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했는데. 이게 무슨 의미지?”
최적현 입 다물어.
애한테 이상한 언질 주지 말란 말이다.
“…물건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거지, 뭐.”
이를 악물고 최적현이 한 말을 수습하려 들자, 가뜩이나 각이 살아 있는 눈썹 한쪽이 비뚤게 위로 치솟더니 한심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한국말 몰라?”
‘내가 하다 하다 영국 도련님한테 한국말 모르냐는 소리나 듣고 있네.’
이화영의 말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적현이 너무 티를 많이 내 버려서 이미 모르는 척을 하는 건 그른 것 같았다. 이래서 최적현에게 내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건데, 정말 예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지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태세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네가 있는 팀의 리더잖냐. 조카가 너무 걱정됐는지 그냥 팀의 리더인 나한테 가끔 너 잘 지내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냥 그 정도의 연락이야.”
“그 사람은 남 걱정 안 해.”
“…….”
해라, 좀. 제발 사람 새끼의 삶을 살아라.
챙겨 주는 조카라곤 이화영밖에 없는데 그 이화영에게마저 저런 소리를 듣는 걸 보니 최적현도 참 인생 잘못 살고 있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남의 걱정 안 받아. 필요 없거든.”
이 조카 놈도 싹수가 벌써부터 비범한 걸 보니 제 삼촌처럼 비정상적인 어른이 될 게 벌써부터 눈에 훤히 보였지만. 하여튼 간에 저놈의 집안은 뭔가 유전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 미치겠네.’
하는 구라마다 족족 다 막히니 이제 또 뭐라고 지껄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화영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기세를 몰아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거짓말도 성의가 있어야 믿지. 네가 이단비를 그렇게 자신 있게 안심시킬 수 있었던 건 지금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 아닌가?”
“…….”
정말 논리적이고 타당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 사실은 내가 너를 돌봐 줬던 유태 삼촌이야’라고는 밝힐 수는 없었거니와 뭔가 다른 관계가 있다는 거짓말 또한 할 수는 없었던 나는 결국 어떤 행동을 하기로 했다.
“몰라, 몰라. 아무리 그렇게 떠들어대도 안 들려.”
‘모르쇠. 무지개 방패.’
바로 못 들은 척하기였다.
나는 아주 상쾌한 표정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아 버렸다.
지가 의심하면 뭐 어쩔 건가. 상대를 안 해 주는데.
“…웃기지 마, 한승범!”
내 태도에 잔뜩 화가 난 이화영이 노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가 귀를 막은 손을 넘어 들렸지만, 나는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맑은 얼굴로 이화영을 올려다봤다.
“다 듣고 있는 거 알아!”
모른다.
우리 잭잭은 저런 말 안 한다. 삼촌을 곤란하게 만드는 말을 하는 저런 큼직한 놈은 우리 잭잭이 아니다.
“하하하.”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린 이화영에게 요구르트를 줄까 말까 놀렸을 때와 비슷하게 나잇값을 못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놈들에게 지금 내 행동이 알려지면 매우 수치스럽겠지만, 여기는 판테이온 숙소였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없었다.
갸웃?
도유다를 따라 하며 고개를 기울인 나는 약간 스스로도 열받을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눈빛으로 이화영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렇게 백날 버티고 있어 봐라. 내가 말해 주나.’
“…….”
그러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이화영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자리를 떠 버렸다. 나는 잔뜩 골이 난 뒷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겼다.’
나 서유태.
서른을 넘긴 나이이지만 띠동갑을 넘은 놈을 상대할 때도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의심 스탬프가 한 개 적립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나 아무튼 그렇다. 그렇게 혼자 의미 없는 승리의 기쁨에 빠져 있을 즈음, 나를 지켜보고 있던 도유다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형, 그렇게 니콜라스 형 놀리다가 진짜 화내면 어떡하려고요.”
“쟤는 원래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반절 정도는 항상 화내고 있잖아. 그리고 방금도 진짜 화낸 거야.”
그에 아주 평온한 투로 대답하자 도유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요란을 떨었다.
“정말 니콜라스 형을 그렇게 대하는 건 형밖에 없다고요! 저 형이 그럴 때마다 심장 떨려서 죽겠어요.”
“너는 키우던 집 고양이가 할퀸다고 겁먹냐?”
“저 형 또 저러네…….”
도유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질린다는 듯 시커멓게 죽은 눈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급기야 아예 자리를 떠 버리기까지 했다.
나는 널찍한 거실에 혼자 남아 조용히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새도 없이, 아침 운동을 마친 우강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제 슬슬 연습을 하러 나갈 시간이었다.
* * *
그 후로 우리는 자컨 촬영부터 무대 연습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뮤비 촬영까지 마친 지금은 슬슬 예능 프로그램 스케줄을 소화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정말 데뷔하기 전부터 이렇게 스케줄을 나갈 줄은 몰랐어요. 저는 데뷔 준비하는 동안에는 진짜 연습만 할 줄 알았는데.”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차량 속에서 도유다가 말하자 옆에 있던 백기량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아무래도 음원이 공개되기 전부터 프로그램에 출연하러 다니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뭐든지 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니까. 활동 시기에 맞춰서 방송을 내보내려면 녹화는 그것보다 더 일찍 진행해야 해.”
방송은 거의 앨범 홍보와 인지도 상승을 위해 나가는 것인데 활동이 다 끝난 후에야 느적느적 방송을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제작진들이 하루 만에 뚝딱 편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대부분의 촬영은 방영되는 날보다 훨씬 일찍 진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방송 스케줄이 일찍부터 많은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 방송국 방송 점수 때문에 앞으로 방송 출연 많아질 거예요.
