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떨어져서 걸어라.”
“이미 떨어졌다. 누나야말로 숨 그만 쉬어라.”
한승범의 네임드 홈마 김하연 씨와 한승범의 네임드 채널 운영자 김하솔 씨는 지금 바로 팬 사인회가 열리는 장소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중이었다.
마치 전장에 향하는 장수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누나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출혈이 컸다.”
다음 달 날아올 카드 명세서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손이 떨렸던 것이다.
랜덤 추첨? 요즘 아이돌 업계에 랜덤이라는 게 존재는 하던가?
손 추첨하는 매장이 얼마나 남았다고 랜덤 타령인가.
기계 추첨 따위는 믿을 수 없다. 이 각박한 아이돌 세상에는 기계 추첨을 한다고 써 놓고도 줄 세우기를 하여 많이 산 순서대로 커트를 한다는 극악무도한 이야기가 떠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하연은 그 사실에 크게 타격받지는 않았다.
어차피 갈 거라면 차라리 줄 세우기가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줄 세우기는 몇백만 원 써 놓고 탈락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Overture 덕질 할 때보다 돈 많이 쓴 거야?”
팬 사인회라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라이트한 덕질을 즐겼던 남동생 쪽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당연하지. 1군 아이돌은 원래 돈 엄청 깨져. 팬싸 컷 단위부터 다르거든.”
데뷔 앨범 초동이 미쳐 버린, 데뷔하자마자 1군 자리에 들어간 슈퍼 신인 판테이온의 팬 사인회에 당첨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각오는 하고 있었다. 심지어 판테이온은 데뷔 후 첫 사인회를 했기 때문에 팬싸 컷을 알아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 불안감 속에서 카드를 불태운 결과 두 남매는 모두 팬 사인회에 당첨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해 놓고 취미 생활에 돈을 안 쓰면 언제 쓰나 싶으면서도 명품 하나 살 수 있는 금액을 한 번에 탕진한 것에 급격히 현타를 느낀 김하솔은 침침한 얼굴로 물었다.
“…누나, 팬싸 재미있어?”
“아니. 짜증나. 인기 멤 비인기 멤 눈으로 보이는 거 개같고, 민폐 친목질 쩌는 팬들 보는 것도 개같고, 소속사 직원들도 팬들 함부로 대하는 거 개같아.”
누구 하나라도 죽일 수 있을 것같이 살벌한 얼굴을 한 김하연은 기계적으로 팬사인회의 별로인 점을 줄줄 읊었다. 그러자 김하솔은 더욱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뭐 하러 가는 건데?”
“당연히 행복하려고 가는 거지. 실물 보고 손 잡고 겸사겸사 레전드 짤도 찍고.”
“레전드 짤 3만 알티가 누나를 단단히 망쳤구나.”
팬 사인회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김하솔은 내심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김하연과 찢어져 남처럼 팬 사인회 장소로 향했다.
* * *
회장에 도착하여 번호표를 뽑은 남매는 가운데 자리에 배정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바로 본인 옆에 서로가 있다는 사실에 복화술로 욕을 뱉었다.
“제발 내 인생에서 꺼져 줘.”
“왜 번호표까지 나란히 뽑는 건데……. 진짜 짜증난다.”
하지만 ‘승범이 네임드 홈마랑 네임드 채널 주인 무슨 관계야?’ 같은 끔찍한 뒷이야기가 도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그들은 입을 다물고 신체 접촉 하나 없이 카메라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세팅을 마무리했을 때, 주변의 팬들이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하는 것이 들렸다.
“와아아아!”
“하나, 둘.”
“안녕하세요, 판테이온입니다!”
바로 판테이온이 팬 사인회 회장으로 찾아온 것이다
멤버들은 바로 한승범의 리드에 따라 인사를 하더니 가벼운 토크 타임을 가졌다.
“승범이가 오늘 정말 만반의 준비를 해 왔어요. 아침 일찍부터 팬분들이 궁금해하실 만한 것들을 미리 다 준비했거든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우강원이 능숙하게 대화를 열었다. 그러자 가운데에 서 있던 한승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번에 Survive IDOL 이벤트로 미니 팬 사인회를 했었는데, 그때 팬분들이 중복적으로 물어봐 주시는 것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다른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도록, 그런 것들은 사인 시작 전에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NB…… 뭐라고?”
