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가까스로 정신이 들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눈가의 파인 부분을 따라 물이 흘러내렸다.
‘…땀?’
그런 질문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기 위해 입을 열자 깊게 가라앉은 목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목이 제대로 쉬어 그런 것 같았다.
퉁퉁 부어 따끔거리는 목을 부여잡은 나는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손으로 돌려 주위를 돌아봤다.
“…….”
이곳은 프리즘의 숙소도, 판테이온의 숙소도 아니었으며 내 집도 아니었거니와 한승범, 최적현의 집도 아니었다. 낯설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시계 초침이나 건물의 울림 같은 일상적인 소리가 아닌, 명백히 사람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타인의 존재에 형용하기 어려운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서둘러 내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뛸 수 있나?’
팔다리가 조금 무겁고 시야의 초점이 정확히 잡히지 않았으며 귀가 조금 울렸다.
이 정도는 괜찮다. 할 만하다.
원래 몸이었다면 좀 더 상태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몸은 왜소한 체격을 가진 한승범의 것 아니던가.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판단한 후, 바로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윽!”
그러자 몽롱한 정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몸을 움직인 탓인지 머리를 송곳으로 후비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를 잠시 붙잡고 인상을 쓰고 있던 나는 곧바로 그 통증을 이겨 내고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낯선 장소에 무방비한 상태로 타인과 함께 놓이는 상황 따위는 싫었다.
무엇 하나라도 얻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임승훈을 찾아야 해.’
바보같이 놓쳐 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서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쪽에서 대응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린 후, 무의식중에 몸을 움직였다.
맨발이 바닥에 닿자 눈밭을 걷는 것처럼 시린 냉기가 느껴졌다.
지금껏 이불에 파묻혀 있었던 탓인지 열이 오른 피부가 상대적으로 차가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감각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시야가 핑글 돌았다.
그에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억눌린 신음 소리를 뱉자 타인의 기척이 점점 다가왔다.
“누워 있어야지.”
무슨 애새끼라도 타이르는 것 같은 투에 천천히 고개를 올려 보자 익숙한 얼굴이 앞에 있었다.
최적현이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눈을 마주 보며 서 있던 중, 어깨가 눌려 아까까지 누워 있던 침대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누른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지도 않은 채 언제나와 같이 반듯하게 선 놈은 잠시 가만히 있으라는 듯 나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그리고 영문 모를 소리를 이어 뱉었다.
“응, 그렇게 해.”
“…….”
“그건 안 돼. 바로 나한테 가져와.”
내게 보이지 않는 쪽의 팔로 무언가를 귓가에 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최적현이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일하다가 나온 거군.’
근처에 있던 ‘타인’은 최적현이었으며, 낯선 이 장소는 놈이 데려온 쓸데없이 넓은 병실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단번에 풀렸다.
차츰차츰 시야가 선명해지고 호흡이 정돈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리고 그제야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쓰러졌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닥에 늘어진 나를 들어서 병원에 데리고 온 최적현의 모습 또한.
‘…머리가 둔해졌어.’
이렇게 잠시 나와 있는 동안에도 업무 연락이 끊임없이 올 정도로 바쁜 놈을 휘말리게 했다는 것에 찝찜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또다시 ‘유의미한 결과’를 좇아 충동적으로 행동할 뻔했던 자신에게 실망했다.
“…….”
이런 쓰레기 같은 상태로는 임승훈을 쫓아가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약점을 잡힐 가능성이 더 높았고. 부정하고 싶어도 그게 현실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에게 그런 세뇌를 퍼부은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옆으로 쓰러트린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몸이 덜퍽 침대 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통화를 하던 최적현이 이쪽을 휙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단순히 몸을 옆으로 눕힌 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녀석은 다시 통화 너머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었다.
‘…한승범 이모의 얼굴을 보는 게 더 어려워졌어.’
또 반복이었다.
최적현이 한 일이니 소속사나 멤버들, 한승범의 가족에게 지금 상황이 알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직업이 직업이니 기자들에게도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모든 통제가 이루어졌겠지.
하지만 이건 양심의 문제였다.
지뢰를 밟는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자꾸만 이런 일이 벌어지니 도대체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험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술도 일부러 안 마셨다. 그런데 결국 또다시 이렇게 되지 않았던가.
‘스트레스나 피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내가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맞이하는 것은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이를 꽉 악물고 있던 차에 침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눈을 뜨자 침대의 빈 공간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꼬고 있는 최적현이 보였다.
전화는 이제 끝난 모양이었다.
“몸은 좀 어때?”
“그럭저럭.”
“의미없는 질문이었네.”
옅은 미소와 함께 최적현이 말했다.
그 말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지끈거려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최적현이 얼굴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을 건조하게 뱉었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그러게. 엉망이지?”
최적현은 익숙한 듯 나의 말투에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다시 속눈썹을 겹쳐 웃으며 대답했다.
