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그래서 네가 그렇게 떠난 거였잖아……. 왜 그걸 몰라주는 거야.”
위태롭게 흔들리는 듯한 말을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내게 최적현이 유일한 친구였듯, 최적현에게도 나는 유일한 친구라는 사실을 이제야 다시금 기억해 냈던 것이다.
-네 시체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거든, 흔적도 없이.
내 시체가 사라지는 모습을 최적현이 발견했던 것은 어쩌면 녀석이 그 영안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잊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차가운 영안실에 홀로 서 있는 최적현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는 나를 망연자실하게 서서 언제까지나 바라보던 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당시의 나는 이미 죽고 없었기 때문에 분명 이 형상은 사실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놈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그 자리에 있었을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언젠가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 너를 만나고 난 다음부터는 어쩐지 사는 게 즐거운 것 같기도 해. 그 전까지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는데.
– 가족이 있으면 이런 느낌인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던 얼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할 말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혀 입을 굳게 닫고 있자 최적현은 다시 헛웃음을 흘리며 잔을 비웠다.
그리고 물기에 젖어 축 내려온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싫어해도 나는 멈추지 않을 거야. 네게 원망받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에 드디어 대답할 말이 떠오른 나는 숨을 차분하게 내쉬고 대꾸했다.
“멈추지 않으면 어디까지 갈 건데. 내게 피해를 주는 모든 사람을 망가트리면 다 끝나는 거냐? 그게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
“나는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야.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나타날 거고,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흔적을 지우는 게 어려워지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면 너는 어떡할 건데.”
최적현은 그렇게 말하는 내게서 아예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내가 한 말에 틀린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견 이화영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애 같은 모습에 나는 꺼질 듯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놈 고집을 쉽게 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나는 최적현이 보는 것처럼 바보 같을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착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최적현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기자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달리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달리가 벌인 행동의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니까.
가해자에게 공감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일에 서투르기도 했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저 일종의 콘텐츠처럼 달리를 욕하며 쾌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불쾌함뿐이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바른 사람이었다면 강혁우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겠지.’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이 불법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을 합리화할 생각도 없었고.
그런 내가 어떻게 도덕성을 문제로 최적현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최적현의 행동에 이렇게까지 연연하는 이유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세상에 속 시원하고 쉽기만 한 선택지는 없어. 내가 항상 말했잖아, 극단적인 방법은 적을 만들기 쉽다고. 네가 거기에 공격받지 않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최적현이 나를 돕자고 저지른 일들이 언젠가 녀석의 목을 조르게 되는 게 두려워서. 그리고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내가 두려워서. 그게 전부인데 저놈은 그걸 말해도 항상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참 답답할 뿐이었다.
“네가 내 일에 개입할 때마다 너희 집안 사람들이 그렇게 강하게 반발했던 건 다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냐. 물론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할 말 다 하고 다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그때는 아직 어릴 때라 집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였어.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잖아, 유태야.”
“누가 너희 집안 사람들이 걱정된다고 했냐. 그 새끼들이 어디 하루 이틀 짜증나게 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라 그 대단하신 양반들도 네 행동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 봐 쫄았다는 거라고.”
“그 사람들은 원래 겁이 많아. 가진 게 너무 많아서 그걸 다 지키려면 그렇게 방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그러면서도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부정을 저질렀던 걸 보면 그냥 트집을 잡고 싶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더 높을 거야.”
“…….”
“나는 안 무서워, 이미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해 봤으니까.”
최적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아예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건 무시라기보다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겁을 먹은 건 너밖에 없지, 서유태.”
나는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모르겠다.
나 하나를 지키자고 리스크를 기꺼이 짊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떻게 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 그런 존재를 당연하다는 듯 누리는 게 도대체 어떤 기분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지켜지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 엄마는 우리 유태랑 유성이만 건강하고 행복하면 돼. 너희 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분명 나도 그런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까마득할 정도로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던지라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
최적현의 말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감정에 향수를 느낀 나는 그저 침묵했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조급하게 머리를 굴려도 정돈되지 않은 말들이 가득 떠오르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최적현은 최적현대로 속이 말이 아니었는지 연거푸 술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잔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점점 커져 테이블 위로 떨어질 즈음, 최적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그 기자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지.”
내가 최적현에게 가장 크게 거부감을 표했던 사건의 이야기였다.
