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시험 삼아 또다시 두어 번 능력을 사용해 봤지만, 이번에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정된 사람들 외에는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는 최적현이나 애초에 말수가 적은 서유성 같은 놈을 일부러 제외하고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치세나 뒤지면 주둥이만 둥둥 뜰 강혁우에게 능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 머리야.’
아니 미친, 그 꼴랑 하나 있는 능력까지 뺏어 가면 뭐 어쩌자는 거냐.
나 아직 서유성 목소리도 못 들어 봤는데.
‘그 자식도, 말을 안 해도 너무 안 하는 거 아냐?’
이제는 슬슬 서유성까지 야속할 정도였다.
원래 말수가 적은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프리즘 멤버들이 모여 있을 때도 서유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말이다.
– 형, 유성이가 내 말에 대답 안 해 줘!
– 뭔 소리야, 내 말에는 대답 잘하는데.
– 그건 형이니까 그렇지!
이치세가 나한테 그렇게 찡얼거릴 때는 그냥 무시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아… 원래 내 얼굴 인쇄해서 얼굴에 붙이고 갈 수도 없고, 참…….’
프리즘 멤버들이 내 정체를 아는 게 내게는 도움이 될 테지만, 프리즘 멤버들에게는 또 어떨 지 몰라 섣불리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게 참 답답했다.
일단 이 말도 안 되는 빙의를 프리즘 멤버들이 납득해 줄지도 의문이었고, 아주 희박한 가능성으로 지금 나의 존재를 받아들여 준다고 하더라도 ‘아, 나 돌아왔는데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원래 몸 주인이 당장 내일 돌아올지도 몰라서.’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영원히 다시 함께할 수 있다’라며 구라를 칠 수도 없었고. 원래 안 주는 것보다 줬다 뺏는 게 더 악질인 법이다.
‘제이도 분명 내가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 길길이 날뛸 텐데.’
제이에게는 어째서인지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들어 정체를 밝혔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후회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제이가 울고 있어서 그랬나?’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중 도유다가 날 부르는 소리가 유리창 너머로 들렸다.
“형, 밥 먹어요!”
* * *
프리즘 때보다 이상할 정도로 많이 보내진 한우 세트로 멤버들과 함께 한바탕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나는 매니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 잠깐 대화 좀 하시죠. 오늘 촬영 관련해서요.”
그러자 매니저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척 고개를 처박고 후식을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강원이 매니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다가 나를 달래듯 불렀다.
“승범아…….”
“잠깐이면 됩니다.”
드디어 멤버들을 피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는데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아주 큰 착각이었다. 나는 오늘 일에 대해 확실히 확인을 할 생각이었다.
내 단호한 말에 매니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무얼 말하기 위해 지금 매니저님께 대화를 요청한 건지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평소보다 수위 약하게 진행될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신인 ‘주제에’ 회사가 잡아 오는 스케줄에 이건 안 되고 저건 되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갑질 연예인 되고 싶지 않아서 웬만해서는 두고 보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정확히 짚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출연에 굳이 말을 얹지 않았던 건데, 말씀하셨던 것과 다르던데요. 오히려 과했으면 과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작진 측에서도 박승우 씨가 그렇게까지 행동할 거라고는 예상 못 하셨다고……. 다른 패널들은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평소보다 되게 부드러웠잖아요. 아마 제작진들은 제대로 안내를 했을 거예요.”
요컨대 회사 측과 제작진 측은 적당한 수위로 조절하기로 합의를 했는데, RH 엔터테인먼트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던 박승우가 돌발적으로 무리수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에라도 제지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정 연예인만 편의 봐준다는 이야기가 돌면 안 돼서 현장에서는 제지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패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전달한 사항이었는데 박승우 씨가 그걸 어겨 버린 거니까요……. 에이전트 워가 최근에 방통위에서 경고를 받았던 것도 있고 저희 소속사랑 약속했던 걸 어긴 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아마 이상하게 편집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 패널은 제작진의 신뢰를 잃어서 앞으로 그 프로그램에 멀쩡하게 출연하기는 어려울 거고요.”
“그리고 POX 엔터테인먼트는 제 신뢰를 잃었군요.”
길게 이어진 변명들을 짧은 말로 잘라 내니 분주하게 움직이던 입이 멈추었다. 그리고 울상으로 변해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얼굴이 꼭 상사에게 쿠사리를 먹은 신입 사원의 얼굴 같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딱 봐도 사회 초년생인 것 같았고, 어쨌든 매니저에게 이번 일에 대한 결정권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직원들 등 터지는 꼴 보기 싫어서 입 처닫고 있었던 건데.’
– 대표님께서 방송 점수도 받아야 하니 그냥 내보내라고 하셔서……. 거기 PD님이 대표님이랑 술친구인데 대표님께서 의리에 민감하신 분이라 저희가 아무리 말을 해도 꿈쩍도 안 하셔요. 죄송해요. 대신 아주 가벼운 수위로 진행하겠다는 약속은 받았다고 하셨어요.
에이전트 워 프로그램의 출연이 결정 났을 때, 직원들이 내 눈치를 보며 한 말은 그것이었다.
– 대머리 새끼…….
나는 언젠가 회사의 여자 화장실을 지나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그런 욕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한승범의 청각이 남들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에 들렸던 것이겠지.
