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생방송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하여 무대를 마치고 나니 어느샌가 1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번주 1위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MC들의 진행에 따라 빠르게 점수 집계 화면의 숫자들이 올라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화영을 제외한 멤버들은 COMA-1을 비롯한 여러 동료 가수들과 대본을 든 MC들을 흘끔흘끔 보며 화면의 숫자를 보지 않는 척, 기대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딱 친척 어른에게 용돈을 받기 전에 열심히 딴청을 피우고 있는 아이들 같다고 해야 할까.
‘애들은 애들이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이 자리에 서 봤기 때문에 이미 꽤 익숙해진 광경이었으나 우리 햇병아리 멤버들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아마 다들 머릿속으로는 너무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기대감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일 터였다.
‘프리즘 멤버들도 신인 때는 저랬던가.’
지금 프리즘 멤버들은 다들 연차가 꽤 쌓여서 저렇게 아이처럼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차분하고 정연하게, 책잡힐 일 없이 감사 인사를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점차 성장한 것이다.
‘이놈들도 언젠가는 프리즘 멤버들처럼 되겠지.’
그 순간은 빠르면 판테이온의 활동이 종료될 즈음, 늦으면 각자의 소속사로 돌아가 성공적으로 활동 재개를 한 이후에 찾아올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성숙해진 놈들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어른이 된 놈들의 곁에는 내가 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모든 것은 한승범의 바람대로였다.
한승범이 언제 돌아올지, 어떤 삶을 바라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아니, 설령 한승범이 내게 자신의 몸에 머무르라는 말을 해주더라도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괜찮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승범은 평생을 남을 위한 선택만을 하며 아이답지 못하게 산 놈이었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자신을 아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하는 말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넙죽 넘겨주고 싶어 하는 아이가 존재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나의 편의를 위한 이기심일 것이다. 나는 서유성과 멤버들만 있다면 스스로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 그들의 곁에 남아 있고 싶었으나, 그 대가를 남에게 떠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그것이 고작 20년도 못 산, 한참 어린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해. 형은 그 정이 문제라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서유성의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것 같았다.
– 또 그렇게 하나 주워 온 거야?
그것을 가만히 곱씹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금까지만 해도 내 세계에는 서유성과 프리즘, 판테이온의 멤버들, 그리고 최적현까지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한승범도 그곳에 조금씩 발을 딛었던 모양이다.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게.
‘사람의 천성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지.’
서유성은 언제나 내가 비정해지길 바랐지만,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
그런 생각을 하며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있자 우강원이 옆으로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 끄트머리에 있던 우강원이 갑자기 왜 여기까지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흘긋 보다가 우강원을 올려다봤다.
녀석은 나를 향해 온화하게 미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평온히 정면을 바라봤다.
“결과 보여 주세요!”
그에 따라 나도 시선을 옮기자 바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북소리가 멎고, 점수 집계 화면의 숫자가 고정되었다. 그리고 메인 MC가 경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 주 1위는!”
팡!
“판테이온 축하드립니다!”
팡 터지는 소리와 함께 콘페티가 무대 전체에 흩날렸다.
“우리 진짜 1등이에요!”
“어, 어, 어, 어떡하지. 소, 소상 수감 해야 하는데.”
“기량아, 진정해. 수상 소감이야.”
“승리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멤버들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행복을 그대로 시각화하면 딱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음, 얼굴의 홧홧한 열기까지 보고 있기만 해도 녀석들의 모든 감정이 내게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오늘의 이 성취를 가장 기뻐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타의적으로 꿈을 빼앗기고 겨우 새로운 빛을 찾은 우강원. 정해진 레일을 거부하고 스스로 길을 개척한 백기량. 우상이자 가족이었던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온 이화영. 가장 어린 나이부터 가장 긴 시간 동안 오직 하나의 길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도유다. 꿈 하나를 위하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 온 나기 젠. 매서운 현실 속에서 누구보다 증명이 필요했을 이단비.
나는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차근히 바라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를 포기했다.
봐라, 다들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모두의 꿈은 숭고하며 소중한 법이다.
이 아이들에게 이 순간을 선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판테이온 이제 1위 가수예요!”
“나 너무 행복해…….”
이로써 판테이온은 음악방송 1위 최단 기록을 갱신한 보이 그룹이 되었다.
음악방송 1위의 기쁨을 얻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꼭 그 그룹의 성패를 단정 지어 주는 것은 아니다. 데뷔할 때부터 거대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이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대형 기획사 소속의 아이돌이 이런 기록에 월등히 유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차근차근 치고 올라와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아이돌이 있는 만큼, 데뷔했을 때만 반짝하고 그것을 유지하지 못한 채 떨어지는 그룹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승범아!”
“니콜라스!”
“유다야!”
“밤비 단비!”
“우강원!”
“젠!”
하지만…….
“축하해!”
“판테이온! 행복하자!”
내게는 이것이 정말 최고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대 앞의 뮤즈들을 향해 허리를 푹 숙였다.
그러자 잔뜩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멤버들도 나를 따라 관객석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와아아아!”
