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멤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남자 동성 친구가 미의 여신이라고 하니 꽤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건 내 동료의 비즈니스를 넘어 그 위의 영역 아닌가.
“…….”
봐라, 이화영이 조용히 입가에 손을 올리고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이화영이 말이다.
재밌냐?
“흠.”
잠시 동안 그렇게 있던 놈은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너 인마 너, 안 웃은 척하지 마라. 쪼개는 거 다 봤다, 내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리다. 리다의 매력 발산,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저, 저도요.”
젠이 먼저 재빠르게 선수를 치자 도유다가 뒤늦게 더듬거리며 내게 맞장구를 쳤다. 젠은 진심인 것 같았고, 도유다는 그냥 젠이 내게 점수를 따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억지로 구라를 치는 것 같았다.
“…….”
우강원과 백기량은 사고라는 게 아예 날아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하긴, 저 두 순둥이가 그건 좀 별로인 것 같다고 말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연장자 두 명이 왜 이 모양인가.
“승범 형이라면 뭐든지 다 잘할 거예요. 저는 형 믿어요.”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단비마저 태클을 걸지 않으니 나는 이제 믿을 구석이 없어져 버렸다. 멤버들은 나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단비의 신뢰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맞나?’
나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대로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콘셉트가 아주 산으로 갈 것 같았다. 과몰입이 왜 과몰입이겠는가. 너무 과하게 몰입해서 선을 넘으니 과몰입이지. 우리 직원 여러분이 아주 열심인 건 고맙긴 했지만, 가끔 폭주 기관차처럼 날뛸 때는 어느 정도 막아 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 이런 식으로 가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는 것은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서유성에게 경멸당했던 경험이 있는 내가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쓰기에는 너무 과분한 말이긴 했지만, 과거의 실패는 때로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법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곤, 목을 가다듬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뭐든 해야 하면 하는 거죠. 하지만 그걸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부정적인 투로 말을 꺼내자 직원들은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지금 제안해 주신 내용은 신박하고 화제를 몰고 오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말씀 주셨던 ‘팬들에게 뽕을 채워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콘셉트’에서는 조금 벗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 그룹은 이미 충분한 인지도를 갖추고 있으니 그 부분에 관해서 무리수를 둬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이돌 시장에서는 워낙 새로운 그룹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신박하고 눈에 띄는, 남들이 해 보지 않은 콘셉트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가끔 이렇게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남자를 여신으로 만드는 결코 평범치 않은 시도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종류의 문화에 익숙한 편일 것이고, 그들은 결코 일반 대중을 대표할 수 없었다. 아무리 팬덤 위주로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게 뭔데 오타쿠야.’ 싶은 콘셉트는 좀 무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sns에서도 재미 위주로 언급되었던 의견들이니까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됐다.
아프로디테에 찬성하는 댓글들 뒤에 붙어 있었던 수많은 ‘ㅋㅋㅋㅋ’들을.
“팬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 분명한 기준을 정해 두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팬들끼리만 아는 밈을 일반 대중들도 이해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도 피하는 게 좋을 거고요.”
팬들끼리 놀자고 만든 밈에 공식이 탑승하기 시작하면 눈치도 없어 보이고, 날로 먹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줏대도 없어 보인다 이 말이다.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영역은 이 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이 회의 장면이 방송을 타고 나가면 진정한 콘셉트는 아프로디테라는 농담이 오가겠지만, 딱 그 정도가 좋았다.
그것을 짚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진 직원들이 다시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승범 씨는 가장 많이 지목됐던 제우스로 가야 할까요?”
“으음, 제우스는 그래도 수장이라는 점 외에는 승범 씨와 유사점을 찾을 수 없잖아요. …바람둥이에 난봉꾼 이미지가 너무 강하니까요.”
“그러면 결국 가장 승범 씨 이미지와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아폴론 콘셉트로 가야겠어요. 어쨌든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 안에서 고르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야겠네요. 아폴론은 아름다운 남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이야기가 미적지근하게 흘러가던 중, 안경을 쓴 직원이 헉하고 숨을 들이켜더니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헉. 금발에 그린 컬러 렌즈. 월계수 액세서리.”
“헉.”
“헉.”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 후,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그렇게 나는 아폴론 콘셉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게 맞나.
.
.
.
“다음은 연장자 라인인데요. 우강원 씨, 백기량 씨 두 분 다 포세이돈이 많이 언급됐어요.”
백기량은 대충 사슴이나 허수아비의 신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대뜸 포세이돈이라 하니 당황스러웠다. 머, 머리카락이 곱슬거리고 푸른빛을 띠기 때문에 그런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동자를 굴려 멤버들을 확인해 보니 놈들은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강원 형은 몸이 좋아서 포세이돈으로 많이들 언급해 주셨는데 피부 톤이 어두운 편이니 포세이돈보다는 다른 콘셉트가 맞지 않을까 싶어요.”
“포세이돈은 기량 형이 어울릴 것 같아요.”
“…기량 형?”
이단비의 말에 조용히 되묻자 멤버들은 저 인간 또 저러네, 하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처럼 캐릭터 해석하면 아무도 공감 못 할걸요. 기량 형보고 족제비 족제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형이랑 기량 형 팬분들밖에 없어요. 그리고 팬분들은 탁구공부터 태양까지 좋은 건 다 우리 닮았다고 해 주시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죠!”
어째서?
흔들리는 시선으로 스크린을 멀거니 보고 있자 보다 못했는지 도유다가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소리쳤다.
“세상에, 세상에 180 넘는 족제비가 어디 있어! 그리고 기량 형 그렇게 안 말랐다고요!”
“…….”
앙상하잖아.
뼈랑 가죽만 남아서… 걷는 게 고작이잖아.
