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승범 씨가 최근에 스토커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들었는데, 저희 RH 엔터테인먼트는… 아티스트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회사니까요……. 안심하고, 긍정적으로 고려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큰일을 한번 당하고 난 다음부터는 신경이 쓰이니까요. 다음에 계약을 할 때는 그런 부분을 잘 신경 써 주는 곳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띄엄띄엄 불명확한 발음으로 건네진 말에 나는 작게 잔잔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끌어 올린 입꼬리 아래 가려진 이를 악물었다.
‘…아티스트 보호? 강혁우가 나한테 그런 말이나 지껄이라고 했나?’
아버지의 채무 관계 스캔들이 터졌을 때 나를 기자들이 터트리는 카메라의 플래시 사이에 밀어 넣은 주제에 아티스트 보호 같은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달리 사건은 RH 엔터테인먼트에서 꾸민 짓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이런 기만이 또 어디 있나 싶었다.
“…….”
하지만 불쾌한 티를 드러내거나 날을 세워서는 안 됐다.
무조건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아야 했다.
초조한 마음이나 긴장감으로 애매한 타이밍에 술기운이 달아나지 않도록.
오늘 나는 무언가 평소와 다르게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날보다 훨씬 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어지럽지……. 별로 안 마셨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다시 대화하자 점차 잔뜩 꼬이는 발음, 말을 하다가 중간중간 술 냄새가 물씬 나는 숨을 훅 뱉는 행동, 흐리멍덩해진 채 느리게 꿈뻑거리는 눈, 얼굴 전체로 벌겋게 올라온 홍조가 눈에 들어왔다.
‘꽤 취기가 올라왔군.’
임승훈은 전형적인 술에 취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맨정신으로 진탕 취한 사람을 상대한 지 한 시간은 지났던가.
“강혁우 이사님께서, 승범 씨를 데뷔하기도 전에 만났다고 하시던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때 우리 회사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반응이 날카로웠다고…….”
“그러셨습니까.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조금씩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 본인이 취했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저런 말을 함부로 했다는 게 강혁우에게 알려지면 사달이 날 텐데.’
임승훈은 이미 도수가 높은 술을 쉬지 않고 몇 잔씩이나 마신 상태였다. 내가 알고 있었던 임승훈의 주량은 넘은 지 한참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조금 취해서 이제는 물에서도 술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아요.”
물에서 술 냄새가 나기는.
그냥 물이라고 하며 술을 준 것뿐이었다.
‘아직까지는 계획했던 대로 순조로워.’
고작 술 좀 취했다고 임승훈이 모든 진실을 줄줄이 쏟아 낼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아무리 술이 나름 자백제의 일종이라지만, 자백제는 영화처럼 만능 아이템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세상에 그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양심이 없었으며 너무 미숙한 계획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닌, 객관적인 알코올의 부작용이었다. 뇌의 기능 장애로 인한 사고력 저하와 감정 조절 기능의 둔화 그리고 블랙아웃. 그것이면 충분했다.
임승훈이 진실을 뱉게끔 만드는 것은 내가 온전히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문제는 없었다. 나는 임승훈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부터 나는, 임승훈을 정신적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매니저님께서는 서유태 선배님을 통해서 RH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내 이름을 거론하자 임승훈의 몸이 멈칫 떨렸다.
죽은 사람의 이름에 술이 깨 버린 것일지. 아니면 나를 향한 죄책감을 취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지. 나는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딱히 전자여도 상관은 없었다.
고작 정신 좀 번쩍 뜬다고 모든 이상이 완벽하게 해소되면 음주 운전 단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머리가 잘 안 굴러가고 감정적으로 변하는 건 여전할 것이다.
“…네.”
하지만 정답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아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게 그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텐데, 사고가 둔해져 그것까지는 판단을 못 한 듯했다.
임승훈은 요동치는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느리게 대답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안 거예요?”
“매니저님은 여전히 그곳에서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서유태 선배님께서 떠난 후, 직급이 오르셨죠. 지금 임승훈 씨가 착용하고 있는 의복은 어지간한 연봉으로는 쉽게 살 수 없는 것들이지 않습니까.”
“…….”
“COMA-1 멤버들이 활동하는 걸 쭉 지켜봤지만, 매니저님의 모습은 잘 발견할 수가 없더군요. 애초에 프리즘 활동 초반부터 입사하셨다면 연차가 꽤 되셨을 테니 신인 아이돌의 로드 매니저를 맡는다는 건 당치도 않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질문을 묵살한 나는 보았으나 보지 않은 척하려 했던 사실들을, 그를 몰아붙일 만한 말들을 계속해서 뱉었다. 갑자기 돌변한 나의 태도에 그는 상당히 당황했는지 입을 벌린 채 동요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왜, 저를 속이는 거죠?”
