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저 팬분들 만나는 거 처음이에요. 손에 땀나면 어떡하지. 손수건으로 닦아도 문제 안 되겠죠?”
“진정해. 팬분들 손도 축축해서 네 손에 땀이 조금 나도 모르실 거야.”
복잡한 머리를 식힐 새도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마지막 이벤트 , 바로 미니 팬 사인회였다.
원래대로라면 모델로 발탁된 브랜드에서 팬 사인회를 진행하거나, 음반을 발매하고 기획사 에서 팬 사인회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연 연습생의 수가 꽤 줄어든 상태였던지라 이래저래 분량을 때울 이벤트도 필요했고, 생방송을 앞두고 마지막 화력 충전을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들이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방송국 주체 팬 사인회가 웬말이냐.’
분명 처음에는 프리 허그 이벤트처럼 비용이 저렴하게 먹히는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전달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 통제와 관련하여 저번 미니 미션 때 이미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반대로 기각되고 팬 사인회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분명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겠지…….’
이 와중에도 챙길 건 챙기셔야 했는지 방송국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결제한 사람들에게만 응모권이 주어졌고, 팬들은 방송국의 상술에 욕을 쏟아 내면서도 이미 투표 시스템을 위해 서비스를 구독한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적인 결제 없이 응모에 성공했다는 현타 가득한 글이 올라오곤 했다.
“와 쟤 좋은 냄새 난다.”
“팬싸 한다고 향수 뿌렸나 봐요.”
처음 진행해 보는 팬 사인회에 연습생들은 오만가지 요란을 다 떨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개중에는 평생 발라 보지 않았던 핸드크림을 떡칠하는 놈도 있었으며 코가 찡할 정도로 향수를 뿌려 대는 놈도 있었다. ‘그’ 이화영마저도 밤에 잠을 못 자고 뒤척일 정도였으니 솔직히 다 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봐야 했다.
“저 형은 왜 저렇게 침착한 거지? 안 떨리나.”
“그러게 승범이는 평소랑 똑같네.”
“내가 항상 그렇지, 뭐.”
‘그야 나는 처음이 아니니까.’
‘핸드크림을 떡칠하는 놈’에 해당하는 도유다가 연습생들 가운데 유일하게 침착한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투덜대기에 나는 태평하게 답했다.
“연습생들 입장할게요!”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있으니 제작진들이 우리를 불렀고, 우리는 바로 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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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에게 ‘기다리는 것 별로 안 힘들었냐.’ 같은 스몰 토크로 말문을 열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청이 큰 팬 하나가 괄괄 뱉은 말이 고막을 때리듯 날아와 꽂혔다.
“나이 서른 넘었는데! 10년 만에 가방 검사나 당하고!”
그러자 주변에 있던 팬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억울한 게 많았는지, ‘맞아!’ 하며 거드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렸다.
“왜 그랬대, 왜 그랬대!”
바로 마이크를 잡은 도유다가 장난스레 달래기 시작하자 다시 한번 웃음을 흘린 팬들은 농담조로 저마다 억울한 것을 외치기 시작했다.
“시야 고려도 안 하고 의자 배치하고!”
“의자가 이상해애. 어떡하지. 의자 이동 안 되나.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첫 팬 사인회인데! 입장도 정신없이 하고!”
“맞아요. 첫 팬 사인회인데. 아이고,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규칙이 왔다 갔다 해!”
“규칙이 왔다 갔다 해요. 이런 이런!”
도유다는 저것이 진짜 불만인 줄 알았는지 열심히 말을 받아 주고 있었다.
– 이 XXX들 애들한테 빨대 한번 꽂아 보려고 똥꼬 쇼 하는 거 눈에 훤히 보이는데 일 처리도 개같이 하는 거 보면 진짜 걍 건물에 계란 팩 해 주고 싶네, XX.
그들이 사실은 어떤 말들로 분노를 표현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나는 팬들이 그저 도유다와 알콩달콩거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봐라, 도유다를 무슨 손주 보듯이 따스한 눈길로 보고 있지 않은가.
“…….”
“…….”
그리고 팬들의 외침은 3분 이상 지속되지 않고, 바로 쥐 죽은 듯 사라졌다.
“으어?”
그러자 팬들과 소통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도유다는 갑작스러운 정적에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는 그런 도유다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 말 기다리는 거라고. 다 우리 목소리 듣자고 오신 건데.’
원래 아이돌에게 너무 길게 말을 걸면 주변 팬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었다. 내 아이돌의 말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 팬들의 말을 자를 수 없는 아이돌이 난처해지는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문화라고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연습생들이 팬 사인회를 진행하는 게 처음이니까 최대한 배려를 해 주려고 하는 게 느껴져.’
연습생들이 쪼렙이라고 해서 팬들까지 그럴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들 다른 아이돌 파다가 잡혀 온 거구나.
막상 팬 사인회가 시작되고 사진 촬영이 허용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둥글고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고생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오늘 즐거운 시간 함께 보내 봐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다시 정신을 차린 도유다의 멘트와 함께 인사를 하고, 연습생들의 첫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 * *
“유다야, 그렇게까지 긴장 안 해도 돼. 편하게!”
“강원 오빠! 거기 사인지가 아니라 테이블이에요!”
한참 팬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팬 사인회 경험이 많아 특별히 긴장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아주 평화롭게 팬들과 소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가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승범이는 MBTI가 뭐예요?”
“엠… 어떤 거요?”
“MBTI!”
‘그게 뭐지? MVP? 최우수 선수?’
세간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몰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 문제 말이다. 스캔들이 터지고 인터넷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이 별 신기한 게 많이 나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서유태.
