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1)
11화
공식 주제가를 위한 무대의 준비가 가속화되고,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이루어지는 무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는 곧, 녹음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S등급의 연습생들은 밴 하나에 꾸깃꾸깃 올라타 레코딩 스튜디오에 끌려왔다. 등급별로 나눠서 이동과 레코딩을 진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레코딩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작진 몇 명이 있었고, 카메라는 어떤 남자를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워 악수를 했다. 40대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공식 주제가의 작곡을 맡은 작곡가 Zebra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습생들과 한 번씩 악수를 한 다음 다시 의자에 앉은 작곡가가 서류를 팔락팔락 넘기더니 내 얼굴을 보고 씨익 웃었다.
“흠, 한승범 연습생이 첫 번째로 녹음실 들어갈게요.”
“네.”
다른 연습생들은 생전 처음 와 보는 녹음실을 구경하느라 웅성거렸지만, 작곡을 했던 내 입장에서는 모두 딜레이로 보일 뿐이었다. 77명의 녹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르게 녹음실 안으로 들어와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서자 작곡가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승범 군, 준비됐나요? 목소리 잘 들려요?”
“네. 괜찮습니다.”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작곡가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다른 친구들이랑 마찬가지로 모든 파트를 다 부를 거예요. 공식 주제가에는 개인 파트랄게 따로 없이 77명의 목소리가 전부 들어가니까요. 하지만 승범 군은 센터이기 때문에 전주가 나오기 전 파트를 혼자 부르게 될 거예요. 전달받았죠?”
솔로 파트 연습은 잘해 왔냐 이 소리였다. 나는 살짝 웃고 순순히 대답했다.
“네, 열심히 준비해 왔습니다.”
“어이구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오케이, 좋아요. 한번 시작해 봅시다.”
흐뭇하게 웃은 작곡가가 펜을 손에 쥐었다.
.
.
.
– 내게 베팅해. JACKPOT!
Born to be IDOL. That’s me!
“오케이! 베리 굿!”
작곡가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박수를 짝짝 쳤다.
“이거 뭐 원샷 원 킬인데? 포지션 뭐예요? 센터 맡은 사람 보컬 포지션 아니라고 제작진분들한테 전해 들어서 기대 안 했는데.”
믿을 수 없다는 듯 뒷목을 두 손으로 감싼 작곡가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댄스 포지션입니다.”
보컬 아니면 당연히 댄스겠지.
“와, 댄스 포지션인데 노래를 이렇게 잘해? 얼굴도 엄청 잘생겼는데, 이거 완전 사기 아냐?”
“감사합니다.”
‘아, 껌이죠.’
보통 작곡을 하는 아이돌들은 모든 부분에서 다재다능하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부르면 보컬이 엉성해 보이고, 이런 식으로 춤을 추면 노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주어진 노래를 수행하기만 하는 입장과 시선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
즉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문제를 푸는 것과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노래에 천부적인 소재의 재능은 없더라도, 어떻게 해야 곡을 잘 살릴 수 있을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얼굴은 내가 아니라 한승범이 잘난 거고.’
다음 녹음을 위해 헤드셋을 고쳐 썼다. 머리가 너무 작아서 자꾸만 흘러내렸다.
“어, 녹음 끝났는데?
내가 다시 녹음 준비를 하는 것을 본 작곡가가 급하게 말했다. 나는 얼뜨기처럼 작곡가를 봤다.
“네?”
“원샷 원 킬이라고 했잖아요. 부른 거 다 그대로 들어갈 거예요! 어서 나와요! 빨리 나와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난 섞인 작곡가의 말에 어정쩡하게 헤드셋을 벗고 녹음실에서 나왔다.
‘나라면 이 정도에서 오케이 사인 안 줬을 텐데. 작곡가가 많이 유하군. 연습생이라 기대치가 낮은 건가.’
녹음실에서 눈물을 줄줄 뽑아내고 제발 내보내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계속 다시 시켰던 나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다음 순서로 이화영이 녹음실에 들어가고, 나는 다른 S등급 연습생들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녹음실 밖의 푹신푹신한 소파에 포옥 앉았다. 안락했다.
‘일찍 레코딩이 끝나는 건 생각보다 편하구나. 얘들아, 미안하다.’
