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삐리릭.
도어 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숙소 안으로 들어오려다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비닐 안의 무언가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영어 욕이 들렸다.
“oh, shit.”
현관문 옆에 수북하게 쌓인 중국집 그릇을 보며 당황한 것 같았다.
‘비닐로 꽁꽁 묶어 놓기를 잘했지. 아니었으면 나가서 다시 다 주워야 했겠어.’
집 문앞에 접시를 내놓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으며,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은 뻔했다.
“이화영, 빨리 들어와라. 아주 현관에서 살겠다.”
나는 소파에 기대 앉은 채 현관 쪽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현관문이 닫히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이화영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건 뭐야.”
“네가 맛보지 못한 한국인 이사의 영혼. 네 몫까지 도유다가 다 먹었다.”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으나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카메라가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다.
입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웬 카메라가 들어오냐 하면 우리에게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 우리 예능 엄청 찍는대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찍고 자컨도 찍는다는데요? 자컨은 심지어 너튜브 채널까지 개설한대요. 엄청 바빠질걸요?
사실 숙소 입소와 동시에 예능 촬영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도유다에게 처음에 들었을 때 나는 매우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었다.
– ‘노오래 잘하고 춤 자알 하는 게 먼저고 그 다음이 예능이지. 지금 데뷔 앨범 준비 시작도 못했는데 뭔 커어언텐츠부터 하겠다고…….’
데뷔 준비하기도 바쁜데 예능에 너무 과하게 힘을 들이는 걸 보고 있으니 주객전도 아닌가 싶었다. 눈을 10시 10분으로 치켜뜨고 역정을 내려고 하자 도유다는 서둘러 끼어들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 팬들이 보고 싶다고 했대요.
그리고 도유다의 말을 들은 나는.
– ‘그렇구낭.’
기적의 태세 전환을 이뤄 냈다.
8시 20분.
아니, 우리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그룹의 경우, 개인 팬들이 많고 끝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멤버 간이나 팬덤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참 어려운 과제였다.
이런 부분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완화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애초에 Survive IDOL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고, 출연을 결정했을 때부터 방송국에서 독점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맡는 조건이 있었다거나 하는 어른들의 뒷사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팬분들의 의견을 고려할 뿐이었다.
‘정규 프로그램의 궁둥짝을 쳐서 내쫓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지, 암.’
– 그래, 데뷔 준비도 열심히 하고 예능도 열심히 하면 되지.
– 저 형, 팬분들 얘기만 나오면 오케이맨 되는 거 진짜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그런 나를 보며 도유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지만, 그것은 가볍게 무시해 주기로 하였다.
“카메라 들어오기 전에 포지션 정해야 해. 빨리 와서 앉아.”
“바닥에?”
바닥에 오순도순 모여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우리를 지켜보던 이화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아, 또 영국인 티 내네.
“불편하면 너는 의자 끌고 와서 앉아.”
의사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하자 이화영은 의자를 끌고 와 다리를 꼬고 앉은 후,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봤다. 어째 그림이 이상했지만, 넘기도록 하자.
내가 이렇게 서둘러서 포지션 배분을 진행하려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메인’, ‘리드’, ‘서브’로 명확하게 급이 나누어지는 포지션 배분은 팬들에게도, 멤버들에게도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방송에 내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Survive IDOL에서도 포지션 배분에서 아주 달달하게 분량을 뽑아 먹지 않았던가. 이건 자존심 싸움이었다.
방송국은 이제 성공적으로 데뷔한 판테이온으로부터 단물을 쪽쪽 빨아야 했기 때문에 웃자고 만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까지 자극적인 편집은 하지 않을 터였다.
‘편집 분위기와는 별개로 멤버들의 표정을 초 단위로 캡처해서 지적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 그룹은 서로를 떨어트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서바이벌 특유의 분위기로 아직 개인 팬 성향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기면 같은 그룹의 팬들끼리 죽도록 싸우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특히나 우리 그룹은 실력파 멤버가 많았기 때문에 다들 본인이 좋아하는 멤버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조금 아쉽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있을 법한 장면은 방송에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흰 종이를 앞에 두고 멤버들의 이름을 쭉쭉 적어 내렸다.
“그럼 리더부터 정해 볼까.”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리더였다.
포지션 배분을 진행할 사람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의견 있는 사람 말해 봐.”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리더 행세 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유다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자 옆에서 멤버들이 모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 없어? 다 동의하는 거야?”
나는 멤버들의 무덤덤한 반응에 아주 조금 당황하여 다시 확인하려 했다. 등신 같은 놈들만 한가득 모여 있었다면 다 꺼지라고 하고 내가 리더 자리를 먹었을 텐데, 여긴 나 말고도 팀을 잘 이끌어 줄 사람이 뻔히 있지 않은가.
‘우강원도 성품이 온화하고 차분하니 충분히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텐데. 나이도 가장 많고.’
그런데 그 우강원을 포함한 멤버 전원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나만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감동과 뒤숭숭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우강원은 온화하게 미소 지은 후 말했다.
“프로그램 촬영 중에 같은 팀에 배정됐을 때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딱히 나이가 리더십을 대변해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괜한 자존심 부릴 생각도 없고. 네가 이렇게 멤버들한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겠어. 나는 네가 멤버들을 이끄는 걸 옆에서 잘 도와줄게.”
“…….”
나는 우강원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프로그램 내내 모든 팀에서 리더 자리를 꿰차긴 했지만, 아예 활동을 하게 될 그룹의 리더는 무게가 달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끝이 찾아올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정말 내가 이 그룹의 리더를 맡아도 되는 건가?
