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한국에 서유태 같은 연예인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형을 처음 만났을 때, 형은 이미 그 정도로 내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돌연 나타나 아이돌 그룹이 판을 치던 연예계를 솔로로 휩쓸어 버린 모두의 우상, 아이돌의 아이돌. 그리고 재능도 없고 배경도 없는, 데뷔 조에 들지도 못한 일개 연습생. 이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위치였다.
– 제이는 비주얼은 참 괜찮은데… 실력이 허접해서. 저러면 뭐 영원히 연습실에서 썩겠지. 답이 없잖아.
회사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재능이 아예 없다.’ ‘진짜 아이돌을 해야겠냐’ 같은 소리를 트레이너들에게 밥 먹듯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내게 데뷔의 기회 따윈 영영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너무 열심히 했던 점이었다.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면 데뷔나 퇴출을 들고 협박을 하여 억지로라도 노력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없다면, ‘가능성이 0인 아이’로 취급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 그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네 능력이 거기까지인 거야. 이제 슬슬 적당하고 포기해.
–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니까, 응?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부모님과 친구들, 연습생 동기들마저도.
이상과 현실, 노력과 재능 사이의 괴리는 나를 굴복시킬 수 없었지만, 믿고 의지했던 이들의 반응은 나에게 꽤나 큰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침체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회사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
– 뭔 그룹이야. 이미 솔로로 제대로 자리 잡은 와중에 굳이 그룹을 시작하라는 게 무슨 말인데. 새로운 그룹 성공시킬 자신도, 능력도 없으면 그냥 접어. 나한테 떠넘기지 말고.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서유태의 목소리였다.
– ‘…그룹?’
대화 내용을 듣고 있으니 회사에서 새로운 그룹을 계획하고 있고, ‘그’ 서유태를 그룹 안에 포함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에이, 그러지 말고! 애들이나 한번 보고 가라. 여기 연습실에서 썩어 나는 애들이 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데 매정하게 그냥 갈 거냐? 가서 애들한테 좋은 말이라도 몇 마디 해 줘.
연습생들의 간절함을 이용하면서까지 이어진 강혁우의 끈질긴 회유에 형은 ‘빨리 끝내라. 정말 얼굴만 보고 조언 몇 마디 해 주고 갈 거다.’라는 식의 대답을 하며 회의실을 나섰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쩌면 내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재빠르게 연습생들이 다수 모여 있는 연습실에 돌아온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생들이 하나둘 소리 없이 연습실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형이 있는 연습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당연하게도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바보같이 그걸 기대했던 거고.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연습생들을 불러내던 신인 개발 팀의 직원이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하며 입을 열었다.
–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연습생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조용한 연습실에서 대답했다.
– 연습하려고요.
내가 어리석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질 리가 없다는 걸. 나는 예전부터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놈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어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 그래? 적당히 하고.
– 네.
– …너무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
직원은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떠나갔다. 나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음악을 틀고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노래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돌에게 어울리는, 그런 노래를 기계적으로 연습하고 있자 투명한 액체가 비라도 온 것처럼 쏟아졌다. 물기를 흡수한 연습실 바닥이 점점 더 시끄럽게 마찰음을 뱉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지끈거릴 즈음,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 내 노래 그렇게 추는 거 아닌데.
그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자 과장 섞어 문틀에 머리가 닿을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장신인 남자가 문에 기대 서 있었다.
– ‘…서유태.’
나는 그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TV에서 익히 봤던 날카로운 눈매와 형형한 눈동자에서는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는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특별함이 있었다.
– 분명 다 보겠다고 얘기했는데, 왜 얼굴도 못 본 연습생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한 형이 고개를 까닥 기울이자 밤하늘처럼 새카만 장발이 탄탄한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솔직히 감탄만 나왔으나 나는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하게 대답했다.
– 저는 곧 퇴출될 거라서요. 보여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 당시의 내가 분석한 서유태는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과하게 굽신거리는 이들을 마주하면 비행기를 타기는 커녕 기분이 땅바닥까지 뚫고 내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할 수 있었던 태도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게 정답이었지.’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아야 했다.
‘나는 당신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티가 나도록. 그게 내가 동경해 마지않던 우상에게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였다.
– 연습생들은 퇴출되기 직전까지 아무 얘기도 못 들을 텐데.
– 그런 건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죠. 방금 만난 직원분 표정이나 회사의 대우를 보고 눈치챘어요.
– …….
형은 나의 말을 듣고 몇 분 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꼬리 한쪽을 끌어당기며 픽 웃고는 다시 말했다.
– 어쨌든 아직까지는 계약 해지를 안 한 거지?
– 네.
– 그런데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했단 말이지, 이 인간이…….
