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팬 사인회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누린 연습생들에게 예정된 스케줄은 당연히 순위 발표식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단비의 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나 숨을 돌릴 시간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인가!”
“떨린다. 제발 탈락만 안 했으면 좋겠다…….”
생방송 전 마지막 순위 발표식이었기 때문에 이번 고비만 넘기면 데뷔 멤버 발표 방송에 진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마지막까지 와서 떨어질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연습생들 사이에 넘실거렸다. 그들 가운데 홀로 위기감 없이 가만히 서 있던 중 스태프의 지시가 들렸다.
“연습생들 엔터테인먼트 별로 모여서 서 주세요! 차례대로 나가고, 포즈 취할 거예요! 한 명도 빠짐없이 방송 나가니까 잘 준비해 주세요.”
“네!”
“네!”
스튜디오의 뒤편에 서 대기하고 있자 세상 연습생들이 꽤 많이 준 게 체감이 됐다. 처음에는 발 딛을 공간도 부족할 정도로 빽빽했던 피라미드의 의자가 이제는 아주 띄엄띄엄 놓인 게 참 신기했다.
“SU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100% 다 살아남았네. 우리 기획사는 5명 나와서 1명 살았는데.”
“역시 대형은 대형인가?”
“이사님이 쟤네는 다 살아남았는데 우리는 왜 너 빼고 잘렸냐고 엄청 뭐라고 하시더라.”
소속사의 이름이 적힌 폼 보드 앞에 도유다와 나란히 서 있자 주변 연습생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도유다는 그 소리를 듣고도 별생각이 없었는지 꽤 진지한 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형, 앉으세요.”
“뭐?”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도유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바닥이라는 것이었다. 눈을 의심하며 도유다를 내려다보자 놈은 동요 하나 없이 내 눈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우리가 제일 눈에 띄어야 해요.”
“싫어.”
나는 피가 마르는 감각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 촬영에서 도유다가 디비디비딥을 하자고 했을 때와 아주 유사한 예감이 들었다.
“할 수 있어요. 해야만 해요.”
“너는 왜 그렇게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어.”
“가능성이 있다면, 잡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게 우리의 방식이니까.”
“아니, 뭔 소리야. 좀 정상적으로 나가면 안 되냐고.”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도유다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무작정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과 내가 도유다에게 아주 조금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앉아요.”
“싫어.”
“앉아아아앗!”
그리고 도유다는 그냥… 바보였다.
.
.
.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도유다의 등에 타 스튜디오에 입장하고 있었다.
이 수치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도유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
빠밤! 빠밤! 빠바밤!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램 공식 주제가가 재생되고 있었는데, 센스 없는 제작진들이 귀신같이 퍼레이드 행진곡을 재생해 버렸다.
도유다는 그 와중에 진지한 얼굴로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고, 나는 그 위에 앉아 초점을 잃은 눈을 한 채 종이 인형처럼 펄럭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인생에서 이렇게 동태 눈깔을 해 본 적은 처음이다.’
“푸흑, 이 기획사를 빼놓고는 K-POP을 논할 수 없죠! 4대 기획사의 중심! SU 엔터테인먼트의 자랑스러운 연습생들입니다!”
폭소를 터트린 양하준이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멘트를 했으나 그것에 집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웃고 있었다.
만약 이유인이 이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모르겠다, 나는.’
“헉, 헉! 허억. 헥.”
아래에서 이제 체력이 바닥에 달했는지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유다는 정말… 정말 바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SU 엔터테인먼트 한승범.”
카메라 앞에서 이를 악물고 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도유다에게 마이크를 대 주었다.
“헥, 허으, 도유다으. 입니다학.”
“감사합니다.”
“감, 사, 합니다.”
그렇게 역대급으로 수치스러운 입장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순위 발표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 * *
“투표해 주신 팬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김새명 연습생. 소감 잘 들었습니다. 이제 순위석으로 올라가 주시면 됩니다.”
