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4)
14화
“다음으로 1위 연습생을 발표하겠습니다.”
1회차가 방영되고, 그다음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된 일은 1차 순위 발표식 촬영이었다.
지루하고, 쓸데없이 긴 순위 발표식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마지막까지 이화영과 남아 있게 되었다.
이미 내가 눈도장을 찍어 뒀던 연습생들은 상위권 순위석에 앉아 있는 상태였고, 나는 전혀 긴장감을 가지지 않은 채 무대 아래 철제 의자에서 1위 호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연습생은 프로그램 출연 전부터 엄청난 숫자의 기사가 쏟아질 만큼 큰 화제성을 누린 연습생인데요. 화제성에 그치지 않고 등급 평가 무대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며 S등급에 당당히 오르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저 설명으로는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뒷자리에 앉은 연습생들이 수군거렸다. 내 말이 그 말이었다.
이화영에게도,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 전혀 단서로서의 의미는 가지지 못하는 멘트였다. 그냥 분량 때우기 용이겠지.
“…….”
‘짜식, 고고하기는.’
힐끔 살펴본 이화영은 등받이에 나른하게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 MC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송이 나가고, 이화영의 거만한 태도를 지적하는 악플도 많이 달린 모양이었지만, 놈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괜찮냐는 주변 연습생들의 물음에 놈은 정확히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천박한 말 안 들어.
녀석의 발언은 너튜브의 방송국 채널에 추가 공개되어 SNS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이화영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먹혀들어 벌써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빠와 까를 모두 미치게 하는 스타였다.
“1차 순위 발표식의 1위 연습생은, 한승범 연습생입니다!”
이화영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으아아아악! 1등! 당연하지!’
맹세코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결코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화영 분석이나 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리고 2위는 이화영 연습생입니다. 한승범 연습생과 이화영 연습생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내 인생에 패배는 없다. 특히나 이런 스타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손에 땀이 조금 나긴 했는데 날이 조금 더워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데뷔도 안 한 놈이 거만하게 굴면 재수 없기만 하니 기쁜 것처럼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얼굴이 조금 뜨거웠다. 제작진들이 히터를 열심히 틀어 준 것 같았다.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마에 손 한 번 올려 주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연습생들과 포옹을 나눴다. 그러자 이미 3위로 호명된 도유다가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박수를 쳤다. 어허.
“승범아, 축하해.”
6위 자리에 앉아 있는 우강원은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한승범 연습생은 처음 ‘수능남’, ‘조명남’이라는 별명으로 화제가 되어 뛰어난 미모로 주목받았는데요. 뛰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완벽한 실력과 리더십으로 77명의 연습생의 센터를 맡고, 연습생들을 잘 이끌어 주는 모습까지 보여 주어 ‘한대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내가 무대로 올라가는 동안 MC가 대본에 적힌 멘트를 줄줄이 읊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자 손에 마이크를 쥐여 줬다.
“영광의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 한승범 연습생,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제게 베팅해 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 화제가 된 이후로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매일 행복감에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쥐고 목을 가다듬은 나는 소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사 인사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제 실력을 믿고 센터를 맡겨 주신 우리 연습생 친구들에게도 고맙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노력에 대한 일종의 증명 같아서 너무 기뻤습니다.”
은근슬쩍 프릭의 실력 태클에 눈치 한 번 주고.
“앞으로도 정진하여 좋은 무대 보여 드리면서 제게 베팅해 주신 대중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차피 길게 이야기하면 편집되니 간결하게 끝냈다. 눈물도 좀 짜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나왔다.
“네,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이화영 군의 소감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요?”
“한승범 연습생과 함께 무대에 서 보고 싶습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화영이 마이크를 건네받고 대뜸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쟤는 또 뭔 개소리야.’
감사 인사 하라니까 진짜 자기 마음이나 얘기하고 있다. 약간 난처한 듯 웃은 양하준이 서둘러 수습했다.
“아하, 그렇군요! Survive IDOL의 최상위권 연습생 두 명인 만큼 정말 기대되는데요? 그리고 투표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없나요?”
“감사합니다. Love you all.”
“…….”
저딴 식으로 말해도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이다니, 놈의 국적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순위 발표식을 마친 후, 나머지 연습생들은 체육대회 같은 미니 이벤트를 촬영하러 강당에 이동하고, S등급 연습생들은 예정돼 었던 프로듀서 콜라보 무대를 하기 위해 방송국에 도착했다.
프로듀서 콜라보 무대는 공식 주제가 무대와 다르게 생방송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77명 같은 대인원이 아니었고, S등급 연습생들은 데뷔를 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있으니 내린 결정 같았다. 물론 속내에는 자사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겠다는 어른의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리허설을 마친 후 제이가 억지로 손에 쥐여 준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고 낮잠을 자고 있던 참이었다.
“일어나요, 승범 군.”
“…….”
어깨를 흔드는 제이의 손길에 눈을 떴다.
메인 트레이너인 제이와 짝을 지은 나는 또 마지막 순서였다.
‘네네, 나는 평생 마지막 순서입니다.’
아주 그냥 전생에서 연말 무대를 할 때도, 지금 프로그램을 할 때도 온통 마지막 순서뿐이었다. 이놈의 대기시간은 정말 익숙해지질 않았다.
