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 다 때려치워. 메인이고 리드고 서브고 필요 없어. 싹 다 보컬 해, 그냥.
– 너도 보컬, 너도 보컬, 형도 보컬이야. 됐어? 이 세 명 노래 잘 부르는 거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염병들 하지 말고 똑같이 보컬 해, 그냥. 뭘 급을 나눠.
내 선언과 함께 우리 그룹의 포지션 배정은 아주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우강원: 댄스] [백기량: 보컬] [니콜라스 화영 리: 보컬] [한승범: 댄스, 리더] [도유다: 보컬] [나기 젠: 보컬] [이단비: 댄스, 랩]– 겉으로 볼 때 허전하긴 하네요.
포지션을 적어 둔 종이를 본 이단비가 덤덤하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멤버들은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지만, 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포지션에 팬들이나 대중들이 조금 의아해할 수는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 잘하는데 뭐 어떡하란 말이냐. 한 그룹에 다양한 스타일의 메인 보컬이 있으면 K-POP신의 축복이 내려진 거라고들 하던데, 설마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 명함이 뭔 상관이냐. 그냥 잘하면 되지. 나는 자신 있다. 오히려 모든 멤버들의 실력이 뛰어나니 급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어필할 수도 있고,
– 혀엉… 형이 그렇게 말하면 저희가 할 말이 없잖아요.
– 할 말 없으라고 한 말이다.
리더에 센터에 메인 댄서에 온갖 명함은 다 달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민망하긴 했지만, 멤버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메인 보컬’ 포지션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았다.
‘프리즘에서는 이런 문제를 겪어 본 적이 없었는데.’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은 때로는 경쟁의 씨앗 자체를 말려 버리는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모두의 인정을 받는 서유성, 이치세, 서유태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프리즘에서는 애초에 이런 포지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룹 내부의 경쟁이 없었던 대신 외부인들이 멤버들의 수준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찾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거에 비하면 이건 장난 수준이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곳에 모였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 아닌가.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건 초반뿐이고 어차피 금방 괜찮아질 터였다. 불특정 다수의 공격이 아닌, 내부에서의 경쟁이라면 내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또한 가능하니까.
‘메인 보컬은 대충 그렇게 정리하면 될 거고…….’
그 외에 굳이 짚어 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나기 젠과 이단비였다.
젠은 보컬과 댄스 중 특별히 부족한 부분 없이 올라운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멤버였기 때문에 어떤 포지션으로 넣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나는 고민 끝에 녀석을 가끔씩 예전의 뚝딱거리는 모습이 보이는 점, 댄스 브레이크에 주로 참여하는 멤버는 아니었다는 점, 킬링 파트를 주로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컬 라인에 집어 넣게 되었다.
– 시키는 것 다 합니다. 긴장하십시오. 보컬의 나기 젠 Crazy 전투 모드 On.
젠은 어떤 포지션에 배정되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는지 아주 태평했다. 모든 멤버가 젠처럼 단순하면 아주 편할 텐데. 인생은 역시 쉽지 않았다.
‘…문제는 이단비지.’
보컬 포지션이 티격태격 장난에 가까운 싸움을 하는 동안 이단비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낯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본인도 아는 것이다, 본격적인 고비는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4차 경연에서 이단비가 능숙하게 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치세의 덕이 컸다.
대중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치세의 손을 탔던 그 랩 스타일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단비가 본인의 힘으로 그것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지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그것에 실패했을 경우 이치세에게 또다시 힘을 빌릴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코칭이 이루어졌던 날, 이치세는 이단비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알겠지? 다음부터는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자.
쾌활한 투를 뒤집어쓰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더 이상의 아량을 기대하지 말라는 선 긋기였다.
이치세는 사람들의 생각만큼 유한 놈이 아니었다.
놈의 아량은 소수의 인간들에게 한정되었고, 그 자리는 이미 프리즘 멤버들로 꽉 찬 상태였을 것이다.
이치세가 코칭을 해 줬던 것은 곡을 받기 위함이었지, 이단비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믿기지 않을 테지만, 끝까지 매달렸을 때 마음이 약해지는 건 차운이었고 이치세는 안 된다면 안 되는 놈이었다.
결국 이단비가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멤버들이 아닌 4차 경연에서의 자신이 된 셈이었다.
‘참, 쉽게 흘러가는 일이 없군.’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쉬자 도유다가 내가 다가와 말했다.
“형, 웬일로 제대로 된 잠옷 입고 계세요? 아하아, 좀 있으면 카메라 들어온다고 콘셉트 잡는 거죠! 형도 참, 꽤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최적현이 마련해 준 옷을 입고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지는, 털 보송보송 올라온 수면 잠옷에 동물 귀 달린 헤어밴드 쓰고 있으면서.
본인의 꼴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실실 웃는 게 열받았다.
“…선물받은 거야. 잠옷 제대로 안 입는다고 줬어.”
“헤, 그런 거로 해 드릴게요.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 다 알지만요!”
“…….”
‘이놈은 날이 갈수록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네.’
내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린 것을 본 도유다는 혈색이 사라진 얼굴로 급히 입을 놀렸다.
“어, 어디 옷인지는 모르겠지만, 승범 형 미모 덕을 참 많이 봤네요. 방송 나가면 품절 대란 될지도 몰라요. 형이 입는 대로 따라서 사는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저번에 미니 운동회 때 입은 옷도 결국 다 품절됐다고 하던데에? 와, 역시 형! 호우! 패션계를 뒤집어 놓으셨다!”
“…….”
“…잘못했어요.”
봐준다.
.
.
.
– 자연스럽게 부탁드려요. 카메라 없는 것처럼! 너무 정적 이어지지 않게 신경 써 주시고요.
