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서유태.”
“그만 불러. 이름 닳는다.”
거듭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퉁명스레 대답하자 갑자기 최적현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와, 서유태다.”
얼굴은 실실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암만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도 늦은 시간이었고,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주차장 쪽이었기 때문에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바로 질질 짜고 있는 최적현의 옷깃을 잡아다가 차에 처넣고, 조수석에 들어가자마자 호통쳤다.
“누가 운전 이따위로 하래, 이 미친놈아! 술 마셨냐?”
“하하하, 정말 서유태다.”
냅다 갈긴 욕에 최적현은 상큼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 욕을 먹고도 아주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술 처먹었냐고!”
“다행이다. 드디어 만났어.”
울다가 웃다가 혼자서 생쇼를 하면서도 절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저딴 식으로 대답하면 일단 꽐라라고 봐야 했지만, 매일같이 기행을 일삼는 이놈은 별개였다.
나는 결국 놈에게서 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음주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냅다 최적현의 얼굴을 움켜쥐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아파트 단지 도로에서는 감속. 면허도 뒷돈 주고 땄냐? 머리에 뇌 대신 우동 사리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기본적인 거는 알아야 할 텐데?”
“아야, 성질 여전하네. 하하.”
나는 히죽거리는 최적현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그를 놓아주었다. 이따위로 구는 것도 나름 친구라고, 참. 그냥 이 새벽에 야생 고라니처럼 뛰어다닌 내 잘못으로 하겠다.
그러자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 최적현이 해사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자꾸 도망치니까… 어쩔 수 없었어. 칠 뻔한 건 미안해. 그래도 안 죽었으니까 괜찮지?”
“…….”
이게 적당히 해야 반박할 마음이 드는데 진짜 이렇게 개또라이 같은 소리만 골라서 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냥 경찰서 보낼까.
“자리 옮길까?”
어이가 없어 그냥 허탈하게 앉아 있자 그사이 또 지멋대로 진정한 최적현이 눈을 깜빡깜빡거리다가 내게 제안했다. 나는 그에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네가 운전해서?”
방금 사고 낼 뻔했으면서, 네가?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최적현은 수줍게 뒷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제 너를 쫓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사고도 안 낼 거야.”
“…….”
나는 지끈지끈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가라, 가…….”
“응!”
.
.
.
정말 운전을 잘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질 즈음, 차가 멈춘 곳은 꽤 익숙한 곳이었다. 아직 집이 없던 시절 꽤 길게 신세를 졌던 최적현의 집이었다.
옛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따라 현관문 앞에 다다르자 최적현은 몸을 뒤로 물리며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비밀번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
‘감히 날 시험하려 들어?’
나는 그의 행동에 콧방귀를 뀌고 아주 빠른 속도로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어차피 그 정도로는 열리지 않아 최적현이 지문 인식을 해야 했지만.
문이 열리고, 나는 자연스레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 거실 쇼파에 앉았다.
그러자 내 모습을 지켜보며 입가를 손등으로 가리고 있던 최적현이 조금 장난기 섞인 투로 말했다.
“어때, 오랜만에 친구 집에 온 기분은?”
나는 귀찮음을 담아 손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얘기는 됐고. 도대체 어떻게 안 거냐?”
내 말에 그는 웃음기를 머금고 옆의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방긋 웃더니 가볍게 말했다.
“네 시체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거든, 흔적도 없이.”
“…뭐?”
원래 또라이 같은 놈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지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설마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나는 벙찐 채 멍하니 되물었다.
놈은 그런 나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하하, 남의 말 오래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본론부터 말한 건데.”
“…길게 설명해. 생략할 게 따로 있지.”
“말 그대로의 의미야. 네가 죽었다는 뉴스가 퍼지고, 나는 내 눈으로 보지 못하면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영안실까지 찾아갔어. 그리고 차갑고, 혈색 없이 딱딱해진 채 누가 봐도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너를 눈에 담았지.”
죽은 후의 내 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에 나는 미묘한 마음으로 그저 최적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도 인정할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그곳에 앉아 있었거든. 그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너를 지켜보고 있었고. 장의사도 내 옆을 지키고 있었지.”
“…….”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내 눈앞에서 네 몸이 사라진 거야. 방금까지만 해도 네가 있었던 공간에 손을 넣어 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촉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무게마저 느껴지지 않았어.”
두 번째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애초에 현실 세계에 사는 인간이었고 소설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초능력을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는 놈이 아니란 말이다. 빙의조차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벌어졌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적현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환각이 보이면 그냥 정신과에 먼저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이상을 느낀 게 나밖에 없었다면 그냥 환각이 맞았겠지. 하지만 네 몸을 흰 천으로 덮고 옮기던 중에 장의사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상하다.’, ‘너무 가벼운데?’, ‘안에 계신 거 맞아?’라고 했어. 그래서 멈춰 세우고 뭔가 문제가 있으면 다시 천을 벗겨서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
“머리가 아픈 것처럼 신음을 흘리더니 갑자기 아주 평온한 얼굴로 ‘문제요?’라고 되묻더라. 방금까지만 해도 본인들 입으로 이상하다고 했으면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것처럼. 결국 억지를 부려 다시 열어 보라고 해서 열었는데 그때도 너는 없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봐요. 잘 계시잖아요.’라고 대답한 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가 버렸고. 너무 이상하지 않아?”