과거의 멤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아, 진짜 심심한 사과요.
* * *
“그렇게 좋아?”
“네! 재미있었어요. 레코딩, 생각보다 긴장도 안 됐고.”
내내 히죽거리는 도유다에게 넌지시 묻자 도유다는 냉큼 대답했다.
도유다는 공식 주제가를 위한 보컬 레슨이 이루어지는 내내 보컬 트레이너 Seezy에게 이런저런 부분들을 교정받았다. 그리고 그 교정의 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작곡가에게 연신 극찬을 받으며 레코딩을 마쳤다.
‘아마 공식 주제가는 이놈의 목소리를 메인으로 완성되겠지.’
사실 보컬리스트 Seezy는 나에게 흠잡을 곳이 없다, 능숙하다, 같은 코멘트를 하며 지적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유다에게는 달랐다. 세세한 발음, 비브라토의 폭까지 모든 것을 잡아내 피드백을 건넸다.
‘소질을 눈치채고 욕심이 나는 거겠지.’
자기 분야의 타고난 천재들을 보면 예술인들은 당연히 욕심이 생긴다. 내가 이 아이의 재능을 꽃피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Seezy는 도유다를 제대로 키워 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도유다는 바보였지만, 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최선의 열정으로 보답할 만큼의 현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콜라보 트레이너도 Seezy 님이었던가.”
우리는 담당 트레이너와 연습을 하기 위해 연습실로 이동하는 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화제가 그쪽으로 옮겨 갔다.
“맞아요. 지목 시간 때 저한테 엄청나게 빨리 뛰어오셔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네가 잘하니까 그런 거야.”
“헤, 형은 제이 트레이너님이죠?”
머리를 툭툭 만지며 칭찬하자 활짝 웃은 놈이 잔뜩 신나 물어봤다.
“그렇지.”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요? 어쨌든 트레이너님 노래로 무대를 해야 하는 거니까 프리즘 곡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으아, 저였으면 엄청 무서웠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렵잖아요.”
내가 만든 노래다, 짜식아.
“글쎄, 트레이너들이 거의 대부분의 무대를 한다고 했으니까. 어차피 대중들은 아직 우리보다는 트레이너의 무대에 관심이 더 많을 거야. 우리는 피처링 정도로 얼굴만 비추겠지.”
“그러겠죠?”
시무룩해진 놈이 입꼬리를 쭈욱 빠트리며 말했다.
“그래도 얻는 게 없는 건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 그런 선배님들이랑 무대를 할 수 있는 게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잖아.”
“네! 저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 너는 그쪽이지? 나 이제 간다.”
“가세요, 형!”
1번 연습실 앞에서 인사를 하고 도유다와 찢어졌다. 도유다가 가야 하는 연습실은 조금 더 멀고, 흡음 시설이 잘 만들어진 5번 연습실이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메이크업과 헤어가 풀 세팅된 제이가 나를 반겼다.
‘쟤는 또 왜 저렇게 멋을 내고 왔어.’
한승범이 미친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다.
“한승범 연습생,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소름 돋는 감각을 애써 억누른 나는 놈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래요, 그래.”
그러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거린 놈이 내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막내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선배 노릇 하겠다고 애쓰는 게 웃겼다.
“긴장하지 말고, 미리 데뷔 연습해 본다고 생각해요.”
“네.”
데뷔 연습은 개뿔. 이미 데뷔했다, 이놈아.
“연습은 얼마나 했어요? 보내 준 안무 영상 보고 잘 연습했어요?”
“입사 평가를 준비하느라 연습했던 적이 있어서 숙지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가사도 아직 기억하고 있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입사하자마자 다음 날에 입사 평가를 한다고 하기에 바로 할 수 있는 프리즘의 곡을 선택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와, 입사 평가로 우리 그룹 노래를 했다고? 깡 대단한데? 연습 기간이 너무 짧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일단 안무를 직접 배운 게 아니라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복기 한번 해 줄게요. 거울 앞에 와 보세요.”
“네.”
