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이단비의 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대기실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멤버들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경연 대기실이 아닌 다른 대기실은 이곳이 처음이었던지라 다들 평소보다는 조금 더 산만한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우윽, 우, 흐흑, 그만 먹고 싶어…….”
“계속 드십시오. 고작 이 정도의 양으로 나약하게 포기하는 것. 이 나기 젠이 용서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미나리를 씹고 있는 백기량과 전담 헬스 트레이너처럼 붙어 계속 미나리를 쥐여 주는 나기 젠이었다.
“재수 없는 사람 디스, 이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술 취해서 넘어지는 것, 용납 못 합니다. 빨리 정신 차리시오, 밤비.”
“써……. 질겨…….”
아무래도 쉬는 시간이 끝난 후 이어질 2부 촬영에서 몸을 써야 하다 보니 젠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백기량이 부상을 입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정신 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냥 막 먹이고 있네.’
단군신화도 아니고 무슨 미나리를 저렇게 무식하게 씹어 먹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익히기는 했고, 저것이 해독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냥 약국에서 약 사다 먹여. 가뜩이나 위 작은 사람인데.”
“미리나가 좋습니다. 그런 외국 말이 가득한 수상한 약품, 밤비에게 먹일 수는 없습니다.”
“…….”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풀떼기를 먹일 바에야 약을 먹여라. 너는 도대체 현대 의학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심지어 그 외국 말은 밤비의 모국어란 말이다.
‘판테이온으로 살아남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도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나는 그냥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때로는 바보가 되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도유다를 통해 배웠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옆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도유다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이 웬일로 꽉 차 있지 않기에 조신하게 도시락 하나만 먹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도시락 아래에 빈 도시락 통을 겹쳐 끼워 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4개째였다.
“…….”
내가 도시락 개수를 봤다는 것을 눈치챈 도유다가 뭔가 잘못한 강아지처럼 눈을 사선으로 뜨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대기실에 배치된 과자들을 정복한 흔적들을 숨기고 싶었는지 몸을 슬쩍 옆으로 움직였다.
“…먹을 거면 당당하게 먹어라.”
“…녱.”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눈치를 보는 모습이 웃겨 웃음을 참으며 말하자 도유다는 민망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짧게 대답했다.
‘저렇게 먹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지.
성장기에만 저럴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있자 어느 샌가 향긋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향이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니 영국인답지 않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이화영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면만큼은 최적현이랑 닮은 구석이 없네.’
최적현은 이상할 정도로 최신식의 기기만을 사용하며 물건에 애착이라곤 전혀 가지지 못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 조카인 이화영은 메모조차도 평소 들고 다니는 수첩과 만년필을 사용하고, 남들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다는 핸드폰을 하루에 10분 미만으로 붙잡고 있는 아날로그 인간인 게 참 신기했다.
간간이 목격되는 폰도 없고, 태블릿도 없고, 노트북도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서 커피만 마시며 사이코패스 취급을 당하는 인간들이란 이화영 같은 놈들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완전히 마이페이스인 이화영을 보며 헛웃음을 뱉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여러분, 커피 드세요.”
커피가 들어 있는 4구 캐리어를 양손에 몇 개씩이나 든 우강원이었다.
스태프들에게 커피를 쭉 나눠 준 녀석은 내게 다가와 허리를 굽히더니 작게 물었다.
“선배님들 대기실에도 드리고 왔어. 괜찮지?”
“어, 굿.”
괜찮기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나이스 서포트였다.
원래 한국인은 정말 이상하게도 뭐 좀 얻어먹었으면 잘해 줘야 한다, 먹을 거 사 주는 놈 좋은 놈 같은 기본 마인드가 있어서 이렇게 적당히 챙겨 주면 꽤 도움이 된다.
엄치를 척 들어 앞으로 보이자 우강원은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내 앞으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싶어 멀뚱멀뚱 보고 있기만 하니 녀석은 나를 향해 ‘너 먹어’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
기어코 손에 쥐여 준 그 흰 상자에서는 단내가 났다.
‘나한테 왜 이걸…….’
그런 의문에 우강원을 올려다보자 우강원은 그저 내 머리를 툭툭 만지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곧바로 이단비에게도 가서 똑같은 것을 건넸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우강원이 왜 이것을 나에게도 건네 준 것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아아.’
우강원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희롱의 비난과 날 선 분위기에 유난히 많이, 그리고 적나라하게 노출된 이단비와 내가 상처를 받았을까 봐.
“…….”
나는 단지 조금 피곤할 뿐이고 아무 이상도 없었는데 굳이 이렇게 나를 챙기려 드는 게 참 우강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파에 가 앉았다.
그리고 포장을 열고 갈색 케이크를 작게 떠 입에 넣었다.
원래대로라면 입에 대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와, 저 형 이런 간식 먹는 거 처음 봐요. 대박!”
우강원이 테이블에 올려 둔 다른 케이크를 접시에 덜어 들고 온 도유다가 내가 간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짐짓 놀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나는 그것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도유다는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던 듯 내 옆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혀 닦고 다시 하는 겁니다. 미리나. 알겠습니까, 밤비.”
“알았어…….”
“젠 형, 기량 형 괴롭히지 마세요.”