최적현이 혼자 헛것을 봤다면 원래 이상한 놈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엮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심란한 마음에 나는 턱을 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한승범에 대한 기억이나 인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학우들, 나의 잦은 두통과 불분명한 기억들. 그리고 최적현이 말한 장의사들의 이야기.
내가 한승범의 몸에서 눈을 뜬 이후로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이 세 가지 이야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기억이나 사고의 흐름이 무언가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 혹은 한승범과 관련된 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
‘최적현이 겪은 일은 그저 망상이 아닐 수도 있겠어. 이미 죽은 사람인 내가 세상을 활보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일이니까. 뭔가 특별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건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의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최적현과의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서 시체가 사라진 게 네가 나를 알아보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
“나는 그 후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리고 네 주변 사람들을 모두 지켜보기 시작했지. 네 시체가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사라지게 됐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가장 가망이 있다고 생각한 게 ‘누구’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는 거였어.”
“…….”
“그래서 나는 네 주변인들에게 주기적으로 자극을 가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어. 네 장례식은 철저히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심지어 나는 장례식이 진행되기도 전에 영안실에 방문했으니까. 그날 시체를 가져간 사람이 있다면 네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높잖아.”
‘영안실의 위치를 사전에 알고 있을 정도로 밀접한 사람이 의심됐다 이건가.’
그 말에 나는 3차 경연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차운과 제이에게 클라우드를 열어 준 것도 너였지. 그것도 그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거냐?”
“맞아. 특히나 프리즘 멤버들은 요주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네 존재를 눈치채는 것에 그게 큰 도움을 줬지.”
클라우드 사건이 내 존재를 알아채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설은 그 클라우드에 접속할 수 있었던 멤버들이 최적현에게 내 존재에 대해 언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운은 여전히 나의 정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고, 오직 제이만이 나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아무리 최적현이라 할지라도 제이가 나에 대한 정보를 타인에게 말하고 다닐 리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놈의 말을 바로 부정했다.
“제이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네게 불었을 리가 없어. 거짓말하지 마.”
나의 단호한 태도에 그는 하하, 하고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유제이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거 알아? 입을 다문다고 해서 모든 걸 숨길 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클라우드의 노래들을 지웠잖아. 그 아이들은 절대 자의로 네가 남긴 것들을 저버릴 수 없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유제이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걸 모두 삭제해 버렸어. 그리고 눈에 띄게 안정감을 되찾아 갔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
“…….”
제이나 프리즘 멤버들의 속마음에 대한 건 항상 어려웠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뚱한 표정으로 있던 나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극복했겠지. 정신력으로.”
“하하, 그럴 일은 없어. 네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여전히 너만 모르는구나. 나는 네 그런 부분이 참 좋더라.”
최적현은 대놓고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업신여기다가 다시 설명했다.
“유제이나 차운이 모두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 평온함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불안감의 원인인 서유태와 관련된 것이겠지. 두 사람은 프로그램 출연진 중에서 서유태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은 거야. 하지만 너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존재할 수 없어. 그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걸.”
그러고 보니 초반에 내게 시비를 걸었던 프릭에게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는데 강배영이 내 속을 썩이기 시작한 후부터 최적현이 개입했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제이에게 클라우드를 밀어 달라고 부탁했을 즈음의 시기였다.
‘이 자식…….’
“…그때부터 출연자들을 뒤지기 시작한 거냐. 유제이와 깊게 상호작용을 하고, 원래의 나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 연습생을 찾아서.”
“맞아. 너는 특별한 사람이잖아. 무편집본을 모두 받아서 네 습관과 말투를 분석하고 관계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었지. 고작 수수께끼를 풀자고 시작한 일에서 너를 닮은 사람을 찾아버렸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결국 방송에 나가지 않은 분량까지 찾아보며 나를 분석했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소름 돋았다.
본인의 기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고 있는 최적현을 보고 있으니 문득 유제이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조심해.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형 손으로 겨우 사회에 적응시켜 놨는데 형이 사라져 버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나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팔을 쓸며 중얼거렸다.
“너 진짜 진심으로 병원 좀 가 봐라…….”
“마음의 병이 있으면 뭐 어때.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는데. 네가 말하는 나의 비정상적인 면이 내 유일한 친구를 찾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면 나는 상관없어. 치료도 안 할 거고.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진짜 최악이다.”
“칭찬 고마워. 그러고 보니 필적도 열심히 바꾸려고 노력했던데 필적 감정을 맡기면 위조 필적인 것까지 분석되거든. 세상에 어느 연습생이 필적을 감추려 들어? 아예 ‘숨기는 거 있어요’ 소문을 내지 그랬어.”
“XX… 그만해라!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이 새끼야!”
나는 최적현의 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만 쌍욕을 질러 버렸다.
원래 이런 놈이라 친구가 없는 건데 나만 운 안 좋게 걸려 버린 것인지, 아니면 친구가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나 있는 친구를 버릴 수도 없고, 진짜 미치겠다.
최적현은 내 혼신의 꾸짖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프너와 와인을 들고 와 화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와인 마실래?”
“안 마시는 거 알잖아. 그만 떠봐, 이 새끼야!”
“하하하!”
내 인생 또라이 삼인방 최적현, 서유성, 유제이 중 그나마 가장 순하고 말을 잘 들었던 또라이 3번만 상대하다 보니 또라이들의 위광을 잠시 잊고 있었다.
…유제이가 그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