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관객들의 환호와 경쾌한 비트가 체육관 내에 울려퍼졌다.
프로그램의 주제가, [Born to be IDOL>의 무대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쟁취할래, 빛나는 나의 꿈을!
Born to be IDOL. That’s me!
– 나의 모든 가능성을 바칠게
걱정은 접어 둬, 두려움만 생길 뿐이니까
Born to be IDOL. That’s me!
관객들을 마주 본 채 무대를 하고 있자, 시야에 자꾸만 승범 형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물론 무대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단순한 이유보다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 어떡하지?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 알아서 잘 나눠 먹어야지, 뭐.
승범 형에 대해 명확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된 것은 프로그램 촬영 중반의 어느 쉬는 시간을 보낸 후부터였다.
우연히 연습생들에게 지급되는 간식의 수량에 문제가 생겨, 일부 연습생들은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나이가 많은 연습생들부터 차례로 집어 가고 나니 어리고 가진 게 별로 없는 연습생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 ‘군대도 아닌데 좀 웃기네.’
딱히 좋아하는 간식도 아니었지만, 내면에 품고 있던 갑갑함이 욱하고 올라왔다. 집에서는 형, 오빠니까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밖에서는 동생이니까 형들에게 양보하고. 양보가 당연한 듯한 삶에 슬슬 지쳐 가는 느낌이었다.
– ‘카메라 있었으면 저렇게 안 했겠지.’
아직 받지 못한 연습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간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언짢았다.
어쩌면 나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보호자 아래서 자라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엄마 아빠가 말했던 것처럼 성격이 이기적이거나.
그렇게 고까운 마음으로 연습실의 벽쪽에 기대 서 있던 중, 누군가 내게 다가와 간식을 던졌다.
– 너 먹어라.
당시에도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승범 형이었다.
평소에는 주전부리 따위는 먹지도 않던 사람이 무슨 모세의 기적처럼 연습생들 사이를 지나 간식을 챙기기에 무슨 일인가 싶긴 했었다. 나중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승범 형은 처음부터 본인의 몫을 내게 챙겨 주기 위해 그랬던 것 같았다.
나는 출연 연습생들 중에서도 유난히 어린 편이었으니까.
– …형 드셔도 괜찮은데요.
– 뭔 소리야, 애들 먼저 먹어야지.
– …….
묘하게 애 취급을 하는 말이었다. ‘너도 이제 애가 아니니까 어른스럽게 굴어라.’,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와서 애들 돌봐라.’, ‘형이면 좀 이기적으로 굴지 말아라.’ 따위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내게는 퍽 이질적인 말이었던지라, 나는 뻣뻣하게 굳어 형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내가 보기에는 승범이도 애 같은데.’ 하는 우강원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범 형은 그저 미묘하게 웃으며 그 말을 흘려 넘겼다.
그때의 나는 승범 형에게 아무런 호의도 가지지 못했던지라, 아주 무뚝뚝한 투로 대꾸했다.
– 저 애 아닌데요.
– 퍽이나 아니겠다. 누가 봐도 애인데. 가서 빵이나 먹어라.
내 말에 승범 형은 픽 웃더니 내 머리를 두어 번 툭툭 만지고는 미련없이 자리를 떠 버렸다.
– …….
그 기억은 본인에게는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꽤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승범 형과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으니까. 나는 그 이후로 춤을 가르쳐 달라며 형을 쫓아다니기도 했으며, 연습을 할 때마다 옆에 얼쩡거리곤 했다.
– 형! 저랑 같이 연습해요.
꽤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행동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옆을 맴돌았다. 어디까지 용인해 주는지, 이 사람의 한계점은 어디인지 간을 봐 가면서.
특별히 기만하거나 형의 됨됨이를 평가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배운 방식대로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일 뿐이었다.
– 그래, 죽을 때까지 해 보자고. 잠은 사치야, 그치?