콘페티 슈터의 소리가 묻힐 정도로 커다란 팬들의 함성이 점차 줄어들 때, 도유다와 젠의 챌린지 영상에 나왔던 MC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데뷔 후 첫 1위를 하게 된 판테이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나는 MC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자마자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뮤즈.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건네주신 이 과분한 사랑에 저희가 전부 보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판테이온이 되겠습니다.”
나는 분명 몇 번이고,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수상 경험을 되짚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이 경험을 반복해 왔다.
“이번에 너무 고생 많이 해주신 우리 A&R 팀, 메이크업 팀, 의상 팀, 댄서 여러분, 그 외에도 함께해주신 모든 스태프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멤버들을 지금까지 뒷받침해 주신 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판테이온의 수상은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말하는 것들은 모두 미리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소감이었다. 따라서 외워 둔 소감을 말하는 동안 말문이 막힌다든가, 목소리가 떨리는 문제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사무치는 것만 같았다.
멤버들과 팬들의 기쁨이 가득 찬 얼굴을 보고 있자 익숙함보다 무언가가 앞서 마음을 조이는 느낌이었다.
– [널 사랑했던 시간들이 너무 쪽팔려서 내 청춘을 통째로 기억에서 지웠다 너 때문이니까 제발 부끄러운 줄 알고 다시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말길]
– [제발 프리즘 탈퇴해 너 아니었어도 잘될 애들이었어 네 욕심 하나로 괜히 거기에 발 얹어서 안들어도 될 얘기 듣게 하고 애들 상처주고 그게 어떻게 리더냐 나같으면 남이훤한테 쪽팔려서라도 바로 나갔을텐데]
– [입 다물고 아무말도 안했으면 좋겠다 그냥 지쳐서 보기가 싫어 본인 딴에는 억울한 게 많은 모양인데 이미 무슨 핑계를 들고 와도 소용없으니까 그만해라… 프리즘 멤버들만 계속 거론되고 힘들 뿐이잖아 다 거짓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세라나 프리즘을 조금이라도 아낀다면 제발 가만히 있어줘]
이 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운 감정은 무엇일까.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어쩌면 행복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 행복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인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뮤뮤!”
“감사합니다!”
“네, 다시 한번 판테이온 1위 축하드립니다.”
MC들의 멘트에 따라 무대에서 빠져나가는 출연진들에게 몇 차례 인사를 한 나는 둥글게 모인 멤버들의 어깨를 둘러 안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해.”
“…….”
“오.”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멤버들이 멍하니 넋을 놓은 채 내 얼굴을 바라봤다.
유일하게 아무런 동요도 보이고 있지 않던 이화영마저 크게 벌어진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에 의아하여 고개를 들고 녀석들과 눈을 마주치자 갑자기 도유다가 ‘흡’하며 숨을 참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놈의 까맣고 윤이 나는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형이야말로 제일 고생했으면서 수상 소감 왜 그렇게 했어요으어엉. 아, 아까 열심히 울음 참았는데! 다 망했어!”
“리다 진짜 짱입니다.”
그리고 등뒤가 뭔가 무거워 고개를 돌리자 내 등에 껌딱치처럼 찰싹 붙어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고 있는 이단비가 눈에 들어왔다. 코를 훌쩍이지도 않으며, 호흡이 흐트러지지도 않고, 흐느끼는 소리 하나도 없이, 무표정으로.
‘사람이 저렇게 우는 것도 가능한가.’
그냥 평소의 이단비 얼굴에 눈물만 합성해 놓은 것 같았다.
“흐, 승범아아.”
“…….”
아, 한 놈이 우니까 이화영을 제외한 나머지 놈들까지 다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안 우는 놈은 내 의상 끝자락을 꾸역꾸역 잡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5명과 뭔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1명을 보다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타이틀 곡의 MR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위로 부드럽게 휘어 올라갔던 입꼬리가 단단한 일직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나는 눈을 시퍼렇게 뜨고 멤버들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뭐 해? 눈물 닦고 트로피 바닥에 내려놔.”
“…에?”
“응?”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 자각하지 못한 멤버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앵콜 할 준비 하라고.”
1위 공약?
개나 줘버려라.
노래 부르라고 MR 틀어 주고 춤 추라고 무대 비워 줬으면 똑바로 해야지.
건성으로 하는 놈이 있으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예상이 안 된다.
나는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죽여 버리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눈깔을 위로 치켜뜬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꼬리를 만 개처럼 발발거리던 도유다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더듬더듬 말했다.
“왜, 왜 방금까지만 해도 우리 되게 감동적이었는데 왜 갑자기 호러 영화가 됐지?”
그에 햇살같이 활짝 웃은 나는 마이크를 뗀 채 입을 가리고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본방처럼 해. 틀리면 가만 안 둬.”
“…….”
“…….”
핏기가 빠져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멤버들 사이에서 젠이 기계처럼 딱딱하게 말했다.
“비상. 비상. 비상입니다. 죽음의 위기.”
뮤즈들이 우리 기 살려 줬는데 우리도 뮤즈들 기 살려 줘야지?
자, 애드립부터 동선 이동까지 하나라도 놓치는 낙오자 새끼는 지옥으로 꺼지는 데스 게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