“MBTI요, 형.”
“네, MBTI나 기타 기본적인 정보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승범이 답지 않게 잠시 삐끗하자 그 옆에 있던 이단비가 냉큼 그것을 보조해 주는 모습에 회장 내에 있던 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승범이 그런 거 잘 모르는구나.”
다들 왜 이렇게 웃는가 하면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되었던 ‘한승범 MZ 탈락설’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판테이온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다.
– [아니 나 줄 이어폰 쓰는 스무살 처음 봄]
– [대장 밈도 잘 모르던데 내 체감상 니콜라스랑 젠보다 더 모르는 것 같아]
– [유다와 승범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소파에 기대앉아 있는 폼이 도저히 갓 스무 살로 보이지 않는다든가, 커피를 사약같이 들이마신다든가, 줄 이어폰처럼 요즘 아이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올드한 아이템만 고집한다든가 하는 모습이 목격되며 ‘한승범 삼촌설’이 퍼졌던 것이다.
물론 한승범은 그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본인의 내추럴한 모습을 모두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멤버들의 ‘모든 문제는 승범 형이 해결해 준다.’, ‘승범이는 나보다 연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발언, 그리고 평소 털털한 모습과 천사 같은 외관 사이의 갭에 위화감을 느낀 팬들의 과장된 해석이 더해져 벌어진 사태였다.
팬들이 왜 웃음을 터트리는지 전혀 모르는 한승범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마이크를 들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MBTI 조사 결과’를 읊었다.
“우강원 ENFJ, 백기량 INFJ, 이화영 ESTJ, 한승범 ISTP, 도유다 ENFP, 나기 젠 INTP, 이단비 ESTJ입니다.”
알고 싶기는 했는데 설마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던 팬들은 허겁지겁 한승범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 적었다.
‘아니, 너무 고맙긴 한데…… 이게 맞나?’
김하솔은 열심히 MBTI 정보를 받아 적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승범은 심각한 효율 중독자였으니까.
‘이게 정녕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겁니까.’ 라는 의문이 조금씩 드러나는 표정을 짓고 있던 한승범은 새로이 습득한 판테이온 멤버들의 정보에 상기된 팬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조금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비없이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다음은 키, 몸무게입니다.”
그 뒤로 이어진 판테이온 멤버들의 신체 정보에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우강원의 키와 몸무게가 일반인들이 쉬이 들을 수 없는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0kg가… 넘어? 어떻게 그래? 거의 승범이 두 배인데.”
“…키가 193cm고 몸이 저렇게 근육질이니까 어쩔 수 없지. 운동하던 애잖아.”
그러자 팬들의 말을 주워들은 우강원이 과한 관심이 조금 부끄러운 듯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버벅거리며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여, 여러분 제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놀라셨죠. 제가 키가 크고 뼈가 두꺼운 편이라 그래요. 살쪄서 그런 거는 아니에요……. 선수 때는 체중 조절을 해서 좀 덜 나갔고요.”
누가 봐도 비만이 아닌 몸으로 저렇게 열심히 어필을 해도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결국 어수선해지기만 하던 회장 내의 분위기는 한승범의 짧은 말로 정리되었다.
“저 키에는 원래 저 정도 나갑니다.”
‘…그걸 어떻게 알까? 승범이는 179cm인데.’
김하솔은 속으로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개인 멘트를 하면 안 된다.’는 김하연의 당부를 충실하게 지키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공급되는 떡밥으로 충격과 도파민이 가득한 토크타임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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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남매의 차례가 찾아오고 사인을 받던 김하솔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안녕하세요.”
“스, 스, 스, 승, 승범아. 아, 아, 아, 안녕.”
‘아이돌판 고인물, 가문의 수치, 타고난 파이터의 영혼, 어디 내놔도 지고 오지는 않겠구나 싶은 미친 인성의 혈육이 갑자기 수줍은 한 떨기 꽃이 된 것을 목격한 심경을 서술하시오. 30점.’
“왜 이렇게 떨어요.”