원래는 이렇게 밖에서 깊게 잠드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연습이 힘들었는지 푹 잘 수 있었다. 차라리 대기시간 동안 잠이라도 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웍, 웩, 으에엑.”
정신이 들자마자 발견한 것은 첫 번째 순서로 무대를 마치고 긴장이 풀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도유다였다.
“무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상태가 메롱이냐. 그러게 내가 무대 올라가기 전에 간식 먹지 말랬잖아.”
짜게 식은 눈으로 놈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을 즈음 우강원이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어때, 괜찮아?”
“엉, 의상 잘 어울리네.”
수트를 입은 우강원을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우강원과 짝을 맺은 트레이너는 히트곡이 느와르 콘셉트의 곡이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우강원을 잡았다. 만약 도유다 같은 바보 똥강아지와 페어를 맺었다면 끔찍한 혼종이 태어났을 것이다.
“유다는 왜 저래?”
“긴장 풀려서.”
“무대 올라가기 직전인 너보다 이미 끝난 유다가 더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하하.”
점잖게 웃은 우강원이 소파 위를 기어 다니는 도유다를 집어다 어깨에 얹고 일어났다. 인간이라는 게 저렇게 들릴 수 있는 것이던가.
“나는 유다 좀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올게. 얼굴이 이 정도로 창백해지면 보통 곧 토하거든.”
“어어, 화이팅.”
내 떨떠름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려던 우강원이 문을 열다가 뒤를 돌아보고 내 몸에 손짓을 했다.
“너도 의상 멋지네. 잘 어울려.”
“고마워.”
우강원이 마저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거울을 흘긋 봤다.
제이 측의 코디네이터들이 준비해 둔 의상은 프리즘의 콘셉트에 포괄적으로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레더와 블랙 컬러를 중심으로 야생적인 콘셉트를 잡아 둔 의상을 입으니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느낌이 안 나네.’
한승범은 나와 다르게 길쭉하고 마른 모델 체형이었기 때문에 야생적인 느낌보다는 시크한 느낌이 났다.
“하아…….”
거울 앞에 서 작게 한숨을 쉬자 제이 놈이 후다닥 다가와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옛날 느낌 나려면 키가 한참은 더 커야지. 지금은 좀 애기다, 애기. 통 작은 거 봐라.”
제이의 몸과 비교해 보니 확실히 흉통이 작아 보였다. 싱긋 웃은 나는 놈에게 더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놈의 귀를 잡고 속삭였다.
“네 갈비뼈를 뜯어서 내 몸에 덧대기 전에 가만히 있어.”
“네, 형.”
살기 어린 경고를 들은 패배자가 소파에 가서 찌그러졌다. 입으로 일부러 흑흑 소리를 내는 걸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다.
“제이 님, 한승범 님 스탠바이 해 주세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쇼를 하던 놈은 벌떡 일어나 발랄하게 걸어갔다.
‘왜 저래.’
묘하게 신이 나 보여 기분이 묘했다. 한두 번 무대에 올라 본 것도 아니면서 너무 들뜬 것 같았다.
* * *
무대에 올라 연습했던 대로 제이의 뒤에 섰다. 그러자 놈이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나를 앞으로 밀고, 옆으로 와서 섰다. 연습했던 대형과 완전히 달랐다.
‘얘 오늘 진짜 왜 이래?’
“…잠깐.”
서둘러 연습했던 것과 다른 스타팅 포즈를 바로잡기 위해 손을 들려 했다.
그 순간 제이가 내 손을 낚아채 움직이지 못하게 꽉 눌러 내렸다. 제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제작진이 다시 알았다는 손짓을 했다.
‘이런 미친, 뭐 하는 거야!’
제이를 휙 돌아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이는 당황한 기색의 나를 보면서도 평온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사이,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MR을 듣자마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반주가 아니야.’
우리가 내내 연습했던 것이 아닌 다른 타이틀곡의 MR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 대형 사고였다. 하지만 이미 생방송은 돌아가고 있었고, 어느 스태프에게도 당황하는 낌새가 없었다. 무대는 이대로 속행될 것이다.
‘어째서? 분명 리허설도 제대로 했고, 마지막 확인은 제이가 똑똑히 했다고…….’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대형은 제이와 내가 둘이서 연말 무대로 준비했던 특별 무대와 완전히 일치했다. 노래도 그 곡이 맞았다.
‘만약 잘못 선 게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감각이었다.
오그라든 살갗을 애써 무시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왠지 제이의 얼굴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서서히 움직이는 시야와 함께 제이가 보였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나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방송 따위는 뒷전인 것처럼.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직감했다.
이건 놈이 꾸민 일이었다. 내가 진짜 서유태가 맞는지 무대에서 확인하기 위해.
‘젠장, 어쩐지 일이 쉽게 돌아간다 했어.’
애초에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 따윈 제대로 믿지도 않았으면서 실실 웃으며 줄곧 장단을 맞춰 왔던 것이다. 줄곧 오늘만을 기다리면서.
내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제 눈으로 확인하지도 못한 놈이 하는 말 따윈 필요 없으니까.
‘이런 미친 새끼!’
MR이 흐르고,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서둘러 마이크를 들고 원래 내가 담당했던 파트를 문제없이 커버했다. 생방송 사고를 낼 수는 없으니까. 그러자 놈의 입술이 소름 끼치는 호선을 그렸다.
입 모양이 말했다.
“진짜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