항상 왁스로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져나와 있었고, 건조하게 마른 눈 때문인지 눈꺼풀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고용인들이 매일 완벽하게 다림질을 해 두는 수트에는 조금 구김이 간 상태였다.
“조금 놀랐거든.”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눈치채기 어려운 변화였다.
하지만 녀석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것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그래.”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다음에는 이렇게 신경 써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 하나.
전자는 앞으로 개선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고, 후자는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쉽사리 열리지 않는 입을 달싹거리고 있자 최적현은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슬쩍 누르고 ‘아직 열이 좀 있네.’라며 중얼거렸다. 또, 침대 옆으로 눈동자를 흘끗 굴린 후 내게 말했다.
“그거 다 맞으면 돌아가자. 낯선 곳에 있는 거 싫어하잖아.”
최적현의 눈짓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내 손목과 연결된 수액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 어머님, 유태가 또 열이 나서요. 데리러 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몸이 성숙해지기 전까지, 그러니까 또래의 평균적인 신장을 훌쩍 넘어서고 근육이 붙어 몸이 두꺼워지기 전까지 꽤 자주 열이 났다. 똑똑한 서유성이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릴 적에 말이다.
타고나길 아주 예민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환경의 변화, 불편한 상황과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 등이 벌어지면 꽤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입을 꾹 다문 채 열을 냈다. 그러면서도 빨리 잠에 들어 회복할 만큼의 요령과 무던함은 그 당시의 내게 없었기에 항상 버거웠던 기억이 있었다.
– 괜찮아. 아파도 돼. 엄마도 가끔 아플 때 있는걸.
어머니는 그런 나를 다그치는 법도 없이 항상 다정한 말을 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몸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들어 어머니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깊게 잠들어 열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때의 기억을 왜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가 활짝 미소 지으며 내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어머니의 시간은 이미 멈춰 버렸고, 나는 어머니의 나이를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였는데 저 앳된 얼굴이 왜 이렇게 어른 같아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다시 뜨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머니가 사용했던 밝은 톤의, 부드러운 카 시트가 아닌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은 카 시트가 만져졌다.
그러면서도 잠이 깨지 않도록 부드럽게 굴러가는 바퀴는 꿈속에서 느꼈던 것과 그리 다를 게 없어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조금이나마 무뎌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처럼.
그에 멍하니 눈꺼풀을 깜빡이고 있자 다시 최적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이제 도착했으니까 슬슬 일어나.”
아무래도 최적현이 운전을 하는 동안 깜빡 잠에 든 것 같았다.
“다행히 모레 아침까지는 스케줄 없다더라. 좀 쉬었다가 갈 수 있겠네.”
“…….”
“어차피 멤버들 앞에서 안 좋은 모습 보여 주기 싫다고 안 들어갈 거잖아.”
최적현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활동기가 대강 끝나고, 스케줄에 짬이 생기는 날을 일부로 지목하여 임승훈을 불러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스케줄을 최적현이 어떻게 알아낸 건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알았냐는 의문을 담아 녀석을 쳐다보자 그사이 주차를 마친 놈은 차문을 열고 나가며 내 무언의 추궁을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매니저한테는 내가 친구 집에서 묵고 간다고 연락해 뒀어, 문자로. 말투로 들키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것까지는 장담 못 하겠네.”
그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멤버들도 오랜만에 잠깐 틈이 생긴 참에 가족들을 보러 간 시기이니 특별히 의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 정보가 누출됐는지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겠지.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을 따라 집에 들어가며 물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
이번에는 육성으로 뱉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신 상황에 맞지 않는 여유로운 미소가 철통같이 녀석의 얼굴을 덮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또 대답할 생각은 없으시고.’
대강 예상이 가긴 했다.
보안에 신경을 쓰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가게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최적현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무슨 대화를 하기 위해 누구와 만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최적현과 연결되어 있는 가게이니 오너가 녀석에게는 정보를 줬을지도 모른다.
‘화장실로 뛰쳐나가기 전에 오너랑 마주쳤으니까. 그때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연락을 했겠지.’
일을 하다가 온 것치고는 좀 빠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화장실에서 지저분한 꼴을 보이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는 모르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대충 그렇게 상황을 짐작한 나는 긴 복도를 지나 나타난 거실의 쇼파에 몸을 기대 앉았다.
그리고 일부러 가볍운 투로 물었다.
“룸에 남아 있던 소지품은 어디 있는지 알아?”
“아, 오너가 나한테 전달해 줬어.”
놈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내 지갑과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 훑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
“아니, 내 거 말고 임승훈 거. 내 기억으로는 분명 소지품을 챙길 새도 없이 뛰쳐나갔던 것 같은데. 어디에 뒀어?”
“…….”
재차 짧게 침묵이 이어졌다.
그동안 그저 느긋하게 미소 짓고 있던 최적현은 내가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에 입을 열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지, 유태야. 하지만 그걸 넘겨줄 수는 없어.”
오