“형은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하찮게 보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멤버들보고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요? 신인 그룹처럼 안 생겼대요. 우리 그룹 평균 신장 프리즘 선배님들 다음으로 큰 거 알고 계신 거 맞죠?”
아아, 오늘 내 세상이 무너졌다.
혹은 이 세상의 이치가 나를 배신한 것일 터였다.
세계의 종말에서 이화영은 저럴 줄 알았다는 듯 따분한 얼굴로 팔을 괴고 있었고, 우강원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으며, 백기량은 민망한 듯 새빨갛게 귀를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리다 표정 웃깁니다.”
젠은…….
젠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형, 제가 지금까지 죄송해서 말씀 못 드렸는데 형은 우리를 너무 아기처럼 보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단비의 사형 선고가 내려진 이후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방치한 채 회의를 이어 갔다.
“기량 씨는 포세이돈 콘셉트로 픽스하고 강원 씨는 아레스 어때요? 의상 팀이 디자인한 의상 보면 강원 씨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소품도 그렇고요.”
“저는 좋습니다.”
아니, 아직도 어린 티가 나는 놈들을 애 취급하는 게 뭐가 어때서 이러는 거냐. 아무리 리얼리티 프로그램 때문에 가끔 웃음을 줘야 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게 나를 몰아가는 것 아닌가.
‘애들이 프리즘보다 순하게 생긴 건 맞잖아. 내 잘못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프리즘 시절 봤던 댓글들이 떠올랐다.
– [프리즘 진짜 개에바임 실물봤는데 걍 조오오온ㄴ나 무서워 시커멓고 커다란 남자들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거기에 어떻게 말을 거냐고 ㅠㅠ 이치세는 그나마 낫다고 한 새끼 누구냐 진짜 눈알 제대로 닦고 다녀라 나 사진 찍어달라고 말도 못함]
– [몰랐냐? 프리즘은…… 멀리서 봤을 때…… 가장 아름답다…….] [서유태 스타일링이 안 과해보이는 데에는 본인 얼굴도 있었지만 프리즘 멤버들도 한몫함 진짜로 ㅋㅋ 프리즘 ㄹㅇ 아이돌계에 떨어진 폭탄같음]
그때는 강한 콘셉트 때문에 다들 일부러 장난식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천분의 일의 확률로 그것이 과장이 아닌 진심이었다면, 과연 프리즘과 내 얼굴에 익숙해진 나의 기준은 세상의 상식과 맞아떨어질까.
“리다, 귀여워 주십시오. 저는 좋습니다.”
드디어 맛탱이가 가 버린 내 기준을 깨달은 나는 아예 넋이 나간 채 젠이 냅다 내민 머리를 볼링공 닦듯 만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털과 비슷한 감촉의 그것을 어루만지며 안정감을 찾고 있으니 회의는 점점 무르익어 이화영의 콘셉트를 정하고 있었다.
“니콜라스 씨는 아폴론과 하데스가 많이 언급됐어요. 니콜라스 씨는 특히나 외형이 신화와 잘 어울리는 편이라 뮤비나 티저에서도 메인으로 많이 등장할 것 같으니 이 부분도 함께 고려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사 5살 애송이가… 하데스 콘셉트?’
나는 눈동자를 스르르 굴려 도유다의 옆에 서 있는 이화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화영의 앞으로 잭의 환상이 자꾸만 겹쳐 눈앞에 아른거렸다.
‘헛, 안 돼. 저건 발칙한 니콜라스 이화영이다.’
그리고 잠깐 스치듯 들린 이화영의 혀 차는 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미간 사이에 내 천 자를 새겼다. 내가 저놈을 잭잭과 겹쳐서 본다니 이런 통한의 실수를. 그 둘은 다른 인간이다.
내가 또다시 우주의 한가운데에 놓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자 도유다와 젠이 진지한 투로 말했다.
“이 형 저번에 단비한테 핑크 후드 티 입힐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상당히 맛이 가 버렸네.”
“강원 형이 니콜라스 형을 아기 취급하면 납득 가능합니다. 하지만 리다는 나뭇가지 같은 몸으로 벽돌을 나무라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놈들이 못 하는 말이 없었다.
너희도 나이 먹어 봐라.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놈들이 안 어려 보이나. 내가 저놈 코흘리개 시절에 쭈쭈바 사 주고 그랬던 사람이란 말이다. 남자 아프로디테에 보여 준 자비의 반절이라도 내게 보여 줄 수는 없었던 거냐.
할 말이 너무 많았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외로웠다.
‘유성아, 형이 이 코흘리개들 사이에서 이런 수모를 겪고 있다.’
‘어쩌라고’라며 서유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흩어질 즈음, 가만히 제공된 하데스 뮤비 의상 자료를 살펴보던 젠이 나지막이 말했다.
“옷이 야합니다.”
“…….”
젠의 말을 듣자마자 직원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리스 신화다 보니까 노출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판테이온 멤버분들께서 몸 관리를 열심히 하셔서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꺼림칙한 게 있는 모습에 나는 바로 자료를 내려다본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야. 뭐.’
야한 건 아니고 그냥 다른 신 콘셉트에 비해 꽤 노출이 많은 의상이었다. 기껏 해 봐야 상반신 앞판을 까는 것 정도라고 해야 할까. 현대의 시점에서 봐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재해석한다고 하더니 적당히 얇은 소재의 가운 정도로 타협한 듯했다.
양손을 겹쳐 제 가슴팍에 올린 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제 몸은 통나무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야한 옷 입어도 보여 줄 것 없습니다. 대신 19금 보디 미스터 리를 추천하다.”
“미쳤어?”
나는 이화영의 황당함 가득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활짝 미소 지은 후,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어 개판이 된 회의실을 가렸다.
그리고 가위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편집.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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