도유다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숙소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찾아왔고, 숙소의 곳곳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 카메라가 정말 한가득이네요. 카메라 감독님도 몇 분 들어오셨고, 숙소 밖에도 스태프분들 한가득 대기하고 계시던데, 원래 방송은 이런 걸까요?
시청자들은 이렇게 작정하고 촬영을 한다는 것은 아마 모르고 있을 테지만, 원래 TV 프로그램의 자연스러움은 연출된 것일 뿐, 대부분은 이딴 식으로 카메라를 한가득 들고 우르르 몰려온다. 외출이라도 하면 거의 길 하나를 점령하는 수준으로 스태프를 끌고 다녀야 한단 말이다.
“…그, 그럼 방 배정을 시작해 볼까아?”
카메라를 흘끔흘끔 보다가 눈을 사선으로 치켜뜬 우강원이 격하게 버벅거리며 제작진이 부탁한 대본을 읽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우강원은 평생 가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일단 우리 방이 4개 있으니까 둘씩 짝지어서 큰 방 3개를 쓰고, 가장 작은 방은 한 명이 독방으로 쓰면 것 같아요.”
의젓한 이단비가 능숙하게 말을 받아 주자 우강원은 감동을 받은 듯 울망울망한 눈으로 이단비를 바라봤다. 그에 이단비는 고개를 돌리고,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쪽의 눈으로 윙크를 했다.
“머, 멋있어.”
“대단합니다.”
그것을 지켜보곤 큥, 소리를 입으로 내며 가슴을 부여잡은 나기 젠과 도유다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절대 저 바보 같은 리액션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같이 생활하기 힘든 사람들을 분리하자. 잠버릇 고약한 사람들이라든가.”
“…….”
잠버릇을 언급하자 도유다와 나기 젠이 입을 헙 다물었다.
딱 본인들 이야기인 줄 알고 있는 것이다.
남의 침대에 기어 들어와 발길질을 하며 자는 놈, 호러 영화처럼 눈을 뜨고 자는 데다 헛소리까지 하는 놈. 이런 놈들과 같은 방을 쓸 바에야 그냥 거실에서 자겠다.
나는 두 놈들을 흘끗 보고 말했다.
“그냥 너희 둘이서 지내라. 동갑내기에 사이도 좋잖아.”
“아싸!”
“유짱과 공생하다.”
그러자 놈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 파이브를 하고 허그를 하며 온갖 기쁨을 표현했다. 맨날 티격태격해도 막상 사이는 엄청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두 놈을 나름 흐뭇한 시선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앉아.”
내 말에 다시 정숙하게 자리에 앉은 녀석들을 두고 나는 다시 멤버들의 이름을 훑어보며 고민에 빠졌다.
‘일단 이단비랑 이화영은 떨어트려 놓아야겠지.’
‘친해지길 바라’도 아니고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놈들을 굳이 붙여 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백기량과 이화영이 한 방을 쓰면 백기량이 숨 막혀서 못 살 것 같았다.
‘…무슨 다섯 살도 아니고 이화영에서 계속 걸리네.’
이화영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던 중 우강원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나는 새벽에 운동을 하러 나가서 잠귀가 밝은 사람은 같이 생활하기 힘들지도 몰라.”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죄다 예민하고 잠귀가 밝은 사람들뿐이었다. 이화영은 까다로웠고, 백기량은 겁이 많았으며, 나는 신경질적이었으니까. 추가로 이단비는 눈만 붙이면 동생들이 자꾸 사고를 쳐서 잠귀가 많이 예민해졌다고 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형이 독방 써.”
어쩌다 보니 최연장자에게 독방이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 남은 백기량, 이화영, 나, 이단비였다. 이 최악의 사회성을 자랑하는 4인방끼리 둘씩 나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
입을 다물고 가만히 버티고 있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알아. 안다고. 너랑 같은 방 쓸 사람은 애초에 나밖에 없었다고.’
“한승범.”
새파란 눈을 살벌하게 뜨고 있는 이화영이었다.
그 눈빛을 꾸역꾸역 무시하고 있자 이단비와 백기량이 서로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나를 울망울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 * *
방 배정을 마친 후로 저녁 식사, 인터뷰 촬영까지 마치자 꽤 화려하게 차려입은 제작진 하나가 마이크를 수거해 가기 위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 눈치를 보더니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내게 말을 걸었다.
“승범 씨, 그거 디쿤이죠?”
“…예?”
‘디쿤?’
디쿤이라고 하면 유명한 패션 하우스로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가격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갑자기 브랜드 이름을 언급하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한 제작진은 계속해서 내게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알려 줬다.
“지금 승범 씨가 입고 있는 잠옷이요. 디쿤에서 나오는 잠옷인데 되게 구하기 힘들잖아요. 역시 승범 씨! 패션에 관심 많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부러워요. 저는 그거 못 구했거든요.”
잠옷에 패션이 어디 있나. 잠옷은 잠옷이다.
아무거나 있는 거 주워다가 입는 게 내 스타일인데 브랜드 잠옷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제작진의 말과 선물해 준 사람의 경제 관념이 교차되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 인간은 내게 시답잖은 장난을 치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 사람 아니던가.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선물받은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도 부러운 건 매한가지네요. 오늘 촬영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궁금했던 것을 해소한 제작진이 자리를 뜨자마자 나는 핸드폰으로 ‘디쿤 잠옷’을 검색했다. 그리고 검색 결과를 보자마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4,890,000원]‘X바알, 최적현 이 미친, 미친, 미친놈. 누가 500만 원 주고 잠옷을 사냐!’
…촬영한 거 다 폐기하면 안 되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