”
스피커를 통해 증폭된 직원의 노래 소리가 웅웅 울렸다.
그것을 뒤로 한 나는 까만 밤하늘을 눈에 담자마자 제이가 어째서 내게 이 놀이 기구를 타지 말라고 했는지, 지금 내 상태에 왜 이상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 이런 시간에 이런 놀이 기구 따윈 타는 게 아니었는데, 하고.
“한승범.”
“…….”
“…한승범, 왜 그래! 한승범!”
이상을 감지한 이화영이 급히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래의 까마득한 광경을 내려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턱 막힌 숨을 내쉴 새도 없이 몸이 추락했다.
“아아악!”
“으아아악!”
함께 탄 연습생들로부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명 옆에서 난 소리일 텐데, 나는 어째서인지 그 소리들이 지상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들렸다.
우우웅!
고작 몇 초 남짓한 시간 사이에 땅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면에 발을 딛고, 안전장치가 자동으로 올라가자마자 힘이 풀린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하아, 하… 하.”
자꾸만 늘어지는 상반신을 숙이며 숨을 몰아쉬자 식은땀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놀이 기구에 타기 전까지만 해도 쌀쌀한 날씨에 건조해진 피부를 쓸고 있었는데,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의 땀이 고작 몇 초 사이에 흘러 나왔다.
“한승범! 무슨…….”
다급한 목소리가 귀에 웅웅 울렸다.
그리고 팔을 붙들어 부축하려는 손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쿵, 쿵.
빠른 속도로 뛰는 가슴을 애써 억누른 나는 서둘러 내 몸을 손으로 훑었다.
몸의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만져 보아도 끈적한 것이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
‘그래, 놀이 기구인데 다칠 리가 없지. 다 안전하게 똑똑이들이 설계한 건데. 그 기억 때문에 쓸데없이 예민해졌군.’
나는 그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구토감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