내가 짠 안무인데 잘못 익혔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대충 구색은 갖춰야 하기에 순순히 제이의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연습복 위에 걸치고 있던 후드 집업의 왼쪽을 입에 물고 지퍼를 내렸다. 옷을 벗고 바닥에 던지고 돌아오자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제이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문제라도?”
“…….”
‘후배를 앞에 두고 멍때리는 자식이 어디 있냐. 지금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인데 정신 못 차리지.’
냅다 꿀밤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지금 나는 한승범이니까. 그런 서유태 같은 행동은 할 수 없다.
“트레이너님?”
다시 부르자 겨우 정신을 차린 제이가 허둥지둥 손짓을 했다.
“아! 미안해요.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연습 시작할까요?”
.
.
.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속도로 안무와 동선의 연습을 모두 마치고, 바로 보컬 연습을 시작하려던 중 놈이 나를 불렀다.
“승범 군, 우리 잠깐 나가서 얘기 좀 나눌까요? 목마르니까 음료수도 좀 마시면서.”
‘저놈, 또 목 축인다고 핑계 대네.’
제이는 연습생 시절부터 연습이 지루해지면 그렇게 음료수 타령을 했다. 습관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다잡은 이성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말자. 나는 스무 살 한승범 연습생이다.
“네. 좋습니다.”
“숭범 군, 뭐 먹고 싶어요?”
“저는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괜찮습니다.”
“아, 카메라는 없이 그냥 우리끼리 쉬다가 올게요.”
바로 따라오려는 카메라 감독을 저지한 제이가 내 손목을 잡아끌고 나갔다.
외투를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1월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나는 추위를 힘들어하는 편이기에 바로 몸을 움츠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제이는 그것을 흘긋 바라보더니 묵묵히 걸어갔다.
‘얼어 뒤지려고 작정했나.’
“…….”
카메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할 때까지 놈은 움켜쥔 손목을 놓지 않았다.
“…트레이너님, 아파요.”
“…….”
답이 없었다.
‘얘, 왜 이래.’
“제이 트레이너님?”
다시 부르자 내내 답이 없던 놈이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섰다.
“키가 아주 큰 편도 아닌데 사람을 내려다보는 게 익숙한 것 같아. 마치 컸던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
“추위 많이 타고. 지퍼 내릴 때 옷을 입으로 물고. 간식 같은 건 입에도 안 대고. 미친 듯이 연습하면서 쉬지도 않지. 어깨는 유연하게 쓰면서 하체에는 흔들림이 없고. 집중하면 오른쪽 눈을 움찔거려. 너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고.”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놈이 내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항상 장난기와 여유가 비치던 눈이 살벌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부분까지 모두 다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아.”
‘제길.’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
“너, 뭐야?”
한 발 뒤로 주춤 물러서려 했지만, 녀석이 내 팔을 놓아 주지 않았다.
‘이래서 이놈이랑 콜라보 무대 하기 싫었는데.’
“놓아 주세요.”
“제대로 대답해. 적당히 넘어갈 생각 하지 말고. 서유태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은 거야?”
‘저놈의 성격상 그냥 적당히 나를 따라 하려는 송사리인 것 같았다면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쪽을 줬을 것이다.’
저 관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떼어 놓고 온 시점에서부터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한승범의 이모가 눈치챘을 때는 정말 놀랐지만, 이놈은 달랐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지목당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던 일이었다.
‘지퍼 여는 습관이 도대체 뭔데. 나는 몰라.’
제이는 멤버들 중에서도 유난히 살뜰하게 보살폈던 놈이었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동안 성격, 취향 등 나에 대해 파악한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사소한 습관들은 나를 미친듯이 따라다니던 제이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
“아니면… 정말 형이야? 귀신이라도 돼서 나타난 거야?”
제이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를 꽉 붙잡은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승범의 이모는 이상하게도 내가 한승범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달랐다. 썩어 버린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어 매달리는 것이다, 이건.
절박하게 매달리는 제이를 잠시 바라본 나는 잠시 고민했다.
녀석을 외면하고 변명거리를 찾아내 상황을 모면할지, 아니면 사실대로 말할지.
“…형?”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놈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놔라.”
“…뭐?”
“다 눈치 깠으면 적당히 놓으라고. 싸가지 없게 형한테 눈깔 부라리지 말고.”
상남자는 변명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