하지만 끝까지 한계는 찾아오지 않았다.
형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연습생들 중에서도 유난히 내게 유했다. 자기 연습하기도 바쁜 시간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무른 사람인가.
지금껏 내가 만났던 손윗사람 중에 내게 그 정도로 과분한 호의를 베풀고,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은 누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지금, 내 손으로 등 떠밀어 보내고 내 곁에 없지 않은가.
결국 승범 형은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내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 해 보자. 이번이 네게 마지막 기회라면 놓치지 말자고.
–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거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어.
그리고 형의 무름은 지금까지 이어져 나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
– 네가 왜 순위가 낮아?
연습을 시작한 이후로 형에게 ‘순위가 꽤 낮아서 꽤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라는 말을 하자 형은 건조한 투로 내게 되물었다.
당연히 내 말에 수긍하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보이기에 나는 조금 놀라 더듬더듬 대답했다.
– 그야 당연히… 저번 순위 발표식에서 데뷔권에 들지 못했으니까요.
– 아닐걸? 왜냐하면 그건 마지막 녹화 방송이 방영되기 전의 투표 결과니까. 순위는 아마 올라갈 거야. 내가 왜 굳이 굳이 이치세 선배님을 모셔 왔겠냐. 방송 나가라고 모셔 왔지.
대중들이 이치세 선배 팀에 대해 아주 큰 흥미를 보일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4차 경연의 연습을 할 때부터 내 방송 분량이 늘어나는 것 정도는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 [이치세 클라스 돌았냐]
– [죽어도 길게는 안 해주더라 ㅠㅠ 아쉽…]
그리고 실제로도 내가 이치세 선배님께 수업을 듣는 모습은 이미 방송을 타고 나가 많은 뷰 수를 자랑하는 영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치세 선배님의 인지도 때문이었고, 나의 표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자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데뷔권 커트라인은 7위였고, 나는 그보다 네 단계 아래인 11위였다.
그것을 단번에 뛰어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 원래 예능 출연을 잘 안 하셔서 선배님 덕에 분량이 많이 나올 건 예상했어요. 시청자들이 다들 보고 싶어하는 장면일 테니까요. 하지만 실제 득표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잖아요. 사고 때문이긴 했지만, 저는 결국 무대에서 실패하기도 했고요.
그런 생각을 담아 말하자 승범 형은 나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 중요한 건 네 연습 장면이 방송을 탔다는 거야. 연습생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결과만이 아닌 과정까지 봐주는 몇 안 되는 기회거든.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지.
– …….
– 너는 여기 출연하는 모든 연습생 중에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연습 과정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항상 일관되게 열심히 하니까.
분수에 넘치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것에 안도하기에는 이미 현실이 눈앞까지 쫓아온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승범 형은 다시 입을 열었다.
– 아마 너는 저번 방송이 나간 후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을 거다. 다들 네가 열심히 하는 걸 아니까 네게 찾아왔던 불운을 안타깝게 여기고, 언젠가는 그 노력에 보답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순간이야말로 사람들이 네게 빠지는 순간이 되겠지. 제작진들도 그게 그림이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 네게 기회를 안겨 줄 거고. 양심이 있어야지. 지들 실수로 네 파트를 다 날려 먹었는데.
– 그 기대를 첫 번째 무대에서 충족시키면 된다는 말씀이세요?
– 그래, 이미 대중들은 아직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하위권 연습생들이 해당 부분을 제대로 출 수 없다고 비웃고 있어. 아마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시선이 주목될 거야. 다들 무대를 즐기는 게 아니라 틀리는 부분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고.
– 그런 것 같긴 해요. 저 너튜브 숏폼으로 연습생들 춤 비교하면서 욕하는 영상 봤거든요.
태블릿으로 봤던 영상을 떠올리며 말하자 승범 형은 바로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 있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 그리고 그 틀린 그림 찾기의 답안지는 나야. 지금부터 너는 나와 완전히 맞아떨어질 정도로 똑같은 호흡으로 춤을 연습해 둬야 해.