“형?”
“이름 쓰시오. 결정 아닙니까?”
“…내가 쓸까? 왜 그래?”
내가 평소처럼 냉큼 리더 자리를 받아 가지 않자 멤버들은 내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천하의 한승범이 망설이다니,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이겠지.
– 우리 서유태 씨가 있는데 뭐가 무섭냐! 나는 자신 있다.
멤버들의 시선에 약간의 초조함을 느낄 즈음, 조인찬의 앳된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것 같았다. 그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가만히 앉아 있자 솥뚜껑 같은 손이 내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우강원이었다.
“…….”
우강원이 내가 겪었던 일들을 알 리가 없었는데. 저 말에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텐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굳어 있던 표정 근육을 조금 느슨하게 풀자 우강원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한 번 더 말했다.
“리더라고 해서 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해 팀으로 데뷔하는 거잖아. 이건 누구보다 네가 가장 잘 알겠지?”
참나, 저 다 자란 구황작물이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작게 웃음을 흘린 나는 천천히 펜을 움직여 내 이름 옆에 ‘리더’라는 글씨를 적어 넣었다. 그러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다.
“이제 슬슬 다음 포지션으로 넘어가지.”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펜을 쥔 손을 휘휘 젓고 바로 다음 진행으로 넘어갔다. 지금 리더 자리에 이렇게 시간을 쏟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우리 그룹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포지션은.
“메인 보컬부터 해.”
“메인 보컬부터 정해요.”
“메인 보컬…….”
메인 보컬이었으니까.
프로그램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불렀던 멤버 3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벌써부터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참 복에 겨운 소리이긴 했지만, 다른 그룹에서는 멀쩡하게 메인 보컬을 맡을 수 있는 놈들이 세 명이나 모여 있었으니 참 결정하기도 애매했다.
4차 경연을 할 때까지만 해도 메인 보컬 선정에는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백기량도 오늘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는지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물론 겉보기가 가장 위협적인 건 이화영이었다.
씩씩한 똥강아지, 간만에 용기를 낸 미어캣 그리고 그 옆의 팔짱을 낀 채 킬 각을 재고 있는 사자.
단순히 기싸움으로 돌아가면 누가 메인 보컬이 될지는 너무 뻔했다.
나는 앙앙 눈물을 흘리는 두 찔찔이들을 달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부드럽게 말해라.”
나는 이화영의 입 앞에 손을 가져다 대고 당부했다.
이화영은 그런 내 손을 흘긋 보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도유다와 백기량을 보며 말했다.
“내가 가장 잘해. 그러니까 포지션 넘겨.”
아.
나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그래, 저놈치고는 둥글게 말한 편이라고 치자.’
평소였다면 ‘나는 허접한 사람들한테 메인 보컬 파트 못 넘겨’ 같은 느낌으로 말했을 거다. 저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 공격적으로 말하지 않는 게 어렵다면 말할 때 초점을 상대가 아니라 네게 옮겨 봐. 그러면 그나마 나아질 거다.
일전에 내가 했던 말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저 말을 들은 당사자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터였다,
“우.”
벌써부터 볼과 주둥이에 불만이 가득 찬 도유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입에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이화영의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생방송 때 이화영을 집어 던진 이후로 이제는 꽤 이화영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메인 보컬은 원래 하이라이트 파트를 소화하고 고음 파트에서 가장 높은 음을 떠안게 되는 포지션이라고요! 누가 봐도 저잖아요. 저는 성량도 좋고요. 남들이랑 같이 불렀을 때 제 노래만 들리게 할 자신 있어요.”
“곡의 전체 분위기를 잡아 주고, 후렴구를 잘 살리는 보컬이야말로 중요한 거 아닌가?”
“…나는 코러스랑 화음도 넣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어. 라이브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것 같고……. 고음도 좋지만, 섬세한 보컬 스킬이 필요한 부분을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들 나름 일리는 있었다.
사람들이 흔하게 여기는 메인 보컬 포지션, 고음 셔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놈은 도유다였다. 가장 음역이 넒고, 성량이 커 노래의 하이라이크 부분을 아주 잘 소화하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고음을 잘 올린다고 하여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화영은 특색 있는 목소리로 그룹의 정체성을 정해 주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아마 이놈이 빠지면 우리의 노래는 순식간에 밍밍해지겠지.
그리고 노래의 깊이를 더해 주는 것은 백기량일 터였다. 놈의 보컬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디테일을 챙기는, 아이돌 판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보컬이었으니까.
결국 취향에 따라 갈린다는 소리였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메인 보컬을 여러 명에게 주지만, 7인조 그룹에 메인 보컬이 세 명이면 그건 그것대로 좀 이상했다.
“저는 양보 못 해요. 이거는 제 자존심이라고요!”
“그게 네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나도 이번만큼은 양보 안 하고 싶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지자 우강원이 난처한 듯 세 사람을 말리려 들었다.
“얘들아, 일단 진정하자.”
“노래로 붙을까요? 노래방 갑시다.”
“아니, 레코딩으로 정확하게 보지.”
오케이. 우강원은 리더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말 안 듣는 놈을 감당하기에는 성격이 너무 유순했다.
나는 귀에서 피가 날 것처럼 싸워 대는 놈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놈들의 데시벨이 과하게 높아질 즈음, 포지션 종이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쫄아 있는 놈들을 향해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다 때려치워. 메인이고 리드고 서브고 필요 없어. 싹다 보컬 해, 그냥.”
강원아, 원래 리더는 멤버들보다 기가 세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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