녀석은 내가 그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 기자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나는 딱히 그 기자에게 죽으라고 협박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만든 적이 없거든.”
“…….”
“물론 끝까지 뻔뻔하게 버티고 있었다면 그런 방법을 취하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벌어진 일만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강요한 적이 없다는 게 사실이지. 내가 한 일은 그저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만들었을 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기자는 내게 살해당한 게 아니라 본인의 죄에 짓눌려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거라는 뜻이지.”
최적현은 빈 잔을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은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답지 않게 목소리를 긁으며 거칠게 말했다.
“추잡스럽게 두 집 살림을 하며 가족들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정당화하며 제 배를 채우는 악행을 거듭하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꾸민 일에 타격을 받았을까?”
“…….”
“마지막에 무슨 말을 남기고 죽었는지는 알아? 본인의 전처와 딸에게 ‘너희들이 내가 잠깐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 주지 않아서, 나는 너희 때문에 죽는 것이다’라고 했어. 자기를 외면한 가족들에게 의도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겨 주고 간 거지. 나는 처음부터 그런 인간이란 걸 알고 있었고. 정말 진절머리가 나.”
긴 말을 쏜살같이 뱉는 동안 서늘한 안광이 번뜩이는 놈의 눈동자는 단 한순간도 내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내 죽음을 입에 담은 순간부터 녀석은 뭔가 심리적으로 크게 몰린 것 같았다.
흥분감을 지우지 못한 놈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입을 놀렸다.
“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언젠가는 네 동생과 프리즘 멤버들에 대해 루머를 퍼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
“…뭐?”
“그걸 어떻게 장담하냐고. 왜냐하면 그 기자가 죽고 나서 내가 빼돌린 USB에는 네 동생에 대한 자료가 한가득 들어 있었거든. 아무리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지? 내가 널 알고 있는데. 너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요동치는 동공으로 놈을 올려다보자 놈은 얼굴을 단번에 일그러트렸다. 그리고 내 어깨를 움켜쥔 채 호소하듯 이야기했다.
“봐, 넌 항상 네 품 안의 사람들에게 위해가 가해지면 민감하게 반응하지. 정작 본인에게 벌어지는 일은 등한시하면서. 이번에도 똑같아. 그 사생이 멤버들을 건드리기 전까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잖아.”
만약 서유성이, 프리즘이, 최적현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과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최적현처럼 감정을 담아 나의 최선을 다해 상대의 인생을 망쳐 놓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겪은 고통을 두 배, 세 배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도 저에 최적현은 이미 표정에서 내 속을 읽었는지 작게 속삭였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는 알고 있으면서. 왜 내 행동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그 말을 바로 부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자 놈은 그사이 마음을 조금 정리했는지 미세하게 차분해진, 평소와 비슷한 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해. 나는 변하지 않을 거니까.”
최적현은 원래 서유성이나 프리즘 멤버들의 안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내앞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것은 나를 설득하기 위함일 터였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내가 자신을 원망하길 바라지 않아서.
“…….”
그 속내를 읽자 놀랍도록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채 놈의 눈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는 아마 최적현이 무슨 짓을 하든 앞으로도 절대 놈을 끊어 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놈이 무슨 생각과 마음에서 이런 행동을 벌이는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나 자신을 속이던 변명들을 지워 냈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창피할 정도로 솔직한 마음을 문장으로 엮었다.
최적현이 저지른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녀석을 원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적현의 말에 흔들리고 녀석의 입장을 생각하며 이해하려 드는 것은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에서였다.
‘이놈의 친구가 도대체 뭐라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 아무리 많이 벌어져도 결국 원래의 이성적이던 나를 잃고 바보처럼 붙잡고 있는 게 인간 사이의 관계 아니던가. 서유성은 나의 이런 면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나는 결국 그걸 바꾸지 못할 거고 영원히 최적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막지 못하면 공범이라고 했었나, 최적현.’
어쩌면 나는 최적현이 내게 안겨 주는 안락함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켜야 할 수많은 이를 등에 업고 있던 나를 지켜 주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원망 안 해.”
“…….”
나는 마음으로 먼저 결정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이유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이었을 뿐이었다.
“걱정하는 거지.”
어떤 상황에서든 완전무결한, 그런 비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분명 잘못되었다.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함께 와 버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