“얘들아,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잘 먹겠습니다앙.”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멤버들도 내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우강원이 사 온 것들을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주변의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에 이끌려 다시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우강원이 내게 건넨 케이크는 테이블에 놓인 것보다 달지 않은 카푸치노 케이크였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을 고려하여 굳이 이것을 골라온 것인가 싶어 조금 웃음이 나왔다.
‘…달아.’
그래도 이런 것은 원래 생에서도 지금의 생에서도 거의 먹어 보지 않았기에, 익숙하지 않은 단맛에 혀가 아렸다. 그 단맛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자 무언가 툭,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아까 맡았던 커피 향이 느껴졌다.
“…….”
고개를 들어 보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화영이 보였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자 따뜻한 커피가 앞에 놓여 있었다.
“나 마시라고?”
그 커피를 손에 들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이화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맞추지도 않은 채 흥, 하고 퉁명스러운 소리를 냈다.
“잘 마실게.”
“…….”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니 이화영은 또다시 아무 대답 없이 몸을 휙 돌려 아까까지 앉아 있었던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부끄러워하기는.’
까칠한 이화영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던 사이, 도유다가 말을 꺼냈다.
“우리 2부에서는 엄청 뛰어 다녀야 하죠? 저 예습하고 왔는데 거의 술래잡기 같은 느낌이던데요. 잉.”
“우리 복장 구두에 정장인데 이대로 뛰어다니는 걸까. 다칠 수도 있을 텐데.”
“콘셉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요원들이 실제로 전투에 나서는 게 2부라고 들었어요.”
멤버들이 말한 것처럼 1부는 정보전을 빙자한 토크쇼에 가까웠다면, 2부는 직접 몸으로 뛰며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에 가까웠다. 1부보다 훨씬 더 건전한 내용에 들떴는지 멤버들은 상기된 얼굴로 본인의 운동 능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저 뛰는 거 자신 있어요! 운동회에서 항상 1등 했다고요! 짱이죠?”
“저는 자신 없어요. 운동을 그렇게까지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나도…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만 쳐서 체육은 좀…….”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대강 우리 그룹 멤버들은 백기량, 이화영, 나, 이단비까지 두뇌파로 분류되고, 우강원과 도유다가 육체파로 분류되는 것 같았다.
“적에게 천벌을 주다. 나기 젠 징벌 모드 ON.”
젠은… 그냥 젠이다.
이제 젠의 헛소리에 익숙해졌는지 우강원이 그 어떤 동요도 없이 ‘그래, 우리 같이 파이팅하자’ 하고 말을 받아 주더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갔다.
“그러고 보니 승범이 체력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아. 요즘은 예전처럼 어지러워하지도 않고, 쓰러지거나 코피 흘리는 일도 없잖아. 아니었다면 오늘처럼 몸 쓰는 촬영에서 걱정됐을 텐데 정말 다행이야.”
“…그런가?”
일에 미쳐서인지, 지극히 건강했던 내 원래 몸에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최근 상태가 상당히 많아 좋아졌던 것 같기도 하다. 전에는 한승범의 몸에 뭔가 선천적인 병이 있는 것인지, 빙의의 과정에서 뭔가 타격이 있었던 것인지 고민할 정도로 허악한 몸이었는데 최근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에는 정말 말랐었는데 최근에는 몸에 근육도 좀 붙는 것 같아.”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나뭇가지 같은 몸 분발하지 않으면.”
우강원의 말에 젠이 대신 대꾸하는 것을 흘려들으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이상해. 운동하는 시간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상태가 좋아진 거지?’
전에는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더니 너무 단기간에 회복된 게 의심스러웠다. 한승범의 특별한 능력들과 관련하여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과민 반응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시계를 확인한 매니저가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외쳤다.
“이제 2부 녹화하러 이동할게요!”
그 말에 따라 자리에 일어나면서도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 * *
“…상대 팀의 ‘탑 시크릿’을 알아내는 것에 성공하거나, 상대 팀의 요원 전원을 인질로 포획하는 팀이 승리하게 됩니다.”
모든 출연진이 모이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메인 진행자는 우리에게 게임의 룰을 설명해 주었다.
메인 진행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각 팀에게는 상대 팀에게 알려지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되는 ‘탑 시크릿’이 있고, 여러 미션을 수행하고 단서를 모음으로써 상대 팀의 ‘탑 시크릿’을 추리해 내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10분 간격으로 공수가 전환될 때 상대 팀 요원 전원을 인질로 포획하는 것도 이기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지만, 같은 팀 멤버들이 수시로 인질을 해방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얘네 바로 옆에서 보니까 왜 이렇게 커.”
“평균 신장이 몇이야?”
룰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 멤버들을 흘끔흘끔 보던 패널들이 슬슬 빌드 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들이 걸고넘어진 것은 우강원이었다.
“우강원 요원은 운동 선수였는데 뭐 모래주머니 하나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다. 출발을 느리게 해 주세요. 그래야 좀 공평할 것 같아. 저 친구 몸 좀 봐.”
그냥 간단하게 그들의 요구를 정리하자면 ‘쫄리니까 패널티 줘서 우리랑 비슷하게 만들어라’였다.
쓸데없이 트집을 잡는 졸렬함에 진절머리가 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우강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던 우강원은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저렇게 열심히 궁리한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지, 승범아?”
“…….”
“다들 귀여우셔라.”
아, 우강원 미친 폭주 모드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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