그리고 다시 화장실에서 나올 즈음에는 눈가가 빨갛게 변한 채 손수건과 안경을 손에 들고 나오는 직원과 마주쳤다. 콘셉트 회의를 이끌었던 그 직원이었다. 우리 회사에 대머리 새끼들이라고는 서로 부자 관계인 대표와 이사밖에 없는데 그걸 영혼을 갈아 일하고 있는 실무진이 욕한다. 이건 조금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었다.
‘A&R 팀과 다른 직원들이나 임원진은 또 다르다 이말이지…….’
고작 하나 나온 윗대가리가 대놓고 회의를 쨀 때부터 살짝 X같다고 생각하긴 했다.
무능한 윗놈들은 차라리 자리라도 피해 주는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렇게 회의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자리를 처나가는 것도 영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모든 면에서 개같은 회사는 있지만, 모든 면에서 훌륭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가 괜찮으면 반드시 하나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회사는 A&R 팀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곳인 것 같았다.
나는 끝없이 침울해지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매니저를 보며 한숨을 쉰 후 물었다.
“대표님 출근은 하십니까?”
“그게…….”
“안 한다는 거고.”
“직원들 이야기는 잘 들어 주시는 편입니까?”
“음…….”
“불통이라는 거고.”
“그, 그 정도까지는.”
“연락은요.”
“…….”
‘잘해 준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하네.’
직장인이 저렇게 굴면 그냥 다 알려 준 거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알아들어야 했다.
‘XX, 직장인 잔혹사야, 뭐야?’
아무래도 이 회사의 대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방해하는 타입이 아니라 코빼기도 안 나타나다가 본인이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슬쩍 나타나서 일을 다 망쳐 놓고 ‘아니, 이것도 못 해 줘? 내가 뭐 많은 거 바랐나?’, ‘나 귀찮게 좀 하지 말고 알아서들 좀 해.’ 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말도 안 듣고, 출근도 안 하고. 이걸 뭐 어떻게 하냐?’
마음만 같아서는 안 된다고 제대로 설득하고 거절하라고 하고 싶은데 이, 똥 싸지른 범인이 출근도 안 하고 연락도 잘 안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집 앞까지 쫓아가서 기다려야 하나?
‘차라리 직원들도 별로였으면 등 터지든 말든 깡그리 잡아서 족칠 텐데.’
내가 아이돌은 오래 해 봤는데 회사 생활은 안 해 봐서 모르지만, 아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 다들 퇴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만 그것은 직원들의 입장일 뿐이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이쪽에서는 지금 상황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스케줄 조정과 대표를 상대하는 짓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짜증을 갈무리하고 매니저를 향해 차분히 말했다.
“방송 수위를 낮추겠다는 직원분들의 말을 믿고, 직원분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따랐던 것인데 어쨌든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상 아무 조치 없이 방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직원분들께서 말씀드리기 어렵다면 그냥 제가 말하겠습니다. 앞으로 스케줄 관련하여 제가 의견을 드리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해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네, 전달드리겠습니다.”
내 권한을 넘어서는 범위까지 나서서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껏 참고 있었더니 그냥 회사의 결정 사항에 개입할 명분이 제대로 생겨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아마 일반적인 신인 아이돌이었다면 끽소리 하나 하지 못하고 그냥 참고만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고생을 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것에 나름 의미는 있었던 모양이다.
‘이걸 이렇게 실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이해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도 팬분들께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드린 말씀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요. 이해합니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 매니저를 확인한 후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워 문을 열자 매니저가 걱정됐는지 설거지를 하던 우강원이 근처에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별말 안 했어.”
“…정말?”
왜 안 믿어 줘?
.
.
.
뮤비 티저 공개, 음원 작업, 예능 촬영 등등 데뷔를 위한 준비를 마친 후, 이제 곧 데뷔 쇼케이스와 음원, 뮤비 공개가 이루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멤버들을 소집해 마지막 당부를 하기로 했다.
“데뷔 전에 꼭 해 둬야 할 말들이 있어서 불렀어.”
팔짱을 낀 채 멤버들의 앞에 선 내가 살벌하게 벌어진 눈으로 가장 먼저 입에 담은 것은 이것이었다.
“연애질 하면 가만 안 둔다.”
“예…….”
“응…….”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냅다 혼난 멤버들이 혈색을 단번에 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을 확인하고 만족한 나는 다음 말을 꺼냈다.
“사람 쉽게 믿지 말고. 곁에 도와줄 수 있는 보호자가 없는 멤버들은 계약 같은 건 웬만해서는 나를 거쳐. 특히 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저 어른입니다.”
“파하학.”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도유다가 폭소를 흘렸다.
젠이 도유다의 정수리를 손으로 움켜쥘 즈음, 나는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미성년자들 술 담배 하다가 걸리면 죽는다.”
“당연하죠! 저희를 뭐로 보고요!”
“억울하다.”
“저희가 정말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 형식상 한 말이야.”
두 놈은 너무 유치 뽕짝하고 한 놈은 너무 똑부러져서 딱히 걱정은 안 됐다.
성인인 멤버들에게도 흡연은 연관 검색어에 오르고 파파라치 사진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니 잘 고민해 보라는 말을 경험 담긴 당부를 할까 생각도 해 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다치지 않게 다들 조심해.”
“에이, 형이 가장 조심하셔야죠.”
“뭔 소리야? 나는 절대 안 다치지.”
“어어? 저거 하면 안 되는 말 아냐?”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는 멤버들을 두고 작게 미소 짓던 나는 이단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이단비.”
“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대로 한다.’ 알지?”
이단비는 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