순위 발표식은 탈락 위험 순위권을 제외하고 낮은 순위부터 한 단계씩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느덧 촬영은 막힘없이 진행되어 7위 연습생의 발표까지 마친 상태였고, 곧 6위 연습생의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대본을 흘긋 내려다 본 양하준이 바로 다음 멘트를 이어 갔다.
“다음으로 발표할 6위 연습생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어휘력을 가지고 있는 연습생입니다. 무대에서 보여 주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정말 큰 매력 포인트인 연습생인데요.”
“너 아니냐? 한국어 이상할 정도로 잘 하는 외국인. 나쁜 말은 거의 모르지만.”
이화영이 불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도, 나기 젠에게 딱 어울리는 설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부러 이화영의 옆구리를 쿡 치며 짓궂게 말했다. 그러자 이화영은 전혀 타격감 없는 얼굴로 코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그래?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억측도 이 정도면 상대해 줄 의욕이 안 들어.”
“아, 그러셔.”
나는 조소 가득한 이화영의 얼굴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런 귀염성 없는 놈 같으니라고.
‘기사에는 프로그램 촬영 직전에 입국한 사진이 있었는데. 그러면 지금보다 전에 한국에 왔던 적이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떠올릴 즈음, 양하준이 바로 연습생의 이름을 호명하여 내 주의를 되찾아 갔다.
“6위 연습생은 바로! 나기 젠 연습생입니다! 젠 연습생, 나와서 소감 말씀해 주세요.”
양하준의 부름에 따라 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대 쪽을 향해 재빠르게 걸어갔다. 스쳐 지나가는 김에 내게 손바닥을 내밀기에 가볍게 하이 파이브를 해 주자 젠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실실거리기는.’
그리고 가뿐히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쥐곤 큰 소리로 외쳤다.
“투표해 주신 시청자님들, 팬님들! 감사합니다! 승리하다!”
2차 순위 발표식과 똑같은 말을 하며 손을 번쩍 든 젠은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당 방송분이 크게 바이럴되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똑같이 재현한 것 같았다.
‘그때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여유로워졌군.’
방송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니 젠이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실력적인 부분 외에도 다양한 면에서 성장을 이뤄 냈음이 실감 났다.
“네, 잘 들었습니다. 젠 연습생, 순위석으로 이동해 주세요.”
나와 마찬가지로 흐뭇하게 젠을 지켜보던 양하준이 바로 다음 순서로 진행을 이어 갔다.
“다음으로 5위 연습생을 발표하겠습니다. 이 연습생은 3차 경연에서 잠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4차 경연에서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는데요.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춤 실력과 멋진 피지컬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누가 들어도 우강원이었다.
3차 경연을 말아먹었고 피지컬이 좋은 놈. 우강원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5위 연습생은 우강원 연습생입니다! 순위 상승 축하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강원의 이름이 불리고, 우강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툭툭 만지더니 무대 위로 걸어갔다. 그리고 차분하게 소감을 말했다.
“여러 일들로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게 많은 심려를 끼쳤던 것 같은데, 이렇게 끝까지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어째 나에게 하는 말이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특정 부분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 감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미안했다고.’
미묘하게 시선을 피하자 우강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트리곤 순위석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은 4위의 발표였다.
“4위 연습생입니다. 이 연습생은 원래부터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4차 경연에서 엄청난 성장을 보여 주었죠! 트레이너들과 현장 평가단을 깜짝 놀라게 만든 주인공의 이름은요!”
‘백기량이네.’
“백기량 연습생입니다!”
지 애기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얼을 타고 있던 백기량이 깜짝 놀라 몸을 파드득 떨며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한참을 헤매다가 내가 있는 통로 쪽을 선택하여 무대를 향해 나아갔다.
잠깐 마주치는 사이에 나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 보기에 나는 녀석의 등짝을 팡 쳐 주었다. 내 손이 닿은 대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무대에 선 백기량은 마이크를 두 손으로 꽉 쥐고 말했다.
“지금까지 부끄러운 모습 많이 보여 드렸는데,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신 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자랑스러운 아이돌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나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승범아,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그리고 형… 응원해 줘서 고마워.”
