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 [故 오수희]
내가 임승훈을 만난 것은 강혁우에게 캐스팅을 당하고 최적현에게 주워지기 전, 그러니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돈을 벌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그 시기였다.
– 아버지, 그렇게 계속 술만 마실 거야?
– …….
아버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아예 정신을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전에도 능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 형, 아버지는?
– …아버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가 봐.
나는 직장부터 가사까지 모든 일을 내던진 아버지를 보며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이 꽤 견딜 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 괜찮아. 내가 책임지고 너 키울 거니까.
나는 그저 아직 어렸던 서유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서늘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인지 서유성은 어머니의 죽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울지도 않고 쓸쓸한 티를 내지도 않은 채 묵묵히 일상을 보냈다. 학교를 다니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잘 자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 …지 마.
녀석은 종종 굳게 닫힌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았다. 내게 들리는 게 싫었던 것인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해 그 내용이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리 멀쩡한 척 생활을 해도 부모의 부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던 서유성이 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야, 네 동생 정상 아니야.
아버지는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다른 아이들과 성격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느끼긴 했다. 하지만 나는 서유성이 다른 아이들처럼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서유성의 교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아버지가 서유성에 대해 그렇게까지 말할 이유는 없다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나를 통해 부모의 공백을 메꾸고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서유성을 보며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학교를 수시로 빠지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4월의 어느 날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 수학여행 기대된다!
– 나 엄마가 간식 싸 준다고 했어!
서유성의 같은 반 친구가 하굣길에 수학여행에 대해 떠드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서유성의 담인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고, ‘가정통신문 나눠 줬는데 확인 못 했냐’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서유성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녀석을 붙잡고 불같이 화를 냈다.
– 서유성, 다음 달에 수학여행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다 준비가 필요한…….
– 형, 나 그냥 수학여행 안 갈래.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서유성의 건조한 얼굴을 보자마자 아뿔싸, 싶었다.
혹시라도 내게 들킬까 집밖의 쓰레기통에 가정통신문을 버리고, 들뜬 친구들을 뒤로한 채 걸어온 서유성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나는 움켜쥐었던 서유성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갔다 와. 남들 다 하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돈이 조금 더 필요했다.
이왕이면 가서 친구들이랑 간식도 좀 사 먹고, 사진도 찍어 올 수 있을 정도의 돈.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이곳저곳을 떠돌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떤 대회였다.
– …스트릿 댄스 배틀?
그리고 큰 포스터에 적힌 우승 상금을 보며 그 근처를 얼쩡거리던 내게 말을 건 게 바로 임승훈이었다. 임승훈은 그 대회에 참가하는 힙합 댄스 팀의 멤버였고, 신청서를 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던 중이었다.
– 어이구, 키가 엄청 크네. 못 보던 얼굴인데… 참가자야? 여기 이름이랑 개인 정보 쓰고 내면 돼!
나는 임승훈이 건네는 종이를 무심코 받아 들었다.
상금도 상금이었지만, 그토록 꿈꾸던 무대가 눈앞에 있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 초반에 기선 제압 하는 게 중요하거든. 저지들한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고. 터치는 절대 안 돼. 알겠지?
나는 임승훈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대회의 기본적인 룰을 배웠고 나름대로의 팁도 조금은 얻을 수 있었다.
– 우승, 서유태!
– 와아아아아!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나간 그 대회에서 나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얻은 상금으로 나는 무사히 서유성에게 적당한 용돈을 안겨 주는 것에 성공했고,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임승훈과 종종 연락을 취하며 여러 댄스 대회의 우승 상금을 휩쓸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상금으로 막막했던 생활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도 나는 당장 내 허기를 달래는 것보다는 서유성에게 좋은 옷, 책 한 권이라도 더 사 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서유성은 나보다 훨씬 똑똑해서 아이돌 활동 하면서도 명문대 입학에 성공했을 정도였으니까…….’
재주가 있다면 그걸 살려 주는 게 부모의 역할 아니던가.
서유성에게 뭘 해 줬는지 지금이야 잘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임성훈은 그렇게 뿌듯함에 배가 불러 살아가던 내게 가끔씩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같은 것을 억지로 쥐여 주곤 했다.
– 그냥 좀 내버려 둬. 나한테 쓸데없이 돈 낭비하지 마.
– 더 먹어야지! 너도 성장기잖아. 키는 더 안 커도 될 것 같긴 한데 원래 덩치만큼 먹어야 한다고!
– 필요없어.
– …너 그러다가 쓰러진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야. 너희 아버지는 도대체 뭐 하신다냐. 내가 만약에 네 아버지였으면 너 이렇게 안 내버려 뒀어. …난 너 같은 천재는 처음 봤거든. 눈앞에서 막 번쩍번쩍 빛이 나잖아. 내가 다 아까워서 눈물이 난다, 야.