트렌디한 남자로 살아가는 것 아니었냐.
“잘 모르겠어요. 그게 뭐예요?”
“아, 모르는구나! 괜찮아요. 진짜 귀엽다.”
“…다음에 찾아보고 알려 드릴게요. 소속사 SNS로…….”
팬들은 내가 제대로 답을 해 주지 못하더라도 항상 귀엽다는 말로 나를 감싸 주곤 했다. 대놓고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내 원래 몸으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생소한 느낌이었다.
“이동하실게요.”
“승범이 안녕! 데뷔 꼭 하자!”
그렇게 한 그룹을 쭉 소화해 내고, 잠깐 시선을 돌리자 이화영의 팬이 가지고 온 머리띠를 이화영에게 건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음 그룹이 올 때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나는 그 팬을 향해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안 씌워요?”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이화영은 팬의 이름이 혜은인지 해은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펜을 들고 사인지를 뚫어 버릴 것처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놀이공원 목격담에서 혼자 머리띠를 안 쓰고 있어서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난 건가.’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깐만 줘 보실래요?.”
“아, 네!”
내 말에 이화영의 팬은 영문도 모르는 채 들고 있던 액세서리를 우르르 꺼냈다.
‘엄청 많네. 하나, 둘, 셋, 넷…….’
당신… 이화영의 눈치를 보는 것치고는 상당히 많이 가져오셨다.
나는 여러 개의 장신구가 테이블에 펼쳐지는 것을 보며 솔직히 놀라기는 했지만, 티는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냉큼 머리띠 하나를 집어 냅다 이화영의 머리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이화영이 몸을 움찔 떨며 휘둥그레 벌어진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여기 보지 말고 저기 봐라. 예쁜 표정.”
하지만 나는 이화영의 당혹감 가득한 표정에도 답하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딱 잡아다 바로 정면으로 돌려 놓았다. 그러자 격하게 흥분한 팬이 손가락으로 대포 카메라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네. 브이 해. 브이.”
나는 팬이 가리킨 방향으로 이화영의 얼굴을 고정하고, 머리띠를 벗긴 후 재빠르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다른 모자를 씌웠다. 그리고 셔터 소리가 촤르륵 나는 것을 듣고, 바로 또 다른 장신구를 끼워 놓았다. 뒤에서 스태프가 시간을 재며 도끼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동작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화영의 팬이 가지고 온 장신구를 모두 도는 숨 막히는 촬영 타임이 끝나자 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SNS에 동영상으로 올려야겠다.”
“최고!”
나는 화기애애하게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팬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먼 길 오셨는데 누릴 건 누리고 가셔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팬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는 동안, 이화영은 방금 본인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고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뭐 해.”
“네가 항상 그렇게 딱딱한 표정 짓고 있으니까 팬분들이 뭐 부탁 하나 하는 것도 어려워하시잖아. 인상 좀 펴라.”
“…….”
이화영은 내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본인의 팬들이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이화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팬들이 앉아 있는 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O를 만들어 보였다.
“괜찮아요. 다 OK. 안 싫어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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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사인회가 마무리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옆에 앉아 있는 것은 이화영이 아닌, 온갖 종류의 액세서리를 모두 뒤집어써 무언가의 혼종이 된 무언가였다.
“…….”
‘저게 뭐냐.’
그 모습을 애써 못 본 척하던 중, 바로 옆 구석에서 뭔가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찾아오면…….”
“그래도 네가…….”
다툼을 벌이는 이들은 뭔가 다른 이에게 들려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툼을 벌이면서도 주의를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직 안 돌아간 팬이 있었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젊은 여성인 것 같았다. 무심코 그쪽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20대 초중반 정도의 여성이 서 있었다.
거기까지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남자의 얼굴까지 확인하자 머리가 띵 울렸다.
‘이단비?’
그 상대의 정체는 바로 이단비였던 것이다.
스태프거나 나와 관련이 없는 연습생이길 바랐는데, 역시 현실은 매웠다.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이단비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사생활 침해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도저히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단비.’
– 단비야, 잠깐만 내 말 좀.
– 듣고 싶지 않아.
–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 누나가 자꾸 이러면 나는 힘들어지기만 해. 도대체 그걸 왜 몰라주는 거야.
– 이단비!
치정극을 떠올리게끔 하는 대사를 듣자마자 뒤통수를 연속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했다. 그리고 내 대가리 속의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연애? 아니, 갓 태어난 놈이 어떻게 연애.’
아니, 사랑하는 동생아.
도대체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빠른 거냐?
내가 서유성을 키울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러진 않았는데 요즘 문화를 도통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연습생 신분일 때는 팬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할 텐데 이걸 어떻게 수습하냐.’
우선 주변을 빠르게 돌아봤다. 다행스럽게도 팬들은 이미 다 돌아간 상태였고, 제작진들은 멀리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나 같은 인간 도청기가 또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야기가 어문 곳으로 흘러 들어갈 우려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자 이단비는 퍽 사납게 인상을 찡그리더니 눈 앞의 여성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게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 말을 화룡점정으로 ‘이단비 여자 친구 인터뷰… “프로그램 출연 후 갑자기 손절해”’, ‘Survive IDOL 연습생 이단비, 전 여자 친구 팬 사인회 방문해’ 따위의 기사 제목이 불꽃놀이처럼 머리에서 팡팡 터졌다.
텅빈 눈으로 가만히 앉아 있자 녀석이 우연히 이쪽을 돌아봤다. 그러고는 하얗게 털린 나를 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보기 드물게 질색하는 투로 말했다.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아, 아니냐?
그럼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