강혁우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차가운 눈빛을 하며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형은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입을 열었다.
– 유제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언제부터?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기도 전에 형은 연습실 뒤쪽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 봐줄게. 한번 해 봐.
나는 백 퍼센트 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참지 못했던 나는 바로 진실을 토로했다.
–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곧 퇴출될 거예요. 재능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안 늘 거라고…….
그러자 비웃음 소리와 함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간단한 질문이 날아왔다.
– 그럼 너는 왜 아직도 연습하고 있는 건데?
– …….
흔들림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 시선은 정말 내 마음을 모두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만 같아, 정말 우습게도 나는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게 내 인생, 프리즘의 시작이었다.
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었단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형, 우리 엄청 잘될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가 우리의 곁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마 형의 새로운 시작을 영원히 응원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왜!’
다시 태어나더라도 아이돌을 할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프리즘에 뜬금없이 형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같은 미성숙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질투, 상실감, 후회 같은 온갖 복잡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뒤엉켜 머리를 어지럽혔다.
“잘하고 와요, 승범 씨.”
당장 내 머릿속이 복잡했던지라 대강 남들이 들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한 말을 뱉고 정신없이 대기실을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걷고 마음을 정돈한 후에야 후회했다.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애새끼 같은 짓을 했구나, 하고.
* * *
‘서유태’라는 사람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싶다면 프리즘을 살펴보면 됐다.
애초에 형을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이었고, 프리즘의 모든 활동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빠짐없이 형이 메인 프로듀서로서 관여했기 때문에 프리즘의 정체성이 서유태고, 서유태의 정체성이 프리즘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판테이온과 프리즘을 나란히 두고 보면 어떤가.
두 그룹의 색은 누가 봐도 명백히 달랐다.
이는 적나라하게 말하면 지금 판테이온의 노래는 ‘서유태’가 잘하는 종류의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대중이나 멤버들이 한승범과 서유태 사이의 유사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스타일을 모두 버리고 억지로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 나 세라들한테 표절한 거 아니냐는 소리 들을까 봐 엄청 조심하고 있다. 모래주머니 차고 있는 것 같아.
본인이 말한 것처럼 서유태의 노래와 한승범의 노래 사이에 사람들이 유사성을 찾아 버리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좀 더 의식해서 다른 분위기의 곡을 작곡하고, 콘셉트에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은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리고 [Heracles> 뮤비와 가사를 확인한 뒤로 형은 판테이온이라는 그룹에서 본인이 가진 재능을 모두 내비치는 것보다 다른 멤버들을 빛나게 만드는 것을 우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형이 굳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명확했다.
– [프리즘은 이치세 서유성 외의 다른 멤버들도 진짜 잘함 근데 비교대상이 서유태인 게 문제인 거지]
형은 프리즘에게 벌어졌던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형도 참 많이 유해졌어. 처음에 만났을 때는 대뜸 너희가 나한테 맞추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 순한 양이지.’
대기실에서 느꼈던 동요로 아직까지도 뻣뻣한 마음을 풀기 위해 일부러 그런 헛소리를 속으로 뱉으며 웃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형의 변화는 인찬 형의 일과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 주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들어 가는 속을 애써 달래고 있을 즈음, 어느샌가 쇼케이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와아아아!”
그리고 무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좌석을 가득 채운 팬들이 열광하며 내지르는 소리가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판테이온 멤버들이 침착하게 무대를 꾸려 나가는 광경을 관계자석에서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이거 신인 맞아?’
형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가 완벽했다.
동선부터 라이브까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무대를 구성하고 있는 걸 보니 도저히 오늘 데뷔한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Survive IDOL 때도 다들 실력이 좋았는데 이제는 비교도 안 되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리더에게 이끌려 멤버들 전원의 실력이 점점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프리즘도 겪었던 현상이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 가수면 무대를 잘해야지.
멤버들에게 어떤 소리를 했을지 안 봐도 알 것 같아 이제야 조금 편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게 서유태지.’
본인이 잘하는 스타일의 곡이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서유태라는 사람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라도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분명 이 무대는 엄청나게 화제가 되겠지.’
둔재로 태어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연습을 하여 천재들의 곁에 서고 나면, 아득히 먼 곳에 남들의 몇백, 몇천 배의 노력을 숨 쉬듯 하고 있는 천재가 눈앞에 있다.
형을 보고 있자면 뼈저리게 느껴졌다.
재능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수많은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의 가운데에 서 있는 형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자 기분 탓인지, 형과 시선이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들 나보고 제2의 서유태니 뭐니 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형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직도 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거든.’
그런데 있잖아, 형.
나는 형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함께하고 싶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