그러고는 양하준의 앞에서 쭈뼛거리더니 허리를 넙죽 숙이며 마이크를 돌려주곤 후다닥 순위석으로 이동했다.
“다음은 3위 연습생 발표입니다. 명실상부 우리 프로그램의 메인 보컬! 그리고… 하하, 한승범 연습생의 메인 보컬이죠!”
장난스레 던져진 멘트에 정신이 아찔했다. 이놈의 방송을 메워버리든가 해야지. 개인적인 대화를 다 방송에 내보내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다.
“네, 그게 바로 접니다.”
옆에 있던 도유다는 내 마음을 알긴 하는 건지 진중한 얼굴을 하더니 신사처럼 일어나 사방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와!”
“한승범의 메인 보컬! 유후!”
그러자 스튜디오 안에 있던 연습생들이 모두 짓궂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날 죽여라.’
귀가 홧홧하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 박동이 굳이 손을 얹어 보지 않더라도 느껴졌다. 내 얼굴이 빨갛게 익을 걸 보고 옆에서 실실 쪼개던 도유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승범 형의 메인 보컬 도유다입니다. 투표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분들 정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도 사랑해요! 꼭 데뷔해서 좋은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승범 형을 비롯한 SU 엔터테인먼트 감사합니다!”
“네, 아주 보기 좋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1위와 2위 발표, 그리고 탈락자 발표뿐인데요. 우선 1위 후보인 한승범 연습생과 니콜라스 연습생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양하준의 지시에 따라 나와 이화영은 무대의 앞에 놓인 작은 단상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자리에 섰다는 것을 확인한 양하준이 바로 진행을 이어 갔다.
“한승범 연습생은 처음에는 수려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결국 뛰어난 실력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아주 단단한 팬덤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이화영 연습생은 특이한 가정환경으로 주목받았지만 한승범 연습생과 마찬가지로 빼어난 실력과 개성으로 다양한 소문들을 단기간에 잠재웠죠. 두 사람 다 1위를 차지하기에 손색없는 연습생들입니다.”
“감사합니다.”
“1위 연습생의 득표수는 총 910,867표입니다.”
생방송 투표만 제외하면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높을 득표수였다. 그 숫자를 들으니 이 프로그램과 출연 연습생들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났다.
“과연 이 엄청난 표를 획득한 주인공은요!”
양하준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뜸을 들이자 연습생들이 숨을 삼켰다.
결과가 대강 예상이 간다 하더라도, 원래 이런 순위 발표의 순간은 꽤 떨리는 법이다.
충분히 방송 분량용 시간을 끌자, 제작진들이 양하준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진 후, 양하준의 경쾌한 목소리 들렸다.
“한승범 연습생입니다! 또 1위 자리를 지켜 냈네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나는 박수를 치는 연습생들, 정확히는 그 앞의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전달받은 마이크를 들고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때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아 항상 감사할 뿐이었는데, 이렇게 생방송을 앞둔 시점까지 응원해 주셔서 정말 행복하고 기쁩니다. 팬분들의 사랑과 응원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다음은 아쉽게도 2위를 차지했지만, 한승범 연습생에 준할 정도로 압도적인 표를 얻은 니콜라스 연습생, 소감 말씀해주세요.”
“순위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아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무대를 보여 드린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사랑 보내 주시는 팬분들, Love you all. 감사합니다.”
여전히 간결한 소감이었지만, 카메라를 향해 블로우 키스를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 거를 보니 저놈도 제 팬들을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축하해. 그러니까 나랑 또 팀 해.”
“무슨 맥락이냐.”
나는 이화영을 보며 픽 웃음을 흘리다가 양하준의 안내에 따라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로 이동했다.
그리고 순위가 정리된 스크린을 조용히 내려다보고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딱 하나, 내가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 못한 결과는 아니지만, 아쉽군.’
[데뷔권 외 연습생]8위: 김명재
9위: 박강호
10위: 김여영
마지막 순위 발표식에서 내가 원했던 멤버 중, 데뷔권에 들지 못한 것은.
[11위: 이단비]이단비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