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그러니까 형만큼은, 형만큼은… 저한테 그런 말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내 팔을 붙잡은 이단비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일견 어른처럼 보이는 그 길쭉한 손은 제 나이를 증명하듯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었다.
이단비가 내 앞에서 이렇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내비친 적이 있었던가? 스크린 속의 악플을 보고도, 패닉에 빠진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는 아이였다.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놈이었어.’
나는 처음 보는 이단비의 절박함에 정말 낯선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강인했고, 단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좋게만 보기에는 많은 문제를 품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모르겠는가. 부모님을 대신하여 서유성을 키운 사람이 바로 나인데.
‘본인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은 것이겠지.’
그런 와중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단비가 내게 아주 큰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 놈에게 내가 어떻게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단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할 거야. 내가 차운 선배님께 뭐라고 대답했는지 들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해.”
“…죄송해요. 제가 침착하지 못했어요.”
“됐어. 나는 그냥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해서 널 쫓아온 거야. 하지만 차운 선배님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했고,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으니 특별히 짚고 넘어가지는 않아도 되겠지.”
나는 약간 민망한 듯 빨개진 귀를 문지르며 변명하는 놈에게 차근히 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 기울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더 하고 싶은 말 있잖아. 없어?”
“…….”
대뜸 그렇게 말하자 이단비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더니 어렵사리 질문 하나를 건넸다.
“형은 제가 이번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정말 현실적으로요.”
‘역시.’
이제 나는 이단비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현재 놈이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오해받는 게 싫었다면, ‘여자 친구가 아니라 친누나입니다’로 끝내면 되는 이야기를 전부 알게 되었단 말이다.
이단비는 과연 무엇을 바라고 나에게 그 모든 것을 말한 것인가.
‘불안한 거겠지, 본인이 한 선택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굴면서도 결국 내용물은 17살짜리였다. 지지해 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모든 선택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버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단비가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그냥 방치하고만 있을 생각 따윈 추호도 가지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나는 이단비의 질문에 답했다.
“글쎄, 나도 초능력자인 건 아니니까 확신은 못 하지. 생방송에서는 여러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네가 이번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해야만’ 한다는 거지.”
이단비는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녀석은 아직 고등학생이고, 지금까지 보낸 시간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애송이였다. 의지도 아주 충분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 하면 시간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가 아닌,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엮여 있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테면, 부모의 동의 같은 것들 밀이다.
“부모님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신 거지?”
“…네. 저번에는 누나가 설득해 줘서 계약했지만, 이번 계약이 만료되면 또 부모님 동의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사이에 막내가 태어나 버려서 다음에는 또 안 된다고 하셔요.”
“…….”
“제가 결과를 내지 못해서 그래요. 부모님은 제가 재능이 없는데도 착각에 빠져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거든요. 아이돌 연습생으로 지내다가 데뷔도 못 하고 멀쩡한 직업도 못 가지면 어떡하나 하는 거죠. 집에서 동생들 돌보는 것도 돕길 바라시는 것 같고요.”
사실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11위를 기록하는 것도 웬만한 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습생 기간이 길었던 쟁쟁한 형들을 제치고 그 자리까지 올라오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이단비는 동연령대의 아이들이 거의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논한다면 눈에 보이는 데뷔, 혹은 경제적인 소득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꼴값들 떨고 있어…….’
이단비는 학업을 소홀히 여기는 녀석도 아니었다. 고작 17살짜리가 설령 허황된 것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응당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을 그저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이겠지.
‘안 돼. 그래도 이단비 부모니까 욕하지 말아야지. 아니 그래도 적당히 좀 해야 참을 거 아니냐. 이런 미친, 혈압 올라서 돌아가시겠네.’
내가 속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비판받을 수 있는 발언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이단비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동생들은 아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온전히 키우고 싶은 건 아니에요. 자식을 낳겠다는 선택을 한 건 부모님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부모님이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나는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뱉은 이단비의 말에 눈썹을 쓱 들어 올리고는 감탄사를 삼켰다. 내가 저 나이대였을 때는 저 정도로 논리정연하게 내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화만 내고 말았겠지.
아, 욕도 했겠지. 나의 실수.
“어떻게 설득은 안 될 것 같고?”
“…….”
이단비는 나의 질문에 그저 고개를 저었다.
참 아쉬운 답이었다.
이 쟁쟁한 놈들이 가득한 프로그램 안에서 11위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분명 스타성은 있었다. 녀석을 좋아하는 팬들이 꽤 있는 것도 확인했고 말이다.
‘다른 그룹에서 데뷔하는 것도 이단비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일 텐데.’
일단 내 생각을 제쳐 두고, 이단비에게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만 고려하면 몇 년 더 연습해서 다른 또래 연습생들과 데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연습하면 실력은 늘고, 이단비는 이미 인지도를 쌓아 둔 상태였으니 녀석을 데뷔조로 데려가고 싶은 회사는 수없이 많을 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한 듯했다.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계약을 할 수 있으니까. 부모님이 끝이라고 하면 끝이야.’
이런 문제는 나도 이미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한승범의 부모님으로부터 말이다.
– 갑자기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겠다고? …요즘 정말 이상하구나. 안 하던 짓을 하고. 뭐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다시 이뤄 보고 싶어지기라도 한 거야?