‘내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떳떳하지 못하게 될 거라면, 차라리 배신하지 말지. 도대체 왜.’
그가 매고 있는 넥타이와 시계는 애써 무시하려 했다.
어쩌면 그저 세월의 흔적일지도 모르는, 살집이 조금 사라지고 눈 아래에 그늘이 생긴 변화를 더 먼저 보았다. 위축된 태도를 더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한번 입이 열리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넥타이는 최적현이 항상 애용하는 것과 동일했다.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유난히 높은 가격대를 자랑하는 브랜드의 상품이었다. 억 단위로 가격대가 넘어가는 시계는 훨씬 저렴한 브랜드의 것이었지만,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그래도 턱없이 비싼 것이었다.
“서유태 선배님은 돈은 갚지 않아도 되니, 여유가 생기면 기부라도 하라고. 그렇게 말하셨죠.”
필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신변에 위협이 있었을 것이라고.
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 정도의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약속, 지키셨습니까.”
“…….”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약점이 잡힌 건 아닐까 계속해서 고민했다.
예를 들면 가족이라든가.
아, 아버지가 병환으로, 그리고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가족은 남아 있지 않다고 했나. 그러면 가족은 안 되겠다. 가족이 아니라면 약점 잡힐 만한 게 또 뭐가 있지. 강혁우에게 돈을 빌려서? 빚이라면 내가 다 갚아 줬을 텐데. 키우던 개? 부모님의 유품?
“잠깐만……. 잠깐만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렸다.
‘…약점이란 게 이렇게 억지로 찾아내야 하는 거였던가?’
“…프리즘 선배님들과 연락은 안 하시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죄책감 때문입니까.”
“어떻게 아는 거냐고!”
“도망친 겁니까?”
따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무언가 변명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뱉은 질문에 제대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임승훈은 내가 자신이 필사적으로 숨겨 왔던 추악한 부분을 알고 있다는 점에 기겁하듯 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부정하는 것조차 잊은 채 무작정 나를 다그치는 임승훈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숨이 잦아들자마자 조용히 물었다.
“유서는 어디에 숨긴 겁니까?”
“…….”
발악하던 몸이 뚝 멈추었다.
그 얼굴을 다시 확인하니 마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 몰랐다고는 하지 못하실 테죠. 긴 인연으로 겨우 쌓아 올린 신뢰를 저버릴 만한 대가라도 있었습니까.”
뱉은 말들은 모두 문제가 없는 듯했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 ‘서유태’의 뒤에 선배님을 붙이는 것, 임승훈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서서히 임승훈을 몰아세우는 것. 글자로 나열해 보면 빠트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설마, 고작 ‘그것들’을 위해서 배신했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목소리의 톤이 일정한지, 타인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감정을 담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꼈던 이의 배신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이성을 유지할 거라는 나의 오만이었던 모양이다.
“서유태 선배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임승훈 씨를 믿고 있다고.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입니까.”
안 된다.
금방이라도 속마음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저는 서유태 선배님의 협력자입니다. 임승훈 씨가 저지른 모든 일들을 알고 있죠.”
그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다급하게 임승훈에게 나의 정체를 확고히 심어 넣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진실 따위는 없습니다. 다 지켜보고 있거든,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
“유서를 어디에 숨겼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재차 유서에 대해 물었다.
유서를 숨기는 일은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수 없었다.
누군가가 ‘서유태의 유서를 전 매니저가 숨겼다’라고 말하면 임승훈은 반드시 공격받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생활은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아아, 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임승훈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에 바로 이어서 유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읊으며 임승훈을 더 몰아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유서 내용이 기억이 안 나.’
그리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
특별히 두통이 느껴지거나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서서히,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지어냈던 거짓말을 자연스레 잊어버린 것처럼.
– 정말 내가 서유성을 두고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조인찬이 찍힌 그 영상은?
텅 빈 머릿속에 돌연 나, 서유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에 말문이 턱 막힌 채 입을 벙긋거리고 있던 중, 갑자기 임승훈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했어요. 다 시켜서, 시켜서 한 거야. 내가 안 했어요.”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패닉에 빠진 채 식은땀과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얼굴과 자신의 머리카락을 머리를 미친 듯이 쥐어뜯고 있는 임승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중, 놈이 비명처럼 어떤 말을 뱉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넋을 잃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
현실이 아닌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았다.
후두둑 바닥이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는 내 고막을 찢어 놓을 것처럼 크게 울리는데 임승훈의 목소리만큼은 먹먹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뇌가 듣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차라리 귀를 막고 못 들었던 것으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짓밟기라도 하듯 임승훈은 똑같은 말을 다시 소리쳤다.
“강혁우가 죽였어. 강혁우가…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내 사인은 분명 자살일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