“승범이가 너무, 너무 잘생겨서. 어허헝.”
‘어허헝?’
혈육으로부터 저런 정돈된 목소리를 들어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김하솔이 닭살이 쫙 올라온 팔을 쓸고 있던 중 한승범은 능숙하게 김하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벌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는 듯 꽉 깍지를 끼고 김하연을 올려다봤다.
“미안해. 나 긴장해서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났어…….”
“괜찮아요.”
한승범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젓고, 김하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사인을 했다.
한승범이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상대의 얼굴을 보며 한다는 사실은 이미 팬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진 것이었다.
‘저 인간 프릭 덕질할 때는 정수리만 봤다고 했는데. 기절하면 어떡하냐.’
하지만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는지 김하연은 아예 얼어붙은 채 아무 질문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어, 어어…….’ 같은 신음 소리만이 이어지며 시간이 흐르자 한승범이 먼저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저번에 1차 경연할 때 와 주셨죠?”
“어, 어떻게 알아?”
“그때 제 이름 적힌 카드 들고 계셨는데 얼굴이 많이 붉어서 걱정했었거든요. 초반부터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을 들으며 김하연의 사고가 끝장났음을 직감한 김하솔은 눈을 감고 조의를 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승범의 폭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손이 아직도 너무 차가운데. 저 원래 체온 낮은 편인데 하연 씨는 더 차가워요.”
깍지를 낀 손을 그대로 움직여 김하연의 손등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댄 것이다. 갑작스레 한승범의 용안을 만지게 된 김하연은 거의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몸을 떨며 억눌린 비명을 흘리더니 다른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어어, 손 다친다.”
그사이에 사인을 마친 한승범에게 남아 있는 손까지 꼭 붙잡힌 김하연은 도망가지도 못한 채 한승범의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더 하고 싶은 말 없어요?”
“…….”
김하연은 그 질문에 한승범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마구 끄덕였다. 한승범은 그런 김하연의 시선 아래로 기어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사랑해요.”
그러자 주변에 앉아 있던 팬들 모두가 한승범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고작 스무 살, 제대로 된 팬 사인회는 이번이 처음인 신인의 말도 안 되는 대응에 모든 팬들이 경악하고 있을 즈음, 직원의 칼같은 안내만이 울려 퍼졌다.
“이동하실게요.”
다른 팬들과 똑같이 한승범의 행동에 입을 벌리면서도 내심 귀중한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사용하지 못한 김하연을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김하솔은 한승범의 앞으로 이동한 후,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한승범의 얼굴을 마주봤다.
“아, 아, 안녕하세요, 스, 스, 스, 승, 승범 씨.”
그리고 고장났다.
‘아, 나 누나랑 똑같네.’
빠르게 현실을 자각한 김하솔은 눈앞의 말도 안 되는 미모를 자랑하는 한승범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이 거리에서 보니 경연 때 멀리서 스크린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외모였다.
‘얼굴이 손바닥만 해. 속눈썹 길어. 눈 색이 호박색이야. 피부가 엄청 좋다. 머리카락이 부드러울 것 같아. 말투가 다정해. 좋은 냄새가 난다.’
“하솔 씨,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아…….”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차례가 끝난 뒤였다.
지금까지 김하솔의 뇌는 동성을 보면 ‘동족. 우가우가.’라는 정보 외에 아무런 정보도 읽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안타까운 뇌가 한승범을 직접 마주하며 갑자기 무리한 정보량을 떠맡고, 아예 작동을 멈춰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터벅터벅 무대에서 내려온 김하솔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한승범의 사인을 읽었다.
[To. 김하솔 님. 헤라크레스 교차 편집 영상 올려주신 거 봤어요. 잠도 못 주무시고 편집하셨을 텐데 걱정되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한승범-]‘내가…… 그 영상 편집자라고 말했던가?’
김하솔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래서 팬 사인회 가는 거구나.
행복하다, 하고.
“볼이 부드러웠어…….”
“다정해……. 잘생겼어…….”
그렇게 바보가 된 채 돌아간 남매의 카메라 속 데이터는 이후 엄청나게 큰 화제를 얻게 되었고, ‘한승범 메두사설’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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