내가 처음 SU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하고, Survive IDOL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한승범의 아버지는 꽤 난감한 기색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승범이 어릴 적 가졌던 꿈은 그날 처음 알았지만, 한승범 아버지의 반응은 대강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색하지 않고 적당한 답을 내놓았다.
– 네, 좋은 기회가 와서 못 이뤘던 꿈을 다시 이뤄 보고 싶어요. 저도 이제 숨 쉴 구멍이 필요하고요.
– 너무 갑작스러워서 곤란한데. 엄마도 당황스러울 테고.
한승범의 아버지는 대놓고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동의해줄 기미 따윈 전혀 없이 시간을 끌기만 했다.
나는 그런 한승범의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다 바로 핵심을 읊었다.
– 안 된다는 말씀이세요?
– …….
한승범의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내 시선을 피했다. 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원래부터 방어적이고, 갈등을 피하려는 성격임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아예 회피하려 들 줄은 몰랐다.
아마 순종적이었던 ‘자기 아들’이 갑자기 강하게 나와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이 가정의 평화는 한승범의 침묵과 인내 덕에 성립되었고, 한승범이 더 이상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붕괴의 위기에 처할 테니까.
나는 그 우유부단한 태도에 나는 머리 뚜껑이 벌컥벌컥 열리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 ‘죄인 되기는 싫어서 안 된다고 말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허락해 주기도 싫고. 하나만 해라, 하나만. 화병 걸리겠네, X.’
성깔대로였으면 진작 엎었어야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한승범’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 저는 어차피 곧 성인이 될 거고, 기획사로부터 그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줄 의향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데뷔를 할 거라는 말이에요. 제가 만약 아버지라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에 굳이 씨름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관계가 좋아야 안 좋은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 안 좋은 이야기라니 그게 무슨…….
나는 퍽 당황스러워 보이는 그의 말을 끊고 웃으며 말했다.
– 아버지, 재운이는 학원도 많이 보내 주시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시던데 저는 이렇게 다 못 하게 하시면 제가 많이 서운해요.
전 부인과 현 부인의 아들을 차별하며 키운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나에게 그런 것을 바라냐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성인이 아닌 아들이 쉽게 할 수 있는 투정이면서도, 이 집안의 평화를 모조리 깨트릴 수 있는 협박이기도 했다.
이 이상 나를 압박하면 한승범이 지금껏 참아 왔던 부당함을 모두 터트려서 다 조져 버릴 것이라는 대쪽 같은 협박이었지만, 알아서 잘 알아듣길 바랐다.
– 저는 재운이한테 방해될 만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도 잘 알고 있고요. 학원이나 학교에 소문이 퍼지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야죠.
한승범의 아버지는 꺼질 듯한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는 얼굴을 하고는 나를 응시했다. 그러나 핵폭탄 주둥이의 삶을 살았던 내게 그딴 어필은 가렵지도 않았다.
–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뭐 어쩔 거야. 껍데기가 한승범인걸. 내 정체를 눈치챘던 한승범 이모가 이상했던 거지.’
– 아버지라면 저를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제가 지금까지 아버지를 이해해 드렸던 것처럼.
어차피 데뷔할 아들을 고작 몇 달 붙잡자고 이 평화를 깨트릴 것인가. 아니면 한재운과 그의 어머니를 설득할 것인가. 한승범의 아버지가 해야 할 선택은 뻔했다.
결국 꿈쩍도 하지 않는 나에게 굴한 한승범의 아버지는 계약에 동의를 해 주었다.
‘원래 인생은 성격 더 드러운 놈이 이기는 거지, 뭐.’
한승범의 아버지는 보여 주기식 평화를 지켜야 했고, 나는 애초에 그 가정이 탐탁지 않았다. 내가 했던 협상은 한승범 가정의 이런 특이 사항 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단비는?
솔직히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다.
‘동생들도 꽤 아끼는 것 같고…….’
결국 이단비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은 이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이단비가 조금 주눅이 든 투로 말했다.
“저 승범 형이랑 꼭 데뷔하고 싶었는데. 제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냥 형이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슬플 것 같아요. 저처럼 소형 기획사를 전전하는 애가 언제 또 형이랑 같이 무대에 설 수 있겠어요.”
“…….”
나는 이단비의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멈춰 섰다.
나는 프리즘 시절의 일, 차운의 말, 이단비를 향한 대중의 평가로 사실 조금 망설이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미래의 이단비가 그 녀석처럼 후회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원망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을 후회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닌가.
“솔직히 계약 문제랑 상관없이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데뷔하고 싶었어요. 승범 형 옆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요. …그래도 역시 불가능하겠죠? 현실적으로 순위가 낮으니까요.”
그런데 말이다.
쟤 왜 저렇게 말을 예쁘게 하냐?
‘누구 집 새낀데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냐? 장남 영혼 찢어지게.’
“형?”
나는 울망울망한 눈을 한 이단비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긁으며 냅다 말했다.
“하아아, 한번 같이 생각해 보자.”
하면 하는 거야, 한번 해 보자고. 다 덤벼.
‘아니, 얘가 같이 데뷔하고 싶다잖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