바로 음악 방송의 적폐, 방송 점수를 받기 위함이었다.
“오늘 가는 스케줄은 ABS 방송국 예능이에요. 여기 방송 점수 비율 진짜 크죠.”
“…….”
방송 점수는 음악 방송에서 자사 프로그램 출연 횟수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항목으로 최근 음악 방송의 순위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방송 점수 비율이 높은 방송사의 경우 음원과 음반 점수가 월등히 높다고 하더라도 자사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1위 자리를 빼앗기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1위 자리를 노리는 그룹이라면 강제적으로 방송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도 나름 입장이 있긴 하겠지만, 날이 갈수록 노골적이군.’
사람들이 더 많이 듣고, 좋아하는 노래가 뻔히 있더라도 방송국에 도움이 되는 가수를 우선하여 순위를 결정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방 1위’라는 타이틀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방송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연예인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연예인들이 그 시스템에 따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도 오늘 출연하는 곳은 ABS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이잖아.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나는 우강원의 희망 사항에 대답하지 않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팬들이 그 프로그램을 좋아할 리가. 좋아하는 건 일반 시청자뿐이지.’
오늘 우리가 출연하게 될 프로그램은 ‘에이전트 워’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은 ABS의 방송 중에서는 꽤 잘 나오는 편이었지만, 팬들은 프로그램의 인지도와 상관없이 내 아이돌이 거기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질색하곤 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에이전트 워’인 만큼 방송의 주된 내용은 고정 출연진과 게스트들이 요원 콘셉트에 맞춰 승부를 겨루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들어 보면 멀쩡한 프로그램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나 주로 문제가 되는 건 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 하나인 ‘요원이여, 평정심을 유지하라’라는 코너였다.
그 코너는 심박계를 착용한 후, 각자 정해진 개수의 탄환, 소위 ‘속 시원한’ 질문을 던지며 서로를 공격하고 먼저 심박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쪽이 패배하는 코너로 으레 하는 진실 게임과 내용이 꽤 비슷했다.
– 남자 친구가 스트레스 많이 받게 해요? 왜 이렇게 성격이 괴팍해졌지?
– 연기 못하는데 드라마는 왜 자꾸 찍어요?
– 차인 거예요, 찬 거예요? 그거만 말해 보세요.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패널들의 질문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여자 연예인에게는 담배 드립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아이돌 그룹한테는 연애 이야기를 캐내려고 물고 늘어지는 데다가 말실수를 유도하려고 별짓을 다 하는데 팬들이 좋아할 리가.’
온갖 말실수로 논란을 끌고 다니며 대중의 질타 따위는 가렵지도 않은 출연진들만 싸그리 모아 놓은 그곳에는 솔직함으로 둔갑한 무례가 만연했다.
정말 의아했지만, 대중들은 ‘솔직히 다들 궁금하긴 했잖아’, ‘프로그램 컨셉인데 그냥 봐라’, ‘재미있으면 됐지’, ‘불편하면 보지 마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해당 방송을 소비했고, 그렇게 ‘에이전트 워’는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가끔씩 고정 출연진보다 기가 센 게스트가 나오면 상황이 역전되는 재미가 있긴 했다. 예를 들면 프리즘 같은 놈들 말이다.
– 치세 요원은 래퍼 수익이랑 프리즘 수입이랑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짭짤합니까? 둘 중 하나만 골라서 열심히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 어느 쪽이든 그쪽 수입의 몇십 배는 버는데 그게 왜 궁금해요?
하지만 신인이나 성격이 여린 연예인들이 프리즘처럼 대응하는 건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웠다. 따라서 웬만큼 입담이나 멘탈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못했다.
‘우리 소속사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겠지. 방송 점수도 있었고 방송국이나 패널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니까. 시청률이나 너튜브 조회 수가 최근 예능 프로에 비해 월등하게 잘 나오는 만큼 홍보가 잘 된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했을 거고.’
다 어른의 사정이 있다, 이 말이다.
처음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난감해하던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즈음, 차량이 멈춰 섰다.
벌써 방송국에 도착한 것이다.
“으으, 배가 슬슬 아파요.”
“유다야, 괜찮아? 화장실 다녀올래?”
“그 배가 아니라 긴장돼서 장이 꼬이는 것 같아요. 다 선배님들이잖아요”
차에서 내려 방송국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도유다가 배를 어루만지며 끙끙거리는 소리와 우강원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쥐고 있던 핫팩을 도유다에게 건네며 말했다.
“계급장 떼고 붙는 게 콘셉트니까 긴장하지 말고 콘셉트에 충실하면 돼.”
“제 마음은 그렇게 버튼 누르듯이 안 되거든요! 그게 될 정도의 멘탈이었으면 애초에 배 아프지도 않았어요!”
그건 그렇네.
유감이다. 네 나약함을 탓해라.
“유짱, 나약한 장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감.”
내 생각을 그대로 꺼낸 것 같은 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내 등에 머리를 처박고 따라오던 백기량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말했다.
“유다야, 내 매실물 마실래? 마시면 좀 상태가 나아질 거야. 나 이거 마셨더니 꽤 좋아졌어.”
나는 백기량을 조용히 응시하다가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어쩐지 오늘 애 상태가 좀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같이 배앓이를 하고 있어야 하는 놈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치대고 말을 멀쩡하게 하는지 의문이었다. 매실물에 청심환이라도 탄 건가?
“네, 마실래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백기량의 텀블러를 받아 들고 뚜껑을 연 도유다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형, 이거 술인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