보통 연습생들이 그 말을 했다면 나는 분명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한계까지 갈고닦은 춤 실력을 가진 승범 형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신뢰감이 물밀려 들어왔다.
– ‘맞아. 결국 그 너튜브 영상도 두 명의 연습생을 2분할로 보여 주면서 비교했으니까.’
대다수의 대중은 대략적인 안무는 알아도 미세한 타이밍과 디테일까지는 외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그들이 택할 방법은 옆에 있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답을 찾는 것일 터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무대의 센터에서 벗어나지 않는 연습생. 가혹했지만 연습생들의 기준은 승범 형이었다.
– 이건 저번에 말했던 그 사람이 썼던 방법인데, 보통 사람과 춤을 잘 추는 사람의 영상을 찍어서 느린 배속을 하고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연습하면 돼. 어떤 동작에 어떤 디테일이 들어가야 하는지 아예 포함해서 외워 두는 거야. 박자는 원래 잘 맞추니까 반복해서 연습하면 적당히 다듬어질 거고.
내가 해야 하는 노력은 승범 형이 추는 춤을 비슷하게 추는 것이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승범 형에게 주제가의 안무를 배운 연습생이었고, 지금 그를 전담 선생님으로 두는 사치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눈앞에는 승범 형이 있었고, 나는 그 뒤를 쫓아가면 됐다.
– 네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는 놈이란 걸 첫 번째 무대에서 보여 줘.
내가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을 즈음,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고 나를 향한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 내게 베팅해. JACKPOT!
Born to be IDOL. That’s me!
그리고 그것은 승범 형과 함께 준비했던 것들을 보여 줄 시간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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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평소 알고 지내던 연습생이 내게 뛰어와 태블릿을 건넸다.
엄청 흥분해서 방방 뛰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 성화에 못 이겨 얼떨결에 태블릿을 조작한 나는 바로 등장한 블루버드 SNS의 한 글을 보며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 한승범 빙의한 이단비] [┗ 와 둘이서 무슨 칼군무처럼 맞아 떨어지네. 신들린 듯] [┗ 단비 저번 방송 나가고 ㄹㅇ 갑자기 떡상했는데 오늘 이 악물고 거품 아닌 거 증명함.] [┗ 난 얘 다른 연습생들 다 쉴 때 뭐라도 하나 더 배워보려고 한승범 쫓아다닐 때부터 호감이었음.] [┗ 교주 어디까지 내다봤냐…?] [┗ 독기 봐라 ㅋㅋ 이렇게 간절한 애가 데뷔해야지] [┗ 데뷔하자, 단비야.]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무대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와 승범 형의 춤 영상을 나란히 둔 글이 벌써 만 번 이상의 리트윗을 받으며 거론되고 있었다.
[이단비] [단비 미친] [교주픽 실화] [산독기토끼]그리고 실시간 핫 키워드에는 내 이름이 몇 개씩이나 올라와 있었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상위권을 밥 먹듯이 차지하는 형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 놀란 마음에 멈춰서 멍하니 서 있자 대기실의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부 연습생들의 중간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현실 감각이 돌아와 몸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기대감이 들끓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은 채 모니터에 순위표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삐롱!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음과 함께 명단이 쭉 나타났다.
[12위: 송한서] [11위: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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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이단비]데뷔권에 적힌 내 이름을 본 나는 너무 놀란 마음에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러자 다른 형들이 뛰어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정말 축하한다, 단비야!”
“드디어 네 노력이 보답받는구나!”
그 거친 몸짓에 휘둘리며 울음을 꾹 참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나… 나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홧홧해진 눈시울을 괜히 손등으로 가리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자 승범 형이 했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 사람들은 빛나는 재능만큼이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사랑해.
– 다들 알고 있거든,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