– 됐어. 한탄해 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까.
임승훈과 나는 최적현이나 프리즘 멤버들처럼 아주 친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의 보호 아래 안정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았던 임승훈과 악착같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주제에 또 꿈을 향한 열망은 저버리지 못하는 나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 아, 나 가족들이랑 오늘 파티하기로 했거든! 대회 예선 떨어져서 꿀꿀했던 거 아빠가 눈치챘나 봐. 미안한테 나 이만 가 봐야겠다.
– 나도 동생 밥 차려 주러 들어가야 해. 연습도 해야 하고.
– 그래! 다음에 보자!
가진 것이 달랐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달랐다.
애초에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던 내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난 걸 뭐 어떡하나. 꿍얼거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바빴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지켜보고,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딱 정도의 관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인연이었기에 임승훈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이에게 선뜻 먼저 말을 걸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춤으로 돈을 벌고,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을 하던 중, 임승훈은 점점 대회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의 인생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특별히 그를 수소문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레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승훈은 이제 춤을 그만두었다고 했던 것 같았다.
다소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고 대회와 축제에 참가했던 나는 어떤 축제의 백스테이지에 찾아온 강혁우에게 연습생 계약 제안을 받았다.
– 나는 이번에 새로 생긴 RH 엔터테인먼트 캐스팅 매니저인데… 아이돌 해 볼 생각 있어?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던 사이…….
– 평생 가족 뒷바라지나 하면서 인생 썩히기는 싫을 거 아냐. 내가 도와줄게.
나는 최적현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꿈을 이루었고, 프리즘이라는 두 번째 가족을 만들었다.
내가 거둔 놈들이니 책임지고 프리즘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에 불타 밤을 새워 가며 일을 하고 있던 내게 어느날 연락 한 통이 왔다.
– [유태야,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
임승훈이었다.
임승훈은 내게 전화를 걸어 제 부모님의 치료비로 큰 빚을 지게 되었다는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 내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이미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솔로 활동으로 넉넉하게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별말 없이 그것을 빌려주었다.
누구에게나 돈을 퍼 줄 정도로 타고난 성격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임승훈에게는 받았던 게 좀 있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뿐이었다.
‘그때 얼마 빌려줬더라. 기억도 안 나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의 간호로 시간을 쏟느라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했던 그를 데려와 매니저로 고용했다. 임승훈은 내게 무언가 부채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건지 열심히 프리즘 멤버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 스케줄이 너무 빡빡한 것 같아요. 이동 시간이 이렇게 촉박하면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 있어요. 스케줄 한 번만 더 고려해 주세요.
우리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든가.
– 멤버들이 성장기라 의상 길이나 신발 크기 계속 확인해야 해요. 특히 제이! 쑥쑥 자라고 있으니까 잘 체크 부탁드려요.
스태프들과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취해 내가 신경 쓸 부분을 덜어 준다든가.
– 얘들아,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후딱 가서 사 올게!
– 인찬이 병원 픽업하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멤버들을 하나하나 챙겨 주기 위해 애를 쓰는, 그런 것들 말이다.
임승훈은 정말 유능한 매니저였다.
나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것을 느낀 프리즘 멤버들은 임승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몇몇을 제외하고 말이다.
– …꼭 그 사람이랑 같이 일해야 해? 뭔가 별로인데…….
– …….
제이와 서유성.
두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승훈을 싫어했던 것 같았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제이는 ‘그냥 느낌이 별로다’는 말을 반복했으며 서유성은 언제나 그렇듯 아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치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듯 두 사람이 임승훈을 향해 선을 긋는 행동을 취해도 그저 하하 웃고 있었지만, 내게는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다.
– 너희 둘, 그렇게 사람 싫어하다가 어떻게 사회생활 하려고 그러냐.
– 형한테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
– 시끄러워, 유제이. 이제 나이 좀 들었다고 따박따박 말대답하네?
제이나 서유성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고, 임승훈은 프리즘 활동 기간 동안 우리를 잘 지탱해 주었기에 나는 더더욱 그 두 사람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를 향한 나의 신뢰는 변하지 않은 채 세월은 흘렀다.
나는 유서를 쓴 후, 그것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고민했다.
최적현은 당시 내 곁에 없었고 프리즘 놈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나를 막으려 들 게 뻔했다.
따라서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인연들 중 그놈들을 제외한 후 유일하게 남은 존재에게 유서를 맡겼고, 상황은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배신한 게 맞기는 한 건가.’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유태야,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안 돼?
내 유서를 받은 임승훈은 눈물을 흘리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 슬픔을 믿었다.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믿었다.
그 결과가 이거라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